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위사(無爲寺) / 강진(康津)
☞ 전라남도(全羅南道) 강진군(康津郡) 무위사(無爲寺)
강진 위치도 <google 참고사진>
▣ 4월20일(2019),토요일
4월20일, 시간표: 서울~강진~(점심)~무위사(답사)~강진~해남~(저녁)~유선관(숙박) |
1) 서울 출발[07:30]---(고속버스: 약 4시간30분 소요)---강진 도착[12:55]: 도로사정으로 예정시간보다 약1시간 연착함
2) 점심[남도맛집(버스터미널 부근 식당) / 백반]: 도보 이동
3) 강진버스여객터미널 출발[13:40]---(군내버스: 약 20~30분 소요)---무위사 도착[14:00]
4) 무위사 답사[14:00 ~1 4:55]
* 무위사에서 강진버스여객터미널행 버스시간표는 사전에 버스회사[강진교통]에 문의하여 확인요함
* 만약을 대비해 무위사 종무소에서 버스 출발 시간 재확인 요함
5) 무위사 출발[15:35]---(군내버스: 약 20~30분 소요)---강진버스여객터미널 도착[15:55]
* 무위사에서 하차한 바로 그 장소에서 탑승! [반대편 아님]
* 약 15:25분 부터 정류장에서 기다림 [버스를 놓치면 안됨]
* 강진버스여객터미널 도착 후 해남행 버스표 구입함
6) 강진버스여객터미널 출발[16:10]---(군내버스: 약 20~25분 소요)---해남종합버스터미널 도착[16:35]
7) 저녁[소망식당(해남읍 구교리) / 뚝배기주물럭]: 왕복 도보 이동
8) 해남종합버스터미널 출발[18:50]---(군내버스: 약 20~25분 소요]---대흥사주차장 도착[19:10]
* 해남종합버스터미널에서 숙박장소(유선관)에 입실시간 연락함
9) 대흥사주차장 출발---(도보: 약30분 소요)---유선관 도착[19:45], 1박
* 유선관 숙박 예약은 이용일 기준 최소 1~2개월 전에 해야됨
* 유선관 도착 후 21일 아침 식사 준비 요청함
* 21일 오전 대흥사 버스정류장 출발 군내버스 시간표 유선관에 재확인 요함
[대흥사에서 대흥사 버스정류장까지 도보 약30~40분 소요됨!!. 대중교통 따로 없음]
★ 주의: 버스시간표(고속, 시외, 군내버스)는 항상 부정기적으로 변동될 수 있으므로 사전 확인은 꼭 필요합니다.
▣ 4월21일(2019),일요일
4월21일, 시간표: 유선관(아침)~대흥사(답사)~해남~미황사(답사)~땅끝~(점심)~땅끝(답사)~해남~서울 |
1) 유선관[06:00 기상]
2) 아침[07:00 - 유선관/아침백반]
3) 유선관 출발[08:00 출발]---(도보: 약 5분 이내)---대흥사 일주문도착[08:05 도착]
4) 대흥사 답사[08:05 ~ 09:30]
5) 대흥사 입구 출발[09:30 ]---(도보: 약 30~35분 소요)---대흥사 버스정류장 도착[10:05]
6) 대흥사 정류장 출발[10:20]---(군내버스: 약 20~25분 소요)---해남터미널 도착[10:45]
7) 해남터미널 출발[11:10]---(군내버스: 약 40~50분 소요)---미황사 도착 [11:58]
8) 미황사 답사 [11:58 ~12:45]
* 점심을 공양간에서 하려 하였으나 사전 예약 필요하여 땅끝에서 점심을 하기로 함
* 이 시간대에 땅끝 행 대중교통을 이용하기 어려워 택시를 이용함
* 미황사 답사 끝난 후 택시회사에 전화하여 땅끝행 택시 요청[택시 도착까지 약7~10분 기다림]
9) 미황사 출발[12:45]---(택시이용: 약 15~20분 소요)---땅끝마을 도착[13:05]
* 땅끝 도착 후 해남행 직행버스 예매함
10) 점심[바다동산(송지면 땅끝마을) /해물칼국수]
11) 땅끝 답사[14:00 ~ 16:15]
12) 땅끝정류장 출발[16:15 ]---(직행버스: 약45분 소요)---해남터미널 도착[16:57]
13) 해남터미널 출발[17:30]---(고속버스: 약 4시간30분 소요)---서울도착[22:20]
* 서울에서 미리 티켓 구입하였음
★ 주의: 버스시간표(고속, 시외, 군내버스)는 항상 부정기적으로 변동될 수 있으므로 사전 확인은 꼭 필요합니다.
