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사(大典寺) / 주왕산(周王山)
☞ 경상북도(慶尙北道) 청송군(靑松郡) 대전사(大典寺)
대전사(大典寺) 위치 <google참고사진>
대전사(大典寺)는 경북 청송군 부동면 상의리 주왕계곡 입구에 자리잡고 있으며 뒤에는 주왕산의 기암절벽이 병풍처럼 둘러져 있는 풍광이 아름다운 사찰입니다. 대한불교조계종 제10교구 본사인 은해사(銀海寺)의 말사(末寺)로 부속 암자로는 백련암(白蓮庵)과 주왕암(周王庵)이 있습니다.
주왕산(周王山)과 대전사(大典寺)
대전사(大典寺)는 신라 문무왕 12년(672)에 의상대사(義湘大師)가 창건했으며, 고려 태조2년(919) 눌음 스님이 이곳에서 주왕(周王)의 아들 대전도군(大典道君)의 명복을 빌면서부터 대전사로 불렀습니다. 조선 중기 실화로 전소한 뒤 중창하였으며, 현존하는 건물로는 보광전(보물 제1570호), 명부전, 관음전, 산령각, 수선당, 요사채 등이 있습니다. 유물 및 문화재로는 보광전을 비롯해 보광전 석가여래삼존불(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356호)과 명부전 지장탱화(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468호), 명부전 지장삼존 및 시황상(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469호), 주왕암 나한전 후불탱화(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470호) 등이 있으며, 사적비, 부도 4구, 보광전 앞 3층석탑이 있습니다.
<참고사진>
1968년 경내에서는 신라시대 불상을 비롯하여 11점의 유물이 발굴되었으며, 현재 몇몇 전각은 공사 중에 있습니다.
주왕산(周王山)에 얽힌 전설
『주도(周鍍)』라는 사람이 동진(東晉)의 영광을 회복하고자 스스로 후주천왕(後周天王)이라 칭하고 당나라에 쳐들어갔다가 크게 패한 뒤 신라로 건너와 주왕산에 숨어 지냈고 있었습니다. 이에 당(唐)나라가 신라에 주왕(周王)을 없애달라고 부탁하자, 마일성(馬一聲) 장군이 아우들과 합세해 석병산을 포위해 주왕을 잡았다고 합니다. 그 후로 석병산(石屛山)을 주왕산(周王山)이라 부르고, 주왕산(周王山) 아래의 사찰은 주왕의 아들 대전도군(大典道君)의 이름을 따서 대전사(大典寺)라 했다고 전합니다.
▶ 전각(殿閣)
대전사(大典寺) 가람배치 <google참고사진>
대전사(大典寺)는 중심 전각(殿閣)인 보광전(普光殿)을 중심으로 좌우로 명부전(冥府殿) 과 관음전(觀音殿)이 자리하며, 관음전(觀音殿) 뒤로는 수선당(修禪堂), 봉향각(奉香閣)이 명부전(冥府殿) 뒤쪽에는 산령각(山靈閣)이 있습니다. 보광전(普光殿) 앞뜰에는 삼층석탑(三層石塔)이 있으며, 남서쪽에는 회연당(會緣堂)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한편 대전사는 대전사종합정비계획을 수립하여 하나하나 전각을 새로 짓는 불사를 현재도 진행하고 있습니다.
대전사종합정비계획조감도 <참고사진>
● 전경(全景)
주왕산(周王山)의 기암(旗岩)과 대전사(大典寺) <참고사진>
대전사(大典寺) 입구 표지석의 앞뒷면 <참고사진>
● 보광전(普光殿)
보광전(普光殿): 보물 제1570호(지정: 2008.07.28)
대전사(大典寺)의 금당(金堂)인 보광전(普光殿)은1976년 중수 시 발견된 상량문(上樑文)에 의하여 그 건축년대(강희11년 )가 밝혀져 임진왜란 때 불탄 것을 조선 현종13년(1672)에 중창하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보광전의 건물 구조는 화강석 기단위에 화강석 초석을 놓고 약간 흘림이 있는 원주를 세워 구성된 정면3칸, 측면3칸의 겹처마 맞배지붕 건물로 조선 중기 이후 목조건축양식의 특징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특히 내부단청과 벽화는 회화성이 돋보이는 빼어난 작품으로 건축당시의 원형이 비교적 잘 보존되어 있는 조선중기 불교미술의 중요한 자료로서 국가지정문화재(보물)로서 역사적, 예술적, 학술적 가치가 충분하다 하겠습니다. <문화재청 자료>
보광전 내부 <참고사진>
보광전 내부의 천장은 우물 정(井)자 모양으로 꾸몄으며, 석가모니불을 모시고 있습니다.
