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사와 여행(국내)/전라북도

근대사명소(近代史名所)/군산(群山)-2

케인스 2019. 4. 6. 12:00



          근대사명소(近代史名所) / 군산(群山)-2

 


전라북도(全羅北) 군산(群山) 근대사명소(近代史名所)



군산시 위치 <google참고사진>


 


                    여행사버스 이용


                                 - 선유도 출발시간: 13:00 PM ~ 군산시간여행마을 도착시간: 13:50 PM
                                  - 군산시간여행마을 출발시간: 15:30 PM ~ 경암동 철길마을 도착시간: 15:35 PM
                                  - 경암동 철길마을 출발시간: 16:30 PM ~ 양재역 도착시간: 20:00 PM









군산근대역사박물관



 13:59 / 군산근대역사박물관(群山近代歷史博物館)


근대역사교육의 도시 군산의 근대문화 및 해양문화를 주제로 하는 특화 박물관이자 지역박물관으로서 방문객들이 군산의 역사와 문화를 체험 할 수 있는 공간으로 지하1층 지상3층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2011년 9월에 개관하였습니다.



군산근대역사박물관은 ‘국제무역항 군산의 과거, 현재, 미래’라는 컨셉으로 선사시대부터 근대시대까지의 유물과 자료를 통하여 물류유통의 중심지였던 군산의 과거를 확인하고, 이를 통하여 현재와 미래를 통찰할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습니다.

   *1층 : 해양물류역사관, 어린이박물관, 수장고
   *2층 : 근대자료규장각실
   *3층 : 근대생활관, 기획전시실, 세미나실



▶ 해양물류역사



선사.삼한시대 군산                           삼국.고려시대 군산                          조선시대 군산            <박물관 사진자료>


조선시대 군산은 태조 4년 회미현을 옥구현과 병합하여 옥구와 임피현 중심의 행정체제로 정비되었으며, 태조 6년에는 옥구현에 종3품 병마첨절제사가 관할하는 진이 설치될 정도로 전략적 요충지였습니다. 이후 세종 때에는 군산도(선유도)의 수군부대인 군산진을 옥구현 진포(현 군산내항)로 이전하여, 이후 진포를 군산이라 칭하고 군산도(선유도)는 고군산(古群山)이라 칭하게 되었습니다.


군산진 지도 <박물관 사진자료>


고려말 조선초 서해안 일대는 왜구의 노략질이 그치지 않았기에 조선왕조는 군산도에 수군 진(鎭)을 설치하였고, 이후 세종 8년(1426)에 옥구현 북면지역인 진포(오늘날의 군산)에 ‘군산진’이라는 명칭으로 이전하였습니다. 진포의 군산진은 군산진성을 갖춘 병영이었으며 군산진에는 중함 4척, 별함 4척의 전함과 군사 461명, 초공 4명이 근무하엿고, 정6품인 수군만호가 있어 관리했습니다. 이순신 장군은 군량미 조달과 장정보충의 필요성으로 ‘호남이 없으면 나라도 없다.’라고 말할 정도로 호남의 경제적 중요성을 높이 생각했는데, 이러한 호남의 수호자가 바로 수군부대인 군산진이었습니다.



 조운선 모형 <박물관 사진자료>


조운선은 고려·조선시대에 조운에 사용되던 선박으로서 국가에 수납하는 조세미를 지방의 창고에서 경창으로 운반하는 데 사용되었던 선박을 말합니다. 세곡 1,000석(현재의 단위로 160톤)을 실을 수 있는 ‘초마선’과 200석을 실을수 있었던 ‘강배’가 있었습니다.



  고군산군도 <박물관 사진자료>


예전에는 군산도라고 불리웠으나 현재는 고(古)군산이라고 불리는 ‘고군산군도’에는 유무인도서 63개가 모여있습니다. 송나라 사신으로 고려를 방문한 서긍의 『선화봉사고려도경』에 의하면, 고군산군도는 숭산행궁이라는 외국사신을 영접하는 관청건물과 대형 조선소를 갖춘 외교와 무역의 해상요충지였습니다.



