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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江陵) / 향교(鄕校)

케인스 2013. 7. 21. 14:12

 

 

                               강릉(江陵) / 향교(鄕校)

 

 

 

강릉향교(江陵鄕校) 가는 길

 

 

                                                                                                                       

                                                                                                                       <google자료사진>

 

                                                                                                                               <자료사진>

 

강릉향교(江陵鄕校)는 조선시대에 조성되었으며, 강릉역 서쪽의 강릉시 교동에 있는 강릉명륜고등학교 내에 위치하고  강원도유형문화재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강릉향교(江陵鄕校)

 

 

 

 

 강릉향교(江陵鄕校) 전경 <참고사진>

  

강릉향교(江陵鄕校)는 고려 충선왕5년(1313) 화부산(花浮山) 기슭에 건립되었으나, 조선 태종11년(1411)에 화재로 소실되어, 2년 뒤 강릉도호부(江陵都護府) 판관(判官) 이맹상과 지방유림 68명의 건의로 새로 지어졌으며 뒤에 수차례 수리를 거듭하여 오늘에 이르렀습니다.

 

       강릉향교(江陵鄕校) 경내배치도 <자료사진>

 

강릉향교(江陵鄕校)는 화부산(花浮山) 아래 경사진 곳에 위치하여 위쪽에는 제향공간인 대성전(보물 제214호)을, 아래쪽에는 강학공간인 명륜당을 배치한 전학후묘(前學後廟)의 형태를 하고 있는데, 경내에는 공자와 성현들의 제사를 지내는 공간인 대성전(大成殿), 위패를 모신 동무(東廡)와 서무(西廡), 연결 통로인 회랑(回廊)과 월랑(月廊), 명륜당(明倫堂: 공부하는 강당), 기숙사인 동재(東齋)와 서재(西齋) 등이 잘 보존되어 있습니다.

 

 

     강릉향교 평면도  <자료사진>

 

제향공간에는 대성전을 중심으로 양쪽에 동무와 서무가 있고, 이를 연결하는 통로인 회랑이 있다. 대성전에는 공자를 비롯하여 안자와 자사·증자·맹자를 모시고 있으며, 동·서무에는 중국과 우리나라 유학자를 모시고 있다. 학생들이 모여서 공부하는 강당인 명륜당은 2층 누대 형식의 건물로, 아래층은 기둥만 세우고 벽을 쌓지 않아 통로로 이용하도록 하였습니다. 이 외에 학생들의 생활공간인 동·서재와 부속건물 등이 남아있습니다.

 

강릉향교(江陵鄕校) 입구

 

향교는 당시 초등교육장인 서당 공부를 마친 선비들이 공부하던 중등교육장으로 지방 최고 교육기관이었습니다. 이곳에서 수학하면 사마시(司馬試)에 응시할 자격을 갖게 되며, 사마시에 합격하면 진사나 생원의 칭호를 받게 됩니다. 생원, 진사가 되면 서울의 성균관에 들어가 문과시(文科試)에 응하여 고급관위에 오르게 됩니다.

 

    

   안내판

 

향교 입구의 홍살문(紅箭門)


홍살문의 원음은 홍전문(紅箭門)이며,
두 개의 기둥을 하고 그 사이로 붉은 살을 해 놓은 홍살문은 왕릉, 향교 등에서 사악한 기운을 막아내고, 악귀를 쫓는 풍수적 기능을 하는 문입니다.

 

강릉명륜고등학교 정문[강릉향교 입구]

 

한국의 향교 가운데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하는 강릉향교는 대성전에 공자를 비롯해 공자의 제자인 안자, 증자, 자사자, 맹자 등 제4성과 공문 십철, 송조육현, 아국십팔현 등 우리나라 향교 가운데 유일하게 136위(位)를 봉안하고 있는 곳입니다.

 

강릉향교(江陵鄕校) 정면

 

강릉향교(江陵鄕校)는 순종3년(1909)에는 화산학교(花山學校)를 설립하여 신학문을 교육하던 중 1910년 일제에 의하여 폐교되었으나, 그 후 강릉농업학교, 강릉공립상업학교, 강릉공립여학교, 옥천초등학교 등이 개교하였고, 현재는 명륜고등학교를 설립하여 운영하고 있습니다.

