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사와 여행(국내)/충청남도

동학사(東鶴寺)/공주(14.03.30)

케인스 2014. 6. 21. 00:24

 

 

동학사(東鶴寺) / 계룡산(鷄龍山)

 

 

 

☞ 충청남도(忠淸南道) 공주시(公州市) 동학사(東鶴寺)

 

     

         동학사(東鶴寺) 위치 <참고사진>

 

동학사(東鶴寺) 전경

 

동학사(東鶴寺)는 충청남도 공주시 계룡산에 위치하며 마곡사(麻谷寺)의 말사로 신라 성덕왕23년(724) 상원조사(上願祖師)가 암자를 지은 곳에 회의화상(懷義和尙)이 절을 창건해 상원사(上願寺)라 했습니다. 936년 신라가 망하자 대승관(大丞官) 유거달(柳車達)이 이곳에 와 신라의 시조와 충신 박제상(朴堤上)의 초혼제를 지내기 위해 사당을 지으니 승려들이 모여들어 규모가 커지면서 이름을 동학사로 바꾸었습니다. 고려 태조3년(1394) 고려의 유신 길재(吉再)가 고려 태조와 정몽주의 제사를 지냈고, 조선 세조3년(1457)에는 김시습(金時習)이 사육신의 초혼제를 지내고 단종의 제단을 증설했는데, 다음해 이곳에 들른 세조가 단종을 비롯해 세조찬위 때 억울하게 죽은 280여 명의 성명을 비단에 써주며 초혼제를 지내게 한 뒤 초혼각(招魂閣)을 짓게 하고 인신(印信)과 토지 등을 하사했으며 동학사(東鶴寺)라고 사액하였습니다. 영조4년(1728) 이인좌(李麟佐)의 난으로 모두 소실된 것을 순조14년(1814) 월인선사(月印禪師)가 예조에 상소하여 중건했고, 고종1년(1864) 보선국사(普善國師)가 옛 건물을 모두 헐고 건물 40칸과 초혼각 2칸을 지었습니다. 1904년 초혼각을 숙모전(肅慕殿)이라고 개칭하였고 6·25전쟁 때 거의 파괴된 것을 1975년 개축하였습니다.

 

동학사(東鶴寺) <google참고사진>

 

경내 전각으로는 대웅전, 삼성각, 범종루를 비롯하여 조사전, 육화당, 강설전, 화경헌, 화엄료, 염화실, 실상선원, 숙모전, 삼은각, 동계사 등이 있고, 산내 암자로는 18세기까지는 석봉암, 천장암, 마쇄암, 보현암, 실상암, 옥천암, 극락암 등이 있었으며 현재는 관음암, 길상암, 문수암, 미타암, 상원암, 심우정사 등이 있습니다. 문화재로는 문화재 제58호인 3층석탑, 문화재 제57호인 삼성각과 동계사 등이 있으며, 가까이에 석탑으로 일명 '남매탑'으로 불리는 상원암(옛 계명정사)에 있는 보물 1284호인 5층석탑과 보물 1285호인 7층석탑 등이 있습니다. 
 

 

전각(殿閣)

 

 

동학사(東鶴寺) 가람배치 <참고자료>

 

 

 

                                              <참고자료>

 

                     

 

 동학사계곡

 

 

 

● 일주문(一柱門)

 

 

일주문(一柱門)

 

鷄龍山 東學寺라는 현판은 여초 김응현(如初 金應顯, 1927~2007) 선생의 글씨입니다.

 

 

동학사불교문화원(東鶴寺 佛敎文化院)

 

 

                 동학사불교문화원(東鶴寺 佛敎文化院) <참고사진>

 

동학사 불교문화원은 동학사 일주문과 대웅전 사이에 위치하고 있으며 2002년 4월 26일 다양한 불교 강좌와 교양 강좌를 통하여 일반인들에게 불교를 가르치고, 여러 단체와 교류하며 불교의 가르침을 함께 나누려는 목적에서 설립되었습니다. 2층의 문화원 건물은 법당, 독서실, 영상실, 안내실로 구성되어 있으며, 법당과 독서실은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으며, 문화원 수강생들과 특정일에 한하여 영상실을 개방하고 있다.

