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사와 여행(국내)/충청남도

마곡사(麻谷寺)/공주(公州)

케인스 2018. 11. 7. 15:19



                    마곡사(麻谷寺) / 공주(公州) 

 


☞ 충청남도(忠淸南) 공주시(公州市) 마곡사(麻谷寺)


  

 마곡사 위치 <google 참고사진>


 


                             여행사버스 이용


                                           - 양재역 출발시간: 07:45 AM [경유지 / 양재역 12번 출구 마을버스 정류장]

                                           - 마곡사 도착시간: 09:42 AM ~ 마곡사 출발시간: 11:00 AM


09:42 / 마곡사 주차장 [상가 건물 사이로 진행합니다]


마곡사 버스정류장[마곡사↔공주시내]




마곡사 가는길 <google 참고사진>  주차장에서 마곡사까지는 도보15~20분 정도 소요됩니다.


09:49 / 마곡사 관광안내소 앞


09:50


09:52 / 일주문(一柱門)


일주문(一柱門)은 사찰로 들어가는 첫 번째 문으로, 한 줄로 세운 기둥 위에 맞배지붕 양식으로 되어 있습니다. 이 기둥 양식은 일심(一心)을 상징하는데 청정한 도량에 들어가기 전에 세속의 번뇌를 말끔히 씻고 일심이 되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태화산마곡사(泰華山麻谷寺) 일주문 현판


09:54 / 마곡사 안내판




09:55 / 마곡천(麻谷川)


09:56 / 마곡사 관광지 지압산책로



09:59



10:02







10:05 / 마곡사 표지석


대한불교조계종 25교구 중 제6교구 본사인 천년고찰 마곡사는 85개 사암을 관할아는 충남불교의 대본산(大本山)입니다. 왕벚꽃, 산수유, 자목련 등이 꽃을 피우는 봄이 가장 아름답다 하여 봄은 마곡사(麻谷寺), 가을은 갑사(甲寺)라는 뜻으로 '춘마곡 추갑사(春麻谷 秋甲寺)'라는 말이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천년고찰(千年古刹)입니다.  <마곡사 자료>


마곡사(麻谷寺) 전경 <공주시 사진자료>


1851년(철종 2) 임원횡이 정리한 마곡사의 연혁에 관한 문서인 「마곡사 사적입안(麻谷寺事蹟立案)」에는 신라 자장율사가 정관(貞觀)17년(643)에 당나라에 다녀온 뒤, 선덕여왕 때에 창건하였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많은 사찰들이 그러하듯 왜란과 호란 때에 황폐해졌고 1782년에는 큰불이 나 500여칸의 전각들이 불타 버렸습니다.


    마곡사 전경 <연합뉴스 사진자료>


현존하는 건물들은 그 뒤인 18세기 후반과 19세기 전반에 세운 건물들입니다. 614m 태화산(泰華山) 동쪽 기슭의 사곡면 운암리에 있는 마곡사는 2018년 6월에는 “산사, 한국의 산지승원(山寺 韓國의 山地僧院)"으로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되었습니다. <마곡사 자료>


                                

                                 마곡사 전경 <마곡사 사진자료>


'마곡사'라는 절 이름에 대해서는 대체로 세가지위 유래가 전해옵니다. 첫째, 자장율사가 당나라에 유학할 때의 스승인 선은사(先恩師) '마곡보철화상(麻谷寶澈和尙)'을 기려 이름을 땄다고 하며, 둘째, 보조국사가 고려 명종2년(1172)에 이 절을 재건할 때 구경오는 사람들로 골짜기가 꽉찬 모습이 삼밭에 삼[麻]이 선 것과 같아서 붙였다고도 합니다. 셋째, 절이 세워지기 전에 마[麻]씨 성을 지닌 토족이 살았기에 붙였다고도 합니다. <문화유산답사회 자료>


