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황사(美黃寺) / 해남(海南)-2
☞ 전라남도(全羅南道) 해남군(海南郡) 미황사(美黃寺)
해남 위치도 <google 참고사진>
▣ 4월21일(2019),일요일
4월21일, 시간표: 유선관(아침)~대흥사(답사)~해남~미황사(답사)~땅끝~(점심)~땅끝(답사)~해남~서울 |
1) 유선관[06:00 기상]
2) 아침[07:00 - 유선관/아침백반]
3) 유선관 출발[08:00 출발]---(도보: 약 5분 이내)---대흥사 일주문도착[08:05 도착]
4) 대흥사 답사[08:05 ~ 09:30]
5) 대흥사 입구 출발[09:30 ]---(도보: 약 35~45분 소요)---대흥사 버스정류장 도착[10:13]
6) 대흥사 정류장 출발[10:20]---(군내버스: 약 20~25분 소요)---해남터미널 도착[10:45]
7) 해남터미널 출발[11:10]---(군내버스: 약 40~50분 소요)---미황사 도착 [11:58]
8) 미황사 답사 [11:58 ~12:40]
* 점심을 공양간에서 하려 하였으나 사전 예약 필요하여 땅끝에서 점심을 하기로 함
* 이 시간대에 땅끝 행 대중교통을 이용하기 어려워 택시를 이용함
* 미황사 답사 끝난 후 택시회사에 전화하여 땅끝행 택시 요청[택시 도착까지 약7~10분 기다림]
9) 미황사 출발[12:48]---(택시이용: 약 15~20분 소요)---땅끝마을 도착[13:05]
* 땅끝 도착 후 해남행 직행버스 예매함
10) 점심[바다동산(송지면 땅끝마을) /해물칼국수]
11) 땅끝 답사[14:00 ~ 16:15]
12) 땅끝정류장 출발[16:15 ]---(직행버스: 약45분 소요)---해남터미널 도착[16:57]
13) 해남터미널 출발[17:30]---(고속버스: 약 4시간50분 소요)---서울도착[22:20]
* 서울에서 미리 티켓 구입하였음
★ 주의: 버스시간표(고속, 시외, 군내버스)는 항상 부정기적으로 변동될 수 있으므로 사전 확인은 꼭 필요합니다.
미황사 위치도 <google 참고사진>
미황사 전각 배치도
▶ 미황사(美黃寺)
미황사(美黃寺) 전경
대한불교조계종 제22교구 본사인 대흥사의 말사입니다. 1692년(숙종18)에 세운 사적비에 의하면 749년(경덕왕8)에 의조화상(義照和尙)이 창건했다고 합니다. 그뒤의 사적은 알 수 없으나 1597년 정유재란 때 약탈과 방화로 큰 피해를 입었습니다. 1601년(선조 34)에 중창하고, 1660년에 3창하였으며, 1752년 금고를 만들고, 1754년 대웅전과 나한전을 중건하는 등의 공사를 해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미황사 홈페이지 참조>
11:59 / 미황사 입구 서정리버스정류장
예전에는 여기서 버스를 내려 미황사까지 약30분 걸어서 올라가야 했습니다. 지금은 미황사까지 버스가 다녀 매우 편리해졌습니다.
11시10분 해남을 떠난 군내버스는 11시58분 미황사 일주문 앞 버스정류장에 도착하였습니다.
12:03 / 일주문(一柱門): 2008년 복원한 것입니다.
사천왕문 오르는 길
사천왕문(四天王門):
최근에 지은 건물로 사천왕문 내에는 아직 사천왕상(四天王像)이 설치되어 있지 않습니다. 정면 3칸, 측면 2칸의 겹처마의 맞배지붕 건물로, 법당으로 오르는 가운데 칸 통로에 윤장대(輪藏臺)를 배치하였습니다.