 

 

세진정(洗塵亭)

 

 

 세진정(洗塵亭)

 

세진정(洗塵亭)은 동학사 대웅전에서 멀지 않은 계곡 가에 위치하는 육모정(六矛亭) 정자(亭子)입니다. 세진(洗塵)이란 마음속 번뇌의 티끌을 맑은 계곡에 씻어 깨끗한 마음으로 부처님께 나아가라는 의미를 가진다고 할 수 있습니다.

 

 

지금은 없어졌지만 몇년전까지도 세진정(洗塵亭) 앞에는 아래의 사진과 같이 홍살문(紅箭門)이 있었습니다.

 

 

                   홍살문(紅箭門) <참고사진>

 

능(陵), 원(園), 묘(廟), 관아(官衙) 등의 앞에 세우던 붉은 칠을 한 문(門)으로 둥근기둥 두 개를 세우고 지붕이 없이 윗부분에 화살 모양의 나무를 나란히 세우고 중간에는 태극 문양을 그려 놓았는데, 이는 출입하는 사람들에게 경의를 표하라는 뜻이 담겨있는 유교적 관습의 문입니다. 이러한 홍살문을 불교 사찰에 세우는 경우는 극히 드문 일입니다.

 

동학사에 세워져있던 홍살문은 동학사 내 동쪽에 자리잡고 있는 동계사(東鷄寺), 삼은각(三隱閣), 그리고 숙모전(肅募殿: 원명은 초혼각/招魂閣) 등의 시설이 있기에 이곳에서 경건한 마음을 가지라는 뜻에서 세워져 있었습니다.

 

 

● 부도전(浮屠殿)

 

 

                  부도전(浮屠殿) <참고사진>

 

대웅전을 중심으로 서쪽 100m정도 떨어진 곳에 6기의 부도가 있으며 동학사 경내에는 모두 11기의 부도가 있으며 모두 조선 후기에 조성된 것입니다.

 

 

● 대웅전(大雄殿)

 

 

대웅전(大雄殿)

 

대웅전(大雄殿)

 

경내의 중심에 위치하고 있는 대웅전은 1980년 당시 주지였던 봉민스님의 원력으로 개축된 건물인데, 석조 기단 위에 복연판주초석을 놓고 원형 기둥을 세워 정면 3칸, 측면 3칸의 팔작지붕으로서 남향하여 건립되었습니다. 정면 3칸의 중앙칸에는 4분합문, 좌우칸에는 분합문을 달았습니다.

 

                     

                      대웅전(大雄殿) 현판 <참고사진>

 

                      대웅전 삼존불 <참고사진>

 

내부에는 우물마루를 깔아 후면 중앙문에 불단을 조성하여 3존불을 조성하였는데, 석가여래를 주존불로 하여, 우측에 아미타여래 좌측에 약사여래를 봉안하고 있습니다. 대웅전 내부 후불벽에는 근래에 제작된 삼불회상목각탱이 봉안되어있고 동벽에는 신장탱화와 약사회탱이, 서벽에는 미타회탱과 현왕탱이 걸려 있는데 목각탱을 제외한 불화들은 모두 광무2년(1898)에 제작되었습니다.

 

 

공주 동학사 목조석가여래삼불좌상(公州 東鶴寺 木造釋迦如來三佛坐像)

 

 

                   

            <참고사진>

 

공주 동학사 대웅전에 봉안되어 있는 삼불상은 사바세계의 교주석가여래를 본존으로 좌우에 동방 만원세계의 약사여래와 서방 극락세계의 아미타여래를 배치한 공간적 삼세불상 형식을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공간적 삼불좌상은 임진왜란 이후에 크게 유행한 형식인데, 이 불상도 그러한 예에 속한다.

