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사와 여행(국내)/전라북도

내장사(內藏寺)/정읍

케인스 2013. 11. 14. 18:47

 

                    

내장사(內藏寺) / 내장산(內藏山)

 

 

 

☞ 전라북도(全羅北道) 정읍시(井邑市) 내장사(內藏寺)

 

 

 

내장사(內藏寺) 위치 <google참고사진>

 

 <참고사진>

 

내장사(內藏寺)는 전북 정읍시 내장동의 내장산국립공원 내에 위치하며 763.2m의 신선봉(神仙峰)을 주봉으로 병풍처럼 둘러져 있는 내장산의 연봉들 가운데에 폭 안겨있는 형국이어서 경관이 매우 아름답습니다. 무엇보다도 주차장에서 내장사까지 들어가는 도로 주변의 가을철 단풍터널은 그 유명세가 대단하여 주말뿐만 아니라 주중에도 많은 단풍관광 인파가 몰려 내장사 일대는 몸살을 앓을 지경입니다. 부속 암자로는 벽련암(壁蓮庵), 원적암(圓寂庵), 도덕암(道德庵)이 있습니다.

 

내장사(內藏寺) <참고사진>

 

백제무왕(百濟 武王)37년(636) 영은조사(靈隱祖師)가 현재의 절 입구 부도전 일대에 50여 동의 대가람을 세우고 백제인의 신앙적 원찰로서 영은사(靈隱寺)라 칭하였다. 고려 숙종3년(1098)에는 행안선사(幸安禪師)가 전각당우(殿閣 堂宇)를 새로 중창했고, 조선에 와서 이곳 승려들이 작당하여 승적(僧賊)으로 변하여 민가에 행패가 심하여 날로 민심이 소란해지자 중종34년(1539) 조정에서는 이를 진압하고 폐찰령을 내려 소각하고 말았다.

 

내장사(內藏寺) <참고사진>


그 뒤 조선 명종12년(1557) 희묵대사(希默大師)가 법당 및 요사를 수축하였으며, 선조30년(1597) 임진·정유(壬辰·丁酉)의 난때 왜군에 의하여 병화로 소실되었는데, 인조17년(1639년) 부용대사(芙容大師)가 사우(寺宇)를 개축하고 불상을 도금하였다.
그리고 정조3년(1779) 영운대사(暎雲大師)가 대웅전과 시왕전을 개수하고 요사를 개축하였다.  정조13년(1789) 법당이 소실되어 고종9년(1878) 유학(宥鶴), 익진(翼振) 두 선사가 중건하였습니다. 1923년 백학명 선사가 사세를 중흥시킨 뒤 근래에 와서도 1938년 매곡선사(梅谷禪師)가 대웅전을 중수하고 명부전과 요사를 신축하였으나 6·25전쟁으로 1951년 1월12일(陰 11월24일) 대웅전이 그리고 1월 18일(陰 12월10일)에는 6개 암자가 소실되고, 1957년 주지 야은(野隱)이 요사를 1958년에 대웅전 중건에 착수 하였는바 1959년 주지 다천(茶泉)이 완공했다.

 

내장사(內藏寺) <참고사진>


1964년에는 무량수전을 세우고 1965년 대웅전 불상과 탱화(幀畵)를 조성 봉안했다. 그리고 정부의 국립공원 개발계획에 따라 1973년에 일주문(一柱門), 1975년에 명부전(冥府殿) 1978년에 정혜루(定慧樓)를 복원하고 1978년에는 사천왕문(四天王門)을 새로 세웠다. 1979년에는 인도(印度)로부터 석가모니(釋迦牟尼)의 진신사리(眞身舍利)를 봉안(奉安)하기도 했다.
조선 성종때 석학 성임(成任:1421-1484)의 정혜루기에 의하면 영은사는 고려 말엽 지엄선사(智嚴禪師)의 개산(開山)에서 비롯된다고 기록하고, 정혜루는 당시 영은사의 문루로 1467년(세조12년)에 시작하여 다음해 준공된 3간으로 그 규모나 형태가 장엄무비하다고 전하고 있다. 현재 내장사는 1888년(高宗 25년) 간행된 정읍현지에도 영은사(靈隱寺)로 일컬어 왔으나 내장사란 최근 내장산의 산이름을 따서 내장사(內藏寺)로 바꾸어 부르게 된 것이다. 