윤장대(輪藏臺): 최근에 설치된 것입니다. <참고사진>
미황사의 윤장대(輪藏臺)는 사천왕문(四天王門) 가운데 설치되어 있는 것이 특이하며 윤장대 내부에 불경을 넣어 돌리며 극락왕생을 기원합니다. 윤장대를 한 바퀴 돌리면 경전 한 면을 읽은 것과 똑같은 공덕을 쌓은 것으로 여긴다고 합니다.
사천왕문(四天王門) 뒷면
달마선다원(達磨禪茶苑)
사천왕문을 지나 계단을 오르면 왼쪽에 '달마선다원'이란 기념품가게 및 전통찻집이 있습니다. 2007년 복원하였으며 정면5칸, 측면3칸, 겹처마 팔작지붕 건물이 고풍스럽게 보입니다.
자하루(紫霞樓)
왼쪽에 '달마선다원'이란 전통찻집을 지나 계속 이어지는 게단을 오르면 자하루(紫霞樓)에 이릅니다. 2층 구조의 자하루(紫霞樓)는 중심 법당으로 들어가는 입구에 있는 누각(樓閣)으로 2003년 복원하였으며 정면7칸, 측면2칸의 겹처마 맞배지붕에 풍판을 단 누각건물로 대웅보전과 마주하는 곳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자하루(紫霞樓) 현판
학정 이돈흥(73)선생의 글씨로 그는 서예의 본고장 남도에서 동국진체라는 우리 민족의 독특한 서체를 계승하면서 새로운 경지를 개척한 신동국진체의 대가라 평가받고 있는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서예가 중 한사람입니다.
자하루(紫霞樓)
2층은 전체가 트인 한 공간으로 구성되어 대규모 행사 및 수련회 때 사용됩니다. 자연석으로 기단을 쌓고 자연석 초석을 놓았습니다. 내부의 천장은 연등천장으로 마감하였습니다. 1층 기둥의 각 칸은 화방벽을 쌓고 위에 세로살 고정창을 하였습니다. 2층의 각 칸에는 두 짝의 판문을 달았습니다.
자하루(紫霞樓) 주련(柱聯)
若人欲識佛境界 (약인욕지불경계): 만약 누가 부처의 경계를 알고자 한다면,
當淨其意如虛空 (당정기의여허공): 마땅히 그 뜻을 허공과 같이 깨끗이 하라.
遠離妄想及諸趣 (원리망상급제취): 망상과 모든 집착에서 멀리 벗어나,
令心所向皆無碍 (영심소향개무애): 마음이 향하는 바가 모두 걸림이 없도록 하라.
三界猶如汲井輪 (삼계유여급정륜): 삼계는 우물의 도르래와 같아서
百千萬劫歷微塵 (백천만겁역미진): 백천만겁을 지나도 티끌에 불과하네.
此身不向今生度 (차신불향금생도): 금생에 이 몸을 제도하지 못하면
更待何生度此身 (갱대하생도차신): 또 다시 어느 생을 기다려 이 몸을 제도할까
자하루 뒷면의 만세루(萬歲樓)
만세루(萬歲樓) 현판: 학정 이돈흥(73)선생의 글씨
만세루(萬歲樓) 주련(柱聯)
各自性中眞懺悔 (각자성중진참회): 각자의 마음 속에서 참된 참회가 되리라.
後世得福罪還在 (후세득복죄환재): 후세에 복은 얻을지라도 죄는 그대로이네.
但向心中除罪緣 (단향심중제죄연): 다만 마음 속 죄의 연원을 없애면
各自性中眞懺悔 (각자성중진참회): 각자의 마음 속에서 참된 참회가 되리라.
자하루(紫霞樓) 앞 달마대사상(達磨大師像)
달마대사상(達磨大師像)
달마산(達磨山)과 미황사(美黃寺)
대웅보전 뒤로는 응진전과 요사채가 있고 그 뒤로는 녹색의 나무와 함께 달마산(達磨山)의 기암괴석이 병풍처럼 둘러져 있습니다.