 

 

공주 동학사 목조석가여래삼불좌상 복장유물(公州 東鶴寺 木造釋迦如來三佛坐像 腹藏遺物)

 

 

                          <참고사진>

                      

이 삼불좌상에는 개금 전 2010년 8월 11일에서 8월 13일까지 3일간 진행된 사전 복장조사에서 불상의 조성이나 중수과정을 알 수 있는 발원문과 불상의 심장에 해당하는 후령통, 법사리로 납입된 경전류, 그리고 시주자의 소원이 담겨져 있는 유물 등 다양한 복장유물이 발견되었다.

 

 

                        <참고사진>

 

공주 동학사 목조석가여래삼불좌상 복장전적은 동학사 대웅전에 봉안된 보물 제1719호의 공주동학사 목조석가여래삼불좌상에서 발견된 불서들로 모두 임진왜란 이전의 간사본이다. 이 중에서 희귀본, 귀중본, 완전본 등의 조건을 고려하여 중요도가 높은 7종 8책을 별도의 국가지정문화재(보물)로 지정하였다.

 

 

1.대방광원각수다라요의경 권4,권6
2. 대불정여래밀인수증요의제보살만행수능엄경 언해 권6
3. 육경합부
4. 묘법연화경(언해) 권2
5. 불설장수멸죄호제동자다라니경
6. 불조삼경
7. 지장보살본원경 권하

 

 

 

                                

               도솔내의 - 도솔천에서 흰코끼리를 타고 내려 오시다.            녹원전법 - 진리를 설하시다. <참고사진>

 

               대웅전 전각 내외에 화려한 단청을그려 장엄하였고, 외벽에는 부처님의 일대기 팔상도가 그려져 있습니다.

 

 

● 삼층석탑(三層石塔)

 

 

                     

                       동학사 삼층석탑(東鶴寺 三層石塔):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58호

                     

 

                       

 

                                                복원 전의 동학사 삼층석탑 <문화재청참고사진>

 

동학사 내에 자리하고 있는 석탑으로 ‘청량사(남매탑이 있는 곳)’라는 암자에서 이곳으로 옮겨 놓은 것입니다. 1층 기단(基壇) 위로 3층의 탑신(塔身)을 올린 모습인데, 탑신부의 3층 몸돌은 없어진 상태입니다. 기단의 맨 윗돌은 탑신의 지붕돌과 같이 윗면에 비스듬한 경사를 두었고 탑신의 각 몸돌에는 모서리마다 기둥 모양을 본떠 새겼으며, 적당한 경사가 흐르는 지붕돌은 밑면에 5단씩의 받침을 새겨 놓았습니다. 규모가 작은 탑으로 통일신라 선덕왕 23년(723) 동학사를 처음 지을 때 함께 세워두었다 하나, 탑의 양식이나 다듬은 솜씨로 보아 고려시대의 작품으로 보입니다. <백과사전>

 

 

● 조사전(祖師殿)

 

 

                 조사전(祖師殿) <참고사진>

 

조사전은 일처스님이 1985년에 지은 건물로 1800년 대 이래 동학사에 머문 경봉, 경허 등 7분의 영정을 모시고 있으며, 매년 정초, 추석, 중량절에 다례를 모십니다.

 

                      조사전(祖師殿) <참고사진>

 

                              

                  호경당 진영 <참고사진>                                                     경허당 진영 <참고사진>

 

 

● 화엄료(華嚴)

 

                       

                      화엄료(華嚴寮) <참고사진>

 

                        화엄료(華嚴寮)는 스님들이 사용하는 요사(寮舍)채로 이용하고 있습니다.

