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련사(白蓮寺) / 덕유산 (德裕山)
☞ 덕유산 (德裕山) 백련사(白蓮寺)
백련사(白蓮寺) 위치 <google참고사진>
백련사(白蓮寺)는 전라북도 무주군 설천면 삼공리에 자리잡고 있으며, 덕유산 구천동계곡 상류에 위치한 대한불교 조계종 제17교구 본사 금산사의 말사입니다.
덕유산 (德裕山) 백련사(白蓮寺) <google참고사진>
백련사(白蓮寺)는 신라 신문왕 때 백련선사(白蓮禪師)가 숨어살던 곳에서 하얀 연꽃이 피어나 절을 짓고 백련암(白蓮庵)이라 했다고도 하며,
신라 흥덕왕5년(830)에 무렴국사(無染國師)가 창건했다고도 전하여지나 이후의 역사는 자세히 알지 못합니다. 1900년(광무4)에 무주 부사였던 이하섭이 중수하였으나 6.25전쟁 때 불타버린 뒤 1960년 절터에 초막으로 인법당(因法堂) 한 동을 짓고, 1961년에 대웅전을 건립하면서 백련암으로 불리던 절 이름을 백련사(白蓮寺)로 바꾸었습니다.
백련사(白蓮寺) 전경 <참고사진>
백련사(白蓮寺)의 문화재로는 매월당부도(梅月堂浮屠, 전북유형문화재 제43호), 정관당부도(靜觀堂浮屠, 전북유형문화재 제102호), 백련사 금강계단(金剛戒壇, 전북지방기념물 제42호) 등이 남아 있습니다.
<참고사진>
▶ 일주문(一柱門)
일주문(一柱門)
백련사(白蓮寺) 일주문(一柱門)은 1973년에 세웠으며 정면1칸의 다포계 팔작지붕 건물로 공포가 빼곡하게 처마 밑을 채우고 있습니다. 예로부터 기둥
탄허(呑虛) 스님의 글씨 "덕유산백련사((德裕山白蓮寺)" 현판 <참고사진>
탄허(呑虛)스님 <참고사진>
탄허[呑虛](1913~1983)스님은 불교뿐만 아니라 유교·도교 등 동양사상 전반, 특히 『화엄경』과 『주역』의 으뜸 권위자로 평가받은 당대의 학승으로 손꼽힙니다.
경내에서 보는 일주문(一柱門)
▶ 부도전(浮屠田)
일주문(一柱門) 옆 부도(浮屠)밭
부도군(浮屠群)
일주문(一柱門)을 들어서면 오른쪽에 부도(浮屠) 다섯기가 나란히 서있습니다. 부도의 형태는 모두 석종형으로 2기는 사모지붕의 지붕돌을 가지고 있으며, 1기는 석종의 탑신만이 남아 있는 모습이다. 5개 중 가운데 있는 것이 매월당(梅月堂) 설흔(雪欣)스님의 부도입니다.
<참고사진>
<참고사진>
매월당(梅月堂) 설흔(雪欣)스님의 부도 <참고사진>
1974년 전북유형문화재 제43호로 지정되었습니다. 조선 정조8년(1784)에 건립한 것으로 매월당(梅月堂) 설흔(雪欣)스님의 부도로 호가 같아 흔히 매월당 김시습(金時習)의 부도로 오인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매월당(梅月堂) 설흔(雪欣)스님의 생애와 행적은 알려져 있는 것이 거의 없는데 1772년 세워진 적상산 안국사(安國寺) 극락전 후불탱화의 화기(畵記)에 증명(證明)으로 그 이름이 올라있는 것으로 보아 호남 지방에서 이름이 널리 알려졌던 스님으로 추측하고 있습니다.