12:14 / 대웅보전(大雄寶殿) : 보물 947호
대웅보전은 막돌 2단을 쌓아 기단을 조성하고 그 위에 화단을 조성하고, 다시 돌을 높이 쌓은 기단을 조성하여 대웅보전을 세웠습니다. 정면 3칸, 측면 3칸의 겹처마, 팔작지붕의 다포식 집으로 단청이 벗겨져 천연 목조건물 그대로의 소박한 질감을 잘 나타내고 있으며 화단 앞에는 괘불대 1쌍이 세워져 있습니다.
대웅보전(大雄寶殿)
1754년작성된 달마산미황사대법당중수상량문(達摩山美黃寺大法堂重修上樑文)에 따르면 대웅보전은 응진전(應眞澱)과 함께 1751년에 중수되었습니다.
괘불대(掛佛臺)와 배례석(拜禮石)
화단 앞에는 법회를 열 때 불화를 걸기 위해 마련된 괘불대 1쌍이 세워져 있습니다. 미황사에는 영조 3년(1727)에 7명의 스님들이 조성한 높이 12m, 폭 5m의 초대형 부처님의 괘불이 있습니다. 평상시에는 대웅보전 내에 있지만 이를 괘불대에 옮겨 걸기에는 크기가 워낙 커서 장정 20명의 인원이 필요하다고 합니다. 배례석은 예(禮)를 올리기 위해서 사용하는 돌판이며, 탑이나 석등앞에서 예를 올리거나 법당에 들어갈 수 없는 사람을 위해 밖에서도 예를 올릴 수 있도록 배려한 공간입니다
미황사 괘불[보물 제1342호]
미황사 괘불은 높이 12m, 폭 5m의 대형 불화로서 고려 불화의 아름다움과 조선 불화의 단순미를 고루 갖춘 작품으로 평가하고 있으며, 예전부터 큰 법회에 괘불대에 걸고 행사를 진행 하였으며, 법회에 이 괘불을 보면 소원을 이루고 풍년이 들었다고 합니다.
매년 10월 열리는 괘불재(掛佛齋) 모습 <참고사진>
또한 가뭄이 극심할 때 이 괘불을 걸고 법회를 열고 달마산 정상에 올라 불을 지피면 비를 내려준다고 하였다는 이야기도 전해집니다.
기단 위의 연꽃잎을 새긴 원형 주춧돌 위에 배흘림기둥을 세웠으며 주춧돌에는 거북과 게 등의 바다생물들이 새겨져 있습니다. 이것은 대웅보전이 연꽃 위에 있으니 이곳에 부처님이 계시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건물 외부의 공포는 화려하게 짜여 조선 중후기 다포집 양식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으며, 정면 기둥 위에 용머리를 장식하였습니다.
대웅보전 현판
대웅보전의 현판은 조선 후기의 문인, 서화가인 원교(圓嶠) 이광사(李匡師)의 글씨입니다.
전면의 3칸을 벽처럼 문처럼 사용되는 문짝은 좌우가 청판을 댄 빗살로 짜여진 3짝의 문중에 두 짝의 문이 접이식 나비경첩으로 연결되어 있고, 하나의 문은 외문 짝이다. 가운데 문짝은 4분합문으로 두 짝씩 나비경첩으로 접이식으로 열고 닫을 수 있도록 하였다.
대웅보전 삼존불
대웅보전은 석가모니부처님을 주불로 모신 법당이란 뜻으로 주불인 석가모니불과 협시불로 아미타불과 약사여래불을 모셨습니다. ‘대웅(大雄)’은 법화경에서 석가모니부처님을 큰 영웅, 즉 대웅이라고 한 데서 유래했으며, ‘위대한 영웅인 석가모니부처님이 사는 집’ 이라는 뜻이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닫집과 범자문(梵字文) <참고사진>
대웅보전 내부
천정문양은 엄격한 좌우대칭의 구도를 갖추었습니다. 중앙 칸에 부처님과 범자문이 있고, 주위로 우물반자로 구성되었습니다. 문양은 연꽃, 모란, 학, 범자 등 총 7가지이며, 하나하나의 문양은 반복하여 표현하였습니다.