태극형 길지의 마곡사 위치 <다음지도>


마곡사가 앉은 자리는 물의 흐름과 산세가 산태극수태극(山太極水太極: 산과 물이 태극형을 함)이어서 이중환의「택리지」나 「정감록」에서는 난세에 전란이나 기근을 피할 수 있는 십승지지(十勝之地: 경치 좋기로 이름난 열 군데의 장소)의 하나로 꼽는 명당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마곡사자료>


1920년대 마곡사 <참고사진>


조선 숙종 때 사람 송상기(宋相琦)는 「유 마곡사기(遊 麻谷寺記)」에서 "절은 고갯마루 아래에 있었고, 10여리 길가에 푸른 시냇물과 흰 위가 있어 저절로 눈이 틔였다"고 마곡사 주변의 아름다운 경치를 칭송하였습니다.


        <참고사진>



                                마곡사(麻谷寺) <google 참고사진>



해탈문(解脫門)



해탈문(解脫門)


이 문을 모든 괴로움과 헛된 생각의 그물을 벗어나 아무 거리낌이 없는 진리의 깨달음을 얻는 문입니다.



                           해탈문 현판



           <마곡사 자료>


 해탈문 내부: 푸른사자를 타고 있는 문수보살상과 금강역사상


해탈문 내부: 흰 코끼리를 타고 있는 보현보살상과 금강역사상


 

발밑에 악귀를 짓밟고 서있는 금강역사



▶ 천왕(天王門)



 천왕문(天王門)


천왕문(天王門)은 사찰로 들어가는 두 번째 문으로 4 천왕(天王)을 모신 곳입니다. 이들은 중생을 보살피고 불법과 그에 귀의하는 자들을 보호하고 항상 도량을 지킨다고 여기기 때문에 사찰의 입구에 모십니다.  




 천왕문(天王門) 뒷면


         <마곡사 자료>


왼쪽: 북쪽을 지키는 다문천왕(多聞天王),  오른쪽: 동쪽을 수호하는 지국천왕(持國天王)


4 천왕 가운데 북쪽을 지키는 다문천왕(多聞天王)은 항상 도량을 지키면서 설법을 듣는다고 하며, 동쪽을 지키는 지국천왕(持國天王)은 중생을 두루 보살피면서 국토를 지킨다고 합니다.


 왼쪽: 남쪽을 지키는 증장천왕(增長天王),    오른쪽: 서쪽을 지키는 광목천왕(廣目天王) 


남쪽을 지키는 증장천왕(增長天王)은 불법(佛法)을 보호하면서 만물을 소생 시키고, 서쪽을 지키는 광목천왕(廣目天王)은 눈을 부릅뜨고 그 위엄으로 불법을 보호하고 있다고 합니다. 


 

마곡사의 사천왕상


마곡사의 사천왕상은 커다란 크기이지만, 무섭기 보다는 어수룩해 보이는 모습이 조선 후기 소조불로서 모셔진 천왕상들의 모습을 전형적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한국문화유산답사회>


 

 해탈문에 있는 금강역사와 마찬가지로 사천왕들도 발밑에 악귀를 깔고 서있습니다.  


 

극락교(極樂橋)



                        극락교(極樂橋) 위치 <다음지도>


극락교(極樂橋)는 태극도형으로 마곡사(麻谷寺) 경내를 가로지르며 흐르는 마곡천(麻谷川) 위에 놓여있는 교량으로 마곡사를 남북으로 연결하고 있습니다.


극락교(極樂橋)


대개 절들이 초입에 개울을 건너 몸과 마음을 씻게 하고 나서 절 영역이 시작되는 것과 달리 마곡사는 개울을 사이에 두고 두 영역으로 나뉩니다.



해탈문과 천왕문을 지나 개울을 건너기 전 왼쪽으로 들어가는 곳은 영산전 영역입니다. 이곳에 명부전과 국사당이 있으니 이쪽은 주로 저승세계를 관장하는 전각들이 있습니다. 극락교를 지나 곧장 가면 마곡사의 중심공간인 대광보전의 영역에 이릅니다.