 

                                                  화엄료(華嚴寮) <참고사진>

 

● 삼성각(三聖閣)

 

 

                      삼성각(三聖閣):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57호 <참고사진>

 

                          삼성각(三聖閣) 현판 <참고사진>

 

       

                                                 삼성각 칠성탱화 <참고사진>

 

● 강설전(講說殿)

 

 

              강설전(講說殿) <참고사진>

 

강설전(講說殿)은 정면5칸, 측면 3칸의 팔작지붕 건물로 정면에는 매칸 띠살문양의 4분합문으로 되어있으며 외벽에는 벽화가 그려져 있습니다. 현재 승가대학의 강의용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화경헌(和敬軒)

 

 

화경헌(和敬軒)

 

화경헌(和敬軒)은 정면 3칸, 측면 3칸의 팔작지붕 2층 건물로 스님들이 공부하는 요사(寮舍)채로 이용하고 있습니다.

 

 

실상선원(實相禪院)

 

 

                                       실상선원(實相禪院) <참고사진>

 

실상선원(實相禪院)은 경허스님이 용맹정진했던 토굴이 있던 자리에 세워져 있다. 평소 승가대학 4학년 이상의 학인들과 석사과정에 있는 학림(學林) 스님들에게만 개방하는 교육과 생활의 공간으로 철저하게 일반인들의 출입이 금지되어 있습니다.

 

 

범종루(梵鐘樓)

 

 

              

                       범종루(梵鐘樓): 1층은 기념품 판매점입니다.

 

                  범종루(梵鐘樓) 현판: 일중(一中) 김충현(金忠顯)선생의 글씨 <참고사진>

 

           범종루(梵鐘樓) <참고사진>

 

 

범종루(梵鐘樓)에는 불전사물(佛前四物)인 범종(梵鐘), 운판(雲板), 목어(木魚), 법고(法鼓) 등을 비치하고 있습니다. 2층의 누각(樓閣)으로 되어 있을 때는 범종루라고 합니다. 이곳에 비치되는 사물은 모두 부처님에게 예배드릴 때 사용되는 불구로서, 우리나라에서는 새벽예불과 사시공양(巳時供養), 저녁예불 때에 사용됩니다. 이들은 소리로써 불음(佛音)을 전파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는데, 범종은 청정한 불사(佛寺)에서 쓰이는 맑은 소리의 종이라는 뜻이지만 지옥의 중생을 향하여 불음을 전파하고, 법고는 축생의 무리를 향하여, 운판은 허공을 나는 생명을 향하여, 목어는 수중의 어류를 향하여 소리를 내보낸다는 상징적 기능을 가지고 있습니다.

 

 

육화료(六和寮)

 

 

 

대웅전의 동쪽에 위치하는 육화료(六和寮)는 1968년 세웠으며 팔작지붕의 'ㄱ'자형식의 건물이고 대중 스님들의 큰 방으로 발우공양을 하고 경학을 연구하는 곳입니다. 동학사(東鶴寺)라고 적혀있는 현판이 걸려있고 왼쪽 아래층에는 종무소(宗務所)가 있습니다. 육화(六和)란 "함께 공정하게 생활하며(身), 말로써 화합하며(口), 생각으로 화목하며(意), 다같이 계율을 지키며(戒), 법에 대한 의견을 같이하며(見), 유익한 일은 균등하게 나눈다(利)"는 뜻으로. 즉 여섯가지 법으로써 모두 화합한다는 승가의 실천 내용이 담겨있습니다.

