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사와 여행(국내)/서울특별시

서울(관악산공원)

케인스 2008. 2. 24. 23:19

 

                           서울(관악산공원) 

 

 

관악구(冠岳區) / 관악산공원일대

 

    

                                               관악산공원

 

관악산(冠岳山)

 

관악산은 관악구, 금천구와 경기도 안양시, 과천시의 경게에 있는 산으로 전체면적은 1,922만m2(약582만평), 최고봉은 연주대(해발629.1m)이며, 1968년1월15일 도시자연공원으로 지정되었다.

관악산은 예로부터 경기금강, 또는 소금강이라고 불리우기도 하였으며, 근기오악(近畿五岳: 송도의 송악, 가평의 화악, 적성의 감악, 포천의 운악, 서울의 관악)중위 하나이기도 하다. 풍수지리설에 따르면 한양을 에워싼 산 중에서 남쪽의 뾰족한 관악산은 화덕을 가진 산으로 조선조 태조가 한양에 도읍을 정할 때 화기를 끄기위해 경복궁 앞에 해태를 만들어 세우게한 '불기운의 산'이라고 하는 유래도 있다.

 

산의 형세는 비록 태산은 아니나, 준령과 괴암이 중첩하여 장엄함을 갖추었고, 봄철에 무리지어 피는 철쭉꽃과 늦가을의 단풍이 장관으 ㄹ이루고 있으며, 그 정기가 뛰어나 많은 효자, 효부와 충신 열사를 배출한 명산으로 고려시대의 강감찬 장군과 조선시대의 신자하 선생이 그 대표적인 인물이라 하겠다.

 

관악산과 인접한 삼성산은 삼성(三聖)이라고 일컬어지는 원효, 의상, 윤필이 이 산중에서 일막, 이막, 삼막 등의 세 암자를 지어 수도하였다는데 일막, 이막은 임진왜란 때 타버리고 지금은 삼막만 남았는데 이것이 삼막사이다. 그 외에도 1,500여 봉우리와 구릉곳곳에 사찰(관음사, 보덕사, 호압사, 성주암, 자운암, 약수암, 연주암 등)이 산재하고 있다.     <안내판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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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악산공원 안내도

 

역사속의 관악산

 

관악산은 옛날부터 개성 송악산(松岳山), 가평 화악산(華岳山), 파주 감악산(紺岳山), 포천 운악산(雲岳山)과 함께 경기도 오악(五岳)의 하나였다. 철따라 변하는 산 모습이 마치 금강산과 같다 하여 ‘소금강(小金剛)’ 또는 서쪽에 있는 금강산이라 하여 ‘서금강(西金剛)’이라고도 한다.

일찍이 고려 숙종 원년(1069) 김위제가 지리도참설에 의해 남경 천도를 건의할 때 삼각산 남쪽을 오덕구(五德丘)라 말하며, 그 남쪽의 관악은 모양이 날카로와 화덕(火德)에 속한다고 말하고 있다. 이렇듯 관악산은 서울의 조산(朝山)으로 일찍이 역사무대에 등장했으며, 남쪽 봉우리 삼성산 중턱에 있는 삼막사에는 몽고항쟁 때 적장 살리탑을 살해한 기념으로 세웠다는 삼층석탑이 있다. 물론 관악산은 그 이전 한강을 중심으로 백제·고구려·신라 삼국이 쟁탈전을 펼치고 당군(唐軍)을 축출할 때 그 지형상 군사적 요충지가 되었다. 서쪽 끝 봉우리에 해당하는 호암산에는 삼국시대에 쌓은 석축 산성이 있어 그 사실을 증명하고 있다. 조선후기 기록인 『연주암지(戀主庵誌)』에는 신라 문무왕 17년(677) 의상대사가 관악사와 의상대를 창건하였다고 한다.

 

관악산 명칭의 유래

 

검붉은 바위로 이루어진 관악산은 그 꼭대기가 마치 큰 바위기둥을 세워 놓은 모습으로 보여서 ‘갓 모습의 산’이란 뜻의 ‘갓뫼(간뫼)’ 또는 ‘관악(冠岳)’이라고 했다. 관악산은 옛 지도에는 ‘관악’으로 많이 나온다. 악(岳) 자체가 산(山)을 뜻하기 때문에 옛날에는 그 뒤에 다시 ‘산’자를 덧붙이지 않는 것이 관례였다. 운악·북악·치악 등이 모두 그와 같은 예들이다.  <자료:관악구청>

 

                                              관악산의 정상 연주봉(戀主峰)

 

 

▶ 성주암(聖住庵)

 

 

 

                                           성주암(聖住庵)  대웅전(大雄殿)

 

성주암(聖住庵) 연혁

 

서울의 5악(岳)의 하나로 남쪽에는 관악산(冠岳山)이 있는데 이 산의 동쪽 줄기에는 세 성인이 수도를 하던 삼성산(三聖山)이 있다. 신라 문무왕17년(667)에 원효성인(元曉聖人)께서 이곳에 암자를 세우고 기도 정진 하셨다. 그리하여 훗날 세상 사람들은  이 산의 이름을 성주산(聖住山)이라 고쳐 부르고 암자의 이름을 성주암(聖住庵)이라 했다.