대웅보전 추녀 끝에 달린 풍경
대웅보전 뒷면
응진당(應眞堂): 보물 제1183호
미황사의 부불전(副佛殿)인 응진당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다포계 겹처마 팔작지붕집으로 대웅보전과 같은 건축양식을 보이고 있어 같은 시기(1751년)에 같은 목수에 의해 지어졌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2001년 응진당은 해체 복원되었습니다. 부처는 아니지만 부처님의 제자나 고된 수행을 거쳐 진리를 깨달은 역대의 고매한 존재를 모신 집이 응진전(응진당) 또는 나한전으로 불립니다.
응진당 내부 불단(佛壇)
목조 석가여래삼존상(美黃寺 木造釋迦如來三尊像: 석가모니불, 아난존자, 가섭존자) 및 나한상 일괄(羅漢像 一括)은 조선 후기 제작된 석가여래삼존상과 십육나한상을 비롯한 26구의 조각상으로 18세기 중엽을 대표할만한 상(像)입니다.
응진당 내부 불단(佛壇) 위에는 석가모니부처님 좌우에 아난, 가섭존자가 모셔져 있고 16나한상, 인왕상, 시자상, 동자상 및 불패(佛牌)가 모셔져 있습니다. 내부 벽면에 수묵(水墨)으로 그려진 10폭의 나한 벽화가 이채롭습니다.
응진당 내부 벽화
응진당에는 후불벽이 없으며 대신 입구벽을 제외한 내벽전체에 벽화가 그려져 있습니다. 현재 향좌측의 벽화는 남아있지 않고, 향우측과 후벽의 벽화 10폭이 전해집니다. 사찰벽화로는 특이하게 청회색으로 바탕화면을 마련하여 채색이 없이 먹선 만으로 벽화를 그린 백묘화(白描畵)입니다. 이 벽화는 각 나한의 사실적이고 개성적인 표정과 자유롭고 다양한 포즈 등이 돋보여 미술사적 가치가 주목됩니다. 조성 시기는 응진당이 지어진 때로 추정됩니다.
응진당(應眞堂) 마당에서 조망
응진당 마당은 사찰 경내에서 가장 높은 곳이라서 맑은날 해질 녘에 내려다보는 전경은 일품으로 알려져 있는데, 오늘은 자하루 지붕너머 군곡저수지가 보일 뿐입니다.
만하당(樠霞堂)
만하당(樠霞堂)은 '노을빛이 충만하다'는 의미로서 응진당의 동쪽에 위치하며 현재 선원(禪院)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만하당(樠霞堂) <참고사진>
만하당은 정면5칸, 측면 3칸, 겹처마, 팔작지붕, 주심포 건물로 1995년 복원하였습니다.
만하당(樠霞堂) 현판 <참고사진>
만하당(樠霞堂) 주련 <참고사진>
<참고사진>
삼성각(三聖閣)
삼성각(三聖閣)은 1998년에 복원되었습니다. 삼성각 내부에는 산신(山神), 칠성(七星), 독성(獨聖)을 함께 모셨으며 산신탱화, 독성탱화, 칠성탱화가 차례로 봉안되어 있습니다.