▶ 독립영웅



      <박물관 사진자료>


 <박물관 사진자료>


일제의 침략에 맞서 싸우다 순국한 애국지사들은 을미사변(1895) 이후 광복(1945)때까지 수십만명이라 합니다. 그 중 국가유공자로 포상을 받은 이는 전국적으로 14,264명(2015)이고, 그 중 군산은 총 73명의 독립유공자를 배출하여 전북지역(754명)에서 임실(126명) 다음으로 많은 독립유공자를 배출하였습니다.



근대생활관



홍풍행(鴻豊行) 잡화점 


홍풍행은 화교 왕흥신씨가 영동상가에서 운영하던 식료품 및 잡화 취급 상점이었습니다. 일제강점기 군산에는 1,200여명의 화교가 거주하고 있었는데 대규모 무역상은 영화동일대에서 포목상을 운영하였으며 영동상가에는 복흥의 등의 중국인 포목상 도매상과 인성상회 등의 철물점 등이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영동상가는 일제강점기 군산최고의 번화가였습니다. 일본인들은 이거리를 행정구역상 영정이라는 표현의 일본식 발음으로 사까에마찌라 불렀지만, 조선인들은 송방거리 혹은 송방골목이라고 불렀습니다. 그 이유는 당시 이곳에서 상가를 운영하는 사람들 중에 개성상인이 다수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인력차방(人力車房)


                                               인력거 <박물관사진자료>



형제고무신방(兄弟고무신房)


경성(京城)고무는 만월표(灣月標) 고무신발이라는 고무신을 생산하였는데 그 고무신의 인기는 대단하였습니다. 만월표 고무신발은 공장의 출고장에서 전국으로 운송되어 각 지역의 특판장을 통해서 판매되었는데, 군산 소매점중에서 최고의 영업을 하였던 곳은 영동의 '형제고무신방'이었습니다.


형제고무신발 <박물관사진자료>


 조선주조주식회사 [백화(白花)]



 1930년대 술통



  군산역(群山驛)


근대 이후 군산항의 물류유통 중심지로서의 역할로 인하여 군산에는 우리민족의 근대문화유산이 집중되어 있는데, 특히 근대건축물은 현재까지 남아있는 건물들이 다수 존재합니다. 대표적인 건축물로는(구)조선은행군산지점, (구)군산세관 본관, (구)장기십팔은행 군산지점 등이 있습니다.


 내항


부잔교(浮棧橋)



 군산좌(群山座)


일제 강점기 군산시에서 개관한 전라북도 최초의 극장입니다.


임피역(臨陂驛)


1924년 군산선 간이역으로 문을 연 임피역은 일제가 쌀을 수탈하기 위해 만들었습니다.


영명학교


1903년 2월 기독교 선교사 전킨 목사부부가 세운 영명학교(현 제일중고등학교)는 군산 최초의 사설 한국인 중등교육 기관으로 호남 최초의 3.1 만세 운동의 중심지였습니다.


                        공자묘(孔子廟) 현판


공자묘(孔子廟)는 일제강점기 군산의 유지였던 모리키쿠가 자신의 집 뒷산인 월명산 중턱에 건립한 사당으로 이 공자묘 석판은 사당의 현판으로 사용되었습니다.



군산근대미술관



 군산근대미술관 [(구) 일본18은행 군산지점 건물]


일본 나가사키에 본사를 두고 있던 은행으로 군산에는 1907년에 설립되어 조선에서 일곱번째 지점이 되었으며, 일본으로 미곡을 반출하고 토지를 강매하기 위한 목적으로 설립된 금융기관이었습니다. 초기에는 대부업을 통해 일본인들에게 싼이자로 대출을 주고 이 돈으로 일본인들은 조선인에게 토지를 담보로한 고리대금업으로 우리 농민들의 농토갈취가 많았다고 합니다.