 

 

염화실(捻花室)

 

 

                     

                       염화실(捻花室): 주지스님의 처소 <참고사진>

 

 

남매탑(男妹塔)

 

 

남매탑(男妹塔)

 

 

 

남매탑(男妹塔): 왼쪽의 청량사지 오층석탑(淸凉寺址 五層石塔)과 오른쪽의 청량사지 칠층석탑(淸凉寺址 七層石塔)

 

                  청량사지 오층석탑(淸凉寺址 五層石塔): 대한민국 보물 제 1284호

 

                        

                           <참고자료>

 

 

                  청량사지 칠층석탑(淸凉寺址 七層石塔): 대한민국 보물 제 1285호

 

                           

                              <참고자료>

 

  

 

                                                                                  남매탑(男妹塔)

 

남매탑중건방함기(男妹塔重建芳啣記)

 

『唯我大韓之湖南에 有一座名山하니 山曰 鷄龍이요 水曰 錦江이라 儒城鏡湖左右分裂之間에 可謂城中之名山이며 方外之勝地也로다 三佛峰左便 上院庵舊址에 祖師의 有娚妹塔하니 新羅聖德王二十三年甲子 西紀七二三年에 祖師의 門人懷義和尙이 主務되어 建立된 塔으로서 悠久한 역사를 지닌 文化財였던 바 不幸하게도 一九四四年 春間에 盜堀輩에 依하여 顚倒되었으나 復舊하기 極難하던 中 一九六一年晩秋에 大田市 孝洞 居住 金善龍氏의 化發信心之願力으로 莫大한 私財를 喜捨하야 重修再建하니 其功勞는 不可思議로다 晩時之歎』

 

『우리 대한민국의 호남에 명산(名山) 하나가 자리하고 있으니, 산이름이 계룡(鷄龍)이요, 물이름이 금강(錦江)이라. 유성(儒城)과 경호(鏡湖)가 좌우로 나뉘는 사이에 가히 성(城) 중의 명산이라 할 만하며, 세속을 초월한 뛰어난 명승지(名勝地)로다. 삼불봉(三佛峰) 왼편 상원암(上院庵) 옛터에 조사(祖師)의 남매탑(娚妹塔)이 있으니, 때는 신라 성덕왕(聖德王) 23년 갑자 서기 723년에 조사의 문인(門人) 회의화상(懷義和尙)이 주관하여 건립된 탑으로, 유구한 역사를 지닌 문화재였던 바, 불행하게도 1944년 봄에 도굴배(盜堀輩)에 의하여 무너져 있있으나 복구하기 극히 어려웠던 중, 1961년 늦가을에 대전시 효동에 거주하는 김선룡(金善龍)씨가 신심의 원력을 낸 은혜로 막대한 사재를 희사하여 중수재건(重修再建)하니 그 공로는 불가사의함이로다. 만시지탄』 <향기로운 불교 카페에서 옮겨옴>

 

 

초혼각지(招魂閣址)

 

 

              

                      계룡산초혼각지 (鷄龍山招魂閣址): 충청남도 기념물 제18호 <참고사진>

 

세조(재위 1455∼1468)가 단종을 폐위할 때 뜻을 굽히지 않고 끝까지 절의를 지켜 죽어간 사육신 이하 여러 충신들의 혼을 모셨던 곳입니다. 세조가 왕위를 차지하는 과정에서 황보인, 김종서는 수양대군에게 살해당하였고, 왕위를 찬탈한 다음해인 세조 2년(1456)에는 성삼문을 비롯한 사육신이 단종의 복위를 꾀하다가 모두 참형 당했습니다. 같은 해(1456년) 생육신인 매월당 김시습이 이곳 계룡산에 와서 제단을 마련하고 이들을 위해 초혼제(招魂祭)를 지내어 영혼들을 위로하였다고 전해집니다. 그후 세조 4년(1458) 조정에서는 단종을 비롯하여 안평대군, 황보인, 김종서 등 당시 죽음을 당한 280여 위패를 모시고 영혼을 위로하기 위한 초혼각(招魂閣)을 세웠다고 합니다. 세조 12년(1466)에 김시습 등이 건물을 더 짓고 매년 봄, 가을로 제사를 지내오다가, 영조 4년(1728) 화재로 타버린 것을 고종 원년(1864)에 만화(萬化)스님이 지금의 모습으로 다시 세웠다고 합니다. 1904년 숙모전이라 이름을 바꾸었습니다.