삼성각(三聖閣) 내부
왼쪽부터 독성탱화(獨聖幀畵), 칠성탱화(七星幀畵), 산신탱화(山神幀畵)가 모셔져 있습니다. 가운데 칠성(七星)은 수명장수신(壽命長壽神)으로 일컬어지는 북두칠성을 뜻하며, 본래 중국의 도교사상과 불교가 융합되어 생긴 신앙입니다. 탱화 중앙에 가득하게 치성광여래를, 그 좌우에 일광보살, 월광보살을 그렸습니다. 하단 중앙에 기록된 화기란에 보면 1943년에 제작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삼성각(三聖閣) 내부 독성탱화(獨聖幀畵)
독성(獨聖)은 천태산(天泰山)에서 홀로 선정을 닦아 독성(獨聖), 독수성(獨修聖)이라 불린 나반존자(那畔尊子)를 일컫습니다. 독성탱화(獨聖幀畵) 그림은 천태산과 소나무, 구름 등을 배경으로 희고 긴 눈썹을 드리운 스님이 왼손에 염주를 들고 앉아 있고 차를 달이는 동자와 여인이 등장합니다. 화면 하단 오른쪽에 기록된 화기란을 보면 완도읍에 사는 분이 아들을 얻은 기념으로 시주한 듯 하며 신미년 오월이라는 간지로 보아 1943년을 말한 것으로 여겨집니다. 크기는 가로 112cm이고 세로 97cm 입니다.
삼성각(三聖閣) 내부 산신탱화(山神幀畵)
산신(山神)은 한국의 토속신 산신령에 해당하는 호법산신으로 이 곳의 산신탱화(삼성각 정면 좌측)는 화면 왼쪽에 호랑이를 걸터앉은 산신과 그 좌우에 동자와 여인이 자리한 구도입니다. 동자와 여인은 독성탱화의 것과 모습이 흡사합니다. 크기는 가로 112cm 이고 세로 97cm 입니다. 화면 하단 오른쪽에 기록된 화기란에 불기 2970년(1943) 해남군 송지면 대죽리에 거주하는 분이 시주한 내용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명부전(冥府殿)
미황사의 명부전은 대웅보전 옆에 자리 하고 있으며 정면3칸, 측면3칸, 겹처마 맞배지붕 건물로 1998년에 복원하였습니다. 명부전 안에는 지장보살을 봉안하고 있기 때문에 지장전(地藏殿)이라고도 하며, 지옥계의 심판관인 시왕(十王)을 봉안하기 때문에 시왕전(十王殿)이라고도 합니다. 조선 후기에는 지장신앙이 크게 유행해서 어느 사찰에나 이 전각이 있었습니다.
명부전(冥府殿) 현판
명부전(冥府殿) 주련
명부전(冥府殿) 내부
광배를 갖춘 지장보살(地藏菩薩)을 중심으로 무독귀왕(無毒鬼王)과 도명존자(道明尊者)가 협시하고 있으며, 좌우로 시왕(十王)이 모셔져 있습니다. 지옥의 중생까지 구제하겠다는 원력을 세우시고 자신의 성불을 미루신 분이 바로 지장보살님 이십니다. 저승의 염라대왕 앞에는 업경대가 놓여 있는데 이는 저승에 당도한 망자가 평생에 있었던 사소한 사건까지 업경에 영상으로 비치며 그에 따라 서기가 옆에서 죄목을 일일이 두루마리 문서에 받아 기록하게됩니다. 이 문서를 저울에 달 때 무게가 나가는데 죄가 무겁다는 말이 여기에서 유래하였다고 합니다. 지장보살님은 업경대 옆에서 죄를 가볍게 처리하도록 변호하여 주는 것입니다.
명부전(冥府殿) 내부 시왕상(十王像)
명부전 안에 있는 10대 시왕을 조각해 모신 사람은 '자화상'이 국보로 지정되어 유명한 공재 윤두서님 입니다. 그가 명부전에 10대 시왕을 모신 것에는 특별한 이유가 있었다고 합니다. 그에게는 아들이 없어 절 근처에 있던 은행나무를 베어 10대 시왕을 조성했는데 그 후 신기하게도 10명의 아들을 보았다 합니다. 더욱 믿지 못할 일은 시왕 중 네 번째 시왕의 두 눈 크기가 실수로 서로 다르게 조각되었는데 그의 넷째 아들도 눈 크기가 달랐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염화실(拈花室)
염화실은 명부전 뒤쪽에 위치하며, 정면3칸, 측면2칸, 팔작지붕 건물로 2007년 개축하여 현재 요사채로 사용 중입니다.
