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량사(淸涼寺) / 청량산(淸涼山)
☞ 경상북도(慶尙北道) 봉화군(奉化郡) 청량사(淸涼寺)
청량사(淸涼寺) 위치 <참고자료>
청량산(淸涼山) 연화봉 기슭 한 가운데 연꽃처럼 둘러쳐진 꽃술 자리에 자리 잡은 청량사는 신라 문무왕 3년(663)에 원효대사가 창건했다고 전해지며 송광사 16국사의 끝 스님인 법장 고봉선사(1351-1426)에 의해 중창된 천년 고찰입니다. 창건당시 승당등 33개의 부속 건물을 갖추었던 대사찰로 봉우리마다 자리잡은 암자 에서는 스님들의 독경소리가 청량산을 가득메웠다고 합니다. 또한 자연경관이 수려한 청량산에는 한때는 신라의 고찰인 연대사(蓮臺寺)와 망선암 (望仙菴)등 대소 27개소의 암 자가 있어서 당시 신라 불교의 요람을 형성하기도 하였습니다. 하지만 조선시대 불교를 억압하는 주자학자들에 의해 절은 피폐하게 되어 현재는 청량사와 부속건물인 응진전만이 남아있습니다.
청량사(淸涼寺) 전경 <참고사진>
연화봉 기슭 한 가운데 연꽃처럼 둘러쳐진 꽃술 자리에 자리 잡은 청량사는 신라 문무왕 3년(663)에 원효대사가 창건했다고 전해지며 송광사 16국사의 끝 스님인 법장 고봉선사(1351-1428)에 의해 중창된 천년 고찰입니다. 창건당시 승당등 33개의 부속 건물을 갖추었던 대사찰로 봉우리마다 자리잡은 암자 에서는 스님들의 독경소리가 청량산을 가득메웠다고 합니다. 또한 자연경관이 수려한 청량산에는 한때는 신라의 고찰인 연대사(蓮臺寺)와 망선암(望仙菴)등 대소 27개소의 암자가 있어서 당시 신라 불교의 요람을 형성하기도 하였습니다. 하지만 조선시대 불교를 억압하는 주자학자들에 의해 절은 피폐하여 현재는 청량사와 부속건물인 응진전만이 남아있습니다. 청량사의 법당인 유리보전은 창건연대가 오래되고 짜임새 있는 건축물로 인하여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47호로 지정되었습니다.
▶ 전각(殿閣)
청량사(淸涼寺) <google참고사진>
청룡사(靑龍寺) 가람배치
● 유리보전(琉璃寶殿)
유리보전(琉璃寶殿)
유리보전(琉璃寶殿)
유리보전(琉璃寶殿)은 약사여래(藥師如來)를 봉안한 전각이며, 약사여래는 약사유리광여래(藥師琉璃光如來)의 준말입니다. 약사여래불은 모든 중생의 병을 치료하고, 수명을 연장해 주는 의왕으로서 신앙되는 부처님입니다.
고려 공민왕의 친필 현판
삼존상(三尊像)
중앙에 모셔진 약사여래불(藥師如來佛)은 특이하게 종이를 녹여 만든 귀중한 지불(紙佛)입니다. 이 불상은 협시불인 문수, 지장보살과는 달리 단 한번도 자리를 옮기지 않았다고 하는데 지금은 개금불사를 다시하여 보존하고 있습니다.
● 선불장(選佛場)
선불장(選佛場)
선불장(選佛場)은 부처님을 선출하는 장소라는 뜻으로 현재 스님들이 참선수행하는 곳입니다.
● 범종루(梵鐘樓)
범종루(梵鐘樓)
청량사 범종루는 2층 누각으로 1999년 완공하였으며 사물(四物)인 범종(梵鐘), 법고(法鼓), 운판(雲版) , 목어(木漁)가 놓여 있습니다.
현판
범종(梵鐘) <참고사진>
종은 산스크리스트어로는 간타라고 하는데 초기에는 대중에게 시간을 알려주는 역할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차츰 의식용(儀式用)으로 사용되었습니다. 우리나라의 종은 인도나 중국의 것을 다소 본받았지만 옛 우리의 전통을 이어받아 독특한 모양을 만들었습니다. 아침, 저녁으로 28, 33번 치는 범종의 소리는 우주의 모든 중생의 영혼을 제도할 뿐만 아니라 지옥에서 고통받는 중생의 고통을 멈추게 한다는 상징적인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법고(法鼓) <참고사진>
법고(法鼓)는 조석예불에 사용되는 북을 말하며, 축생(畜生)을 비롯한 땅 위에 사는 모든 중생들에게 불법(佛法)을 널리 전하여 번뇌를 물리치고 해탈에 이르게 하는 상징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목어(木漁) <참고사진>
마치 고기 모양으로 나무를 깍아 속을 파고 그것을 조석 예불 때 치는 불구(佛具)로 수중중생의 고통을 쉬게하는 법구로 쓰여진다는 것이며 또 일설에는 물고기는 잠을 자지 않기 때문에 정진하는 사람들이 잠에 취해서는 안되는 것을 경책하는 뜻이기도 한 것입니다.
