답사와 여행(국내)/경상북도

하회(河回)마을/안동(安東)-1

케인스 2019. 5. 14. 21:54



                  하회(河回)마을 / 안동(安東)-1

 


☞ 경상북도(慶尙北道) 안동시(安東市) 하회(河回)마을



안동시 하회마을 위치 <google참고사진>


          여행사버스 이용




경상북도(慶尙北道) 안동시(安東市)



                               경상북도 행정구역


안동(安東)은 다만 한 지역을 이르는 말이 아니라 하나의 문화권을 이르는 말이기도 합니다. 경상북도를 크게 대구문화권과 안동문화권으로 나눈다면, 안동은 바로 경북 북부의 중심인 것입니다. 17세기 초 안동의 지리지인 「영가지(永佳誌)」에는 그 서문(序文)에 안동의 지세가 "산은 태백으로부터 내려왔고 물은 황지로부터 흘러온 것을 알 수 있다" 하였습니다. '안동'하면 아무래도 '양반'이 떠오릅니다. 안동에는 임진왜란 때의 재상 류성룡으로 유명한 풍산 류씨 동족마을인 하회말고도 의성 김씨 동족마을인 임하의 내합, 안동김씨 동족마을인 풍산의 소산, 퇴계 이황을 배출한 예안의 진성 이씨 등 곳곳에 동족마을 많습니다. '안동양반'은  이런 동족마을에서 배출한 선비들, 그 가운데서도 퇴계 이황을 거두로 한 영남학파를 형성한 사람들입니다.



하회(河回)

  

 

 

 

                                                                                          <하회마을 홈페이지 참조>



● 세계문화유산


세계문화유산, 안동하회마을


            안동화회마을은 2010년 8월에 경주 양동마을과 함께 한국의 역사마을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록 되었습니다.



세계문화유산(世界文化遺産) 석비(石碑)



● 하회마을



하회마을 위치 <google참고사진>


10:48 / 하회마을주차장에서 셔틀버스를 타기위해 하회마을버스정류장으로 이동


10:49 / 하회장터 입구



                                     <참고사진>


           하회장터 <참고사진>


10:53


                                           


- 안동의 세계문화유산: 1)한국의 역사마을 2곳 중(안동 하회), 2010년 등재.  2)한국의 전통산사 7곳 중 (안동 봉정사), 2018년 등재

- 안동의 세계기록유산: 1)한국의 유교책판(한국국학진흥원, 안동소재), 2015년 등재

- 안동의 아시아태평양기록유산: 1)한국의 편액(안동 도산서원 등 포함), 2016년 등재. 2)만인소(안동 참가인원 포함), 2018년 등재


셔틀버스를 타고 약5분간 이동 후 하회마을종합안내소 앞에서 하차한 후 하화마을입구로 도보 이동합니다.  <참고사진>



10:59 / 하회마을종합안내소 앞 세계문화유산(世界文化遺産) 석비(石碑)


11:03 / 봉화산(烽火山: 400.6m)


봉화산을 중심으로 북쪽은 안동시, 남쪽은 의성군으로 나누어지며, 봉화산과 서쪽으로 이어지는 산 능선은 의성과 안동을 구분하는 행정 경계의 역할을 합니다.


11:04


11:07 / 부용대(芙蓉臺): 하회마을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높이 64m의 절벽


 마을입구 <참고사진>


하회마을안내판 <참고사진>



11:09 / 하회마을안내도




11:10 / '종가길'따라 첫집. 慕來村門


                   慕來村門(모래촌문): 고향이 그리워서 찾아오는 집.
                   愛閑靜(애한정), 守明眞(수명진): 한적함과 고요함을 사랑하고, 밝고 참됨을 지킨다.


11:10 / 첫집 대문에 붙은 글씨, 용(龍), 호(虎)


11:12 / 민속주 안동소주




11:13 / 흙담길


하회마을의 길들은 마을 중앙에 있는 삼신당을 중심으로 방사선형으로 뻗어있는데 거의 다 흙담으로 이루어져있습니다. 이것은 하회마을이 '연화부수형(蓮花浮水形)' 즉 연꽃이 물 위에 뜬 형상이라 돌담을 쌓으면 무거워 가라앉는다고 하여 흙담을 쌓은 것입니다.