 극락교에서 본 마곡천 상류



대광보전(大光寶殿)




공주 마곡사 대광보전(大光寶殿): 보물 제802호


마곡사에 있는 조선 후기 목조건물. 보물 제802호. 임진왜란 때 불탄 것을 1651년에 각순대사가 대웅보전과 함께 중건했으나 1782년 다시 소실된 것을 1813년 재건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3단의 자연석 기단 위에 정면 5칸, 측면 3칸의 팔작지붕의 건물입니다.



                                 대광보전 현판


영정조 시대 시문서화(詩文書畵)의 사절(四絶)로 날렸던 표암(豹菴) 강세황(姜世晃: 1713~1791)선생의 글씨로 강세황의 호 '표암'이란 낙관이 새겨져 있어 이를 알 수 있습니다. 글씨체가 힘이있고 거침이 없이 미끈하고 아름답습니다


대광보전(大光寶殿)



 괘불지주(掛佛支柱)


                                                        마곡사 괘불, 보물 제1260호 <참고사진>


마곡사 괘불(掛佛)은 숙종13년(1687)에 조성되었으며 크기는 길이 10.79m, 폭 7.16m로 거친 마본(麻本: 삼대)을 바탕으로 삼은 대형 그림입니다. 능학(能學)스님 등 6명이 그림을 그렸습니다. 괘불(掛佛)은 야외 행사에 사용되는 의식용 불화로 특별한 행사가 있을 때에만 대광보전 앞 괘불지주에 괘불대를 세워 설치하며, 평소에는 괘불함에 넣어 보관합니다.


<참고자료>


대광보전(大光寶殿) 내부 <참고사진>


본존인 비로자나불이 법당의 서쪽에 동쪽을 향해 모셔져 있습니다. 이런 배치는 영주 부석사의 무량수전에서처럼 서방 극락을 주재하는 아미타불이 앉아있는 방식인데, 이곳에서는 비로자나불이 이처럼 앉아있어 드문 예를 보이고 있습니다. <문화유산답사회 자료>


대광보전(大光寶殿) 불상


이 비로자나불은 자장율사가 당나라 왕에게서 선물받은 인도의 향단목으로 만들었다는 이야기가 전해 내려오기는 하지만 양식으로 보아서는 인후한 표정과 안정된 자세를 한 조선시대 불상입니다. 게다가 전란에 건물이 불탔을 때에 목불상이 온전할리는 없었을 터입니다.  아마 창건 때 모셨던 불상에 관한 전설이 그대로 전해 내려오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문화유산답사회 자료>


                                                   지권인(智拳印)을 하고있는 비로자나불 <참고사진>


중생과 부처가 둘이 아니라는 지권인(智拳印)을 하고있는 비로자나불은 진리를 상징하는 부처님으로, 진리의 몸이 온누리에 두루 비치는 광명의 빛을 내어 모든 이들을 지혜의 길로 이끌어 주십니다. 오른쪽 손가락 끝으로 왼쪽 손가락 끝을 덮어 누르고 있는 독특한 손 모양을 하고 있습니다. 오른손은 부처를, 왼손은 중생을 상징합니다. <문화유산답사회 자료>


                                              영산회상도(靈山會上圖):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191호 <참고사진>


대광보전(大光寶殿) 비로자나불 불상 뒤에는 충남 유형문화재 제191호로 지정되어 있는 영산회상도(靈山會上圖)가 걸려 있습니다. 영산회상도는 1788년 조성되었으며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영축산에서 설법하는 장면을 그림으로 표현한 것으로. 석가모니 부처님을 중심으로 6대보살, 10대 제자, 용완과 용녀, 사천왕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문화유산답사회 자료>


                                                       대광보전 백의수월관음도(白衣水月觀音圖) <참고사진>


벽면을 가득 채우는 이런 관세음보살상은 고려 말기에 성행하였던 수월관음도 형식이 조선 초기에 후불벽에 그려진 전통을 따른 것으로 보입니다. 한 다리는 내리고 한 다리는 다른 다리에 포게 앉은 반가부좌 자세입니다. 오른쪽 옆의 선재동자가 검소한 바지저고리 차림으로 청조(靑鳥)를 바치고 있습니다. <문화유산답사회 자료>