운판(雲版) <참고사진>
청동으로 구름문양을 넣어 만든 불구(佛具)로 조석예불 때 치는데 이것은 허공세계에 사는 중생의 고통을 쉬게하는 의미를 가지고 있으며 옛날 선당에서는 밥 때를 알리는 신호로도 사용되었다고 합니다.
● 산신각(山神閣)
산신각(山神閣)
산신각(山神閣)은 고유신앙의 수용 차원에서 만들어진 것으로, 민간의 신앙이 두터운 칠성(七星)도 같이 모셔져 있습니다. 그 명칭은 산신각(山神閣), 칠성각(七星閣), 삼성각(三聖閣) 등 일정하지 않으며, 불교에서는 산신을 가람수호신과 산 속 생활의 평온을 지켜주는 외호신(外護神)으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산신각은 불교 밖에서 유입된 신을 모시는 건물이기 때문에 전(殿)이라 하지 않고 각(閣)이라 합니다.
산신각 탱화
● 안심당(安心堂)
안심당(安心堂)
안심당(安心堂)은 사찰내의 전통 다원(茶園: '바람의 소리를 만나면')으로 청량사와 청량산을 오가는 사람들의 발걸음을 잠시 멈추게하여 숨을 돌리고 삶의 여유를 갖게 하는 공간입니다. 여기서 얻어지는 수익금은 포교사업과 불우한 이웃을 위해 쓰여지고 있습니다.
사찰내의 전통 다원(茶園: '바람의 소리를 만나면')
● 심검당(尋劍堂)
심검당(尋劍堂)
심검당(尋劍堂)은 2002년에 개축된 건물로 강원(講院)으로 이용되고 있습니다. 정면5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으로 툇마루를 단 가운데 3칸은 강원이고, 좌, 우 양 협실을 두었습니다. 심검당은 선실 혹은 강원으로 지혜의 칼을 찾는 집이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이곳은 수행처이므로 일반인의 출입이 허용되지 않습니다.
현판
● 설선당(設禪堂)
설선당(設禪堂)
설선당(設禪堂)은 강설과 참선을 함께 한다는 뜻으로 사찰 내 불교 경전을 가르치는 교육장 등의 강당으로 이용하고 있습니다.
설선당(設禪堂) 벽면에 설치되어 있는『청량산청량사(淸凉山淸凉寺)』현판
설선당(設禪堂) 측면
● 영산당(影山堂)과 심우실(尋牛室)
영산당(影山堂)과 심우실(尋牛室)
요사(寮舍)로 사용합니다.
영산당(影山堂)과 심우실(尋牛室)
● 일소당(一笑堂)
일소당(一笑堂)
홍보팀이라고 쓴 종이가 붙어 있군요. 사찰의 홍보를 담당하는 사무실인가요? 전에는 템플스테이 사무국으로 이용하였습니다.
● 오층석탑(五層石塔)
오층석탑(五層石塔): 10월4일 산사음악회 준비가 한창입니다.
오층석탑(五層石塔)과 소나무
영화 "워낭소리"에서 죽은 소를 위해 위령제와 천도제를 올렸던 청량사 5층 석탑입니다.
삼각우총(三角牛塚)이란 전설이 전해오는 소나무
청량사의 유리보전과 5층석탑 사이에 있는 커다란 소나무에는 아득한 옛날부터 뿔이 셋 달린 소의 무덤이 전하여 옵니다. 옛날 청량산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남민(南敏)이라는 사람이 살고 있었습니다. 그의 집에서 기르던 소가 새끼를 낳았는데 뿔이 셋 달렸으며, 차차 자라 크기가 낙타만 하고, 힘이 세며 사나워서 써먹을 수가 없었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청량사 주지가 남민의 집을 찾아가서 절에 시주하도록 권하여 승낙을 받았습니다. 크고 힘세며 고집이 많은 이 뿔이 셋 달린 소는 절에 온 후 차츰 고분고분해져 연대사(蓮臺寺)와 암자(庵子)의 석축을 쌓는 데 소요되는 돌을 운반하거나 절에서 소비하는 나무를 운반하는 등 많은 일을 했습니다. 그러나 준공을 하루 앞둔 어느 날, 뿔이 셋 달린 이 소가 죽었으므로 이를 불쌍히 여겨 절 앞에다 묻고 묘를 만들어 주니 그 자리에서 가지가 셋인 소나무가 자라나 세상 사람들이 이것을 삼각우총(三角牛塚)이라 불러오고 있습니다.