11:13 / 민박집, 류정고택


11:14


11:14


11:15


삼신당 가는 골목길


삼신당은 학록정사 옆으로 난 좁은 골목으로 진입할 수 있습니다. 원래 하회마을에는 두 그루의 느티나무가 있었는데 마을 외곽에 있던 나무는 화재로 소실되었다고 합니다. 현재도 타고 남은 일부가 남아 있어 그 크기를 짐작할 수 있게 해줍니다.


                        11:16 / 삼신당 신목(三神堂 神木)



                        삼신당 신목(三神堂 神木)


마을 한복판에 자리잡은 600년된 느티나무 삼신당 신목(三神堂 神木) 입니다. 삼신당 신목은 여자가 아이를 낳을 때의 형상을 하고 있어 다산(多産)을 의미하며, 아기 점지, 출산, 성장을 돕는 신목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신목 둘레에 쳐진 울타리 줄에 빽빽이 끼워놓은 하얀 쪽지는 소원을 적어놓은 소원성취문입니다.  


                     

                       


매년 정월 대보름 밤에 마을의 안녕을 비는 동제(洞祭)를 상당(上堂)과 중당(中堂)에서 지내고  그다음날 아침에 이곳 삼신당에서 제를 올립니다. 이곳에서 하회별신굿 탈놀이가 시작됩니다.


                       

                        소원성취 복채함


11:18 / 삼신당(三神堂) 담장 너머 화경당(和敬堂) 북촌댁(北村宅)은 류진 풍산금속 회장 개인 주택인 ‘학록정사(鶴麓精舍)’


11:20 / 당겨본 부용대(芙蓉臺), 많은 사람들이 화회마을 전경을 감상하고 있습니다.


11:22 / 대문에 붙은 글씨, 용(龍), 호(虎)


11:23 / 양진당, 충효당 가는 골목길



● 양진당(養眞堂: 보물 제306호)



    양진당(養眞堂) <참고사진>


풍산류씨의 하회마을 입향조(入鄕祖) 전서(典書) 류종혜(柳從惠) 공(公)이 15세기 경에 최초로 지은 집으로  풍산류씨(豊山柳氏)의 대종택(大宗宅)입니다.  임진왜란 때 일부가 소실 된 것을 17세기에 중수하였으며, 하회마을에서는 드물게 정남향(正南向)의 집으로 99칸으로 전해오지만, 지금은 53칸이 남아 있습니다. 사랑채는 고려 건축양식이며, 안채는 조선 건축양식의 고택입니다.


        

         <참고사진>


문간채와 행랑채가 길게 이어져 있고, 口자 형의 안채와 그 북쪽의 사랑채를 一자 형으로 배치하였으며, 오른편 북쪽에는 2개의 사당(祠堂)이 있습니다. 왼쪽의 큰 사당은 입암(立巖) 류중영(柳仲郢, 1515~1573) 선생의 불천위(不遷位) 사당이며, 작은 사당은 겸암(謙巖) 류운룡(柳雲龍, 1539~1601)선생의 불천위 사당입니다.



류중영(柳仲郢, 1515년 ~ 1573년)은 조선 중기의 문신이다. 본관은 풍산(豊山)이며, 간성군수를 지낸 류공작의 아들입니다. 자는 언우(彦遇), 호는 입암(立巖)으로 영남지방의 사족으로 풍산 류씨 가문의 중흥을 일군 인물이자 류운룡, 류성룡 형제의 아버지입니다. 류홍(柳洪)의 4대손이자 류소(柳沼)의 증손자이며, 류자온(柳子溫)의 손자이고 5대조부가 바로 안동 하회마을에 입향한 류종혜(柳從惠)입니다. 1540년 식년시문과에 병과23위로 급제하여 의주목사, 황해도관찰사, 승지, 예조참의 등을 지냈으며 40세 이후로는 주로 지방관을 지내면서 지방의 교육을 진흥시키는 정책을 실시하였습니다.