대광보전의 탱화


앉은뱅이 업장 소멸한 대광보전 내부바닥의 전설 <참고사진>


얼마전까지만 해도 내부 마루바닥 자리를 들춰보면 참나무 껍질로 만든 삿자리가 깔려있었습니다. 전설에 의하면 어떤 앉은뱅이가 불구를 고치려 부처님께 백일기도를 올리려고 찾아왔다가, 기도하는 백일 동안 법당 바닥에 깔 삿자리를 짜겠다고 자청하였답니다. 백일 불공이 끝나고 삿자리도 완성되어, 부처님께 절을하고 돌아나오는데 자신도 모르게  일어서서 걸어 나왔다 합니다. <마곡사 자료>


                        대광보전 활주(活柱)


                       추녀마루 끝 네곳에 활주가 받쳐져 있습니다. 이는 추녀의 처짐을 방지하기위해 받치는 보조기둥입니다.


 활주(活柱)와 방형초석(方形礎石)


대광보전


       

        세조대왕(世祖大王) 연(輦): 충청남도 민속문화재 제14호 <디지털공주문화대전 사진자료>


대광보전 내부에는 조선시대 세조(世祖)가 마곡사에 은신하고 있던 매월당(梅月堂) 김시습(金時習, 1435~1493)을 찾아왔을 때 타고 왔다는 연(輦)으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오층석탑(五層石塔)


                       

                        공주 마곡사 오층석탑(五層石塔): 보물 제799호


마곡사 오층석탑은 원나라의 간섭기인 13세기 말에서 14세기 초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합니다. 탑의 전체적인 형상은 평면의 폭이 좁은 반면 탑신의 높이가 높아 가늘고 긴 모습을 보이고 있어 고려시대 전형적인 석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탑의 전체의 높이는 8.76m 이고, 상륜부에 청동제의 풍마동(風磨銅)이 올려져 있습니다. 5층 지붕돌에는 풍탁(風鐸)이 달려있습니다. <마곡사 자료>


           <마곡사 자료>


                         이층 몸돌에 새겨진 사방불(四方佛)과 일층 몸돌에 새겨진 자물쇠의 모습


사방불(四方佛)은 사방사불을 말하는 것으로 동쪽에는 향적세계의 아촉불(阿閦佛), 서쪽에는 안락세계의 무량수불인 아미타불(阿彌陀佛), 남쪽에는 환희세계의 보상불(寶相佛), 북쪽에는 연화장엄 세계의 미묘성불(微妙聲佛)이 양각되어 있습니다. <마곡사 자료>


                                 풍마동(風磨銅)


상륜부의 청동제 풍마동(風磨銅)은 원나라 말기 라마 불교의 영향을 받은 양식으로 원나라에서 유행하던 라마식불교탑을 절충해 제작하였다는 것이 정설이며, 이러한 양식의 탑은 현재 한국, 인도, 중국 등 세계에 3개 밖에 존재하지 않는 귀중한 탑입니다. <마곡사 자료> 


오층석탑 풍마동다보탑(風磨銅多寶塔)




심검당(尋劍堂)



대광보전 옆 심검당


심검당(尋劍堂):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135호



                                  심검당(尋劍堂) 현판


심검당 현판은 정조 연간에 청백한 관리로 이름난 송하(松下) 조윤형(曺允亨: 1725~1799)의 글씨입니다. 청빈한 그의 인품을 보여주듯 굵직하면서도 날카로운 느낌으로 '심검(尋劍: 자세히 살펴 검사함)'이라는 의미와 상통하는 글씨체입니다.  <마곡사 자료>


 심검당



 

마곡사(麻谷寺) 현판


심검당(尋劍堂)에는 마곡사(麻谷寺) 현판이 걸려있습니다. 마곡사 현판은 근대 서화가인 해강(海岡) 김규진(金奎鎭: 1868~1933)의 글씨입니다. 모든 서법에 자유로왔으며 특히 대필서(代筆書)가 당대에 독보적이었다고 합니다. 현판 양쪽을 초화(草花)와 화회(花繪)로꾸미고 초서(草書)로 썼습니다. <마곡사 자료>