보광전 우물천장과 닫집 <참고사진>
우물천장엔 옴자나 만자를 새긴 연꽃모양으로 장식하고 있으며, 닫집에도 화려한 조각으로 치장되어 있습니다.
석가여래삼존불(釋迦如來三尊佛):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356호(지정: 2004.10.14) <참고사진>
석가모니불(釋迦牟尼佛)을 중심으로 양옆에 과거불인 제화갈라보살(提和竭羅菩薩)과 미래불인 미륵보살(彌勒菩薩)이 협시(脇侍)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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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가여래삼존불(釋迦如來三尊佛)은 강희(康熙)24년[1685]의 복장조상기문 (腹藏造像記文)을 통해 조선후기인 17세기 후반에 조성된 것으로 확인되었으며, 양식적으로도 이 시기의 불상양식을 잘 반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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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광전 수미단(須彌壇)의 석가모니불(釋迦牟尼佛)의 좌대에는 제화갈라보살(提和竭羅菩薩)과 미륵보살(彌勒菩薩)의 좌대와는 달리 세 마리의 호랑이가 부처님을 떠받치고 있는 모습이 특이합니다.
보광전 내부 측면의 탱화 <참고사진>
이여송 친필현판[동산문화재 제 2625호] <참고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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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광전 내부에는 임진왜란 당시 명나라 장수 이여송(李如松)이 승병훈련을 시키고 있던 사명대사 유정에게 보냈다는 친필 서신을 목판으로 음각한 것이 보관되어 있는데, 목판의 크기는 가로 42.5cm, 세로 24.5cm입니다.
● 삼층석탑(三層石塔)
삼층석탑(三層石塔)
삼층석탑은 대전사 보광전 앞뜰 여기저기에 흩어져 전해오던 것을 대전사측이 중창불사를 위해 탑 부재를 모아 2003년 9월 문화재 전문위원에게 복원을 의뢰하였고, 컴퓨터 그래픽으로 탑 모양을 본떠 실제의 형상과 같은 모양으로 복원했습니다. 대전사측은 복원된 삼층석탑 내에 부처님 진신사리 1과와 고승사리 3과를 모셨습니다.
삼층석탑은 9세기 통일신라 말기의 것으로 규모는 작지만 모양이 아름답고 조각수법이 뛰어나 문화재적 가치가 높다고 평가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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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대전사의 석탑은 금강탑이라는 쌍탑이었다고 하는데 석탑의 많은 부분은 탑재가 없어져 대부분 새로이 짜맞추어 복원되었는데, 이 석탑을 보면 대전사의 고단한 과거사를 떠올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아래의 사진은 삼층석탑 사방의 기단 면석에 조각된 통일신라시대의 장인들의 작품입니다.
<참고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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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층석탑의 상층 기단 면석에 새겨진 통일신라 후기의 양식인 여러 인물상은 다행히도 비교적 온전하게 남아있습니다.
● 명부전(冥府殿)
명부전(冥府殿)
명부전(冥府殿)은 정면3칸, 측면2칸의 맞배지붕 건물로 근래에 세워진 것입니다. 내부에는 금동(金銅)으로 제작된 지장보살상을 중심으로 좌우에 석조(石造) 도명존자(道明尊子)와 무독귀왕(無毒鬼王)이 협시(脇侍)하며, 석조(石造) 시왕상(十王像)을 두었습니다.
지장삼존 및 시왕상 (地藏三尊 및 十王像):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469호(지정: 2004.10.14) <참고사진>
지장삼존상(地藏三尊像)과 시왕상(十王像) 등은 조각성이 다소 미흡하고 재질과 제작연대를 파악하기 어려운 상태입니다. 그러나 지장삼존과 시왕상이 잘 보존되어 있어 이 시기 지장삼존을 중심에 두는 명부계(冥府界) 존상(尊像)의 조각경향을 보여주는 자료가 되고있습니다.