류운룡(柳雲龍, 1539~1601)조선 중기 사복시첨정, 풍기군수 등을 역임한 문신이며 학자로 본관은 풍산(豊山). 자는 응현(應見), 호는 겸암(謙巖). 아버지는 류중영(柳仲郢)이며, 어머니는 안동김씨(安東金氏)로 진사 김광수(金光粹)의 딸입니다. 류성룡(柳成龍)의 형으로 이황(李滉)의 문하에서 수학하였습니다.


 11:23 / 양진당(養眞堂) 사랑채 솟을대문





11:24 / 양진당(養眞堂) 사랑채


양진당은 정면 4칸 측면 3칸의 단층 팔작지붕 건물로, 오른쪽 3칸은 대청, 왼쪽 1칸은 온돌방으로 바깥 주위에 툇마루와 난간을 둘러 마치 누(樓)집과 같은 인상을 주며 대청에는 문을 달아 3칸 모두 열 수 있게 하였습니다.


입암고택(立巖古宅) 현판


사랑채 정면에 걸려있는 '입암고택(立巖古宅)' 현판은 겸암(謙巖) 류운룡(柳雲龍)선생의 부친인 입암(立巖) 류중영(柳仲郢)선생을 말합니다.


                                       양진당(養眞堂) 현판 <참고사진>


건물 안쪽 천장은 연등천장으로 꾸몄고 한석봉(韓石峯)이 쓴 ‘양진당(養眞堂)’이란 당호와 함께 여러 현판들이 걸려 있습니다. 당호인 '양진당(養眞堂)'은 겸암 선생의 6대 자손인 류영(柳泳, 1687~1761)공의 아호(雅號)에서 유래하였습니다.  




양진당(養眞堂) 안채 <참고사진>


           양진당(養眞堂) 사당 <참고사진>


양진당 오른편 북쪽에는 2개의 사당(祠堂)이 있습니다. 왼쪽의 큰 사당은 입암(立巖) 류중영(柳仲郢, 1515~1573) 선생의 불천위(不遷位) 사당이며, 작은 사당은 겸암(謙巖) 류운룡(柳雲龍, 1539~1601)선생의 불천위 사당입니다. 불천위(不遷位)란 공신이나 대학자 등의 탁월한 자에게만 영원히 사당에 모시기를 나라에서 허락한 신위를 말하며, 불천위로 인정되면 4대조까지 올리는 제사의 관행을 깨고 후손 대대로 제사를 올립니다.



● 충효당(忠孝堂: 보물 제414호)



     충효당(忠孝堂) <참고사진>


충효당(忠孝堂) 임진왜란 때 영의정으로 국난 극복에 앞장섰던 문충공(文忠公) 서애(西厓) 류성룡(柳成龍) 선생의 종택입니다. 선생이 삼칸 초옥(草屋)인 농환재(弄丸齋, 풍산읍 서미리)에서 1607년 5월 6일 별세한 뒤 일생을 청백하게 지낸 선생의 유덕(遺德)을 기리는 수많은 유림들의 도움을 받아 장손(長孫) 졸재(拙齋) 원지(元之)공이 처음 창건하였고, 증손자 의하(宜河)공이 확장 중수한 조선 중엽의 전형적인 사대부(士大夫) 집으로서, 대문간채, 사랑채, 안채, 사당으로 52칸이 남아있습니다.


                                              충효당 평면도 <참고사진>


11:28 / 충효당(忠孝堂)



충효당(忠孝堂) 솟을대문과 문간채


충효당(忠孝堂)은 문간채, 사랑채, 안채, 사당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문간채는 8대손 일우 류상조(1763~1838)가 지은 건물로 대문과 방, 광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사랑채와 안채는 손자인 졸재 류원지(1598~1674)가 짓고, 증손자인 눌재 류의하(1616~1698)가 확장 수리한 것입니다.

                             

                              안동충효당(安東忠孝堂: 보물 제414호)


충효당(忠孝堂) 사랑채 <참고사진>


충효당 사랑채는 정면 6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 건물로 왼쪽 2칸은 온돌, 가운데 2칸은 마루, 오른쪽 2칸은 판문을 달았습니다.