 

             강릉향교(江陵鄕校) 옛사진 <참고사진>

 

조선시대에는 나라로부터 토지와 책·토비 등을 지급 받아 운영하였으나, 현재는 교육적 기능은 없어지고 제사의 기능만 남아있습니다.  

 

 

  

 공부자성적도(孔夫子聖蹟圖) <참고사진>

 

강릉향교(江陵鄕校)에 소장되었던 책은 한국전쟁으로 대부분 불타 없어졌으며, 현재『공부자성적도(孔夫子聖蹟圖)』등 70여 권만 남아있습니다.

 

 

향교의 정문(正門)

 

강릉향교(江陵鄕校)는 지방향교로는 그 규모가 웅장한 편이고, 한국전쟁 때에도 건물이 피해를 입지 않아 옛 규모와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향교입니다.

 

향교의 협문(夾門)

 

협문(夾門) 옆에는 행단(杏壇)이라는 표지석이 있습니다. 향교에는 공자님의 상징인 은행나무를 심었는데 이는 공자께서 제자들에게 은행나무 밑에서 가르침을 주었고, 가르침을 준 단을 '행단(杏壇)' 이라 하였는데, 향교가 유교교육의 상징인 '행단(杏壇)'의 의미를 가지기에 표지석을 세웠습니다.

                                   

 진학문(進學門)과 강릉향교 표지석

 

협문(夾門)을 들어서서 향교의 경내로 들어서면 진학문(進學門)과 강릉향교 표지석이 나타납니다. 왼쪽으로 가면 명륜당(明倫堂) 건물입니다.

 

 

명륜당(明倫堂)

 

 

명륜당(明倫堂)

 

강원에 해당하는 명륜당이 맨 아래쪽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보통 평지에 공간을 배치할 때는 동재, 서재 -→ 대성전 -→ 명륜당 순으로 배치 하지만, 강릉 향교처럼 비탈진 곳에 건물을 배치할 경우에는 맨 윗쪽에 대성전 -→ 동재, 서재 -→ 명륜당 순으로 배치하기도 합니다.

 

명륜당(明倫堂)

 

명륜당(明倫堂)은 학생들이 모여서 공부하는 강당으로 정면 11칸, 측면 2칸의 맞배지붕, 홑처마, 2층 누대 형식의 건물로, 아래층은 기둥만 세우고 벽을 쌓지 않아 통로로 이용하도록 하였습니다.  

 

명륜당(明倫堂) 내부  <참고사진>

 

명륜당(明倫堂) 내부에는 통칸의 대들보가 건너가고 바닥은 마루이며 동쪽 끝은 방으로 꾸몄습니다. 사진은 강릉향교 700년사지(七百年史誌) 출판기념식[2013.7.8] 때의 참고사진입니다.

 

명륜당(明倫堂)

 

명륜당(明倫堂)은 향교의 교육기능을 수행하던 강학(講學) 장소로서 서당 공부를 마친 학생들을 동·서재(東·西齋)에 기숙하게 하고, 유교 경전을 중심으로 선비정신과 인격을 연마하는 장소로 사용되었습니다.

 

명륜당(明倫堂) 뒷면

 

매일 새벽에 북이 울리면 동·서재에 기숙하는 학생들은 명륜당 아래에 늘어서서 한 번 읍(揖)한 뒤 당(堂)에 올라 유교경전을 중심으로 강학을 하였습니다.

 

명륜당(明倫堂) 뒷면

 

 

공부자묘정비(孔夫子廟庭碑)

 

 

 

   

     공부자묘정비(孔夫子廟庭碑) 위치 <참고자료>

 

                 공부자묘정비(孔夫子廟庭碑)


명륜당 앞에는 공부자묘정비(孔夫子廟庭碑)가 서있습니다.