매월당 부도(梅月堂浮屠) <참고사진>
전체 높이 2m, 직경1m인 탑신(塔身)은 조선시대 전형적인 석종형(石鐘形)으로 복련(伏蓮)으로 조각한 둥근 연화대석(蓮花臺石) 위에 올려 놓았다. 상륜부(相輪部)에 보륜(寶輪)을 조각하였고, 그 윗부분에다 유두형 보주를 조각하였습니다. 탑신의 윗면과 보주에는 복련(伏蓮)과 앙련(仰蓮)으로 화려하게 연꽃 무늬를 돋을 새김하였습니다. 탑신(塔身)에는 "매월당설흔지탑(梅月堂雪欣之塔)"이라는 탑명이 있고 그 옆에 "건륭갑진삼월일생질임선행건립(乾隆甲震三月日甥姪任善行建立)"이라는 글씨가 음각되어 있어 매월당 설흔의 생질인 임선행이 1784년에 세웠다는 것을 알 수 있게합니다.
▶ 정관당(靜觀堂) 부도(浮屠)
정관당(靜觀堂) 부도(浮屠) 위치 <참고사진>
천왕문 오르기전 계단 중간 왼쪽의 정관당부도(靜觀堂浮屠) <참고사진>
정관당부도(靜觀堂浮屠) <참고사진>
천왕문(天王門)으로 오르는 계단 중간 왼쪽에 석종형(石鐘形)부도가 또 하나 있습니다. 서산대사의 4대 제자[사명(四溟) 유정(惟政), 편양(鞭羊) 언기(彦機), 소요(逍遙) 태능(太能), 정관(靜觀) 일선(一禪)]중 한 사람인 정관당(靜觀堂) 일선선사(一禪禪師, 1533~1608)의 부도입니다.
<참고사진>
정관당(靜觀堂) 곽일선(郭一禪:1533~1608)은 조선 중엽 전북지방 불교 보급에 큰 영향을 끼친 대선사(大禪師)입니다. 문하에는 호연태호(浩然太浩), 무염계훈(無染戒訓), 운곡충희 등 많은 제자가 있어 ‘정관문파(靜觀門派)’를 이루었으며, 이곳 덕유산에서 입적하여 백련사에 부도를 세웠습니다.
<참고사진>
1982년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102호로 지정된 정관당부도(靜觀堂浮屠)는 높이 0.3m, 직영 1.2m 크기에 복련을(伏蓮)을 조각한 원형 좌대 위에 높이 1.8m, 둘레 2.3m 규모의 석종형(石鐘形) 탑신(塔身)을 올려 놓았습니다.
<참고사진>
탑신은 다른 부도와는 달리 탑신 표면는 아무런 장식도 없고 다만 맨 끝부분을 마치 팽이처럼 뾰족하게 조각하여 마무리하였습니다.
정관당 일선탑(靜觀堂 一禪塔) 명문 <참고사진>
탑신의 아래에는 ‘정관당 일선탑(靜觀堂 一禪塔)’이라는 탑이름이 있고, 바닥돌 윗면에 ‘만력 37년 건(萬曆三十七年建)’이라 적혀 있어 조선 광해군 원년(1609)에 세운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참고사진>
▶ 천왕문(天王門)
보수공사중인 천왕문(天王門)
<참고사진>
1973년 일주문과 함께 지어진 천왕문(天王門)은 정면3칸, 측면2칸의 겹처마 맞배지붕 건물입니다.