▶ 센트럴시티터미널 → 무위사(無爲寺)
07:30 / 센트럴시티 터미널 출발 강진행 <터미널홈사진>
12:55 / 강진버스여객터미널
07시30분 서울 출발하여 고속버스 예상소요시간(약 4시간30분)을 고려 12시경에 강진 도착하면, 짱둥어탕으로 점심을 먹고 사의재(四宜齋)와 영랑생가(永郞生家)를 답사하고 13시40분발 무위사행 군내버스를 탈 예정이었으나 연착으로 인해 터미널 부근에서 점심을 해결하는 것으로 계획을 변경하였습니다.
13:25 / 남도맛집(버스터미널 부근 식당)
점심 / 백반 [남도맛집(버스터미널 부근 식당)] <참고사진>
강진 버스여객터미널 사거리 [직진하면 영랑생가 방향]
▶ 강진버스여객터미널 → 무위사(無爲寺)
13;32 / 무위사행 군내버스[강진터미널 출발(13:40)]
13:44 / 무위사 가는길
13:55 / 차창으로 바라본 월출산
▶ 무위사(無爲寺)
강진 무위사 위치도<google 참고사진>
14:00 / 무위사(無爲寺) 입구
무위사 입구에서 바라본 월출산
월출산은 사방에 큰 산이 없는 들판에서 갑자기 솟구쳐 올라 거대한 암봉과 장쾌한 암릉을 형성하고, 화강암 바위들이 오랜 세월동안 풍화와 절리작용을 통해 깍여나가 갖가지 모양의 기암괴석을 이루고 있어 그 절경을 "남도의 금강산"이라 부르고 있습니다. 정상은 천황봉(809m)입니다.
월출산국립공원(月出山國立公園)
월출산은 "달 뜨는 산"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아름다운 자연경관과 유수한 문화자원, 그리고 남도의 향토적 정서가 골고루 조화를 이루고 있는 한반도 최남단의 산악형 국립공원입니다.
무위사(無爲寺)
무위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22교구 본사인 대흥사(大興寺)의 말사이다. 신라 때 원효(元曉)가 창건하여 관음사(觀音寺)라 하였고, 875년(헌강왕 1) 도선(道詵)이 중건하여 갈옥사(葛屋寺)라고 개칭한 뒤, 많은 승려들이 주석하였다. 905년(효공왕 9) 선각(禪覺)이 3창하였다. 1407년(태종 7)무위사가 천태종(天台宗) 17자복사(資福寺) 중의 하나가 되었다. 1430년(세종 12) 극락전을 지었는데, 이 건물은 현재도 남아 있다. 1555년(명종 10) 태감(太甘)이 4창하면서 무위사라 하였다. 이때의 당우는 본절이 23동, 암자가 35개로 모두 58동에 이르는 대찰이었으나, 그 뒤 화재 등으로 규모가 크게 축소되었다. 당우는 최근까지만 해도 극락전·명부전과 요사채 뿐이었으나 1678년(숙종 4)에 극락전 앞에 괘불대를 조성하였고, 1739년(영조15)에는 해초(海超)·극잠(克岑) 등이 전각을 보수하였다.
1975년 벽화보존각(壁畵保存閣)과 해탈문(解脫門)·봉향각(奉香閣)·천불전(千佛殿)·미륵전(彌勒殿) 등을 중건하였으며, 1991년에 산신각을 짓고 1995년에 동쪽 요사를 증축하여 오늘에 이른다. 이 중 극락보전은 국보 제13호로 지정되어 있는데, 벽에는 29점의 벽화가 있었으나 지금은 본존불 뒤의 가로 4m, 세로 7m 크기의 후불탱화만이 남아 있고, 28점은 보존각에 보관되어 있다.
후불탱화는 법당이 완성된 뒤 찾아온 한 노거사(老居士)가 49일 동안 이 안을 들여다보지 말라고 당부한 뒤 그렸다는 전설이 있다. 49일째 되는 날, 주지가 문에 구멍을 뚫고 들여다보니 파랑새 한 마리가 입에 붓을 물고 마지막으로 후불탱화의 관음보살 눈동자를 그리고 있었는데, 새는 인기척을 느끼고 어디론가 날아가 버렸다고 한다. 지금도 후불탱화의 관음보살상에는 눈동자가 없다. 이 밖에도 선각대사변광탑비(先覺大師遍光塔碑)는 보물 제507호로 지정되어 있고, 그 옆에는 석탑형식을 취한 보기 드문 부도가 있는데, 선각대사변광영탑(先覺大師遍光靈塔)으로 명명되어 전라남도 문화재자료 제76호로 지정되어 있다. 또한 미륵전 안에는 고려 말기의 것으로 추정되는 석불입상이 있다. <다음백과>
● 일주문(一柱門)
일주문(一柱門)
일주문 현판 [월출산무위사(月出山無爲寺)]
● 사천왕문(四天王門)
사천왕문(四天王門)
사천왕문(四天王門)은 4천왕(天王)을 모셔 사찰을 지키고 악귀를 내쫓아 불도를 닦는 사람들로 하여금 사찰이 신성한 곳이라는 생각을 갖게 하기 위해 세워졌습니다. 사천왕문에는 인간의 선악을 관찰하고 수행자들을 올바른 길로 인도하며 불법을 수호하는 지국천왕(持國天王), 광목천왕(廣目天王), 증장천왕(增長天王), 다문천왕(多聞天王) 등의 사천왕상이 있는데 각각 불국정토의 동, 서, 남, 북을 지키는 신(神)들입니다.