 

 

전각(殿閣)

 

 

       내장사(內藏寺) 가람배치 <참고사진>

 

내장사의 천왕문, 문루, 극락전 등 절 건물들은 1950년대 이후에 다시 지은 것들입니다. 최근에는 향적원과 정혜원, 요사등을 신축하고 1994년 10월에는 사리탑을 건립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봉안했습니다. 2012년 10월31일에는 전기적인 원인으로 대웅전이 다시 소실되었습니다.

 

 

안내판

 

 

 <참고사진>

 

  <참고사진>

 

 

일주문(一柱門)

 

              

                     

                 일주문(一柱門)

 

사찰 입구에 서 있는 일주문(一柱門)은 절에 들어서는 맨 처음 문이며 기둥이 한줄로 서 있다는 뜻의 일주와 한 마음을 의미합니다. 이 문을 경계로 하여 여기서부터는 절안입니다. 이 문을 들어 설 때 오직 일심(一心)으로 들어선다는 마음을 촉진시키는 데 그 뜻이 있습니다.

 

 

                      일주문(一柱門) 뒷면

 

일주문 내에서 열리고 있는 산사(山寺) 음악회

 

 

부도전(浮屠田)

 

 

부도전(浮屠田)

 

영은사(靈隱寺)를 부흥시킨 신암(信庵) 또는 해인(海印) 두 선사(禪師)의 유골사리등 16좌의 석종 부도와 석탑1좌, 탑비 16개가 있습니다. 1923년 학명(鶴鳴)스님에 의해 경내에 흩어져 있는 부도가 모아진 것이며, 모두 근대에 건립된 것이다.

 

 

 

 

 

 

극락교(極樂橋)

 

 

극락교(極樂橋)

 

극락교(極樂橋)를 건너면 천왕문(天王門)입니다.

 

                                           

 

    

    

                      

 

천왕문(天王門)

 

 

천왕문(天王門)

 

천왕문은 정면 3칸의 맞배지붕 건물로 좌우에는 사천왕(四天王)이 가람을 수호하고 있습니다. 천왕문은 불국토를 지키는 동서남북의 사천왕을 모시는 문으로, 사천왕은 불법을 수호하고 사악한 마군을 방어합니다. 동쪽의 지국천왕(持國天王),  남쪽의 증장천왕(增長天王), 서쪽의 광목천왕(廣目天王), 북쪽의 다문천왕(多聞天王)으로 각각 자신의 무리인 호법신중을 거느리고 있습니다. 사천왕은 인간의 선악을 관찰하고 있는데 매달 8일에는 사천왕의 사자들이, 매월 14일에는 태자가, 그리고 매달 15일에는 천왕 자신이 도리천에 있는 제석천에게 보고하여 상벌을 내린다고 합니다. 악한이를 벌하고 착한이에게 복을 주시니 하늘에서 중생들을 두루 비춰보고 보살피는 호법신(護法神)입니다.

 

             

 

서방을 지키는 광목천왕(廣目天王)과 북방을 지키는 다문천왕(多聞天王)

 

동방을 지키는 지국천왕(持國天王)과 남방을 지키는 증장천왕(增長天王)

 

 

천왕문(天王門) 옆 돌담

 

 

● 연못

 

 

 

연못 옆 석조각

 

연못과 정혜루(定慧樓)

 

 

정혜루(定慧樓)

 

 

정혜루(定慧樓)

 

정혜루(定慧樓)는 정면3칸, 측면2칸의 팔작지붕으로 사방이 트여있는 2층 누각건물로, 1층은 통로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정(定)은 선정(禪定)을 의미하며 마음을 한곳에 머물게 함이요, 바른 지혜를 일으켜서 본체(理)를 밝게 관조함을 말하는 것입니다.

 

        

         탄허스님(1913~1983)의 글씨, 정혜루(定慧樓) 현판

 

정혜루(定慧樓) 뒷면

 

정혜루(定慧樓)는 정부의 '국립공원내장사 복원계획'에 따라 해운당을 헐어내고 극락전과 관음전을 건립하면서 사천왕문을 밖으로 옮기고 그 자리에 정혜루를 세웠다. 정혜루는 1466년(조선 세조 12)에 지어진 건물이나, 현재의 건물은 1970년대에 복원된 것이다.