천왕문(天王門) <참고사진>
좌우 협칸에는 사천왕상 4구를 모시고 중앙칸은 통로가 되도록 하여 사찰의 천왕문 구조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불법을 수호하는 사천왕을 모신 곳이 사천왕문(四天王門) 또는 천왕문(天王門)입니다. 원래 사천왕(四天王)은 고대 인도 종교에서 숭상하던 귀신들의 왕이었으나 부처님의 제자가 되어 부처님과 불법(佛法)을 지키는 역할을 담당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탄허(呑虛) 스님의 글씨 현판 <참고사진>
북방의 수호신 다문천왕(多聞天王) <참고사진> 동방의 수호신 지국천왕(持國天王)
남방의 수호신 증장천왕(增長天王) <참고사진> 서방의 수호신 광목천왕(廣目天王)
사천왕(四天王)은 동서남북 네 지역의 하늘과 땅을 지키고, 불법을 수호하고 불도를 닦는 사람들을 보호하고 있습니다. 동쪽을 수호하는 지국천왕(持國天王)은 큰칼을, 서쪽을 관장하는 광목천왕(廣目天王)은 탑을, 남쪽을 관장하는 증장천왕(增長天王)은 용과 여의주를, 북쪽을 지키는 다문천왕(多聞天王)은 비파를 들고 있는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사천왕문(四天王門)과 우화루(雨花樓)는 보수 불사 중
▶ 우화루(雨花樓)
보수 불사 중인 우화루(雨花樓)
우화루(雨花樓) <참고사진>
석가모니 부처님이 영취산에서 득도한 후 법화경을 처음 설법하셨을 때 꽃비가 내렸다고 하는데서 우화루(雨花樓)란 이름이 유래되었다고 하는데 그 이름을 취한 건물입니다.
<참고사진>
우화루(雨花樓)는 백련사의 경내 출입을 위한 누각 겸 강당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정면5칸, 측면3칸의 겹처마 팔작지붕건물로 1978년에 세웠습니다. 1층은 어칸이 통로로 사용되는 누각형식으로 좌우 협칸은 백련사 사무실로 사용되며, 2층은 백련사의 강당으로 대형행사시의 설법장소 및 요사채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참고사진>
건물 외부는 4면이 분합 띠살문으로 단장된 창호를 둘렀으며, 중앙칸에는 탄허스님이 쓴 ‘雨花樓’ 현판이 걸려 있습니다.
탄허(呑虛) 스님의 글씨 현판 <참고사진>
우화루 앞의 수령 수백년은 되어보이는 '돌배나무' <참고사진>
우화루 앞의 돌배나무
▶ 범종각(凡鐘閣)
범종각(梵鐘閣) <참고사진>
우화루 동쪽에 자리한 범종각(梵鍾閣)은 정면3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건물로 1987년에 조성되었습니다. 건물은 가구식 기단 위에 세워졌으며, 내부는 4개의 고주를 세워 범종을 지탱하고 건물 외곽으로 창살을 둘렀습니다. 내부에는 1988년에 조성된 범종(梵鐘)과 법고(法鼓), 운판(雲版)이 있으며, 한 켠에 ‘백련사범종불사시주방명록(白蓮寺梵鍾佛事施主芳名錄)’이라 새겨진 석종형 비석이 봉안되어 있습니다.
범종(梵鐘) 소리는 하늘 나라 대중에게 부처님의 도량으로 모이라는 신호이며 고통 받는 중생의 제도를 염원하는 소리입니다. 법고(法鼓)는 법을 전하는 북이라는 뜻으로 불변의 진리로 중생의 마음을 울려 일심을 깨우친다는 의미가 담겨 있으며 보통 쇠가죽으로 만드는데 짐승을 비롯한 땅에 사는 중생의 어리석음을 깨우치기 위하여 칩니다.