     

     <참고사진>

 

                                                    <참고사진>

 

                     

                      숙모전(肅慕殿) 주위 풍경 <참고사진>

 

 <참고자료>

 

     

      <참고자료>

        

          <참고자료>

 

                 

                       <참고자료>

 

 

인재문(仁在門)

 

 

인재문(仁在門)

 

숙모전(肅慕殿)의 대문인 인재문(仁在門)은 규모를 갖춘 사당(祀堂)과 같이 솟을 삼문(三門) 형식으로 문 중앙에 태극문양을 장식하였습니다.

 

 

숙모전(肅慕殿)

 

 

                      숙모전(肅慕殿):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67호 <참고사진>

                     

단종(端宗:1441∼1457)과 단종의 죽음을 막기 위해 노력한 충신들의 위패를 모신 사당이다. 단종은 아버지 문종에 이은 조선 6대 왕이다. 어린 나이에 왕에 올라 많은 충신들의 도움으로 정치를 하던 중 작은아버지인 수양대군에게 정권을 빼앗기고 죽음을 당하게 된다. 이곳은 원래 초혼각으로 사육신의 시신을 장례한 후 제사지내던 곳이었다. 영조 4년(1728)에 불탄 것을 순조 27년(1827)에 다시 세웠습니다. 고종 1년(1864) 초혼각 북쪽에 단종의 위패를, 동벽에 고려 후기 충신 7위를, 서벽에는 사육신 등 7위를 모셨습니다. 고종 41년(1904)에 이름을 '숙모전'이라 바꾸고 단종의 부인이었던 정순왕후도 함께 모시게 되었습니다. <자료: 문화재청>

 

                     

                        <참고자료>

 

                                숙모전(肅慕殿) 제향 장면 <참고사진>

 

                          숙모전(肅慕殿) 제향 장면 <참고사진>

 

숙모전(肅慕殿) 제향은 단종과 단종 복위를 외치던 충신들의 혼을 기리는 제사로, 일년에 두번 춘향(春享:봄제사) 음력3월15일(단종 탄신일)과 동향(冬享) 음력10월24일(단종 승하일)에 맞춰 제를 올리고 있습니다.

 

 

동무(東廡)와 서무(西廡)

 

 

                      숙모전(肅慕殿) 동무(東廡) <참고사진>

 

1883년 동무(東廡)를 세워 고려말 충신인 삼은(三隱) [목은(牧隱) 이색(李穡) / 포은(圃隱) 정몽주(鄭夢周) / 야은(冶隱) 길재(吉再)]과 계유년 정변 때의 삼상(三相: 황보인, 김종서, 정분) 및 단종의 시신을 거둔 엄홍도(嚴興道) 등 7명의 위패를 초혼각(招魂閣)으로부터 옮겨 모셨습니다.

 

                      숙모전(肅慕殿) 서무(西廡) <참고사진>

 

1883년 서무(西廡)를 세워 성삼문(成三問)·하위지(河緯地)·이개(李塏)·유성원(柳誠源)·박팽년(朴彭年)·유응부(兪應孚) 등 6명의 사육신과 김시습(金時習) 등 7명의 위패를 초혼각(招魂閣)으로부터 옮겨 모셨습니다.

 

 

삼은각(三隱閣)

 

 

                      삼은각(三隱閣): 충청남도 문화재자요 제59호 <참고사진>

 

         <참고사진>

 