향적당(香積堂)
향적당은 염화실 아래에 위치하고 있으며 템플스테이에 참가하는 일반인들이 머무르는 곳으로 정면4칸, 측면3칸, 맞배지붕 건물로 2007년에 개축하였습니다.
종무소 옆 뜰
하심당(下心堂)
자기 자신을 낮추고 남을 높이는 마음을 말하는 하심당(下心堂)은 현재 종무소(宗務所)로 사용하고 있으며 정면 3칸, 측면 3칸 겹처마 팔작지붕 건물입니다.
하심당(下心堂) 현판
세심당(洗心堂) <참고사진>
마음을 씻는다는 의미를 지닌 세심당(洗心堂)은 'ㄱ'자 형의 팔각지붕 건물로 1997년 개축하였으며 요사채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세심당(洗心堂) <참고사진>
안마당쪽에서 보는 세심당 건물에는 '미수(麋壽)'라는 현판이 걸려 있습니다.
미수(麋壽) <참고사진>
미(麋)는 큰 사슴 '미(麋)' 자로 '사슴처럼 오래 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으며 조선 후기의 명필인 추사(秋史) 김정희(金正喜) 선생의 글씨입니다.
세심당(洗心堂) 뒷면
뒷면에 걸려있는 세심당(洗心堂) 현판
세심당(洗心堂) 뒤뜰
안심료(安心寮) <참고사진>
세심당과 마당을 가운데 두고 마주보고 있으며 요사채로 사용하고 있으며 2002년 복원하였습니다.
감로당(甘露堂) <참고사진>
감로당과 안심료 사이의 공간과 함께 공양간으로 이용하고 있습니다.
청운당(靑雲堂) <참고사진>
청운당(靑雲堂)은 종무소 밑에 위치하고 정면 5칸, 측면 3칸, 팔작지붕의 건물로 템플스테이 수련관으로 이용하고있으며 2006년 복원하였습니다.
청운당(靑雲堂) 뒷면
범종각(梵鐘閣)
범종각은 청운당(靑雲堂) 바로 옆에 위치하며 2005년 복원하였습니다.
달마범종(達磨梵鐘)
12:40 / 일주문 <참고사진>
미황사 답사를 마치고 땅끝마을로 이동하였습니니다. 이 시간대에 미황사에서 땅끝마을로 향하는 군내버스가 없어서 택시회사에 전화하여 땅끝행 택시 요청하고 택시 도착까지 약7~10분 기다린 후 12시48분 미황사를 출발하여 13시05분 땅끝마을에 도착하였습니다.
▶ 참고자료
● 대중교통 시간표
대흥사 → 해남(군내버스/약20~25분소요): 08:00 / 09:10 / 09:50 / 10:20 / 11:20 / 11:50 / 12:40 / 이하시간 생략
해남 → 미황사(군내버스/약40~50분소요): 06:15 / 11:10 / 14:05 / 17:00
미황사 → 땅끝마을(택시/약15~20분소요): \20,000.(송지땅끝택시 이용/ 12:45~13:05)
땅끝마을 → 해남(직행버스/약45분소요): 이전시간 생략 / 14:15 / 15:15 / 16:15 / 16:45 / 17:15 / 18:40
해남 → 서울(고속버스/약4시간30분소요): 08:00 / 09:30 / 11:00 / 14:00 / 15:30 / 17:30 (막차)
● 전화번호
해남터미널: 061-534-0881, 1666-0884
해남교통: 061-533-8825~6
해남금호고속: 061-534-0881~2
미황사종무소: 061-533-3521
송지땅끝택시: 061-533-2228, 2055
송지개인택시: 061-533-8150, 2159, 010-3624-8150
땅끝개인택시: 061-537-6100, 010-7149-6100
땅끝해남터미널: 061-535-4268
땅끝정류소: 061-533-4291
미황사(美黃寺) / 해남(海南)-2
(2019.0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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