<참고사진>
운판(雲板)은 청동 또는 철로 만든 넓은 판으로 원래 중국의 선종사찰에서 부엌이나 재당(齋堂)에 달아 놓고 대중에게 끼니 때를 알리기 위해 쳤다고 하나 차츰 불전사물로 바뀌었습니다. 운판이 울리면 공중을 날아다니는 중생을 제도하고 허공을 헤매며 떠도는 영혼을 천도할 수 있다고 합니다. 목어(木魚)는 나무로 물고기 모양을 만들고 배부분을 파내어 나무막대기로 두드려 소리를 내는 의식 용구로 물 속에 사는 모든 중생을 제도한다는 상징적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일중(一中) 김충현(金忠顯) 선생이 쓴 현판 <참고사진>
김충현(金忠顯): 1921.4.2~2006.11.19 <참고사진>
호는 일중(一中). 일본인과는 타협하지 않는 가문에서 태어났기에 14세 될 때까지 학교를 들어가지 않았고 아버지의 지도 아래 한문과 서예 공부를 하였습니다. 1938년 중학교 1학년 때(17세) 동아일보사 주최 전조선학생작품전에서 서예로 5개 부문을 통틀어 최고상을 수상하면서 세상에 알려졌고, 반세기에 걸쳐 주로 교육계와 저서를 통해 서예 교육에 전념해왔습니다.
▶ 대웅전(大雄殿)
우화루 1층 통로에서 본 대웅전(大雄殿) <참고사진>
대웅전(大雄殿) <참고사진>
대웅전은 정면 5칸 측면 3칸의 목조 겹처마 팔작지붕건물로, 주지 현수스님 1974년에 세웠습니다. 화강암 3단의 기단 위에 방형초석을 얹고 기둥을 올린 다포집입니다.
<참고사진>
대웅전(大雄殿) 건물 외부는 전면에 격자살로 짠 창호와 외벽에 심우도(尋牛圖)가 그려져 있습니다.
건물 앞 6기의 주련(柱聯)은 탄허스님이 쓴 것이라 합니다.
현판 <참고사진>
대웅전의 현판은 한석봉(韓石峰)의 글씨를 모각한 것입니다. '대웅(大雄)'은 마하비라의 음역으로 위대한 영웅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으며, 석가모니를 이르는 말입니다. 큰 힘으로 사마(四魔)를 항복시킨다는 뜻에서 붙여진 부처님의 덕호(德號)에서 유래한 것으로『법화경』에서 따온 이름이다.
대웅전 내부 아미타삼존불 <참고사진>
건물 내부에는 중앙 불단을 중심으로 좌우 영단과 신중단이 있습니다. 불단에는 금동아미타여래좌상을 주존으로 좌우 대세지보살과 관음보살이 협시하고 있으며, 그 뒷벽에는 3폭의 아미타후불탱이 봉안되어 있습니다.
아미타여래좌상 <참고사진>
후불탱은 1975년에 금어 이충열(李忠烈) 스님이 제작한 것으로, 하나의 도상이 3폭으로 분리되어 중앙의 아미타불을 중심으로 좌측에 관음ㆍ문수ㆍ금강장보살을, 우측에 세지ㆍ보현ㆍ지장보살을 배치하고, 그 위로 10대 제자와 사천왕이 2단구조로 자리한 특이한 모습입니다. <자료:한국의사찰>
이외에 불단 위에는 ‘시주소원성취(施主所願成就)’, ‘남북통일속성취(南北統一速成就)’, ‘중창불사속성취’라는 3개의 목패(木牌)가 있으며, 신중단에는 1975년에 조성된 신중탱과 1979년에 조성된 범종이 있습니다.
▶ 명부전(冥府殿)
명부전(冥府殿) <참고사진>
명부전(冥府殿)은 지장보살을 모시고 죽은 이의 넋을 인도하여 극락왕생하도록 기원하는 기능을 하는 전각으로 흔히 지장전(地藏殿)이라고도 합니다. 명부(冥府)란 염라대왕이 다스리는 유명계(幽冥界) 또는 명토(冥土)를 통틀어 이르는 말입니다.
명부전(冥府殿)은 1986년 세워졌으며 정면3칸, 측면2칸, 겹처마 팔작지붕 건물로 대웅전(大雄殿)을 사이에 두고 원통전(圓通殿)과 마주보고 있습니다.
현판 <참고사진>
금동 지장보살좌상 <참고사진>
<참고사진>
'ㄷ'자형 불단 위에 지장보살좌상과 양쪽으로 도명존자와 무독귀왕이 협시하고 있으며, 그 주변으로 열명의 명부의 왕들이 늘어서 있습니다.