2007년 4월[참고사진]
월출산무위사(月出山無爲寺) 현판이 당시 해탈문(解脫門)이라 불리었던 이곳에 걸려있었는데 지금은 없어지고 다른 글씨의 현판으로 바뀌어 일주문(一柱門)에 걸려있습니다. 또한 이 문을 지나면 곧바로 극락보전(極樂寶殿)으로 진입할 수 있었는데 지금은 보제루(普濟樓)라는 누각(樓閣)을 거쳐야 합니다. 부처님께 가까이 가기가 그만큼 멀어진 느낌입니다.
왼쪽은 다문천왕(多聞天王), 오른쪽은 지국천왕(持國天王)
북쪽을 지키는 다문천왕(多聞天王)은 왼손으로 비파를 잡고 오른손으로 줄을 튕기는 모습으로 도량을 지키고, 동쪽을 지키는 지국천왕(持國天王)은 손에 보검을 쥐고 중생을 두루 보살피면서 항상 국토를 지킵니다.
왼쪽은 증장천왕(增長天王), 오른쪽은 광목천왕(廣目天王)
남쪽을 지키는 증장천왕(增長天王)은 오른손에 용을 움켜잡고 왼손에는 용의 입에서 빼낸 여의주를 쥐고 불법(佛法)을 보호하면서 만물을 소생 시키고, 서쪽을 지키는 광목천왕(廣目天王)은 붉은 관을 쓰고 삼지창과 보탑을 들고 눈을 부릅뜨고 그 위엄으로 불법을 보호하고 있습니다.
무위사중수공적비(無爲寺重修功蹟碑)
지금 비석이 서있는 곳에는 예전에(아래사진 참조) 배롱나무, 동백나무가 있던 곳이었는데.....
참고사진[2007년4월]
● 누각(樓閣)
보제루(普濟樓)
많은 사찰에는 주불전(主佛殿)을 보호하고 사세(寺勢)를 안정시키는 전위 누각(樓閣)이 주불전의 맞은편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무위사의 보제루(普濟樓)도 마찬가지 의도로 2012년(?)경에 지어진것 같습니다.
보제루(普濟樓) 현판
보제루(普濟樓)를 절에 따라 만세루(萬歲樓), 구광루(九光樓)라고도 하나, '두루 모든 중생을 제도한다'는 뜻에서 보제루라는 명칭을 많이 사용하고 있으며, 이곳에서는 주로 법요식(法要式)을 행합니다. 이 누각이 있는 절은 대부분 불이문(不二門)이 없으며 불이문의 기능을 함께 하고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이 누각 옆에는 법회 등을 알리는 의식 용구를 보관하는 종각(鐘閣)이 있습니다. <다음백과>
보제루 뒷면
● 극락보전(極樂寶殿)
극락보전(極樂寶殿): 국보 제13호
극락보전(極樂寶殿) 현판
극락보전(極樂寶殿) 앞마당
절 이름 ‘무위(無爲)'에 어울리게 다른 많은 사찰과 달리 인위(人爲)를 더하지 않고 덩그러니 비워둔 절마당입니다. 이 소박한 공간과 함께 맞배지붕의 단아한 극락보전은 서로 아름다운 조화를 이루고 있습니다.
배례석(拜禮石)
절마당 가운데 돌 위에 백제 양식의 연꽃이 피어있습니다. 시들지 않는 꽃인 연꽃같이 청정함을 스스로 다짐하라는 뜻이 스며있는 배례석(拜禮席)입니다. 주지스님이 극락보전에 들기전 마음 가다듬어 부처님께 큰절을 올리는 장소로 절의 큰 행사가 열릴때 이용된다고 합니다. 직사각형의 대석(臺石)인 배레석은 길이 130cm, 너비 98cm, 높이 9cm 이며, 윗면에는 커다란 단판8엽(單瓣八葉)의 연화문이 새겨져 있고, 그 중앙의 원좌(圓座)에 8개의 씨방이 표현되어 있습니다. 주위에는 방형 1단의 괴임을 나타내었으며, 조성시기는 고려시대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일부 전라도닷컴에서 인용>
괘불석주(掛佛石柱)
극락보전 앞에 서 있는 한 쌍의 괘불석주는 높이가 각각 114cm와 109cm입니다. 모두 위, 아래에 17cm의 구멍이 있고 극락보전에서 보았을 때 오른쪽에 있는 석주에는 옆면에다 조성연대를 새겼습니다. 명문은 세로 2줄로 ‘강희십칠년무오일○자조성야(康熙十七年戊午日○字造成也)'라 새겨, 숙종4년(1678)에 조성된 것임을 알 수 있으며, 여기에 내어 걸었을 괘불은 현재 전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괘불석주 옆면 명문(銘文) <참고사진>
극락보전 앞 마당의 괘불석주(掛佛石柱)
괘불석주는 괘불대를 끼워 괘불을 세우는 기둥으로 크기는 작게는 약60cm, 크게는 2m 정도입니다. 흔히 괘불석주와 당간지주를 혼동하기 쉬운데 당간지주는 절입구에 서있는 큰 돌기둥이고 괘불석주는 대웅전이나 법당 앞에 2개가 한조를 이루어 양쪽에 서있는 작은 돌기둥입니다.