  

<참고사진>


                                                       

                                                         군산근대미술관 관람안내

                                       상설전시

                                    기획전시

본관건물 : 일제수탈사 사진전, 18은행 건물역사전시실,

                18은행 보수과정 전시실

본관건물 : 기증작품 기획전 '아름다운 동행'

금고동 건물 : 일제강점기 금고전시, 안중근여순감옥재현 전시장

군산시민이 박물관에 기증한 서화작품들을 소개하는 전시



    군산근대미술관 옆면 <참고사진>


광복 후 대한통운 지점 건물로 사용되었으며 2008년 2월28일 등록문화재 지정 이후 보수 복원을 통하여 군산 근대미술관으로 활용하고 있습니다.

 

                                              <google참고사진>


본관 뒤쪽으로 우측에는 2층 조적조의 금고 및 창고로 사용되는 건물이 있고 좌측으로는 2층의 일식 목조건물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 본관건물



 본관건물 <참고사진>



본관건물은 군산 및 전라북도 출신 예술가들의 작품을 전시하는 공간으로 분기별 다양한 주제로 기획전이 개최되며, 18은행 건물 역사전시실, 18은행 보수과정 전시실이 있습니다.



▶ 부속건물[금고동/관리동 건물]



부속건물


금고동과 관리동으로 구분되며 금고동은 근대기 대표적인 독립운동가 안중근 의사 기념전시관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일제 강점기 사용되었던 대형금고가 전시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금고동은 근대역사경관지구 조성사업을 통해 수집한 근대기 군산의 다양한 근대건축 부재들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안중근의사 여순감옥 전시관


금고동건물은 근대기 대표적인 독립운동가 안중근 의사 기념전시관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1층체험실과 2층 여순감옥재현관으로 나누어져 있습니다. 한편 일제 강점기 사용되었던 대형금고가 전시되어 있습니다.






                      

                       금고가 보관된 철문


 금고가 보관된 철문 속 쇠창살문


  일제 강점기 사용되었던 대형금고



군산근대건축관



 군산근대건축관 / 구)조선은행군산지점


일제강점기 식민지 지배를 위한 대표적인 금융시설로서 1923(1922)년에 건립되었으며, 당시에 한국에서 활동하던 대표적인 일본인 건축가 나카무라요시헤이(中村與資平)가 설계하였습니다. 이 건물은 붉은 벽돌로 지은 4층 높이의 2층 건물로, 정면에 돌출된 현관을 중심으로 평아치를 5개 세우고 양쪽에 각각 반원형의 아치를 두었고, 지붕은 물매를 급하게 처리하여 장중한 느낌을 주었습니다.




군산근대건축관 [구,조선은행군산지점] 뒷면 <참고사진>


구 조선은행은 1876년 조선의 개항 이후 1879년 부산에 처음 진출한 일본의 사립은행인 국립 제일은행이 그 전신입니다. 이것을 1909년 대한제국의 국책은행으로 설립된 구 한국은행이 인계 받았으나 , 일제강점 이후 총독부에 의해 조선은행으로 개칭되었고 조선총독부의 직속 금융기관 역할을 하였습니다. 해방 이후 조선은행이 한국은행으로 바뀌고 전주로 이전 된 후 한일은행 군산지점으로 사용되기도 하였습니다.


                            

<참고사진>


       군산 내항의 조선은행 군산지점 모습 <참고사진>


구 조선은행 군산지점은 위치적으로 내항에 인접해 식민지 금융기구의 역할을 수행한 역사적 의미가 있을 뿐만아니라, 그 규모의 건축물의 건축사적 가치에 있어서도 군산을 대표할만한 중요한 건물입니다. 2008년 보수, 복원을 거쳐 현재 군산 근대건축관으로 활용하고 있습니다.


                         

                     군산근대건축관 전시물안내도


                  실내전시

                    야외전시

1층로비 : 군산 근대건축물 미니어쳐 전시, 바닥스크린 대형영상 상영(약 5분)

일제 강점기 방공호

1층 금고 : 유물로 보는 조선은행

채만식의 소설 '탁류'의 주인공들

1층 지점장실 : 경술국치 추념 전시실


1층 응접실 : 사진과 영상으로 보는 근대군산




▶ 1층로비: 바닥스크린 대형영상



로비공간


로비에 설치된 바닥스크린을 통해 근대 군산의 역사를 볼 수 있다. 모형을 통해 군산의 근대건축물을 한눈에 살펴볼 수 있으며, 다양한 시청각자료를 통해 일제 강점기 군산사람들의 삶의 모습을 엿볼 수 있습니다.