충효당(忠孝堂) 현판


충효당 전서체(篆書體) 현판은 조선 중기의 명필인 우의정 미수 허목(許穆, 1595∼1682)의 친필입니다. 충효당이란 당호(堂號)는 서애 선생이 평소에 '나라에 충성하고 부모에 효도하라'는 말을 강조한 데서 유래하였으며, 현판은 서애 선생의 증손자인 익찬 벼슬을 역임한 우눌재(愚訥齎) 류의하(柳宜河) 대에 게판 되었습니다.


 충효당(忠孝堂) 표지석


                   충효당기(忠孝堂記) <참고사진>


충효당 기문(記文)은 우눌재(愚訥齎) 류의하(柳宜河)의 손자인 서호(西湖) 류성화(柳聖和) 대에 식산(息山) 이만부(李萬敷)에게 청해 완성되었으며, 282년 뒤인 1988년에 서하인(西河人) 임창순(任昌淳)의 글씨로 제작하여 걸었습니다.


충효당(忠孝堂) 사랑채 <참고사진>


충효당(忠孝堂) 사랑채


충효당(忠孝堂) 사랑채 뒤뜰


         충효당 안채 <참고사진>


충효당 사랑채 마루에서 대문을 통해 엘리자베스2세의 방문기념으로 심은 '구상나무'가 보입니다.  <참고사진>


11:31 / 충효당(忠孝堂) 물천위사당(不遷位 祠堂)


서애(西厓) 류성룡(柳成龍) 선생의 신주(神主)를 모신 사당(祠堂)입니다. 



원래 종가집은 아니지만 조정에서 불천위(不遷位)로 정한 인물이 있으면 소종가(小宗家)가 되어 독자적으로 불천위 제사를 지냅니다.
서애선생의 불천위 제사와 명절의 차례 등 일년에 13번의 제사를 지낸다고 합니다.


불천위 사당 앞에 있는 만지송(萬枝松)


                       


사당(祠堂)과 만지송(萬枝松)


11:32 / 영모각(永慕閣)


충효당 내에는 영모각(永慕閣)이 별도로 건립되어 서애선생이 쓰신 징비록을 비롯하여 유성룡선생과 관련한 자료와 유품 등이 전시되고 있습니다.


                                             영모각 현판은 박정희 전 대통령이 쓴 글씨입니다.


<하회마을 홈페이지 참조>




               <참고사진>



   11:33 / 류성룡선생이 책을 읽고있는 모습 <참고사진>


 <참고사진>


            갓끈(보물460호): 서애 선생이 쓰시던 갓끈입니다. 지위에 따라 재질이 다릅니다. <참고사진>



                    관자(貫子: 보물460호) <참고사진>


망건의 당줄을 꿰는 작은 단추 모양의 고리로서 조선시대에는 신분에 따라 다른 관자를 썼습니다. 3품까지는 옥관자, 2품은 금관자, 1품이 되면 다시 옥관자를 쓰게되어 재상이 되는 것을 환옥(環玉)이라 하였습니다.


가죽신, 유서통(諭書筒)


유서(諭書)란 관찰사, 절도사, 방어사 등 고위 관료가 부임할 때 내리던 왕의 명령서를 담은 일종의 문서통입니다. 유서통을 메고 가는 자에게 만약 길을 가로 막거나 방해를 하면 삼족三族을 멸한다는 강력한 법을 적용하였으며 때때로 전령들이 이를 가지고 다니면서 위세와 행패를 부린다 하여‘유세를 부린다 또는 유세를 떤다’란 속담이 만들어졌다고 합니다.


서애선생 모부인 곤문기(西厓先生 母夫人 昆文記), [上]와 어사화(御賜花), [下]







징비록(懲毖錄: 국보 제132호)


<하회마을 홈페이지 참조>



하회마을 안내도


 <참고사진>


사당 앞 영모각(永慕閣)


영모각(永慕閣)  바깥마당에는 1999년 2월 엘리자베스2세의 방문기념식수가 있습니다.