● 일주문(一柱門)
일주문(一柱門):『청량산청량사(淸凉山淸凉寺)』
사찰에 들어가는 어귀에 우뚝 서 있는 문으로, 기둥을 양쪽에 하나씩만 세워서 지어진 것이 다른 건물과 다른점입니다. 이 문을 경계로 하여 문 밖을 속계(俗界)라 하고, 문 안은 진계(眞界)라 합니다. 이 문을 들어 설 때 오직 일심(一心)에 귀의한다는 결심을 갖도록 마음을 다잡는 뜻이 있습니다.
● 기타
설선당에서 사찰 중심부로 가는 길
수조(水槽)
청량수(淸涼水)
입구에서 유리보전(琉璃寶殿) 오르는 길
야외에 설치된 반가사유상 조형물
나란히 나란히
청량사에 걸려있는 10월4일에 있을 청량사 산사음악회 현수막
▶ 부속암자
● 응진전(應眞殿)
12:45 / 응진전(應眞殿)
금탑봉(金塔峰) 중간절벽 동풍석(動風石) 아래에 위치한 청량사(淸凉寺)의 부속건물 중 하나였을 것으로 보인다. 정면3칸, 측면2칸의 주심포계(柱心包系) 맞배기와집으로 내부에는 석가삼존불(釋迦三尊佛)과 16나한(羅漢)이 봉안되어 있다. 특히 16나한과 더불어 법당 내부에 공민왕(恭愍王, 1330~1374)의 부인인 노국대장공주(魯國大長公主)의 상(像)이 안치되어 있는데, 이를 통해 공민왕의 청량산 몽진(蒙塵)에 대한 역사적 사실의 일면을 엿볼 수 있다. 앞뒤가 모두 절벽으로 형성되어 있는데 뒤쪽 절벽 위에는 동풍석(動風石)이, 요사채 옆의 절벽 사이에는 감로수(甘露水)가 흘러나온다. 또한 법당 앞에 사방을 조망할 수 있는 전망대가 있는데 주세붕(周世鵬, 1459~1554)은 자신의 자(字)를 따서 경유대(景遊臺)라 이름하였다. <안내판>
응진전(應眞殿)
의상대사가 세웠다는 응진전은 원효대사가 수도를 위해 머물렀던 청량사의 암자로 663년에 세워진 것으로 청량산에서 가장 경관이 뒤어나다. 응진전을 외청량이라하고 청량사를 내청량이라 합니다.
석가삼존불
응진전 나한상(羅漢像)
응진전에는 각각의 개성을 드러내며 조각되어 있는16분의 나한상을 모시고 있다. 이 나한들은 재상의 아들이며 바루를 들고 있는 빈도라바라다바자, 선악의 구별 능력이 있는 가나가바차, 전생의 기억을 아는 가나가바라타자, 수빈타 등을 긁고 있는 나쿠라, 참선하는 바다라, 철바루를 들고 있는 카리카, 바자라푸트라, 중생 교화에 힘쓴 지바카, 판타카, 라후라, 나가세나, 경전을 읽고 있는 안가다, 바나바시, 아지타, 수다판타카로의 16나한은 석가여래가 열반한 이후에 미륵불이 나타날 때까지 열반에 들지 않고 이 세상에 있으면서 불법을 수호하도록 위임받은 분들이다. 고려 시대 노국 공주가 청량사 응진전에서 16나한을 모시고 기도를 하였다고 한다. <청량사 홈>
응진전 내의 나한상들 <사진자료>
위의 나한상들은 노국 공주와 시녀들이 깎았으며 그중에는 공민왕과 노국 공주를 형상화 한 상(象)도 있다는 이야기가 전해져옵니다.
● 무위당(無爲堂)
무위당(無爲堂)
응진전 못가서 금탑봉 아래 보이는 건물이 ‘무위당(無爲堂)’입니다. ‘無爲란 자연에 따라 행하고 인위를 가하지 않는 것. 인간의 지식이나 욕심이 오히려 세상을 혼란시킨다고 여기고 자연 그대로를 최고의 경지로 보는 사상’을 말합니다.
무위당(無爲堂)은 응진전 스님들의 숙소로 쓰여지고 있습니다.
굳게 닫혀있는 무위당(無爲堂) 입구 문
청량사(淸涼寺) / 청량산(淸涼山)
(2014.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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