괘불석주 이해도 <참고사진>
아무 조각도 없는 주춧돌 위에 배흘림 기둥을 세우고 그 위에만 포를 얹은 주심포(柱心包) 건물로 기둥과 들보들이 드러나 보이는 옆모습은 꼭 필요한 부재만이 사용된 간결하고 짜임새있는 건물의 면모를 보이고 있습니다.
극락보전의 소슬빗살문
극락보전의 아름다움
무위사 극락보전은 고려시대 맞배지붕 주심포집의 엄숙함을 그대로 이어받으면서 한편으로는 조선시대 종묘나 명륜당 대성전에서 보이는 단아함이 살아 있습니다. 극락보전 측면의 노출되어있는 기둥과 들보가 잘 어울려 단정한 멋을 은근히 풍기고 있다고 학자들은 지적합니다.
극락보전 앞마당의 수령(樹齡)이 오래된 느티나무
극락보전 법당의 중심
▲ 아미타여래삼존좌상(阿彌陀如來三尊坐像): 보물 제1312호
아미타여래삼존좌상(阿彌陀如來三尊坐像): 보물 제1312호
극락보전 불단 위에 모셔져 있는 아미타여래삼존좌상으로 가운데 아미타불상을 중심으로 왼쪽에는 관음보살상이 배치되고 오른쪽에는 지장보살상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이 삼존불좌상은 150㎝ 정도의 장대한 크기의 불상임에도 불구하고 보존 상태가 매우 좋습니다.
▲ 아미타여래삼존벽화(阿彌陀如來三尊壁畵): 국보 제313호
아미타여래삼존벽화(阿彌陀如來三尊壁畵)와 아미타여래삼존좌상(阿彌陀如來三尊坐像)
1476년(성종7)에 제작된 후불벽화의 삼존상과 양식적 특징이 흡사하고 전체적으로 둥글면서 약간 풍만하고 단정하며 엄숙한 얼굴, 처진 젖가슴, 넓은 무릎폭, 두툼한 불의, 독특한 옷주름 등의 특징으로 볼 때 고려후기 불상의 영향을 받은 조선초기의 양식입니다. 극락전내의 목조삼존불 뒤 독립된 벽면 토벽(土壁)에 그려진 이 그림은 현존하는 조선시대 아미타불화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입니다. 화기(畵記)에 의하면 이 그림은 대선사 해련(海連) 등이 그려 성종7년(1476)에 완성되었습니다. <안내판자료>
아미타여래삼존벽화(阿彌陀如來三尊壁畵): 국보 313호
아미타극락회도 장면을 그린 이 벽화는 앞에 모셔진 아미타삼존불상과 매우 비슷한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중앙의 본존불은 비교적 높은 연꽃대좌 위에 결가부좌한 모습으로 양어깨를 모두 감싼 옷을 입고 있으며 뒤로는 키모양의 광배가 표현되었습니다. 왼쪽에 서있는 관음보살은 머리칼이 어깨 위에 흘러내린 모습에 얇고 투명한 겉옷을 입고 있으며, 오른쪽의 지장보살은 오른손으로 석장을 짚고 왼손에는 보주를 들고 있는 모습입니다. 채색은 주로 녹색과 붉은 색을 사용하였습니다. <문화재청자료>
아미타여래삼존벽화의 전설
무위사에 형색이 초라한 노스님이 찾아와 법당 벽화를 그리겠다고 주지스님께 청하였습니다. 49일 동안 법당 안을 보지 말라는 당부를 남겼으나 궁금증을 참지 못한 주지스님은 결국 하루를 남기고 문틈 사이로 엿 보고 말았습니다. 문틈 사이로 엿본 법당 안에는 파랑새 한 마리가 입에 붓을 물고 관음보살의 눈에 눈동자를 그리려던 참이었는데 인기척에 놀란 파랑새는 붓을 떨어뜨리고 날아가 버렸습니다. 그래서 현재까지 관음보살의 눈에는 눈동자가 그려지지 못한 체 보존되고 있습니다. <이상 발췌 참고자료>
▲ 백의관음도(白衣觀音圖): 보물 제1314호
백의관음도(白衣觀音圖): 보물 제1314호