 

천하명승내장산(天下名勝內藏山), 월담 권영도선생의 글씨

 

 

● 대웅전(大雄殿)

 

 

비닐 간이 대웅전(大雄殿)

 

2012년 10월31일에는 전기적인 원인으로 대웅전이 소실되어, 현재 간이로 만든 비닐 천막을 설치해놓고 내부에 불화를 비치해 두었습니다.

 

    화재 전의 대웅전(大雄殿) 모습 <참고사진>

 

화재 전의 대웅전(大雄殿)은 기둥이 돌기둥으로 되어 있는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 지붕의 건물이었습니다.

 

대웅전(大雄殿)


대웅전(大雄殿)은 석가모니부처님이 진리를 설하시는 전각입니다. 2,600여년전 인도에서 태어난 싯다르타 태자가 6년간의 고행 끝에 깨달음을 얻어 마음 속에서 끊임없이 일어나던 번뇌더미를 쓸어버려 위대한 승리자가 되었기에 위대한 영웅, 즉 대웅이라 한 것입니다. <구 안내판>

 

 

 

● 삼층석탑(三層石塔)

 

 

                     

                      삼층석탑(三層石塔)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모신 3층 석탑입니다. 1997년 범여스님이 조성한 탑으로 1932년 영국의 고고학 발굴조사단에 의해 발굴된 부처님의 진신사리(眞身舍利)를 인도의 고승 지나라타나 스님의 주선으로 모셔와 이 3층석탑에 봉안하였다고 합니다.

 


사리란 범어 sarira의 음역으로 보통 석가모니 부처님이나 수행이 깊은 큰 스님들의 유골을 말하는 것으로서 불자들에게는 깊은 신앙의 대상이 되는 영골(靈骨)을 일컫는 말이다.

    

 

● 명부전(冥府殿)

 

 

명부전(冥府殿)

 

명부전(冥府殿)은 정면 5칸, 측면 2칸의 맞배지붕 건물로, 지장전(地藏殿)이라고도 하는데 지장보살과 죽음의 세계인 명계(冥界)를 다스리는 시왕(十王)을 모신 전각입니다.

 

 

 

                        무독귀왕(無毒鬼王), 지장보살(地藏菩薩), 도명존자(道明尊者)

 

 

시왕(十王) 상(像)

 

 

● 삼성각(三聖閣)

 

 

삼성각(三聖閣)

 

삼성 신앙은 불교가 한국 사회에 토착화하면서 고유의 토속신앙이 불교와 합쳐져 생긴 신앙 형태입니다. 전각은 보통 사찰 뒤쪽에 자리하며, 각 신앙의 존상과 탱화를 모십니다. 삼성을 따로 모실 경우에는 산신각, 독성각, 칠성각 등의 전각 명칭을 붙입니다. 삼성을 함께 모실 때는 정면 3칸, 측면 1칸 건물을 짓고 따로 모실 때는 정면 1칸, 측면 1칸의 건물을 짓습니다.

 

삼성각 탱화 <참고사진>

 

산신(山神)은 한국의 토속신 산신령에 해당하는 호법선신으로 산신이라는 인격신과 화신인 호랑이로 나타납니다. 인격신으로서의 산신은 나이 든 도사의 모습이고, 호랑이는 대부분 산에 위치한 사찰의 특성을 반영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산신(山神) 탱화 <참고사진>

 

대부분의 사찰에서는 수독성탱(修獨聖幀), 나반존자도(那畔尊者圖)라는 독성탱화(獨聖幀畵)를 모십니다. 독성(獨聖)은 천태산(天泰山)에서 홀로 선정을 닦아 독성(獨聖), 독수성(獨修聖)이라 불린 나반존자(那畔尊子)를 일컫습니다. 그림은 천태산과 소나무·구름 등을 배경으로 희고 긴 눈썹을 드리운 비구가 오른손에는 석장(錫杖), 왼손에는 염주 또는 불로초를 들고 반석 위에 정좌한 모습입니다. 때로는 독성 외에 차를 달이는 동자가 등장하기도 하고 동자와 문신(文臣)이 양쪽 협시로 그려지는 경우도 있습니다.