                                             <참고사진>


고방(庫房)




 협문 안에 있는 고방(庫房) 그리고 굴뚝


                        마곡사 고방(庫房):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135호 <공주시 사진자료>


고방(庫房)은 심검당 북쪽에 자리하고 2층 구조로 되어있으며 승려들의 창고로 이용되는 건물인데, 마곡사 고방은 요사(寮舍)에서 필요한 물건을 넣어두는 곳입니다.



조선시대 말 천주교 신자들이 박해를 피해 이곳으로 숨어들어 옹기를 구웠다고 합니다. 그때의 옹기가마 굴뚝을 본떠 진흙과 기와를 써서 굴뚝을 만들었다고 전합니다. <문화유산답사회 자료> 



왼쪽 대광보전(大光寶殿)을 지나 계단을 오르면 대웅보전(大雄寶殿)에 이릅니다.


 대향각: 요사(寮舍)


계단을 오르면 바로 앞에 요사채가 있으며, "그대의 발길을 돌리는 곳"이라고 적혀 있습니다.



대웅보전(大雄寶殿)



대웅보전(大雄寶殿): 보물 제801호


원래의 대웅보전 건물은 임진왜란(1592) 때 불타 없어졌고, 현재의 건물은 1651년(효종 2)에 각순대사(覺淳大師)와 공주목사(公州牧使) 이주연(李奏淵)이 다시 지은 것입니다.  대웅보전은 정면 5칸, 측면 4칸의 아래층과 정면3칸, 측면 2칸의 위층으로 구성된 중층 목조 건물입니다. 재건 당시에는 대웅전(大雄殿)의 용도가 아니라, 경전을 보관하는 대장전(大藏殿)이었습니다. <마곡사 자료>





                                  대웅보전 현판


대웅보전 현판의 글씨가 신라 제33대 선덕여왕 때의 유명한 서성(書聖)이라 일컫는 김생(金生)의 친필이라고 하며, 혹자는 공민왕의 글씨라고 하기도 합니다.




           <마곡사 자료>


대웅보전(大雄寶殿) 불단(佛壇)


왼쪽에 서방의 아미타 부처님, 오른쪽에 동방의 약사여래 부처님을, 중앙에 석가모니 부처님을 모셨으며 모두 목불(木佛)입니다.


대웅보전(大雄寶殿) 목조 삼세불상: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185호 <참고사진> 


대웅보전 내 각각의 불상 뒤에는 후불탱화가 걸려있는데 이를 대웅보전 삼세불회도(三世佛會圖)라고 합니다. 삼세불회도는 모두 비단 위에 채색되었고, 영산회상도(靈山會上圖)를 중심으로 좌측에 미타회상도(彌陀會上圖)와 우측에 약사불회도(藥師佛會圖)를 배치했습니다. 삼세불회도는 각각 중앙에 본존불을 두고 좌우에 보살(菩薩)과 신중(神衆)이 배치된 형식을 취하고 있습니다.


                         통층으로 뚫려있는 내부


내부 싸리나무 기둥에 얽힌 전설 <참고사진>


건물 내부에는 총 8개의 기둥이 있는데, 전면 4개의 기둥은 싸리나무 기둥입니다. 이에 얽힌 전설이 있는데 그 기둥을 안고 기도하면서 돌면 아들을 낳는다고도 하고, 사람이 죽어 염라대왕 앞에 가면 '마곡사 대웅보전의 싸리나무 기둥을 몇 번이나 돌았느냐?'고 물어, 많이 돌았을수록 극락길이 가깝고 아예 돌지 않았다면 지옥으로 떨어진다는 전설이 있어서 사람들이 이 기둥을 붙들고 돌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싸리나무 기둥의 윤기가 자르르하게 난다고 합니다.


