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사와 여행(국내)/서울특별시

서울(낙산공원)

케인스 2008. 2. 7. 22:22

 

                       서울(낙산공원) 

 

 

서울 중구 / 낙산공원(駱山公園)  

 

 

                                          낙산공원(駱山公園)


서울시 종로구 동숭동에 위치하며 면적은 152,443㎡ (46,114평)인 낙산공원(駱山公園)은 서울의 형국을 구성하던 남산(南山), 인왕산(仁王山), 북악산(北岳山)과 함께 서울 내사산(內四山)의 하나인 낙산(駱山)에 조성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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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의 내사산(內四山)

 

서울의 내사산(內四山)은 북쪽 북현무(北玄武) 북악산(北岳山:342m), 남쪽 남주작(南朱雀) 목멱산(木覓山:265m), 서쪽 우백호(右白虎) 인왕산(仁王山:338m), 동쪽 좌청룡(左靑龍) 낙산(駱山:125m)을 이릅니다. 반면에 외사산(外四山)은 북쪽의 북한산(836m), 서쪽의 덕양산(125m), 남쪽의 관악산(829m), 동쪽의 용마산(348m)을 말합니다.       

 

     

                                                   낙산(駱山)의 위치도

 

낙산(駱山)은 산모양이 낙타(駱駝)의 등과 같다고 하여 낙타산(駱駝山), 궁중에 우유(타락)를 공급하던 젖소목장인 유우소(乳牛所)가 있던 곳이어서 타락산(駝駱山)이라고 불리기도 했으며, 줄여서 낙산이라고 불리게 되었습니다. 서울 종로구와 동대문구, 성북구에 걸쳐 자리한 산으로 서울도성의 동쪽에 있는 산[東山]으로 풍수지리상 주산(主山)인 북악의 좌청룡(左靑龍)에 해당되어 서편의 우백호(右白虎)인 인왕산과 대치되면서, 조선왕조의 수도로서의 한양 입지에 중요한 역할을 하였습니다.

 

                                                        도성도(都城圖)

 

낙산(駱山)은 일제 강점기 전까지는 깨끗한 수석과 무성한 수림으로 시민들의 산책장소 였으며 유적이 많은 곳이었으나, 일제 강점기를 거쳐 현재에 이르기까지 자연경관과 유적이 상당부분 파괴되고 손실되었습니다. 한양의 경계로서 능선을 따라 성곽이 축성되어 있었습니다.

 

           

                                         낙산에서 바라본 삼각산과 보현봉

 

조선의 도성은 내사산을 서로 잇는 성곽으로 경계를 지었고, 동쪽 경계인 낙산에는 능선을 따라 흥인문[동대문]에서 혜화문까지 성벽을 쌓아 도읍을 지키는 요충지였습니다. 

 

                       

                                                    복원된 낙산 <자료사진>

  

낙산(駱山)은 산 전체가 화강암 암반으로 되어 있으며, 예전에는 숲이 우거지고 깨끗한 수석과 약수터가 있었다고 합니다. 조선 효종 때는 왕의 아우 인평대군의 거소인 석양루가 있었고, 이화정과 영조 때의 문인 이심원이 지은 일옹정등 많은 정자는 왕족 문인 가인(歌人)들이 즐겨 찾던 곳이었다고 합니다.

 

조선 단종이 그의 숙부인 수양대군에게 왕위를 찬탈 당하고 강원도 영월 오지로 귀양가 있는 동안, 왕비였던 정순황후는 매일 이 낙산에 올라 부군이 계시는 동쪽의 먼 영월쪽 하늘을 바라보다가 일생을 마쳤다는 이야기도 전해 내려오고있습니다.

 

          

                                               중앙광장에서 본 낙산(駱山)

 

낙산은 젊은이들의 거리 대학로 뒤편에 자리 잡고 있다. 마로니에 공원에서 동쪽으로 보이는 야산같은 것이 바로 낙산입니다. 10여분만 걸어 올라가면 낙산 마루에 오를 수 있으며, 해발 129m의 파리 몽마르트르 언덕과 엇비슷한 125m 높이여서 서울의 몽마르트르 언덕이라고 불리기도 합니다.