                      

                                독성(獨聖) 탱화 <참고사진>

 

칠성(七星)은 수명장수신(壽命長壽神)으로 일컬어지는 북두칠성을 뜻하며, 본래 중국의 도교사상과 불교가 융합되어 생긴 신앙입니다. 대개는 손에 금륜을 든 치성광여래(熾盛光如來)를 주존으로 하여 일광보살과 월광보살을 좌우에 협시로 둡니다.

                  

                                칠성(七星) 탱화 <참고사진>

 

 

● 오층석탑(五層石塔)

 

 

                     오층석탑(五層石塔)

 

대웅전과 관음전 사이에 오래된 오층석탑이 있습니다. 언제 세워진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동네 어귀에서 마주칠듯한 편안한 느낌을 줍니다.

 

 

● 관음전(觀音殿)

 

 

관음전(觀音殿)

 

관음전(觀音殿)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 건물로, 관세음보살을 모신 전각입니다. 이 전각에는 천수천안관세음보살(千手千眼觀世音普薩)을 모시고 있습니다.

 

현판

 

 

11면(面) 42수(手)의 천수천안관세음보살(千手千眼觀世音普薩)

 

 

관음전 탱화 <참고사진>

 

 

● 극락전(極樂殿)


 

극락전(極樂殿) 

 

극락전(極樂殿)은 정면 3칸, 측면2칸의 겹처마 팔작 지붕 건물로, 1964년에 세워진 아미타불을 모신 전각입니다.

 

 

 

아미타불(阿彌陀佛) 상(像)

 

 

● 범종각(梵鍾閣)

 

 

 

범종각(梵鍾閣)

 

범종각(梵鍾閣)은 정면3칸, 측면3칸의 팔작지붕 건물이며, 내장사 범종각에는 법고, 범종, 목어, 운판을 보관하고 있습니다. 내장사의 범종은 1990년 2000관급으로 조성된 것으로 인간문화재 제112호 원광식님의 낙관이 들어있습니다.

 

현판

 

범종각(梵鍾閣)

 

범종각(梵鍾閣) 안에 사물(四物)을 두었는데 사물(四物)은 범종(梵鐘), 법고(法鼓), 목어(木魚), 운판(雲板)이니 범종(梵鐘)을 울려서 지옥중생을 구원하고, 법고(法鼓)를 두들기어 뭇 축생의 어리석음을 깨우치게 하며, 목어(木魚)를 깨워 물속에 사는 중생을 다스리고, 운판(雲板)을 쳐 공중을 날아다니는 중생을 일깨우고자 함입니다.

 

 

만세루(萬歲樓)

 

 

만세루(萬歲樓) <참고사진>

 

 

● 내장선원(內藏禪院), 향적원(香積院)

 

 

 

스님들이 수행하는 요사(寮舍)인 내장선원(內藏禪院), 향적원(香積院)

 

내장선원(內藏禪院) 향적원(香積院) 현판 <참고사진>

 

 

● 해운당(海雲堂)

 

 

스님들이 수행하는 요사(寮舍)인 해운당(海雲堂) <참고사진>

 

                      현판 <참고사진>

 

 

● 종무소(宗務所)

 

 

   종무소(宗務所) <참고사진>

 

대한불교조계종(大韓佛敎曹溪宗 ) 내장사종무소(內藏寺宗務所)

 

 

● 기타

 

 

내장사 후문

 

내장사 단풍

 

                     

                      석등(石燈)

 

경내 전경

 

명부전(冥府殿) 앞 약수

 

관음전(觀音殿) 앞 내장약수

 

 

부속암자

 

 

벽련암(壁蓮庵)

 

 

           

           일주문(一柱門)의 오른쪽 길로 약 800m 오르면 벽련암(壁蓮庵)

 

                     

                      고(古) 내장사(內藏寺)인 벽련암(壁蓮庵) 표지석

 

 

 

당겨서 본 벽련암(碧蓮岩)

 

660년 백제 의자왕 20년 환해선사가 백련암으로 창건하였는데 1539년 조선 중종 34년 승도탁난 사건에 의해 내장사와 함께 조정의 폐찰령에 의해 소실되었습니다. 1925년 백학명선사 가 전각을 중창하였으나 한국동란때 소실되었습니다.