 

성주암은 그 후 고려조 충숙왕8년(1321)부터 8년간에 걸쳐 각진국사(覺眞國師)에 의해 중창되었으나 조선조에 들어서는 거듭 퇴락하기만 하여가람의 흔적만 남아 있었다. 그 후 1897년 안만월(安滿月)스님이 조그만 암자를 세워 도량의 명맥을 유지해 오다가 1971년부터 혜담선사(慧潭禪師)와 종연선사(宗演禪師)에 의해 대웅전이 중창되어 가람의 위용을 갖추게 되었다. 그러나 1993년 방화로 대웅전과 요사 일부가 소실되었으나 현 주지인 재홍(才弘)스님이 다시 중창하였다.  <안내문에서..> 

 

           

                                           성주암 대웅전 지붕 위의 기암(奇岩)

 

                      

                                                          대웅전 현판

 

관악구 신림9동 198번지에 위치하는 성주암은 정확한 역사적 문헌이 없어 고증에 어려움은 있지만 구전에 의하면 신라시대 원효대사가 창건한 이래 각진국사, 서산대사, 처용대사등의 고승들이 주석하셨던 고찰로서 과거 관악산내 삼막사, 망월암, 호압사, 반월암, 염불암, 상불암, 안양사 등 관악산내 19암자로 현재까지 현존해 있는 사찰로서 사찰경내지에서 출토된 그릇파편과 명문기와 중 태정원년(太正元年)으로 표기된 다수의 기와로 보아 고려 충숙왕 2년을 전후해서 도량이 번성하였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대웅전의 삼존불  <자료사진>

 

           

                                                        신중단  <자료사진>

 

                                         대웅전 뒷편 암벽을 이용한 석조물

 

대웅전 뒤에 천연의 암벽을 이용하여 연화대를 만들어 약사여래 부처님을  중앙에 모시고 좌우로 칠성상과 산신상을 모셨습니다.

 

 

                                   왼쪽 약사여래 부처님상과 오른쪽  칠성상     <자료사진>

  

           

                            성주암에서 바라본 서울대와 관악산의 정상인 연주봉

 

 

 

▶ 관악산 호수공원

 

 

                                                 관악산 호수공원 안내도

 

관악산호수공원은 관악구 신림동 203일대 (옛수영장부지)에 위치하며, 부지면적 6,460㎡, 담수면적 2,485㎡으로 ’97년 3월 준공되었으며 호수주변에는 관악산 줄기인 호암산 정상 부근에 위치하여 쉽게 접하기 어려운 문화유산인 석구상 재현과 조선조 한시문학의 대가인 자하 신위 선생을 기리기 위한 정자와 목교, 분수, 시비, 화계 등이 설치되어 있습니다.

 
 

                                                        자하정(紫霞亭)

 

조선조 한시문학의 대가인 자하(紫霞) 신위(申緯) 선생을 기리기 위한 정자(亭子)입니다. 신위선생(1769∼1845)은 영조45년(1769)에 나서 헌종11년(1845)에 세상을 떠난 조선말기의 학자. 자는 한수, 호는 자하, 본관은 평산입니다. 정조23년 문과에 급제하여 도승지를 거쳐 이조참판에 이르렀으며, 시(詩)뿐만 아니라 그림과 글씨에도 뛰어났습니다. 자하 선생이 지은 책으로는 ≪경수당전고≫ ≪분여록≫등이 있습니다.

                    

                         

                                                     자하정(紫霞亭) 현판

 

신위 선생은 자하동에서 유년 시절을 보낸 풍류시인이며, 선생의 묘는 관악산에 있었으나 서울대학교 이전시 충북 장호원으로 이장하였다고 합니다. 자하동은 신림9동 서울대학교 정문 동쪽 운동장 부근에 있던 마을로 서울대학교 종합 캠퍼스 공사때 마을 위쪽에 있던 107만평의 관악골프장과 함께 서울대학교 부지에 편입되었습니다. 

 

                       

                                         자하(紫霞) 신위(申緯)선생 상(像) 

 

건립기

 

조선후기 영, 정조시대의 문예중흥기에 정신적 지주이면서 시(詩), 서(書), 화(畵)의 삼절이신 자하(紫霞) 신위(申緯)선생을 기리고 본받고자 선생의 동상을 여기 관악산 호수공원에 세워 후세들에게 영원한 표상으로 삼고자 한다.