 대웅보전 앞 단풍



템플스테이전용관



마곡천 건너 템플스테이 전용관


템플스테이 전용관 지역


템플스테이 전용관 <참고사진>



조사전(祖師殿)



 조사전(祖師殿)


조사전은 역대 조사나 그 종파의 조사스님, 사찰의 창건주, 역대 주지스님 등 해당사찰과 관련하여 후세에 존경받는 스님들의 영정이나 위패를 모신 전각입니다. 사찰에 따라서는 조당(祖堂),  조사당(祖師堂), 국사전(國師殿) 등으로도 부릅니다.



                                  조사전(祖師殿) 현판



조사전 내부 정중앙에는 왼쪽에 범일국사, 오른쪽에 도선국사 그리고 가운데 자장율사의 영정을 봉안하고 있습니다. <참고사진>



조사전 내부에는 많은 조사(祖師)스님들의 영정이 봉안되어 있습니다. <참고사진>



응진전(應眞殿)



 마곡사(麻谷寺) 응진전(應眞殿):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65호


부처와 부처의 가르침을 듣고 깨우침을 얻은 아라한을 함께 모신 전각을 응진전(應眞殿)이라 하기도 하고 나한전(羅漢殿)이라고도 합니다. 나한은 아라한(阿羅漢: Arhan)을 줄인 것입니다. 응진전은 조선 후기의 목조 건축물로 건물의 규모는 다른 불전에 비하여 큰 편은 아니지만 조형적으로 단아한 모습을 보여주며 조선 후기의 기법을 잘 표현하고 있습니다. <마곡사 자료>



                                              응진전 현판


나한(羅漢) 즉 아라한(阿羅漢)은 세상의 존경을 받고 공양을 받을 만한 자격이 있는 존자라는 뜻에서 응공(應供)이라 풀어 말합니다. 번뇌를 끊고 더 이상 생사윤회를 거듭하지 않는 성자로서 최고의 깨달음을 이룬 자이므로 진리에 상응한다는 뜻에서 응진(應眞)이라 풀어 말합니다.




 응진전(應眞殿) 불단(佛壇)


불단의 중앙에는 석가모니불을 봉안했고 좌우에는 각각 미륵보살과 제화갈라보살, 아난존자(阿難尊者)와 가섭존자(迦葉尊者), 16나한을 배치했고, 마지막으로 범천(梵天)과 제석천(帝釋天)을 배치하였습니다.




백범당(白凡堂)



백범당(白凡堂)


마곡사는 대한민국 임시정부 주석이며 독립운동의 지도자이신 백범 김구(金九, 1879 ~ 1949)선생이 1896년 명성황후시해에 대한 분노로 황해도 안악군 치하포나루에서 일본군 장교를 죽이고 인천형무소에서 옥살이를 하다가 탈옥하여 마곡사에 은거할 때  원종(圓宗)이라는 법명으로 잠시 출가하여 수도하였던 곳입니다. 백범당은 당시 백범선생이 머물렀던 공간입니다. <마곡사 자료>


            <마곡사 자료>


백범이 생활하였던 당시 마곡사 심검당



                                              백범당(白凡堂) 현판


1946년 마곡사를 방문했을 때 마을 사람들과 함께 대광보전(大光寶殿) 앞에서 찍은 사진


                                        김구(金九)선생 은거 기념식수


백범 김구선생은 1898년 마곡사를 떠난후, 근 50년만인 1946년 여러 동지들과 이곳을 찾아와 대광보전 기둥에 걸려있는주련의 "각래관세간 유여몽중사(却來觀世澗 猶如夢中事) / 돌아와 세상을 보니 마치 꿈 가운데 일 같구나"라는 능엄경에 나오는 문구를 보고 감개무량하여 그 때를 생각하며 한그루의 향나무를 심어 놓았는데, 지금도 백범당 옆에 푸르게 자라고 있다.