시왕(十王) <참고사진>
시왕(十王)은 명부세계(冥府世界)에 있으면서 죽은 사람의 죄업(罪業)을 재판하는 10명의 왕(王)을 말합니다. 인간은 죽은 날로부터 7일 간격으로 7번, 그리고 100일, 1년, 3년 되는 날 등 10차례에 걸쳐 시왕(十王)들로부터 심판을 받으며 그 사이에 태어날 세계가 결정된다고 합니다. 시왕(十王)은 명부세계(冥府世界)의 주재자인 염라대왕(閻羅大王)이 발전·확대된 것으로 태광왕(泰廣王)·초강왕(初江王)·송제왕(宋帝王)·오관왕(五官王)·염마왕(閻魔王)·변성왕(變成王)·태산부군(泰山府君)·평등왕(平等王)·도시대왕(都市大王)·오도전륜왕(五道轉輪王) 등입니다.
명부전 지장탱화 (冥府殿 地藏幀畵):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468호(지정: 2004.10.14) <참고사진>
명부전(冥府殿)의 지장탱화(地藏幀畵)는 1806년 제작된 것으로 19세기로 넘어가는 새로운 특징이 잘 나타나 있는 작품입니다. 특히 지장보살의 머리에 원형의 두광, 신체에 키모양에 가까운 신광이 둘러져 있고, 채색이 짙어지고 물감이 두껍게 칠해지는 경향이 현저합니다. 따라서 조선시대 후기의 불화연구에 있어 중요한 자료라 할 수 있습니다. <문화재청>
● 관음전(觀音殿)
관음전(觀音殿)
관음전(觀音殿)은 최근에 건축한 것으로 정면3칸, 측면2칸, 겹처마, 팔작지붕 건물로 관세음보살을 주불(主佛)로 모시는 전각입니다. 관음보살은 고통에 허덕이는 중생이 일심으로 그 이름을 부르기만 하여도 즉시 그 음성을 관하고 대자비심을 베푼다는 보살입니다. 관음보살은 아미타여래의 좌협시보살로 봉안되는 것이 일반적이나, 별도의 건물에 단독으로 모시고 관음전(觀音殿)이라고도 하며, 사찰에 따라서는 원통전(圓通殿), 또는 보타전(寶陀殿)이라고도 합니다.
천수관음보살(千手觀音菩薩) <참고사진>
관음전(觀音殿) 안에는 관세음보살을 홀로 모시거나, 해수관음(海水觀音) 또는 천수관음(千手觀音) 등을 모시기도 합니다. 관음상은 대개 왼손에 연꽃이나 감로병을 들고 앉아 있는 모습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자비의 화신인 관세음보살에 대한 신앙이 성하였기 때문에 거의 모든 사찰에 관음전이 있습니다.
● 회연당(會緣堂)
회연당(會緣堂) <참고사진>
종무소(宗務所) 및 요사(寮舍)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 산령각(山靈閣)
산령각(山靈閣)
한국의 불교사찰에 있는 산령각(山靈閣)은 고유신앙의 수용 차원에서 만들어진 것으로, 일반적으로 민간의 신앙이 두터운 칠성(七星)도 같이 모셔졌습니다. 그 명칭은 산신각(山神閣) , 칠성각(七星閣), 삼성각(三聖閣) 등 일정하지 않습니다.
정면이 아닌 왼쪽 벽면에 걸려있는 산신도(山神圖) <참고사진>
현재 불교에서는 산신을 가람수호신과 산 속 생활의 평온을 지켜주는 외호신(外護神)으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참고사진>
우리나라 대부분의 사찰에서는 산령각(山靈閣) 혹은 산신각(山神閣)이 갖추어져 있으며, 자식과 재물을 기원하는 신신기도가 많이 행해지고 있습니다.
<참고사진>
산령각(山靈閣)은 불교 밖에서 유입된 신을 모시는 건물이기 때문에 전(殿)이라 하지 않고 반드시 각(閣)이라 하는데, 이는 한국 불교 특유의 전각 가운데 하나로 한국 불교의 토착화과정을 보여주는 좋은 예라 할 수 있습니다.
● 수선당(修禪堂)
수선당(修禪堂)
수선당(修禪堂)은 스님들이 수행하는 선방(禪房)으로 정면3칸, 측면2칸, 팔작지붕의 건물로 화려하지는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