<참고사진>
명부전(冥府殿)의 벽에는 사후세계의 심판을 표현한 벽화가 그려져 있습니다.
▶ 원통전(圓通殿)
원통전(圓通殿) <참고사진>
원통전(圓通殿)은 대웅전 우측에 자리잡고 있고, 1977년 세워졌으며 정면3칸, 측면2칸, 겹처마 팔작지붕의 건물입니다. 건물전면에는 4기의 주련과 편액이 걸려 있다. 나지막한 기단 위에 막돌초석을 얹고 기둥을 세운 단촐한 집으로 건물 외벽에는 부처님 전생의 설화를 담은 벽화들로 장엄되어 있다.
<참고사진>
원통전(圓通殿)은 관세음보살을 주불(主佛)로 모시는 전각으로 관세음보살의 공덕이 주원융통(周圓融通)하다는 의미에서 그 이름을 취하였으며, 관음전(觀音殿)이라고도 합니다. 이 안에는 관세음보살을 홀로 모시거나, 양류관음이나 해수관음(海水觀音) 또는 천수관음 등을 모시기도 합니다.
현판 <참고사진>
원통전(圓通殿)의 주불(主佛)인 관세음보살좌상 <참고사진>
원통전 내부에는 중앙 불단과 좌우 보처단이 있으며, 주존으로 화려한 보관을 쓴 금동관음보살좌상이 봉안되어 있습니다. 이는 1970년대 현수스님이 전남 강진에서 모셔온 것으로, 높이 82㎝의 중형불상입니다. 탱화로는 1980년 금어 최원영(崔元影)이 조성한 해수관음보살탱이 후불탱으로 봉안되어 있습니다.
▶ 선수당(禪修堂)
원통전 남쪽에 위치한 선수당(禪修堂) <참고사진>
선수당(禪修堂) <참고사진>
선수당(禪修堂)은 정면5칸 측면3칸의 팔작지붕건물로 1962년 백련사(白蓮寺) 복원 당시 대웅전 자리에 있었던 구(舊) 대웅전 건물입니다. 1979년에 지금의 자리로 옮겨 현재는 요사 겸 사무실의 용도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선수당(禪修堂) 현판 <참고사진>
거암(巨巖) 김봉관(金奉官)은 전직 경찰 간부이자 서예가로 전국 사찰에 많은 작품을 남기신 분으로 호남지방에서 주로 활동한 분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 삼성각(三聖閣)
삼성각(三聖閣) 오르는 길 <참고사진>
삼성각(三聖閣) <참고사진>
<참고사진>
백련사(白蓮寺)의 삼성각(三聖閣)은 단청을 칠하지 않은 것이 특징입니다.
<참고사진>
삼성각(三聖閣) 내부에는 칠성탱을 비롯하여 독성탱, 산신탱이 있습니다.
삼성각 독성탱(獨聖幀) <참고사진>
삼성각 칠성탱(七星幀) <참고사진>
삼성각 산신탱(山神幀) <참고사진>
▶ 조실당(祖室堂)
조실당(祖室堂) <참고사진>
1990년대 주지 평상(平常) 스님이 지은 건물로 요사채인 문향헌(聞香軒) 북쪽에 위치합니다. 정면5칸, 측면3칸의 팔작지붕 건물로 현재 주지스님의 요사채로 사용되고 있으며, 큰스님이 거주하는 곳이라 하여 조실당(祖室堂)이라 부릅니다.
문향헌(聞香軒) 북쪽의 조실당(祖室堂) <참고사진>
▶ 문향헌(聞香軒)
문향헌(聞香軒) <참고사진>
요사로 쓰이고 있는 문향헌(聞香軒)은 1967년 무주읍내에 있던 무주부 동헌(東軒) 건물을 옮겨온 것으로, 당시 개인소유의 건물을 백련사 신도들이 매입한 것입니다.