 일반 건축물


 교육기관건축물


 의료. 금융기관 건축물


 공공기관 건축물


 작품명: 민족의 함성




▶ 1층로비: 군산 근대건축물 미니어쳐 전시




군산세관, 감시탑 조형물



군산시공회당 <참고사진>


 이 건물은 구)군산상공회의소로 19345년 4월에 지어진 건물이며 강당, 사무실, 부속건물로 구성된 2층 건물입니다.



동국사 <참고사진>



▶ 1층금고: 유물로 보는 조선은행



                                   금고실


일제강점기 조선은행에서 발행한 화폐 등 유물을 통해 당시 조선은행이 어떤한 역할을 했는지 살펴 볼 수 있습니다.





   



1층 지점장실 : 경술국치 추념 전시실



지점장실


잊지말아야 할 역사인 경술국치를 기억하기 위한 전시공간으로 일본제국주의 침략의 역사를 증언하는 공간입니다.


1층 응접실 : 사진과 영상으로 보는 근대군산



응접실


조선은행과 군산의 삶을 보여주는 전시실입니다. 근대 군산의 다양한 모습을 사진과 영상으로 살펴볼 수 있는 공간입니다.



호남관세박물관




 구)군산세관 본관(사적 제545호) / 현) 호남관세박물관


1908년 군산항에 군산세관의 본관으로 건립된 건물로서 당시 감시계 청사 및 감시 망루 등 다수의 시설물들이 함께 있었으나 현재는 본관과 창고만이 남아 있습니다. 개항 초기 우리나라에 도입된 서양식 건축기법 등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을 뿐만 아니라 건립 당시 건물의 원형을 비교적 잘 유지하고 있습니다. 국내 현존하는 서양고전주의 3대 건축물[ 한국은행 본점, 서울역사, 구)군산세관 본관] 중의 하나로 알려져 있으며 현재는 호남관세전시관으로 활용되고 있습니다. 





 

1905년 대한제국의 자금으로 시작된 제1차 군산항 축항공사기간 (1905~1910) 중인 1908년(순종2년) 6월 만들어졌으며 서양식 단층 건물로 건평은 약 69평 이었습니다. 건물의 지붕은 고딕양식이고 창문은 로마네스크 양식이며 현관의 처마를 끄집어 낸 것은 영국의 건축양식으로 전체적으로 유럽의 건축양식을 융합한 근세 일본 건축의 특징을 지니고 있습니다.



 박물관 진입구


 전시관





                        드라마 촬영장으로서의 호남관세박물관 건물


 세관장실


가짜상품 일명 '짝퉁'


시대별 수입품목 <참고사진>



현재 군산세관 건물 [호남관세박물관 옆]



군산항쟁관



군산항쟁관


군산항쟁관은 일제강점기 일제에 항쟁한 역사와 장소 그리고 독립운동가들에 대한 이야기를 알리기위해 설립했습니다. 군산은 일제강점기였던 1919년 서울파고다공원에서 3.1독립만세운동이 일어난 나흘 뒤인 3월 5일 한강이남에서 최초로 항일독립만세운동이 있었던 자랑스런 역사의 현장입니다. 


                                        


 35년간 군산의 항쟁역사가 담겨있는 군산항쟁관




 

군산항쟁관 내부 <참고사진>


                 기미독립선언문 <참고사진>




동국사(東國寺)


                                

                                       동국사(月明山 東國寺) 위성사진 <google 참고사진>


동국사(東國寺) 대웅전은 서쪽으로 월명산(月明山) 자락을 배경으로 동향하여 자리잡고 있으며, 북쪽으로 요사채가 연결되어 있고 남쪽으로 종각이 있습니다. 동국사 주변으로는 주택가가 형성되어 있습니다.


근대건축관에 전시된 동국사 모형 <참고사진>


 월명산 동국사(月明山 東國寺) 제1정문


동국사 입구는 우리 전통사찰에서 볼 수 있는 일주문, 금강문, 사천왕문, 해탈문 같은 가람배치가 없습니다.  