극락전 아미타여래삼존벽화 뒷면에 그려진 백의관음도는 화면 전체에 넓은 어깨의 남성적인 체구를 보여주는 관음보살이 둥그스럼한 두광과 신광을 지고 서서 아래쪽에서 관음을 예배하는 노비구승을 내려다 보고 있는 모습입니다. 바람에 날리는 천의의 모습을 표현한 강약의 변화는 긴장감과 유려함을 주며, 흩날리는 옷자락의 모습은 화면전체에 표현된 파도의 곡선과 더불어 강한 율동감과 생동감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안내문참조>
▲ 내벽사면벽화(內壁四面壁畵): 보물 제1315호
극락보전(極樂寶殿) 서쪽 벽면 벽화
우리가 볼 수 있는 보존각내 벽화들은 1974년 극락보전을 보수하면서 벽면의 벽화들을 통째로 뜯어내어 전시관에 별도로 모신 것입니다. 전시관 안에는 아미타내영도, 석가여래설법도, 휙휙 그려낸 너울과 옷자락이 멋있는 해수관음좌상도, 보살좌상도, 오불도, 하늘을 날며 악기를 연주하는 모습의 비천선인도 등 총 29점이 유리장안에 보존되어 있습니다.
아미타내영도(阿彌陀來迎圖: 보물제1315호)
아미타내영도는 흙벽에 채색된 것으로 사람이 죽을때나 수행이 성숙해지면 이미타불이 마중와서 서방극락으로 맞이해 간다는 내용을 도상화한 것으로 아미타불과 8보살 8비구가 구름위에서 좌우로 길게 늘어서서 왕생자를 맞이하는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8보살 뒷편 상체만 그려져 있는 8비구는 다양한 얼굴표정과 자세를 취하고 있어 뭉게구름과 함께 생동감과 극적인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습니다.
석가여래설법도(釋迦如來說法圖)
현재 극락전 좌우 벽면에 그려진 아미타내영도와 설법도 등 2점은 모사본이며 원본은 보존각 안에 보존되어 있습니다.
오불도(五佛圖)
▲ 사자법고(法鼓)
사자법고(法鼓)
극락보전에는 사자의 등 위에 올려놓은 법고(法鼓)가 있는데, 사자의 조각수법으로 보아 조선후기의 작품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 신중탱화(神衆幀畵)
신중탱화(神衆幀畵) <참고사진>
극락보전 신중탱은 적갈색 바탕에 황색선으로 밑그림을 그리고 부분적으로 채색을 하였으며, 화면 중앙에 위태천을, 상단 좌우에 범천과 제석천을 배치한 구도입니다. 화면은 2단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상단에는 범천과 제석천 사이에 5명의 주악동자(奏樂童子)와 주악동녀(奏樂童女)를 배치하여 단조로움을 피하고 있으며, 전체적으로 26위(位)의 신중을 배치하였습니다. 이 신중탱은 1995년 조성한 것입니다.
▲ 칠성탱화(七星幀畵)
칠성탱화(七星幀畵) <참고사진>
극락보전 칠성탱 역시 적갈색 바탕에 황색선으로 밑그림을 그리고 부분적으로 채색을 하였습니다. 사각의 좌대 위 연화좌에 앉아 있는 치성광여래를 크게 그리고, 그 좌우에 일광ㆍ월광보살과 칠여래ㆍ칠원성군ㆍ태상노군ㆍ육성군을 배치한 화면구도입니다. 신중탱과 마찬가지로 1995년에 조성한 것입니다.
닫집 위의 보개천장과 우물천장 <참고자료사진>
보개천장 중앙의 용문(龍紋) <참고사진>
극락보전 법당마루 <참고사진>
법당마루 아래에는 전돌이 깔려있습니다.1983년 해체작업을 하며 전돌을 걷어냈더니 기둥이나 벽화에 습기가 잔뜩 차서 부랴부랴 다시 깔았다는 일화는 옛 사람들의 지혜가 뛰어 났음을 말해줍니다. <답사여행길잡이 자료>
금강계단(金剛戒壇)의 모형물
양산 통도사(通度寺)에 있는 석가모니 부처님의 진신사리(眞身舍利)를 봉안한 금강계단(金剛戒壇)의 모형물입니다. 아마도 교단 차원에서 진행한 행사에서 사용했던 금강계단 모형물을 임시로 이곳 극락보전 서쪽에 둔 것으로 보입니다. 그렇다 하더라도 모두가 아름답다고 하는 국보(國寶) 옆에 산업폐기물(産業廢棄物)은 어울리지 않습니다.