 

자하라는 선생의 호도 이 곳의 옛 지명이 자하동이라는데서 연유하였다고 전한다. 

 

1998. 5. 9   관악구청장

 

          

                                             석구상(石狗像)

 

석구상 건립경위

 

서울시민의 휴식공간으로 널리 이용되고 있는 장엄하고 빼어난 관악산을 더욱 아름답게 가꾸는 사업의 일환으로 인공호수를 조성하고 관악산 줄기인 호암산 정상 부근에 위치한 [한우물터] 인근에서 확인된 개와 양과 사자의 얼굴 형상을 한 신비의 석구상[해발 320m위치]을 재현하여 건립하게 되었다.

 

이 석구상은 조선왕조가 경복궁의 화재를 막는 하나의 수호신적 상징으로 세웠다는 도읍설화가 있어 우리민족의 해학을 보여주는 관악산 명물 중의 하나로 관악산을 찾는 시민들에게 잔잔한 감동을 주면서 오래도록 기억되기를 기원하는 바이다.   1997년11월   관악구청장

 

           

                                                         석구상(石狗像)

 

          

                                                   호수공원과 작은 둥근섬

 

          

                                                작은 섬과 뒤쪽으로 자하정

 

          

                                            수변무대 뒤쪽으로 멀리 관악산

 

 

 

참고자료

 

 

호암산(虎岩山)의 석구상(石狗像)

 

         

 

        

                                       석구상(石狗像)  <사진자료>

 

서울시 금천구 시흥동에 위치하며 길이1.7m, 폭 2.9m, 높이1.0m인 이 석구상(石狗像)은 해태상으로 전하여 왔으나, 이곳으로부터 남서쪽 약50m 지점의 한우물[天井] 조사 발굴 때 조선시대에 쌓은 석축에서 '석구지(石狗池)'라 음각(陰刻)된 장대석(長臺石)이 나왔고, 또 시흥읍지(始興邑誌 형승조(形勝條)에 이곳 호암산(虎岩山) 남쪽에 석견(石犬) 사두(四頭)를 묻어 개와 가깝게 하고자 하였으며, 지금 현남7리(縣南七里)에 '사견우(四犬偶)'가 있다라는 기록으로 '석구상(石狗像)'으로 판단되었다.

 

북쪽을 바라보고 앉은 석구상 주위에는 자연암(自然岩) 네 개가 있고, 석구상은 사실적으로 조각되어 이목구비(耳目口鼻)가 뚜렷하고 발과 꼬리도 잘 묘사되어 있다.  <안내판에서..>

 

 

주변 관광

 

 

서울시 과학전시관

 

          

                                                     서울시 과학전시관

 

학생과 시민에게 과학문화 공간 역할을 하기 위해 2004년 개관하였습니다.

 

          

                                                서울시 과학전시관의 천문대

 

 

             앙부일구(仰釜日晷) 모형                                            측우기모형

 

앙부일구는 조선 세종19년(1437)에 최초로 제작된 반구형 오목 해시계입니다. 24절기(節氣)를 13개 위선(緯線)으로 나타내고, 시각선(時刻線)을 수직으로 표시하였습니다. 북극을 향한 영침(影針)의 그림자에 따라 시간과 계절을 동시에 알 수 있도록 되어 있는 과학적인 기기입니다.

 

                                 

                                    측우기(測雨器)와 측우대(測雨臺) 모형

 

측우기는 조선시대 세종대(世宗代) 개발된 비의 양을 측정하는 기구입니다. 땅속에 스며든 빗물의 깊이를 자로 재어 강우량을 측정하던 종래의 불완전한 방법을 철(鐵)로 주조(鑄造)한 원통형 측우기를 발명하여 과학적인 방법으로 측정하게 하였습니다. 이 측우기는 현존하는 것 중 가장 오래된 금영측우기(錦瑩測雨器)를 본뜨고 대석(臺石)은 측우대(보물842호)를 본 떠 제작한 것입니다.

  

                       

                                            일성정시의(日星定時儀) 모형

 

일성정시의는 해시계와 별시계의 기능을 하나로 고안하여 낮과 밤의 시간을 측정할수 있도록 만든 천문관측 의기(儀器)로서 세종19년(1437)에 최초로 만들어졌습니다. 낮에는 해시계의 원리와 밤에는 별들이 북극성을 중심으로 규칙적으로 회전한다는 원리를 적용하고 있습니다.

 

                       

                                                   시간 관측하는 극축부분

 

 

 

서울대학교

 

           

                                             서울대 입구에 서있는 학교의 상징

 

           

                                                         서울대 미술관

 

네델란드의 유면 건축가 렘 쿨하스가 설계한 건물입니다.

 

                      

                                     서울대 미술관 뒤로 하늘에 수놓은 미술

 

 

2008.0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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