동국사(東國寺) 제2정문


동국사는 일제 강점기때 우리나라에 세워진 500여 개의 일본식 사찰중 유일하게 남은 사찰입니다. 왼쪽 돌기둥에는 '대한불교조계종 제24교구 동국사', 오른쪽 돌기둥에는 '차문불문(此門不門)'이라는 글씨가 붙어 있습니다. 차문불문(此門不門)이란 '이 문은 문이 아니므로 누구나 드나들수 있는 문'이란 뜻으로 이 글씨가 언제 새겨졌는지는 정확하지 않습니다.



동국사(東國寺)


동국사일본 승려 '우치다 붓깐(內田佛觀,내전불관)'이 한일병합 1년전인1909년 8월 군산 외국인 거주지에 포교소인 금강선사(錦江禪寺)/[일명, 금강사]를 세운 것이 시발점입니다. 우치다는 1913년 군산 지역 대농장주 구마모토[熊本利平]와 미야자키[宮岐佳太郞] 등 29명의 신도에게 시주를 받아 지금의 자리에 사찰을 세웠으며 대웅전(大雄殿) 건물은 1932년에 지어졌습니다. 1945년 해방과 함께 미군정에 몰수됐다가 해방 직후 대한민국 정부로 이관되었습니다. 1955년에는 '불교 전북 종무원'에서 인수하여, 남곡스님께서 동국사[동국은 "해동대한민국"의 준말로 우리의 절이란 뜻]로 개명하고, 1970년 대한불교조계종 제24교구 선운사(禪雲寺)의 말사가 되었습니다. 2003년 7월15일 국가등록문화재 제64호로 지정되었습니다.




 대웅전(大雄殿: 등록문화재 제64호)


지금의 대웅전은 1935년 개축한 건물로 법당을 지을 당시 대다수 목재는 일본에서 쓰기목[삼나무]을 들여 왔으며, 대들보는 백두산 금강송(金剛松)을 사용했습니다. 우리나라의 전통 사찰과 달리 승려들의 거처인 요사와 복도로 연결된 것과 한국 전통사찰과 달리 단청도 풍경(風磬)도 없는 것도 특징입니다. 정면 5칸, 측면 5칸의 정방형 단층 팔작 지붕 홑처마 형식의 대웅전은 일본 에도 시대 건축 양식으로 외관이 단조롭고 목재의 부식을 막기 위해서 까만 염료를 칠하였습니다. 지붕 물매는 75도의 급경사를 이루고, 고온다습한 일본의 건축적 특성을 담아 환기가 잘 되도록 사방에 창문을 두었으며, 용마루는 일직선으로 한옥과 대조를 이룹니다.


                                         대웅전 현판 [송암(松菴) 신봉식(申鳳湜: 1900-1979)선생 글씨, 현대의 서도가



  

   대웅전 창호<문화재청사진자료>


  정면에는 정(井)자살 4짝 미서기 문(sliding door)을 설치하였고 좌우 협칸과 퇴칸, 측면에도 미서기 창을 설치하였습니다.





   대웅전 내부<문화재청사진자료>


내부에는 전면 쪽에 2개의 원주가 있는데, 기둥 사이에 걸쳐진 보 위에는 소나무나 화초 등을 투각한 란마(欄間)가 장식되어 있으며, 후면 쪽에는 4개의 원주가 있는데, 그 중앙의 후벽쪽에 불단이 설치되어 소조석가여래삼존상(塑造釋迦如來三尊像)이 봉안되어 있습니다. 대웅전 바닥과 요사 선방 등에도 원래 다다미[일본 전통식 바닥재]가 깔렸었으나 모두 걷어냈다고 합니다.