     

      구상나무 <참고사진>


                                 삼층석탑 <참고사진>


종택 문간채 앞마당에는 삼층석탑이 있는데, 이 탑은 원래 서애 선생의 재사(齋舍)인 상로재(霜露齋) 뒷 편에 있던 것을 옮겨 놓은 것이라고 합니다.


11:38 / 충효당 솟을대문과 문간채



11:40 / 충효당에서 만송정 숲으로 가는길


담연재(澹然齋)



11:43 / 만송정(萬松亭) 숲 (천연기념물 제473호)


만송정 숲은 조선 선조때 1만 그루의 소나무를 심어 조성했다고 전해지며, 소나무 단순림으로 나무의 키가 약 15m정도로 현재의 숲은 약 100여년 전에 다시심은 것이며 최근에는 강변 평탄지에도 후계림을 조성하고 있습니다. 풍수(風水)에서는 부용대(芙蓉臺) 절벽처럼 험한 바위가 보이는 것을 산살(山殺)이라 하여 기피합니다. 이런 좋지않은 거친 기운을 막기위해 옛사람들은 이곳에 소나무를 많이 심어 나쁜 기운을 물리치려 했습니다.


<하회마을 홈페이지 참조>



11:46 /부용대(芙蓉臺)


부용대는 정상에서 안동 하회마을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높이 64m의 절벽입니다. 부용대라는 이름은 중국 고사에서 따온 것으로 부용(芙蓉)은 연꽃을 뜻합니다. 하회마을이 들어선 모습이 연꽃 같다는 데서 유래한 것으로, 하회마을을 가장 잘 바라볼 수 있는 곳이라 부용대라 부릅니다. 처음에는 ‘하회 북쪽에 있는 언덕’이란 뜻에서 ‘북애(北厓)’라 불렸다고 전합니다. 깍아지른 기암절벽과 유유히 흐르는 강물이 한 폭의 그림을 이루며 정상에서 바라보는 하회마을은 신비감을 자아냅니다. <백과사전자료>


매년 음력 7월16일 밤 만송정에서 강 건너 부용대까지 밧줄로 이어 불꽃을 피우는 선유(船遊) 줄불놀이가 펼쳐집니다.


                                                         하회선유줄불놀이

<하회마을 홈페이지 참조>



11:49 / 당겨본 겸암정사(謙巖精舍)


겸암(謙巖) 류운룡(柳雲龍)선생이 1567년학문연구와 제자 양성을 위해 지은 정사입니다.


 

겸암정사 위치 <google참고사진>



<하회마을 홈페이지 참조>



11:50 / 화산(花山: 328m): 화산(花山)은 하회마을의 주산(풍수지리 용어로 마을의 뒷산을 가리킴)입니다.


                        11:50 / 만송정비(萬松亭碑)


          만송정비(萬松亭碑)는 1983년에 세웠으며 이 솔숲의 내력과 함께 현재의 숲이 1906년 다시 심은 것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11:51 / 강변의 나루터


동산 마을


11:54 / 나루터와 부용대


 하회마을



11:56 / 목화당( 한옥체험)


11:56 / 강변길


11:58 / 강변길


12:01 / 무료셔틀버스[하회마을종합안내소 하회마을버스정류장]로 이동


12:07 / 하회세계탈박물관


하회마을 입구에 위치한 하회세계탈박물관은 1995년도에 개관한 한국 최초의 탈 전문 박물관입니다. 하회마을에서 전승되는 하회별신굿탈놀이 탈 뿐만 아니라 국내외의 여러가지 탈들을 수집, 전시하고 있습니다. 상설전시실 5개관과 특별전시실 1개관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전시실 내에는 탈써보기, 탈 트릭아트, 탈 캐릭터 본뜨기, 포토존, 탈 도장 모으기 등 무료 체험공간도 마련되어 있습니다.


 하회세계탈박물관


12:07


11:23 / 점심(간고등어)


12:49 / 하회장터 식당가


12:50 / 하회마을 출발




위에 기재된 사진 해설 내용은 상당부분 '하회마을홈페이지'에서 참조하였습니다.



               하회(河回)마을 / 안동(安東)-1

                                                                      (2019.05.0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