양산 통도사(通度寺) 금강계단(金剛戒壇) <참고사진>
● 삼층석탑(三層石塔)
삼층석탑(三層石塔)
삼층석탑(三層石塔)
이 탑의 구조는 전형적인 2층 기단을 갖춘 3층 석탑으로서 각 부재가 잘 조화되고 균형이 잡힌 통일신라의 전형적인 양식을 계승한 고려 초기 석탑입니다. 탑의 지대석은 몇개의 넓은 돌로 짜여져 있고, 그 위에 각형 2단의 괴임대와 하대기단 중석이 연결되고 있는데, 각 구를 2구로 나누고 중앙에는 탱주(撑柱: 가운데기둥) 1주와 양면에는 우주((隅柱: 모서리기둥)를 조각하였습니다. 탑신부는 탑신(塔身)과 옥개석(屋蓋石: 지붕돌)이 각 1석씩으로 탑신부의 양면에 우주가 모각되고 2~3층에서는 그 높이와 폭을 줄여 체감율이 높습니다. 상륜부(相輪部: 탑의 꼭대기 부분)는 완전하게 남아있습니다. <안내문 참조>
● 선각대사탑비(先覺大師塔碑)
선각대사탑비(先覺大師塔碑): 보물 507호
선각대사(先覺大師)는 신라 말 고려 초의 명승(名僧)으로, 당나라에 건너가서 14년만에 돌아와 무위사(無爲寺)에 8년간 머물렀는데, 고려 태조 원년(918)에 54세의 나이로 입적(入寂)하자 고려 태조가 ‘선각(先覺)’이라는 시호(諡號)를 내리고, 탑이름을 ‘편광영탑(遍光靈塔)’이라 하였습니다. 이 비는 대사가 입적한 지 28년만에 세워진 것입니다.
선각대사탑비(先覺大師塔碑)는 극락보전 서쪽 약 30m에 위치하는 화강석 탑비로 높이 약 2.35m, 너비 1.12m이며 귀부(龜趺: 비받침돌), 비좌(碑座), 비신(碑身: 비몸돌), 이수(螭首: 비머릿돌) 등을 모두 갖춘 전통적 양식의 비(碑)입니다. 각 부의 조각수법이 같은 시대의 다른 석비에 비해 사실적이며, 조각예술로서의 우수성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비석의 세부명칭 <참고사진>
이수부(螭首部)
머릿돌은 밑면에 연꽃무늬를 새긴 3단의 받침이 있습니다. 중앙에는 비의 이름을 새겼던 네모진 공간이 있으나 마멸되어 글씨를 알아볼 수 없고, 그 주위로 구름속 용의 모습을 조각하였는데 이는 죽은 사람의 영혼이 천상세계로 가기를 기원하는 의미입니다.
비신부(碑身部)
비몸에는 선각대사에 관한 기록과, 최언휘(崔彦撝)가 비문을 짓고 유훈율(柳勳律)이 썼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여기에 새겨진 글자의 크기는 2cm이고 해서체(楷書體)입니다.
귀부부(龜趺部)
비받침은 몸은 거북이나, 머리는 여의주를 물고 있는 용의 형상으로 양 뿔을 뚜렷이 조각하여 사나워 보이며 사실성이 뚜렷합니다. 중앙에 마련되어 비를 직접 받치고 있는 비좌(碑座)의 앞뒤 2면에는 구름무늬와 둥근형태의 조각을 새겼으며, 양 측면에는 안상(眼象)을 각각 양각, 음각으로 새겼습니다.
날카로운 발톱
귀부부(龜趺部)의 뒷면
● 나한전(羅漢殿)
나한전(羅漢殿)
나한전(羅漢殿)은 정면3칸, 측면 3칸의 맞배지붕 건물로 석가모니 부처님의 제자인 나한님들을 모신 전각(殿閣)입니다. 일반적으로 석가모니불상을 주불(主佛)로 모시고 나한상을 봉안한 전각(殿閣)을 응진전(應眞殿), 나한전(羅漢殿)이라 부릅니다.
나한전에는 중앙에 석가삼존상(釋迦三尊像)인 석가모니 부처님과 좌우로 갈라보살과 미륵보살을, 그 좌우에 16나한상(十六羅漢像)들을 모셨습니다. 석조 삼존불과 16나한상은 동시에 조성되었으며, 양식적 특징 등으로 보아 제작시기는 19세기 후반 경으로 보입니다.
나한(羅漢)은 아라한(阿羅漢)의 약칭으로 중생에게 복덕을 주고 소원을 성취시키는데 독특한 능력이 있다고 하여 많은 나한전이 생겨나게 되었습니다.