          <마곡사 자료>



범종루(梵鍾樓)




 범종루(梵鐘樓)


2층의 누각(樓閣) 형태로 되어있는 범종루(梵鐘樓)에 비치되는 사물(四物)인 법고(法鼓), 목어(木魚), 운판(雲版), 범종(梵鍾)은 모두 부처님께 예배드릴 때 사용되는 불구(佛具)로서, 우리나라에서는 새벽예불과 사시공양(巳時供養), 저녁예불 때에 사용됩니다.


                                               범종루(梵鐘樓) 현판


 

범종루(梵鐘樓)에 비치된 사물(四物)


불교(佛敎) 사물(四物)은 소리로써 불음(佛音)을 전파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는데 범종은 청정한 불사(佛寺)에서 쓰이는 맑은 소리의 종이라는 뜻이지만 지옥의 중생을 향하여 불음을 전파하고, 법고는 축생의 무리를 향하여, 운판은 허공을 나는 생명을 향하여, 목어는 수중의 어류를 향하여 소리를 내보낸다는 상징적 기능을 가지고 있습니다. <다음백과 자료>


범종루 1층 '운암당'이란 이름의 불교용품판매점



연화당(蓮華堂)




 연화당(蓮華堂), 관음전(觀音殿)



 연화당, 관음전 현판이 걸려있지만 수련회, 강당 등으로 이용하고 있습니다. <참고사진>


 마곡사 템플스테이 문패가 달려있습니다.

 

극락교(極樂橋)


마곡천을 건너 오른쪽으로 들어가면 저승세계를 관장하는 전각들이 있는 영산전 영역입니다.


극락교(極樂橋)



명부전(冥府殿)



 명부전(冥府殿):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64호


명부전(冥府殿)은 일제강점기인 1939년에 건립되었으며, 현재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64호로 지정해 보호하고 있습니다. 정면 3칸, 측면 2칸의 겹처마 팔작지붕 건물이며, 내부는 가운데를 중심으로 3면 벽에 불단을 설치한 다음 불상을 봉안해 두었습니다.



                                                  

                                                   명부전 현판


          <마곡사 자료>


명부전(冥府殿)


                               


 명부전(冥府殿) 내부


명부전은 지장전, 혹은 시왕전(十王殿)이라고도 부르는데 주불(主佛)은 지장보살입니다. 다른 보살상은 화관으로 장식되어 있는데 지장보살만은 승려의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지장보살은 지옥에서 고통을 받는 중생들을 모두 구제하겠다고 한 보살입니다. 왼손에 든 쇠지팡이로는 지옥문을 두드려 열고, 오른손의 구슬로는 어두운 세상을 광명으로 비추겠다는 의지를 나타내고 있습니다. <마곡사 자료>


명부전(冥府殿) 지장보살도(地藏菩薩圖)


 지장보살을 중심으로 무독귀왕과 도명존자, 6보살, 2천왕, 동자와 동녀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시왕(十王)


시왕(十王)은 죽은 자의 영혼이 도달하는 명계(冥界)를 다스리는 죽은 자의 죄업을 심판하는 열 명의 왕입니다.




산신각(山神閣)



 산신각(山神閣) 오르는 계단



 산신각(山神閣) <참고사진>


산신각(山神閣)은 한국 사찰 특유의 전각 가운데 하나이며 산신(山神)은 원래 불교와 관계가 없는 토착신으로 한국불교의 토착화 과정을 알려주는 좋은 증거입니다.


                                         

                                          산신각(山神閣) 현판


산신탱화 <참고사진>


산신각 내부에 모셔진 산신탱화입니다. 일반적으로 산신각(山神閣)에는 호랑이와 노인의 모습으로 묘사한 산신(山神)을 봉안하거나, 이를 탱화(幀畫)로서 도상화한 그림을 모시기도 합니다.



매화당(梅花堂)



 매화당(梅花堂)


매화당(梅花堂)은 스님들의 생활 공간인 요사(寮舍)채로 'ㄷ'자 형으로 조성되어 있으며, 정면 6칸 건물로 앞쪽 5칸 앞쪽을 툇마루로 처리하였습니다. 


