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상북도(慶尙北道) 경주(慶州)
● 점심(2022.05.01)
칼국수
● [경주역사유적지구(慶州歷史遺蹟地區)] (2022.05.01)
경주역사유적지구(慶州歷史遺蹟地區)는 2000년 12월 유네스코에서 지정한 대한민국의 세계유산으로 경주시 일대의 신라 유적,유물들을 말합니다. '세계유산 경주역사유적지구' 표지석의 오른쪽 고분은 118호분으로 2007년 측량결과 동서길이 36m, 남북 길이 31m, 높이 10.39m이며 발굴조사를 하지 않았습니다.
[숭혜전(崇惠殿)]
[고분군(古墳群)]
[첨성대(瞻星臺)]
[동궁과 월지]
동궁과 월지는 관람환경개선사업으로 많은 부분이 공사중입니다.
[월성(月城)]
[석빙고(石氷庫)]
[월정교(月精橋)]
[경주향교(慶州鄕校)]
경주향교 오른쪽에 위치하고 있는 건물 중 고직실(관리사) 및 전교실은 위의 사진 배치도에서 아래의 도면 배치도 내용대로 변경되어 자리 잡고 있습니다.
경주향교(慶州鄕校)의 창건연대는 알 수 없으나 고려시대 때 현유(賢儒)의 위패를 봉안, 배향하고 지방민의 유학교육과 교화를 위하여 설립된 관학교육기관입니다. 조선시대에는 국가로부터 전답과 노비·전적 등을 지급받아 교관이 교생을 가르쳤으나, 현재는 교육적 기능은 없어지고 봄·가을에 석전(釋奠)을 봉행(奉行)하고 초하루·보름에 분향을 하고 있습니다.
평지에 입지하고 있는 경주향교는 조선 성종 23년(1492)에 중수하였으며, 외삼문(外三門), 신삼문(神三門), 대성전, 명륜당이 남북 축선상에 자리잡아 남향하고 있으며, 문묘영역이 강학영역 앞쪽에 위치하는 전묘후학(前廟後學)의 배치형식을 따르고 있습니다.
▶ 외삼문(外三門)
▶ 신삼문(神三門)
경주향교 신삼문(慶州鄕校 神三門) 은 동무(東廡), 서무(西廡)와 함께 국가 보물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신삼문(神三門)은 기록상 대성전이 중건되는 1602년(선조 35)에 함께 세워졌으며 경주향교 제향영역의 오래된 건축물입니다. 평삼문의 형식과 문짝, 홍살 등의 세부 형식에서 향교 제향 공간의 신문(神門)으로서의 역사적 모범이 될 만합니다.
▶ 대성전 (大成殿)
경주향교 대성전 (慶州鄕校 大成殿) 은 국가 보물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경주 향교의 문묘(文廟: 공자를 받드는 사당)로서 대성전에는 중국 5성(五聖), 송조2현(宋朝二賢), 우리 나라 18현(十八賢)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향교의 북쪽에 문묘인 대성전 이 있고 그 아래에 강학영역인 명륜당(明倫堂)이 있으나 경주향교에는 대성전이 명륜당 앞에 위치해 있는 것이 특징입니다.
정면 3칸, 측면 3칸, 맞배지붕 겹처마 건물인 대성전의 건물은 편평한 대지위에 60cm 정도의 기단을 쌓은 후 남쪽 중앙과 동, 서 기단의 남쪽 끝 부분에 돌계단을 설치하였고, 건물의 4모퉁이 가까이에 동자주(童子柱)를 세워 지붕 일부를 받치고 있습니다.
중국 5성(五聖), 송조2현(宋朝二賢), 우리 나라 18현(十八賢)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습니다.
▶ 동무(東廡)와 서무(西廡)
경주향교 동무(東廡)와 서무(西廡)는 신삼문(神三門)과 함께 국가 보물로 지정되어 있으며, 대성전의 제향공간을 구성하는 건물들로 처음에는 대성전과 같이 셩현들의 위패를 모시고 제향을 받드는 곳이었습니다. 선조 37년(1604)에 중건된 동무․서무는 정면 12칸, 측면 1칸 건물로 우리나라 향교의 무(廡) 건축물(서울 문묘 동무․서무 11칸) 가운데 가장 긴 건물로 장식을 지극히 억제하고 있으며, 회벽으로 마감한 단순한 벽면과 홑처마의 맞배지붕, 단순한 가구구성 등에서 조선시대 제사건축의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 명륜당(明倫堂)
경주향교 명륜당(慶州鄕校 明倫堂) 은 국가 보물로 지정되어 있으며 향교에 부설되어 유학을 가르치던 강학당입니다.