 

          

                                           낙산에서 바라본 남산[목멱산]

 

한경지략, 춘성유기(春城遊記), 지봉유설(芝峰類說), 동국여지비고 등에서 낙산의 경관에 관해 언급하고 있으며 그 내용을 보면, 한경지략의 산천 조에는 낙산의 평평하고 비스듬히 잇닿은 봉우리의 형상에 대하여 언급하고 낙산 밑에 형성되어 있던 경관을 동촌(東村) 이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춘성유기(春城遊記)에서는 낙산의 모습을 '흰 모래와 소나무들이 맑고 아름다워 마치 한 폭의 그림과 같다'고 묘사하고 있어 과거 낙산일대에는 소나무가 울창하게 자라고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낙산위에 있던 아파트                                         파괴된 도성(都城)

 

이러한 낙산은 1960년 이후 근대화 과정에서 무분별한 도시계획으로 아파트와 주택으로 잠식당한 채 오랜시간 방치되어 역사적 유산으로서 제 기능을 상실하게 되었으나, 1996년부터 시작한 공원녹지확충 계획의 일환으로 낙산을 근린공원으로 지정하고, 주변의 녹지축(綠地軸)과 연결하면서 낙산의 모습과 역사성을 복원하였습니다.  

 

             

                                                                               낙산전시관

 

낙산공원은 도시 공원으로서의 역할 뿐 만 아니라 역사유적지로서도 중요한 장소이며 산책과 운동, 성곽고찰, 서울시내 조망이 가능합니다. 특히 과거 낙산의 역사를 알 수 있도록 낙산전시관을 마련하였으며, 동대문에서 출발하여 성곽을 따라 역사탐방로를 조성하였고 그 외에 홍덕이밭, 낙산정[육각정자], 산책로, 전망광장, 중앙광장 등이 있습니다.

 

          

                                                      낙산공원 안내도

 

                                                         서울성곽(城廓)

 

사적 제10호 서울 도성(都城)은 조선왕조가 한양으로 도읍을 옮긴 이듬해 1395년에 도성수축도감(都城修築都監)을 설치하고, 1396년에 1, 2차에 걸쳐 총 98일간의 농한기를 이용하여 각 지방의 백성을 동원하여 건축되었습니다. 당시 성곽은 흙으로 쌓은 부분과 돌로 쌓은 부분이 있었습니다. 축성공사는 600척을 1구간으로 정하고 혜화문에서 낙산 방향으로는  천자문의 '來'자에서 시작하였습니다.

 

 이어 세종4년(1422)에 토성 부분을 석성으로 고쳐 쌓는 등 대대적인 도성 수축 공사가 있었습니다. 이때 낙산 구간에 해당하는 천자문의 '來'자에서 '歲'자까지 10구간의 석축 867척, 토축 4,387척을 모두 석축으로 개축하였습니다.

 

그후 숙종30년(1804)에 도성 방위계획이 마련되어 훈련도감, 어영청, 총융청, 수어청, 금위영의 5군영 군사들을 동원하여 수축하였는데, 이때 낙산지역은 훈련도감이 담당하였습니다.

 

          

                                           낙산 남쪽 끝 성곽의 암각자(岩刻字)

 

           

                                         낙산 남쪽 끝 성곽의 암각자(岩刻字)

 

흥인지문(興仁之門) 가까이 있는 낙산 남쪽 끝 성곽 부근에는 '훈국(訓局)'과 '강희45년4월개축(康熙四十五年四月改築)'이라는 암각자(岩刻字)가 있어 숙종32년(1706)에 훈련도감에서 수축공사를 하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영조21년과 22년간의 도성 보수공사에는 어영청 군사가 낙산 부근의 성(城)과 여장(女墻)을 보수하였습니다.

 

훈국(訓局)이란 훈련도감(訓練都監)을 말하며 조선시대 때 5군영(五軍營: 훈련도감, 어영청, 총융청, 수어청, 금위영)의 하나로 군인들을 훈련 감독하는 기관으로 서울의 수비를 담당하였습니다.