                                              매화당(梅花堂) 현판

 

매화당(梅花堂) 정면과 측면 모습


측면 6칸으로 되어있으나 툇마루 끝 벽체는 막았으며 2칸은 정면 6칸과 함께 팔작지붕 건물로 사실상의 본체를 이루고 있고, 나머지 4칸은 2칸의 측면 구조와 함께 맞배지붕 건물로 서로 본채와 이어져 있는 건물입니다.


 매화당(梅花堂)


매화당(梅花堂) 뒷면



흥성루(興聖樓)




흥성루(興聖樓)  <참고사진>


흥성루는 언제 처음 건립했는지 기록이 남아 있지 않습니다. 다만 건축 구조나 양식으로 보아 조선 말기나 일제강점기에 건립되었을 가능성이 큽니다. 흥성루의 규모는 큰 편이어서 영산전 앞에 큰 누각이 있다는 것은 영산전 앞마당에서 사찰의 대규모 행사가 이루어졌으리라는 추측을 하게 합니다. 대규모 사찰 행사 때 흥성루는 강당 기능을 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다음백과>

 흥성루(興聖樓) 현판



흥성루(興聖樓)


정면 5칸, 측면 3칸의 홑처마 맞배지붕입니다. 내부는 하나의 통칸으로 되어 있으며, 사찰 행사 때 활용할 수 있도록 만들었습니다. 앞면 각 칸에는 장판문을 달아 외부와 시각적으로 차단시켰습니다. 창호는 앞면에만 두고 양 측면은 벽체로 마감하였습니다.


 

흥성루(興聖樓) 뒷면 <참고사진>



영산전(靈山殿)


 

영산전(靈山殿): 보물 제800호


영산(靈山)은 부처님이 『법화경』을 설법하던 곳으로 불교의 성지(聖地) 영취산(靈鷲山)의 준말로 이곳에 참배함으로써 사바세계(娑婆世界)의 불국토인 영산회상(靈山會上)에 참배하는 것이 됩니다. <마곡사 자료>



 영산전(靈山殿) 현판과 주련


                                 

                                   영산전(靈山殿) 현판


현판은 조선시대 7대 왕 세조(世祖)가 쓴 글씨라는 이야기가 전합니다. 세조는 '금오신화'를 쓴 매월당 김시습이 이 절에 머문다는 말을 듣고 찾아왔는데, 정작 김시습은 만나지 못하고 글씨만 남기고 갔다고 하며 그때 그글씨가 이 영산전 현판이라는 것입니다.


 


영산전(靈山殿) 불단(佛壇) <참고사진>


영산전(靈山殿) 불단에는 비바시불(毘婆尸佛), 시기불(尸棄佛), 비사부불(毘舍浮佛), 구류손불(拘留孫佛), 구나함불(拘那含佛), 가섭불(迦葉佛), 석가모니불(釋迦牟尼佛)의 과거칠불과 현겁의 천불을 봉안하고 있습니다.


공주 마곡사 영산전 목조칠불좌상: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238호 <참고사진>



영산전(靈山殿)


절 한켠에 조용히 자리잡은 영산전(靈山殿)이 마곡사(麻谷寺)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입니다. 정면5칸, 측면 3칸으로 납작한 단층 맞배지붕 건물입니다. 임란 뒤에 중수했던 효종2년(1651)에 지어졌으면서도 조선 초기 집의 요소를 많이 지니고 있습니다.


     영산전(靈山殿) 측면 <참고사진>


앞쪽은 겹처마이고 뒤쪽은 홑처마이며 지붕 길이도 같지 않아 옆에서 보면 앞으로 올린 느낌을 주어 건축적으로 매우 독특하여 보물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군왕대(君王臺) <참고사진>


군왕대는 조선 7대왕 세조(世祖)가 마곡사에 행차해  '만세불망지지(萬世不忘之地)'라 극찬하고 풍수지리가들이 천하의 대혈(大穴)이라 감탄했던 곳이기도 합니다.



수선사(修禪舍)


 수선사(修禪舍): 요사채





                                            

마곡사(麻谷寺) / 공주(公州)

(2018.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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