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사와 여행(국내)/강원도

강릉(江陵) / 신복사(神福寺) 터

케인스 2013. 7. 30. 22:58

 

 

                          강릉(江陵) / 신복사(神福寺) 터

 

 

 

신복사(神福寺) 터 가는 길

 

 

                                                                                                                  <google자료사진>

 

신복사지(神福寺址)는 강원도 강릉시 내곡동 403번지 일대에 분포하고 있습니다. 이 지역은 강릉시내에서 내곡동의 관동대학교 방향으로 가다보면 강릉시 보건소에 못 미쳐 좌측으로 진입하는 작은 길이 나오는데, 이 좁은 길을 따라가다 보면 삼층석탑과, 석조보살좌상이 위치하고 있으며, 이 주변일대가 신복사지입니다.

 

 

신복사(神福寺) 터

 

 

강릉(江陵) 신복사지(神福寺址)

 

신복사(神福寺)는 통일신라 850년(문성왕12)경에 범일국사(梵日國師)가 창건했다고 전하는데 명확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창건과 관련된 설화가 전해지고 있는데, 즉 신라의 한 처녀가 우물에 비친 햇빛을 보고 그 물을 마셨는데 곧 아이를 배어 낳게 되었습니다. 집안사람들이 아이를 내다 버렸으나, 아이의 주위로 빛이 맴돌아 괴이하게 여겨 다시 데려와 길렀는데, 그 이름을 범(梵)이라 하였습니다. 범이 출가하여 승려가 된 후 고향에 돌아와 신복사(神福寺) 와 굴산사(堀山寺)를 창건하였다고 합니다.

 

 

신복사지(神福寺址) 발굴조사 결과 가람의 배치는 삼층석탑 뒤에 금당지, 탑 좌·우측에 회랑지가 있는 전형적인 고려시대 형식이며, 또한 신복사지의 방향이 북서향을 하고 있어 자연지형을 그대로 이용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따라서 신복사지의 가람배치나 출토유물로 보았을 때 신복사지는 고려시대의 사찰로 추정되며, 폐사는 조선시대 중기로 판단됩니다. 이곳에서 출토된 기와에서 ‘神福(신복)’, ‘神福寺(신복사)’라는 명문와가 출토되어 이 지역이 신복사임을 밝혀주었습니다.

 

  신복사지(神福寺址) 발굴 조감도 <자료사진>

 

신복사지(神福寺址) 발굴 조사결과 건물지 3기, 석축 1기, 구들시설 1기가 3층 석탑 주변으로 집중되어 확인되었습니다.

 

신복사지(神福寺址) 발굴 현장<자료사진>

 

신복사지(神福寺址) 유구(遺構)

 

신복사지(神福寺址) 유구(遺構)                                         

 

 

 

신복사지에는 삼층석탑(보물 제87호)과 석조보살좌상(보물 제84호)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신복사지 삼층석탑(神福寺址 三層石塔)과 석조보살좌상 (石造菩薩坐像)

 

 

 

 

 

신복사지(神福寺址) 삼층석탑(三層石塔)

 

 

 

                

                 신복사지 삼층석탑(神福寺址 三層石塔)

 

보물 제87호인 신복사지 삼층석탑(神福寺址 三層石塔)은 통일신라말 또는 고려초기에 축조된 것으로서 이중 기단위에 세운 각부의 조각 수법이 특이합니다. 이 탑의 전체 모습은 높이에 비해 폭이 넓어서 안정감을 주며, 층층이 끼어 있는 별도 판석 때문에 균형이 잡혀 있습니다.  이 판석의 쓰임은 목조건축에서 난간이 퇴화되면서 석탑에 상징적으로 나타난 형식으로 해석됩니다.

 

                     

 

이 탑은 화강암으로 만들어 높이가 4.5m이며, 네모진 2중기단위에 삼층으로 축조되었으며, 2층 옥신(屋身)은 4개의 우주(隅柱 - 기둥)가 새겨졌고 2층부터는 옥신의 높이가 급격히 줄어들어 각층 옥개석 위에 놓인 괴임들과 거의 같은 두께가 되고 있습니다.

 

                     

 

옥개석의 경사는 완만하고 추녀 끝은 살짝 들린 듯 하늘로 솟아 있습니다. 3층 옥개석 위에는 노반(露盤), 복발(覆鉢), 앙화(仰花), 보주(寶珠)가 차례로 놓여있습니다. 앙화에는 꾸밈없는 연꽃이 조각되어 있습니다.