나한상(羅漢像)은 아주 자연스러운 몸짓을 하고 있는데 바위에 앉거나 팔을 괴고 쉬는 자세 등 웃기도 합니다. 지물(持物)로서는 염주, 그릇, 동물, 경(經), 금강저(金剛杵), 과일등을 많이 나타내며, 여러가지 다양한 모습과 자연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습니다.
● 산신각(山神閣)
산신각과 미륵전
월출산 산신각(月出山 山神閣)
정면 1칸, 측면 1칸 규모의 맞배지붕 건물로 기단 위에 자연석 초석을 놓고 원형의 기둥을 세웠고, 내부에는 1991년에 조성한 산신탱이 봉안되어 있습니다. 현판에는 '월출산 산신각(月出山 山神閣)'이라 적혀 있고 '법철(法哲)'이 썼다고 씌어 있습니다.
산신각은 칠성각과 함께 토속신앙을 불교에 흡수시킨 경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산신탱화(山神幀畵)
바위산과 그 사이에 서 있는 한 그루의 소나무를 의지한 채 호랑이에 걸터앉아 있는 산신(山神)을 그린 것으로, 산신은 수염을 쓰다듬으며 한 손에 부채를 들고 있는 모습이며, 동자는 허리춤에 호리병을 찬 채 커다란 불자(拂子)를 들고 있습니다. 구름에 부분적으로 가려진 소나무는 가지가 위로 뻗지 않고 잘린 듯하며, 달인지 해인지 분간되지 않는 일월(日月)이 표현되어 있습니다. 하단에 기록된 화기에 의하면 이 산신탱은 1991년 서울 은평구 녹번동에서 조성하여 강진 무위사로 옮겨 봉안한 것으로, 화원은 김소영(金昭映)임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 미륵전(彌勒殿)
미륵전(彌勒殿)
정면 1칸, 측면 1칸 규모의 맞배지붕 건물로 석재 기단 위에 자연석 초석을 놓고 원형의 기둥을 세웠으며, 내부에는 강진군 성전면 수양리 수암마을에 방치되어 있던 석불입상을 옮겨와 봉안하고 있습니다. 미륵전은 미륵불이 계신 정토세계를 상징합니다.
미륵전 석불입상(彌勒殿 石佛立像)
미륵전에 봉안되어 있는 2m가 넘는 이 석불(石佛)은 자연석에 부조(浮彫)로 새겼으며, 이마 위의 육계와 머리형태가 마치 여성의 올림머리와 같은 형태를 하고 있어 일반적인 불상의 형식에서 많이 벗어난 형태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불신(佛身) 주변에 화염문 광배를 선각한 점이나 목의 삼도와 수인 등에서 여래(如來)임을 알 수 있고, 부은듯한 눈두덩에 입술이 두껍고 인중(人中)이 짧으며 왼쪽 어깨는 움츠린 듯 좁게 표현되어 있습니다.
● 천불전(千佛殿)
나한전(羅漢殿) 뒤쪽 산 밑에 천불전(千佛殿)
천불전(千佛殿)
정면 3칸, 측면 2칸 규모의 맞배지붕 건물로 1974년 중수하였으며, 석재 기단 위에 자연석 초석을 놓고 원형의 기둥을 세웠습니다.
천불전 불단(千佛殿 佛壇)
천불전에는 중앙에 삼존불과 그 뒤로 천불이 봉안되어 있으며, 조성연대는 건물의 건립시기와 같이 하는 1970년대 후반입니다.
천불상 재질은 동제이며, 한 틀에서 주조하여 불상의 상호가 모두 동일합니다.
● 성보박물관(聖寶博物館)
성보박물관(聖寶博物館)
성보박물관은 220평의 공간에 지상 1층, 지하 1층의 팔작지붕 건물로 2000년에 세워졌습니다.
성보박물관(聖寶博物館) 내부 <참고사진>
박물관에는 무위사 보존각에 보관되어 오던 극락보전 안쪽 벽에 그려진 사면벽화를 보관 진열하고 있습니다.
성보박물관(聖寶博物館) 내부 <참고사진>
아미타불과 8보살 8비구(출가하여 구족계를 받은 남자)가 구름위에서 왕생자(죽은사람)를 맞이하는 아미타내영도와 석가여래설법도, 해수관음좌상도, 보살좌상도, 오불도, 비천선인도 등 조선초기~조선후기작품 후불벽화 2점과 내사면벽화 29점의 작품을 감상 할 수 있도록 전시장이 갖춰져 있습니다.
● 범종각(梵鐘閣)
범종각(梵鐘閣)
범종각은 정면 1칸, 측면 1칸 규모의 사모지붕 겹처마 건물로 내부에는 1996년에 조성한 범종(梵鐘)을 봉안하고 있습니다.