<참고사진>
<참고사진>
백련사로 옮겨올 당시 원통전 자리에 정면 7칸 측면 5칸의 ㄷ자형 팔작건물로 지어졌으나, 1984년 현재의 자리로 옮기면서 정면 9칸 측면 6칸으로 확장되었습니다.
문향헌(聞香軒) 전면부 <참고사진>
백련사의 초기 요사채로 전면에 퇴칸 마루를 가설하여 요사의 쓰임새를 드러내었으며, 분합문으로 단장하여 단출하고 기품있는 요사(寮舍)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중앙칸에는 거암 김봉관(巨巖 金奉官)이 쓴 ‘聞香軒’이라는 편액이 걸려 있습니다.
<참고사진>
건물 내부 공양간에는 조선후기에 조성된 적색 바탕의 조왕탱(廚王幀)이 걸려 있습니다.
▶ 백련회관(白蓮會館)
백련회관(白蓮會館)
정면3칸, 측면2칸의 맞배지붕 건물의 백련회관(白蓮會館)에는 기념품판매소가 있습니다.
▶ 계단(戒壇)
덕유산(德裕山) 백련사(白蓮寺) 계단(戒壇)
계단(戒壇)은 원래 수계법회(受戒法會)와 같이 계(戒)를 주거나 계를 설(說)할 때 사용하는 단(壇)으로, 수계 받는 단을 중앙에 마련하고, 계법을 전수하는데 사용하였던 일종의 의식법회 장소입니다.
백련사 계단(白蓮寺戒壇)
전북기념물 제42호인 백련사(白蓮寺) 계단(戒壇)은 높이 2m, 둘레 3.92m의 무문탑(無紋塔)으로 자연석을 깔고 그 중앙에 대석(臺石)을 설치한 후 석종형(石鐘形)의 탑신을 세웠습니다. 탑신부와 상륜부는 하나의 석재이며 탑신부에는 탑명(塔名)이 없고, 대석에서 높이 1.6m 지점 윤부(輪部)에는 25개의 여의주문(如意珠文)으로 보륜(寶輪)을 조각하였다. 보륜 위에는 높이 40㎝의 유두형(乳頭形) 보주(寶珠)를 조각하여 상륜부를 장식하였다. 조성연대는 확실하지 않으며 누구든지 관세음보살을 부르며 알곱번 이상 주변을 돌면 소원을 이를 수 있다는 말이 전해지고 있습니다.
여의주문(如意珠紋) 보륜(寶輪)과 유두형(乳頭形) 보주(寶珠)
백련사(白蓮寺) 계단(戒壇)은 '통도사 금강계단(金剛戒壇)'과 같이 그 역사적 근거를 가지고 있지 않아 무엇을 근거로 계단(戒壇)이라 부르는지 명확하지 않습니다. 전하는 바에 따르면 고려시대 구천동사를 창건한 대원대도(大院大都) 대사의 부도라 하지만 건립연대는 확실하지 않으며, 형태로 보아 조선시대에 조성된 것으로 여겨집니다.
원형좌대(圓形座臺)
신라시대의 것으로 추정되는 높이 42cm, 지름 110cm, 안테지름 82cm의 원형좌대는 윗면에 동서남북의 방위를 장식한 듯한 삼각점(三角点)의 홈이 파져있는 것이 특이합니다.
사방으로 있는 파져있는 삼각점(三角点)의 홈 <참고사진>
▶ 기타
● 백련사지(白蓮寺址) 안내판
백련사지 안내판
● 백련사(白蓮寺) 안내판
<참고사진>
● 백련사(白蓮寺) 전경
<참고사진>
<참고사진>
<참고사진>
● 맷돌
<참고사진>
백련사(白蓮寺) / 덕유산 (德裕山)
(12.0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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