 

 

탑신에는 부처의 사리나 불경 등을 모셔두는데, 1층의 몸돌에 이를 안치하는 방인 감실(龕室)모양의 조각이 있습니다.

 

복련(覆蓮)과 안상(眼象)


넓은 지대석위에 각면 각각 6개씩 사면에 24개의 복련(覆蓮 - 연꽃잎이 아래로 향해지게 새긴 것)을 둘러 새겼고, 하대중석(下臺中石)의 4면에는 각각 3구의 안상(眼象 - 코끼리의 눈처럼 생긴 모양)을 조각하였습니다.


                    

 

탑의 앞쪽에는 한 쪽 무릎을 세우고, 두 손을 받치듯이 들고 있는 보살석상(보물 제84호)이 있습니다. 이러한 모습은 같은 강원도 내의 월정사 팔각구층석탑(국보 제48호)과 비슷하여 이 지방의 특색이 아닐까 짐작됩니다.

 

 

신복사지(神福寺址) 석조보살좌상(石造菩薩坐像)

 

 

 

 

신복사지 삼층석탑(神福寺址 三層石塔)의 앞쪽에는 한 쪽 무릎을 세우고, 두 손을 받치듯이 들고 있는 화강암 재질의 높이 1.21m, 갑석높이 22㎝, 대좌높이 22㎝의 보살석상(보물 제84호)이 있습니다.

 

신복사지 석조보살좌상 (神福寺址 石造菩薩坐像)                   

 

이 보살상(菩薩像)은 신복사지삼층석탑(보물 제87호) 앞에 왼쪽 다리를 세우고 오른쪽다리를 꿇어앉은 자세의 화강석으로 된 불상으로 고려초기에 조각된 것으로 추측되며, 높다란 원통형의 관 위에 팔각형의 갓 같은 것을 쓰고 있으나 원래 석등의 옥개석(屋蓋石 : 석등이나 석탑의 지붕처럼 생긴부분)을 올려놓은 것으로 추정됩니다.

 

                    

 

천의(天衣)속으로 풍만한 몸의 굴곡이 뚜렷하고 천의의 조각수법은 투박스러우나 두 어깨에 내려진 자연스러운 자락은 몸의 굴곡을 따라 사실적으로 묘사되어 있습니다. 팔지, 목걸이, 옷 주름은 굵은 띠로 표현하였고 두 다리사이의 옷자락에는 직경 4cm 가량의 촉대(燭臺)같은 것이 두 개 있는데 원래의 모양은 알 수 없으나 청동간(靑銅竿)같은 것이 남아있는 것으로 보아 손에 든 지물(持物)과 관련 있는 것으로 추정됩니다.

     

 

이 보살상은 얼굴이 풍만하고 얼굴에 가득한 미소는 자비롭게 보이며 크고 둥근 눈썹, 살며시 감은 눈, 작은 입, 풍만한 얼굴, 크고 둥근 턱과 조화를 이루어 솜씨가 빼어나다. 관 밑에는 마치 새끼를 꼰 것 같은 머리카락이 둘러 있으며, 어깨 너머로 길게 늘어져 있습니다.

 

                     

 

보살이 앉아있는 대좌(臺座)는 윗면을 둥글게 하여 보살이 앉을 수 있도록 하였으며, 바깥쪽에는 큼직큼직하게 2겹의 연꽃잎을 조각하였습니다. 규칙적인 간격의 옷주름과 단순해진 장신구, 대좌의 조각수법 등에서 화려한 신라적 요소가 사라지고 고려초기의 둔화된 표현양식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전체적으로 둥글고 둔중한 조각수법을 보입니다. 이러한 자세나 조각솜씨는 월정사 팔각구층석탑(국보 제48호)앞의 공양보살상과 흡사하여 같은 유파의 걸작품으로 평가되지만 월정사보살상보다 좀 더 자연스럽고 활달한 것으로 보아 시대가 앞선 것으로 보입니다.

 

         [위의 해설들은 문화재청, 강릉문화원, 강릉시청의 자료를 참조하였습니다]

 

 

  

 

 

                            강릉(江陵) / 신복사(神福寺) 터

                          2013. 06. 2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