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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방이동 고분군)

케인스 2008. 1. 27. 00:42

 

                   서울(방이동 백제고분군) 

 

 

 

서울 송파구 / 방이동 백제고분군(芳荑洞 百濟古墳群)

 

 

                                방이동 백제고분군(芳荑洞百濟古墳群)

 

사적 제270호 백제 초기의 이 고분군은 백제가 한강 하류 지역에 도읍을 정하고, 475년 웅진으로 천도하기 이전 시기까지 조성된 고분군으로 8기의 무덤들이 있다. 이 무덤들은 서울에 전해지는 고대 유적지로서 매우 주목되는 것 중의 하나이다.

 

이 고분군은 1975년도에 발견된 5기의 고분과 1976년 잠실지구 유적발굴 조사에서 확인된 3기의 고분으로 되어있다. 서북쪽 언덕 경사면에 4기[방이동 제 1,2,3,6호분], 동남쪽 낮은 언덕 경사면에 4기[방이동 제7,8,9,10호분]가 위치하고 있다. 봉분(封墳)의 형태는 모두 원형이고 내부구조는 만구덩식 돌덧널[반지하식 석곽]과 굴식 돌방[횡혈식 석실]의 두 형식으로 되어있다.

 

이곳 일대에서 발견된 유적, 유물 등으로 보아 이곳은 선사시대로 부터 삼국, 고려 그리고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일종의 공동묘지였던 것으로 생각된다. 특히 이곳에서는 선사시대의 집자리로 보이는 아궁이와 돌화살촉, 돌칼, 백제시대의 토기 등이 발견되었는데 이것은 이곳에서 선사시대로부터 삼국시대로 이어지는 문화의 전승이 있었음을 알려주는 귀중한 자료이다.  <안내판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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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이동 백제고분군(芳荑洞 百濟古墳群) 입구

 

방이동 백제고분군(芳荑洞 百濟古墳群)의 정문을 통과하여 계단을 오르면 왼쪽으로 경사진 언덕 위로 서북쪽 고분군이 나타나고 우측으로는 조금 떨어진 곳에 동남쪽 고분군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방이동 백제고분군은 백제 무덤 형식의 변천을 말할 때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하는 한성백제시대 말기의 중요한 유적입니다.

 

                          방이동백제고분군(芳荑洞百濟古墳群) 위성사진

                                      제1~10호분(第 1~10 號墳) 위치 <자료:구글>

 

본시 농업에 종사하는 자연부락 뒤 야산에 드문드문 규모는 크나 거의 평평하게 뭉긋한 형태를 하고 있어 간혹 말 무덤이라고 전해 내려오기도 했다. 1975년과 1976년 현장 확인 당시에도 민간인 무덤이 30여기나 뒤섞여 있고, 그 중에는 고려와 조선조의 묘지로 사용 돼 왔음을 알 수 있었다. 현재 확인된 8기를 중심으로 9천여평을 보호지역으로 공원화 하고, 내부를 복원해 일반에게 공개하고 있는데 자연석으로 벽면을 쌓고 천정 또한 아취(arch)형으로 처리했으며, 벽화의 흔적은 보이지 않고, 부장품도 거의 도굴되었다. 다만 기원전 5세기 부터 백제 말기 까지 계속되는 묘제를 따랐고 규모도 이쯤 크니 백제계의 왕이나 왕실에 가까운 상류층의 분묘였을것으로 보인다. 이 지역 일대에서 선사시대 주거지에서나 볼 수 있는 노지(爐地)가 나오고, 석상, 석검의 파편, 백제시대 토기등이 발견된 점으로 보아 오랜 동안 문화의 터전을 이루었을 것으로 짐작 된다.  <송파구 홈에서..>

 

              

                    방이동백제고분군(芳荑洞百濟古墳群) 주변 위성사진  <자료:구글>

 

원래 이곳은 높이 약 30~50m 정도의 야트막한 구릉지대로 고분과 민묘 30여기가 뒤섞여 있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1970년대 강남 개발붐이 일며 이 일대가 흙 채취장으로 변하면서 구릉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습니다.