 대웅전 삼존불(전라북도 유형 문화재 제213호) <참고사진>


대웅전에는 진흙으로 조성한 석가여래삼존상이 모셔져 있는데 가운데 석가모니불을 중심으로 왼쪽에 아난존자, 오른쪽에 가섭존자가 시립(侍立)하고 있습니다. 조선 효종1년(1650) 응매스님이 조성한 삼존불상은 시주자와 시주물목, 발원문 등이 복장에서 나와 조선 후기 불상연구는 물론 복장 의식과 사원경제를 짐작하는 중요한 자료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동국사 소조석가여래삼존상 및 복장유물(東國寺 塑造釋迦如來三尊像 및 腹藏遺物): 보물1718호


소조석가여래삼존상(塑造釋迦如來三尊像) <참고사진>


복장유물(腹藏遺物) <참고사진>


                  



  대웅전 뒷면과 대숲 <참고사진>


 대웅전과 요사(寮舍)


 대웅전을 중심으로 우측에 있는 요사채가 복도 형식으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이 문을 들어서면 긴 복도를 통해서 왼쪽으로 대웅전, 오른쪽으로 요사채 건물로 갈 수 있습니다. 문 위에는 국가등록문화재 표지가 붙어있습니다.


                                                    등록문화재 표지 <참고사진>


요사채



 항적원(香積院): 한옥 양식의 요사채



천불전(千佛殿)


천불전 내부, 천불 조성 준비중 <참고사진>


종각(鐘閣)


대웅전을 바라보며 왼쪽 마당에는 일본풍의 종각(鐘閣)이 있습니다. 국내 유일의 일본 전통 양식의 종각으로, 1919년 일본 교토(京都)에서 제작한 범종(梵鐘)이 달려 있습니다. 일제강점기는 물론 해방 이후까지 군산 시민들에게 매일 시간을 알려주는 역할을 수행했다고 전합니다. 본래 종각이 있던 자리는 대웅전 앞마당보다 높은 언덕이었는데, 텃밭을 조성하면서 턱을 낮추었으며 1932년 대웅전 옆에 있는 야산을 허물었다는 이야기도 전해옵니다.



                     범종(梵鐘): 1919년 일본 교토(京都)에서 제작 <참고사진>


조선종과 달리 일본 동종인 동국사 종은 상부에 잡음을 없애 주는 음관이 없고, 종 머리에 고정하는 용뉴는 일체 쌍두용을 구부려서 배치하였으며, 종신에는 하늘을 날아가는 비천상 대신 종복에 보상연화문 당좌 2개와 가로 세로 띠 모양을 한 문양을 양각으로 장식했습니다. 이 공간에 범종 제작에 시주한 시주자 명단, 금강사의 창건 내력, 일본 천황을 칭송하는 축원문이 음각되어 있습니다. 또, 유곽 없이 유두만 108개를 배치하여 백팔번뇌를 상징하고 있습니다. 또한 지면과 거의 맞닿아 있는 한국의 범종과 달리 종각 위쪽에 높게 매달려 있는 것도 특이합니다.




                       


<참고사진>


범종각 주변에는 일제강점기에 만들어진 다양한 모양의 석조33관세음보살상(石造33觀世音菩薩像)과 석조8수본존상(石造8守本尊像)이 놓여있습니다. 1919년에 만들어진 보살상에는 일본인들의 이름이 새겨져 있었는데, 해방 이후 철거되어 민가의 주춧돌로 사용한 이력이 있어 그을림 자욱을 보이고 있습니다.



 평화소녀상(平和少女像)


일본 조동종(曺洞宗)이 과거사를 참회하며 건립한 참사문비(懺謝文碑) 앞에는 제국주의 재발 방지와 세계평화를 기원하는 한복을 입은 단발머리 차림의 ‘평화의 소녀상(平和少女像)’이 있습니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의 인권과 명예회복을 위해 불교계를 비롯한 여러 시민단체가 추진위원회를 만들어 광복 70주년인 2015년 8월12일 건립했습니다.




                        


소녀상 앞에는 광복 70주년을 기념해 77장의 검은색 타일로 조성한 연못이 있습니다. 소녀상은 일본 방향을 바라보고 있으며 소녀상 앞의 연못은 한국과 일본 사이에 있는 대한해협을 상징적으로 표현해 놓았습니다.