삼은각(三隱閣)은 고려 때 절의를 지킨 포은(圃隱) 정몽주(鄭夢周), 목은(牧隱) 이색(李穡), 야은(冶隱) 길재(吉再) 등 삼은(三隱)의 위패를 모신 곳이다. 원래 고려 유신(遺臣) 길재가 월영(月影, 운선(雲禪) 두 스님과 함께 단(壇)을 설치하고 고려 태조 및 충정왕, 공민왕의 초혼제(招魂祭)를 지내다가 정몽주도 아울러 모셨다. 후에 1399년(조선,정종1년)에 고려 유신 유방택(柳方澤)이 삼은의 초혼제를 지냈고, 이듬해에 공주목사(公州牧使) 이정간(李貞幹)이 건물을 지어 삼은만 제사를 지내 삼은단(三隱壇)이라 하였다. 세조 때에 초혼각(招魂閣)을 세우고, 광해군 때 유방택을, 순조(純祖) 때 이숭인(李崇仁, 陶隱)을 그리고 나계종(羅繼從)을 추가하여 6인의 제사를 지냈으나 이름은 그대로 삼은각이라 한다. <안내문에서>

 

                                 삼은각 (三隱閣) 앞 뜰의 1969년에 제작한「삼은각 중건 기념비(三隱閣 重建 紀念碑)」 <참고사진>

 

                  삼은각 (三隱閣) 제향 장면 <참고사진>

 

                  삼은각 (三隱閣) 제향 장면 <참고사진>

                         

                  왼쪽 건물은 삼은각 (三隱閣), 오른쪽 건물은 동계사(東鷄祠) <참고사진>

 

 

동계사(東鷄祠)

 

                    

                      동계사(東鷄祠) <참고사진>

 

동계사(東鷄寺)는 신라 충신 박제상(朴堤上)을 기리기 위하여 고려 태조 때 지었습니다. 신라 제19대 눌지왕(訥祗王) 때 인질로 일본에 잡혀간 왕의 아우 미사흔(未斯欣)을 탈출시키고 자기는 왜국에서 혹형으로 죽은 관설당(觀雪堂) 박제상(朴堤上)의 충혼(忠魂)을 모신 곳으로 고려 태조19년(939)에 개국공신 유차달(柳車達)이 박제상의 만고충절을 기려 이곳에서 초혼제사(招魂祭祀)를 지냈는데 이 일이 알려지자 왕명으로 동계사(東鷄寺)를 지었습니다. 오랜 세월 속에 동계사는 폐허가 되었는데 1956년 중건하고 유차달도 함께 추가하여 배향하였습니다.

 

        동계사(東鷄祠) 제향 장면 <참고사진>

 

 

숙모재(肅募齋)

 

 

                      숙모재(肅募齋)  <참고사진>

 

숙모재(肅募齋)는 숙모전(肅慕殿), 삼은각 (三隱閣)과 동계사(東鷄祠) 제향이 있을 때 제사를 관장하고 관리하는 인원들이 사용하는 재실(齋室)입니다.

 

                      숙모재(肅募齋) 현판 <참고사진>

 

                      1칸 협문(狹門)과 그 뒤로 보이는 숙모재(肅募齋)  <참고사진>

 

 

부속암자

 

부속암자로는 미타암, 길상암, 관음암, 문수암, 심우정사, 상원암 등이 있습니다.

 

 

관음암(觀音菴)

 

 

관음암(觀音菴)

 

                                관음암(觀音菴) 현판 <참고사진>

 

 

길상암(吉祥菴)

 

 

길상암(吉祥菴)

 

                             길상암(吉祥菴) 현판 <참고사진>

 

 

● 미타암(彌陀菴)

 

 

미타암(彌陀菴)

 

                                      미타암(彌陀菴) 현판

 

 

상원암(上元)

 

 

상원암(上元庵)

                  

                  상원암(上元庵) <참고사진>

 

 

문수암(文殊)

 

 

                  문수암(文殊) <참고사진>

         

                   문수암(文殊) <참고사진>

 

 

심우정사(尋牛精舍)

 

 

                 

                  심우정사(尋牛精舍) <참고사진>

 

                                          심우정사(尋牛精舍) 현판 <참고사진>

 

 

   

 

 

 

                          동학사(東鶴寺) / 계룡산(鷄龍山)

                                (2014. 03.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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