 

          

                                                태조 때 쌓은 성벽 (표시)

 

낙산 부근에 남아있는 성곽을 보면 태조 때 처음 쌓은 것과 세종 때 다시 쌓은 것, 숙종 때 수축한 것이 섞여 있어 그 특징을 잘 살필 수 있습니다. 태조 때 쌓여진 성벽은  가공하지 않은 크고 작은 자연석을 뒤섞어서 사용하였습니다. 그리하여 기초석에는 특히 길고 큰 돌을 사용한 곳이 많고 또 성벽은 대체로 수직선을 이루고 있습니다.

 

          

                         세종 때 쌓은 성벽(표시),  숙종 때 쌓은 성벽( 표시)

 

세종 때 쌓아진 성벽은 그 돌이 모두 장방형 혹은 방형으로 가공되어 있고, 석벽 중앙부가 약간 밖으로 굽혀 있으며, 쌓아 올린 수법은 아래쪽에 큰 돌을 놓고 가운데 허리 위서부터는 점점 작은돌을 쓰면서 굄돌은 전혀 쓰지 않은 것이 특색입니다.

               

     태조 때 쌓은 성벽 (표시), 세종 때 쌓은 성벽(표시),  숙종 때 쌓은 성벽( 표시)

 

숙종 때 수축된 성벽은 모두 돌을 2척 사방으로 다듬어서 사용하였고, 성벽은 수직선을 이루고 있으며, 굄돌을 전혀 쓰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돌과 돌 사이가 꼭꼭 들어 맞아서 빈틈이 없습니다.

 

  

                                                            암문(暗門)

 

암문은 성에서 구석지고 드나들기 편리한 곳에 적 또는 상대편이 알 수 없게 꾸민 작은 성문(城門)으로 적의 관측이 어려운 곳에 설치한 성문의 일종이다.

 

                                                       복구된 도성(都城)

 

          

                                                    홍덕이밭 <사진자료>

 

낙산 아래 동숭동에 있던 밭. 병자호란 때 인조가 삼전도에서 항복한 뒤 효종(당시 봉림대군)이 청나라에 볼모로 잡혀 심양에 있을 때 따라가 모시던 나인(內人) 홍덕(弘德)이라는 여인이 심양에 있으면서 채소를 가꾸어 김치를 담가서 효종에게 날마다 드렸는데 볼모에서 풀려 본국으로 돌아온 후에도 이 홍덕이의 김치맛을 잊을 수가 없어 이에 효종은 낙산 중턱의 챗밭을 홍덕이에게 주어 김치를 담가 대게 했다 하여 낙산에 "홍덕이밭"이라는 지명이 전해지고 있습니다.

 

          

                                                        낙산정(駱山亭)

 

낙산정에 올라서면 내사산이 한눈에 들어오고 창경궁과 창덕궁이 손에 잡힐 듯이 내려다 보이고 또 공원 내 산책로는 S자로 굽어지는 곡선이 아름답게 보입니다.

 

            

                               전망광장 <자료사진>

 

낙산공원에서 오르면 조선의 도성인 한양의 4대문안이 한눈에 들어옵니다. 오른쪽으로는 인왕산이 병풍처럼 펼쳐져있고 흥인지문[동대문]에서 혜화문으로 연결되는 2.1km의 옛 성벽도 복원되어 그 멋을 더하고 있습니다.

 

            

                         문화유적자료를 담은 홍보관인 낙산전시관 앞의 중앙공원

 

 

 

참고자료

 

성곽의 석축형태

 

 

                      태조 때 쌓은 성벽                                          세종 때 쌓은 성벽

 

                                 

                                                       숙종 때 쌓은 성벽

 

성곽의 구조

 

                                                  성(城) 밖에서 본 여장(女墻)

 

                      

                                                성(城) 안에서 본 여장(女墻)

 

지도로 보는 낙산(駱山)

 

                                                도성도(1860) / 낙산 (표시)

 

                                           경조오부도(1861) /  낙산 (표시)

 

 

2008.0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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