  

                                                   방이동 서북쪽 고분군

 

방이동 고분군 중 서북쪽 언덕 경사면에는 4기의 고분, 제 1, 2, 3, 6호분(第 1, 2, 3 , 6 號墳)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왼쪽부터 제1, 2, 3호분(第 1, 2, 3 號墳)

 

이 서북쪽 고분은 1983년에 서울시가 공사를 시행하여 지금의 모습으로 복원하였습니다.

 

                                                      제1호분(第 1 號墳)

 

1호분은 시신을 옆으로 넣어 안치할 수 있게 축조한 횡혈식 석실분(橫穴式石室墳)으로서 분구(墳丘)의 크기는 지름 12m, 높이 2.2m입니다. 한성 백제시대의 초기 무덤 양식인 돌무지무덤에서 웅진, 사비시대의 굴식돌방무덤으로 변화해가는 초기 단계를 보여주는 5세기경의 고분입니다. 4벽 모두 위로 올라갈수록 안쪽으로 기울어지게 쌓아 폭을 좁힌 다음 큰 돌 하나를 올려 천장으로 만든 궁륭형(穹륭形)입니다.

 

        

                                          제1호분(第 1 號墳)

 

1호분은 방이동 고분군이 발굴되기 전 민가의 뒷벽을 대신하고 있었는데, 1973년 산사태로 널길[연도] 입구가 드러남으로써 세상에 알려졌으며 당시 이미 도굴 당했는지 토기 3점 이외에는 아무런 유물도 남아있지 않았다고 합니다.

 

                                                    제1호분의  현실(玄室)

 

제1호분의 시신을 안치한 현실(玄室)은 길이 3m, 너비 2.46m, 높이 2.15m이며, 현실 안으로 들어가는 통로인 연도(연道)는 현실 남쪽 벽 서쪽에 치우치게 마련되었는데 길이 2.39m, 너비 1.06m, 높이 1.10m입니다. 현실 중앙에 마련된 시신 안치 시설인 시상대(屍床臺)의 크기는 길이 2.40m, 너비 2.10m, 높이 30cm입니다. 현실은 포갠 돌을 쌓아서 축조하였고 벽재는 위로 올라가면서 안쪽으로 기울어졌으며 큰 판석(板石) 1매를 덮어 천장을 마감하였습니다.

 

                  

                                                   제1호분의  현실(玄室)

 

벽면을 쌓을 때 돌과 돌 사이를 진흙으로 메우고 겉면에도 얇게 진흙을 발랐으며, 바닥에는 작은 냇돌을 깔았습니다. 널길[연도]을 지나 나오는 널방 안에는 시신을 안치하는 시상대가 놓여있습니다.

 

                       

                                      제1호분의  현실(玄室) 모형 <자료:역사박물관>

  

        

                                        왼쪽 2호분, 오른쪽 3호분(第 2, 3 號墳)

 

제2호분과 제3호분은 발굴조사가 이루어지지 않은 고분이나 고분의 고분의 보수 정비 작업 중  분구 경상부에 노출된 천장부의 뚜껑 돌에 의하여 제1호분과 동일한 구조 형식의 석실분임을 확인할 수 있었고 분구의 확인 조사에 의하여 제2호분의 크기는 지름 13.40m, 높이 2.70m, 제3호분은 지름 13.12m, 높이 2.90m,이며 분구의 서북쪽 밑 둘레는 호석(護石)이 둘러 있습니다.

 

                 

                                                       제2호분(第 2 號墳)

                     

                      

                                                      제3호분(第 3 號墳)

  

        

                                         왼쪽 3호분, 오른쪽 6호분(第 3, 6 號墳)

 

                       

                                                     제6호분(第 6 號墳)

 

제6호분은 1976년에 발굴 조사되었는데 분구의 크기는 지름 10.60m, 높이 2.10m이고 내부 구조는 횡혈식 석실로서 석실의 중간에 돌 벽을 쌓아 서쪽 주실(主室)과 동쪽 부곽(副槨)으로 나누었고 남쪽 벽 중앙에 연도가 마련되었던 흔적이 남아 있습니다.