범종각(梵鐘閣) 현판
범종(梵鐘)
● 명부전(冥府殿)
명부전(冥府殿)
정면 3칸, 측면 2칸 규모의 홑처마 맞배지붕 건물로, 막돌로 기단을 형성하고 자연석 초석을 놓은 다음 원형의 기둥을 세웠습니다. 내부에는 지장보살과 도명존자, 무독귀왕, 시왕상 등을 봉안하였습니다.
명부전(冥府殿) 현판
명부전(冥府殿)
명부전에는 지장보살상을 주존(主尊)으로 하여 그 주위에 도명존자와 무독귀왕, 판관, 사자, 귀왕, 장군상이 배치되어 있습니다.
명부전(冥府殿)
도명존자와 무독귀왕, 시왕상, 그리고 각 2구씩 조성되어 있는 판관, 귀왕, 사자, 장군상은 지장보살과 함께 모두 목조로 조성되었으며, 소형의 판관상 2구만 소조로 조성되어 있는데, 지장보살과 같은 시기에 조성된 것으로 보입니다.
명부전(冥府殿)
지장보살상(地藏菩薩像)은 목조(木造)로 되어 있으며, 민머리형에 원만한 상호(相好)를 띄고 있습니다. 통견(通肩)의 법의(法衣)에 지물(持物)은 들고 있지 않으며, 조각수법으로 보아 조선후기의 불상으로 추정됩니다.
● 요사채(寮舍-)
청화당(淸和堂): 요사채(寮舍-)
청화당(淸和堂)
요사채(寮舍-)
요사채(寮舍-)
요사채(寮舍-)
● 종무소(宗務所)
만행당(萬行堂)
만행당(萬行堂)은 종무소(宗務所) 건물로 만행(萬行)이란 진리에 이르는 길(수행을 통한 해탈)을 뜻합니다.
양성료(養成寮): 공양간으로 이용
● 부도(浮屠)
일명부도(逸名浮屠)
무위사 주차장 좌측으로 개울이 흐르고 있고, 개울 건너편에는 이름 잊혀진 고승의 부도 1기가 서 있습니다.
일명부도(逸名浮屠)
부도(浮屠)는 정방형의 지대석 위에 팔각 앙련의 하대석을 놓고, 그 위에 타원형의 탑신(塔身)을 올렸습니다. 탑신에는 명문(銘文)이 있었던 흔적이 보이나 마모되어 판독되지 않습니다. 옥개석(屋蓋石)은 처마를 들어올린 듯한 모습의 팔작지붕으로 표현하였습니다..
▶ 무위사(無爲寺) → 강진버스여객터미널
15:02 / 무위사 입구
월출산(月出山)
무위사 입구에서 바라본 월하리 마을
무위사 버스정류장[15:35분 버스 탑승]
15:55 / 강진버스여객터미널 도착
▶ 강진버스여객터미널 → 해남종합버스터미널 [시외버스 이용]
16:10 / 강진버스여객터미널 출발
16:35 / 해남종합버스터미널 도착
▶ 저녁식사[해남]
[해남종합버스터미널 → 식당 → 해남종합버스터미널 / 왕복도보이동]
16:49 / 해남종합버스터미널 사거리
16:58 / 해남군청 앞
17:10 / 식당[해남맛집]도착
옛 식당 사진
메뉴: 뚝배기주물럭
18:36 / 식사 후 해남종합버스터미널 도착
▶ 해남종합버스터미널 → 대흥사주차장 [군내버스 이용]
18:50 / 해남종합버스터미널 출발 대흥사주차장 행 [군내버스 이용]
19:10 / 대흥사 버스종점 <참고사진>
▶ 대흥사버스종점 → 유선관 [도보이동]
[ 대흥사버스종점 출발---(도보: 약30분 소요)---유선관 도착[19:45], 1박]
19:14 / 대흥사 매표소 입구
19:15 / 대흥사 일주문
19:32
유선관(遊仙館) 실내 [1박]
▶ 참고자료
● 대중교통 시간표
서울 → 강진(고속버스): 07:30 / 09:30 / 11:05 / 13:30 / 15:25 / 17:40
강진 → 무위사(군내버스): 06:40 / 08:20 / 10:30 /13:40 / 15:00 / 17:20
무위사 → 강진(군내버스): 07:15~20 / 08:45~50 / 11:00~05 / 14:00~05 / 15:30~35 / 17:50~55 [강진교통 자료, 10분 전부터 기다릴것!]
강진 → 해남(시외버스): 이전시간 생략 / 14:00 / 15:35 / 16:10 / 17:35 / 18:40 / 21:00
해남 → 대흥사(군내버스): 이전시간 생략 / 16:00 / 16:30 / 17:35 / 18:50 / 19:40
● 전화번호
강진버스여객터미널: 061-432-9666
강진교통: 061-432-9618
무위사종무소: 061-432-4974
강진TAXI: 061-433-7888, 061-434-4015
해남종합버스터미널: 1666-0884
무위사(無爲寺) / 강진(康津)
(2019.0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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