    

    소녀상 뒤에 위치한 참사비

(懺謝碑) <참고사진>



범종각 옆에는 가로 3m, 높이 2.3m 크기의 검정 오석 돌에 일제강점기에 일본인들의 만행을 참회하는 참회문(懺悔文)을 새긴 참사비(懺謝碑)가 있습니다. 1992년 세운 참사비에는 비석을 보며 오른쪽에 일본어 원문을, 왼쪽에는 한글 번역문을 각각 새겼는데, 이 참사비는 일본에서 동국사를 지원하는 모임인 동지회 회장인 이치노혜 쇼고(一戶彰晃·64) 아오모리 운상사 주지 스님의 주도로 일본 불교계에서 비용을 부담하여 세운 것입니다.  참사비에는 "일본 불교는 국가권력에 영합해 태평양전쟁에 가담하고 수많은 아시아인들에게 인권침해, 문화멸시, 일본문화 강요 등 커다란 상처를 남긴 점을 참회하면서 사죄드린다"는 내용이 있습니다. <불교신문자료>



이성당빵집



이성당 빵집: 빵을 사기위해 줄을 길게 늘어선 사람들



             


월간 '파티시에'가 2012년 창간 24주년 기념특집으로 발행한 『대한민국 골동과자점 5』에  게재한 내용 중 대한민국 최고(最古)의 빵집 이성당에 대한 내용입니다.


이성당 빵: 오른쪽은 잘 팔린다는 앙금빵 <참고사진>




일본식가옥




                                                     







뜬다리부두


 

군산항 뜬다리 부잔교2호


물 수위에 따라 다리가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여 뜬다리부두라고 부르는데 군산 내항의 뜬다리부두는 간조와 만조의 수위 변화와 무관하게 대형선박을 접안시키기 위해 조성한 시설로서 군산항의 제3차(1926년∼1932년)와 제4차 축항공사(1936년∼1938년)를 통해 건설된 뜬다리와 부유식 함체로 구성된 구조물입니다. 일제강점기 쌀수탈항으로서 군산항의 성격과 기능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시설물로서 보존상태가 양호하고 역사적 가치가 우수합니다.




 부잔교(浮棧橋)와 쌀가마니: 1930년대 일본으로 수탈해 가기 위해 군산 내항에 쌓아 놓은 쌀가마니들 뒤로 부잔교 <참고사진>


군산내항은 금강하구와 중부 서해안 지역에 자리한 지리적 특징 때문에 고려 이후 호남지역의 세곡을 저장 운반하는 조운창고가 운영되던 물류유통의 중심지였습니다. 이러한 해상교통로로서의 역할 때문에 1899년 개항이후 근대적인 항구로서의 축항공사가 추진되었고 이 때 뜬다리 부두 역시 만들어졌습니다.


부잔교(浮棧橋) <참고사진>


뜬다리부두의 부잔교[뜬다리]는 조수간만의 차가 심하여 썰물 때면 갯벌이 드러나 배의 접안이 어려운 서해안의 자연환경을 극복하고자 건조한 인공구조물입니다. 기본형태는 바닷물의 수위에 따라 상하로 움직이는 다리와 다리에 연결된 콘크리트 함선이 일체형으로 만들어져 썰물때면 콘크리트 함선이 접안시설로 이용되는 형태입니다.


진포해양공원(鎭浦海洋公園)


 진포해양공원(鎭浦海洋公園) <군산시사진자료>




 <군산시사진자료>



해군 함정 위봉함 [퇴역한 4200t급 위봉함 3,288㎡(지하2층, 지상4층)에 병영생활상의 모형 및 용품을 전시하고 있습니다.]

 

 공군 비행기 [퇴역한 F-86, UH-1B, O-2A, F-5F, C-123K, F-4D, T-41B 등 7대가 전시되어 있습니다.]


 해양경비정 [퇴역한 '마니산 273함']



경암동 철길마을



 경암동 철길마을은 앞쪽 상가와 뒤쪽 아파트 사이의 철로길을 중심으로 길게 형성되어 있습니다.

























쫀디기









 16:30분 출발


                                      



근대사명소(近代史名所)/군산(群山)-2

(2019.0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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