경주향교 명륜당 북쪽에 효종 6년(1655) 소나무를 식재하여 조성한 단입니다.
▶ 동재 (東齋)와 서재 (西齋)
광해군 6년(1614)에 부윤 이안눌(李安訥)이 동재 (東齋)와 서재 (西齋)를 중건하였습니다.
▶ 존경각(尊經閣)
존경각(尊經閣)은 지방 향교 유생들의 학문 연구를 지원하기 위해 세운 도서실입니다. 현종 10년(1655) 송단(松壇) 동쪽에 존경각을 신축하였습니다.
▶ 전사청(典祀廳)
▶ 고직사(庫直舍)
고직사(庫直舍)는 평소 향교를 보살피고 관리하는 관리인이 사는 곳입니다.
▶ 전교실(典敎室)
▶ 우물
[경주최부자댁(慶州崔富者宅)]
경북 경주시 교동에 전통마을인 교촌마을이 있습니다. 조선중기 이후 경주최씨가 향교가 있는 이곳에 터를 잡고 살면서 크게 번창하여 집성촌처럼 보이는 마을입니다. 경주향교를 중심으로 경주 만석군으로 유명한 경주 최부자댁을 비롯하여 교동법주 고택, 요석궁 등 대지주들이 살았던 저택들을 비롯하여 크고 작은 집을이 모여 있습니다. 이곳은 통일신라 최고 교육기관인 ‘국학’이 있던 곳이며 경주향교가 있어 교동 또는 교촌마을로 불립니다. 신라 궁성인 반월성 서남쪽 아래에 있는 마을로 삼국시대 김유신이 살았던 집터인 재매정을 비롯하여 월정교, 문천교 등 많은 역사유적이 주변에 있습니다.
400년 동안 9대 진사와 12대 만석꾼을 배출한 집안으로 경주 최부잣집 또는 경주 최진사집으로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현재 가옥이 위치한 곳은 신라시대 요석공주가 살았던 요석궁터[瑤石宮址]라고 전해집니다. 최부잣집의 파시조(派始祖)인 최진립(崔震立)부터 약 200년 동안 경주시 내남면 게무덤이라는 곳에서 살다가 7대 최언경(崔彦璥 1743~1804)이 교동에 터를 잡아 정착하여 약 200년을 만석꾼으로 유지하며 살았습니다.
현재의 가옥은 1700년대의 건축으로 원래 부지는 약 2천여평이고, 후원이 약1만평이었으며, 집은 99칸의 대저택이었다고 하며 이집에 살았던 하인이 약 100여 명이나 되었다고 전합니다. 그러나 1970년 1월에 화재로 큰사랑채, 작은사랑채 등이 소실되었지만, 2005년 큰사랑채가 복원되었고 2019년에는 작은 사랑채도 복원되었습니다.
현재 남아있는 건물은 복원된 사랑채 2곳을 포함하여 안채, 사당, 곳간채, 행랑채, 문간채가 남아있습니다. 1971년5월 중요민속문화재로 지정되어 보존되고 있으며 문화재명은 '경주 교동 최씨고택'입니다.
집의 배치는 임좌병향(壬坐丙向)으로 ㄱ자형의 큰사랑채, 一자형의 작은 사랑채와 ㄷ자형의 안채, 그리고 一자형의 중문간 행랑채를 서로 연결하여 지었습니다. 작은사랑채와 곳간 그리고 사당은 따로따로 세웠습니다. 남향한 대문간 문간채를 들어서면 곧바로 사랑마당이 되고, 왼쪽(서쪽)으로 작은사랑채가 동면(東面)하고, 큰사랑채는 남면(南面)하여 서 있습니다.
솟을대문 형식을 취하였으나 일반적인 솟을대문보다 낮게 지어 화려하지 않으며 수수하고 평범한 형태의 솟을대문입니다.
‘경주최부자댁’이라고 부르는 곳은 최치원의 17세손이며 조선시대 경주 지방에서 가문을 일으킨 정무공 최진립에서부터 광복 직후 모든 재산을 바쳐 영남대학을 설립한 최준에 이르는 12대를 말합니다.