 

 <참고사진>

 

현재의 전각은 1986년 중창되었고 현재는 설법전이 복원중입니다. 현 벽련암 이름은 조선후기 추사 김정희가 이곳에서 수도하면서 벽련암이라는 서액을 써 준데서 얻은 이름이고 이 현판은 한국동란때 소실 되었습니다.

 

내장사지 (內藏寺址)에 세워진 벽련암(碧蓮岩) <참고사진>

 

내장산에 있는 옛 내장사터로서,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의하면 ‘백련사는 내장사라고도 이르며 내장산에 있다.’라고 하였습니다. 백련사는 언제 세운 것인지 알 수 없으나 백제 의자왕20년(660)에 유해선사가 세웠다고 전합니다. 조선시대의 명필인 추사 김정희가 ‘백련(白蓮)’을 ‘벽련사(碧蓮寺)’로 개칭하고, 현판을 써서 걸었으나 한국전쟁 때 소실되었습니다.

 

벽련암(碧蓮岩) 전경 <참고사진>

 

1925년 학명선사가 아미타불을 봉안한 극락보전을 고쳐짓고, 스님들이 생활하던 요사채와, 도량건물인 선원을 세웠으나 역시 한국전쟁 때 소실되었습니다. 현재 절터에는 연대를 알 수 없는 탑식으로 된 부도가 남아 있으며, 뒷쪽 암벽에 몽련당 김진민의 석란정(石蘭亭)이라는 글자가 새겨 있습니다.


 

원적암(圓寂庵)

 

 

         원적암(圓寂庵) <참고사진>

 

불출봉 중턱에 자리 잡고 있으며, 고려 선종3년(1086) 적암대사가 7개여동으로 창건하였는데 정유재란과 한국동란을 거치면서 전부 소실되었고 1961년 법명스님이 지금의 암자로 개축했습니다. 동쪽 기슭에는 수령이 500~800년이 된 비자나무들이 하늘을 덮고 있는데 가을단풍과 어울려 내장산의 대표적인 경관입니다.

 

 

도덕암(道德庵)

 

 

도덕암(道德庵) <참고사진>

 

추령에서 장군봉에 이루는 골짜기에 자리잡은 도덕암은 1915년 종선선사가 창건 한국동란때 소실, 1971년 철오스님이 현재 상태로 중창하였습니다
 

 

유물 및 문화재

 

 

● 조선동종(朝鮮銅鐘) : 지방유형문화재 제49호

 

 

                 조선동종(朝鮮銅鐘) <참고사진>

 

조선영조 44년(1768년)에 제작된 높이 80cm 종신의 높이60cm 구경50cm의 소형 범종입니다. 이 동종은 본래 전라남도 장흥 보림사에 있던 것으로, 1890년(고종 27)에 내장사로 옮겨와 관음전에 봉안되었고 일제강점기에 놋쇠공출로 강제 징벌되는 것을 피하기 위해 한 때 산내암자인 원적암(圓寂庵)에 봉안하였으며, 한국전쟁 당시에는 잠시 정읍 시내의 한 표교원에 옮겨 놓기도 한 적이 있습니다. 현재는 관음전에 봉안되어 있습니다.

 

용뉴(龍鈕) <참고사진>

 

용머리의 정교한 문양과 음향이 조선시대 작품으로 수작으로 꼽힙니다. 종의 어깨는 2줄의 견대(肩帶)로 구성되어 있는데 위에는 당초문이, 아래에는 여의두문(如意頭紋)이 배치되어 있으며, 견대 아래에는 24줄의 원권(圓圈)을 배치하고 그 내부에 범자(梵字)을 돋음새김한 형태입니다. 종신(鍾身) 중앙에는 4개의 유곽이 있고, 그 사이 공간에는 보살입상 1체씩을 배치하였으며, 유곽내에는 9개의 유두가 있습니다. 그 아래에는 명문이 돋을새김이 되어 있으며,  명기에 영조44년 시주 조한보가 그의 아버지 (조인구) 그의 어머니(양씨) 의 기복을 위하여 조성한 것이라 적혀있습니다. 구연부(口緣部)에는 연화당초문대를 배치한 종입니다.

 

 

 

 

 

 

 

 

내장사(內藏寺) / 내장산(內藏山)

                                                    2013.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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