 

특히 6호분 중간 벽 북쪽 끝 부분에 영공(靈孔: 부부 합장묘에서 부부의 혼이 서로 소통할 수 있도록 묘실 사이에 뚫어놓은 구멍)이 뚫려 있어 합장묘의 특색을 보이고 있습니다.

 

        

                                 왼쪽 6호분, 오른쪽 3호분(第 6, 3 號墳)

  

                                                    방이동 동남쪽 고분군

 

방이동 고분군 중 이곳 낮은 언덕 경사면에는 4기의 고분 제7, 8, 9, 10호분(第 7, 8, 9, 10 號墳)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왼쪽부터 제7, 8, 9호분(第 7, 8, 9 號墳)

 

이 동남쪽 고분은 1988년에 서울시가 공사를 시행하여 지금의 모습으로 복원하였습니다.

 

                  

                                                        제7호분(第 7 號墳)

 

                  

                                                      제8호분(第 8 號墳)

 

제7호분과 제8호분은 1988년 동남쪽 고분 2기[제9, 10호분]의 보수 정비 작업 중 분구 기저부와 내부구조의 일부가 발견되었습니다. 내부구조는 포갠 돌로 장방형 석곽을 축조하고 시신을 위에서 안치하는 수혈식 석곽(竪穴式 石槨)이었으나 이미 파괴되었고, 제8호분은 장방형의 적석 모양으로 보아서 제7호분과 같은 구조 형식의 수혈식 석곽으로 생각되나 고분의 보수와 정비에 작업의 목표가 설정되어 있어 확인 발굴 조사는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제7호분의 분구 크기는 지름 10m, 높이 약 2.5m이고, 제8호분은 지름 11m, 높이 약 2.5m입니다.

 

                  

                                                      제9호분(第 9 號墳)

 

                  

                                                    제10호분(第 10 號墳)

 

제9호분과 제10호분은 발굴조사가 이루어지지 않은 고분이나 제9호분은 보수 정비 작업 중 분구 정상부에 노출된 천장부의 뚜껑 돌에 의하여 석실 분임을 알 수 있었습니다. 제9호분의 분구 크기는 지름 19m, 높이 3.8m이고, 제10호분은 지름 16m, 높이 3.3m입니다.

 

         

                             왼쪽부터 제7, 8, 9, 10호분(第 7, 8, 9, 10 號墳)

 


 

 참고자료

 

 

▶ 방이동(芳荑洞)의 지명 유래 


조선조 12대 인조14년(1636년) 병자호란 당시 왕은 남한산성으로 피난 하였고, 청나라 군인들은 이 마을을 거쳐 남한산성으로 진격해 가려고 했다. 그러나 이 마을은 남·서·북이 산으로 둘러 쌓이고 삼태기안 같이 아늑하고 평화로운 마을이였으며, 마을을 지키는 병장(방이군)들이 있었다. 그래서 산을 기어 올라오는 청병들을 향해 산위에서 활을 쏘고 돌을 마구 던져 청나라 병들이 못 올라오게 막어서 결국 다른 곳으로 돌아서 남한산성으로 갔다고 한다.

그래서 그후부터 오랑캐를 막았다고하여 막을 방(防) 오랑캐 이(夷) 자를 써서 방이골 이라고 불리어졌다. 그러다가 1914년경 마을 서당에 한학을 공부한 학자들이 모여서 마을 이름이 글자의 뜻이 아름답지 못하다고 의논끝에 고쳐진것이 막을 방(防) 자는 꽃다울 방(芳), 오랑캐 이(夷) 자는 흰비름 이(荑)로 고쳐서 방이골이 되었다고 전해지고 있다.


그 후 경기도 광주군 중대면 방이리가 되었으며, 1963년 1월1일 서울시로 편입되면서 성동구 방이동이 되었다. <송파구 홈>

 

방이동 백제고분군(芳荑洞 百濟古墳群) 위치도

 

                    

                                   

 

 

 

2008.0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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