1970년 1월 화재로 큰사랑채가 소실된 후 2005년 복원된 큰사랑채는 사랑대청·사랑방·침방이 ㄱ자형으로 구성되어 있고, 방과 누마루가 남쪽 전면으로 돌출되어 있습니다. 사랑채의 구조는 장대석(長臺石)으로 바른층쌓기를 한 높직한 기단 위에 요석궁터에서 모아온 것으로 보이는 돌초석들을 놓고 방주(方柱)들을 세웠으며 홑처마, 팔작지붕 건물입니다. 뜰에는 석련지(石蓮池)·대석(臺石) 등 석물(石物)이 남아 있습니다
큰사랑채에는 면암(勉菴) 최익현(崔益鉉, 1833~1906), 구한말 의병장 신돌석(申乭石, 1878~1908), 의친왕(義親王) 이강(李堈, 1877~1955)공(公), 백산 안희재 선생, 1926년 일제강점기 황태자시절에 서봉총(瑞鳳塚) 발굴에 참여했던 스웨덴(瑞典)의 쿠스타프(재위 1950-1973)국왕도 이 저택에서 머물렀다고 하는.등 당대의 유명한 인사들이 많이 머물렀습니다.
앞 뜰에 놓인 명경대(明暻臺)는 밤에 돌판위에 관솔을 올려놓고 불을 피워 뜰 안을 밝혔다고 합니다.
1970년 화재로 작은사랑채도 소실되었으며, 2019년 복원된 一자형의 작은 사랑채압니다.
중문을 돌아 들어가면 안마당이 되고, 집안의 안주인을 비롯한 여성들의 공간이며 정남향의 안채가 부엌, 안방, 대청, 건넌방 등으로 늘어서 있으며, 또 다른 방들과 함께 ㄷ자형 평면을 이루고 있습니다.
사당(祠堂)은 안채 북쪽으로 따로 쌓은 담장 속에 정면 3칸, 측면 1칸 반의 크기로 세워져 있습니다.
곳간은 정면 5칸, 측면 2칸의 맞배지붕 건물로 양쪽 박공에 풍판(風板)을 달았습니다.
쌀 800석 가량을 보관할 수 있으며 이런 곳간이 여러채 있었지만, 현재는 1채만 남아 있으며, 현존하는 목재 곳간 중 가장 크고 오래되었다고 전합니다.
최부자집은 문간채를 마굿간으로 사용하였다고 합니다.
경주법주 고택은 마을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로 18세기 교촌마을 경주최씨 7대 최언경이 향교 옆으로 이사오면서 지은 집입니다. 종가인 경주 최부잣집 옆에 위치하고 있으며 '작은댁'이라 불립니다. 이집은 최부자집에서 대로 빚어온 경주 교동법주를 계승하고 있습니다.
교동법주는 숙종 때 사옹원 참봉을 지낸 최국준이 처음 빚기 시작했다고 알려져 있으며 현재는 최경이 2대째 기능보유자로 명맥을 잇고 있습니다.
2013년부터 동부사적지 내에서 2개의 차량을 연결해 22명이 탑승하고 계림, 향교, 최씨고택, 교촌마을, 월정교, 꽃단지, 월성홍보관을 경유해 매표소까지 약 2.9㎞를 하루 15회 정도 운행하고 있습니다. 비단벌레 전기자동차는 황남대총에서 발굴된 말 안장가리개 등에 1500년 전부터 문양으로 사용한 천연기념물 제496호인 비단벌레를 형상화했습니다.
[기타]
순조3년(1803)에 세운 계림비(鷄林碑)에는 경주 김시의 시조인 김알지에 대한 탄생설화가 적혀 있습니다.
이 비는 조선 후기 문장가인 영의정 남공철이 짓고 경주부윤 최헌중이 글씨를 썼습니다.
'찬기파랑가(讚耆婆郞歌)'는 신라 시대의 화랑이었던 '기파랑'의 높은 인격을 사모한 신라 경덕왕때의 승려 충담이 기파랑(耆婆郞)의 인물됨을 상징성을 띤 자연물에 비겨 찬양한 향가 노래비
<경상북도(慶尙北道) 경주(慶州) 답사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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