 

                     

                  공부자묘정비(孔夫子廟庭碑)


공자(孔子)의 행적을 기리기위해 세웠으며 비문(碑文)은 당나라 말기 최고의 문필가인 피일휴(皮日休)가 지었고, 김진백(金振伯)이 글씨를 썼습니다. 전면에는 예서체로 '공부자묘정비(孔夫子廟庭碑)'라는 비제(碑題)가 새겨져 있습니다.

 

         공부자묘정비(孔夫子廟庭碑) 앞면과 뒷면 <참고사진>                                                   

 

공부자묘정비(孔夫子廟庭碑)의 이수(螭首)  <참고사진>

 

  공부자묘정비(孔夫子廟庭碑) 내용 [강상규씨 번역] <참고자료>

 

 

진학문(進學門)

 

 

       진학문(進學門) 위치 <참고자료>

 

                      진학문(進學門)

 

대성전(大成殿)으로 가기위해서는 진학문(進學門)을 지나 왼쪽으로 진입해야 합니다.

 

진학문(進學門) 현판 <참고사진>

 

 

대성전(大成殿)

 

 

대성전(大成殿)

 

대성전(大成殿)에는 공자를 비롯해 중국 성현들의 위패를 모시고 있으며, 보물 제214호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강릉향교 중 제사를 지내는 공간의 중심 건물인 대성전(大成殿)은 1485년 향교 중수 논의가 있었으며1488년에 완공되었다고 합니다. 그 후 여러 차례 중수되었으나 많은 부분이 조선 초기 당시의 수법을 확인할 수 있어 성종 때(1485~1488)의 건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대성전(大成殿) <참고사진> 

 

대성전(大成殿)은 정면 5칸 측면 3칸 규모의 단층 주심포계 맞배지붕 건물입니다.

 

                      

                      대성전(大成殿) 정면 툇칸 <참고사진>

 

정면 1칸은 제향 시 배례공간으로 활용하기 위하여 벽체 없이 퇴 형식으로 개방 하였습니다.

 

                                                                                                                        <참고자료>

 

대성전에는 공자(孔子)를 남향으로 주향(主享)하고, 4성(四聖)인 안자(顔子)와 자사(子思)를 동쪽에, 증자(曾子)와 맹자(孟子)를 서쪽에 배향(配享)하고 있으며, 그 동서쪽에는 공자 제자 중 10철(哲)과 송나라 6현(賢)을 각각 8위씩 배향하고 있습니다.  

 

 

대성전(大成殿) 건물바른층 쌓기한 두벌대 기단 위에 툇간까지 전돌을 깔았으며, 내부에는 화강암 박석을 깔았습니다. 정면 5칸 중에 좌우 각 한 칸씩은 벽으로 처리하고 중앙의 3칸은 빗살무늬 여닫이 2짝 창호로 처리하였습니다. 좌우에 풍판이 있고 홑처마로 되어 있습니다.

<참고사진>

 

기단 정면에는 계단을 두지 않고 좌우기단에 하나씩 계단을 두었습니다. 전면 중앙에는 최근에 만든

신도석과 좌우에 관세대를 설치하였습니다.

 

신도석(神道石) <참고사진> 좌,우의 관세대(盥洗臺)

 

                      

                     

                      가운데 길은 신(神)만이 이용하는 신도(神道)입니다.

 

         

                                                                                                                   <참고사진>

 

초석은 자연석을 상면을 평평하게 다듬은 것과 굴곡면을 그대로 사용한 것이 있으며 원형주좌, 방형주좌를 새긴 것도 있습니다. 기둥은 평주, 고주 모두 원형 기둥에 배흘림을 하였습니다.

 

                    

기둥 하부를 회색과 검은색으로 마감하여 엄숙함을 더하고 있습니다.

 

대성전 현판 <참고사진>

 

                                                         대성전 외부 공포 <참고사진>

  

단청은 대들보 등 중요 부재의 끝에는 머리초를 베푼 모로단청을 하였습니다.

 

                                                                                                                            <참고사진>

 

벽체는 회사벽 형식이나 전면 퇴칸의 서측면은 판장벽으로 처리하였으며 우측은 벽체 없이 개방하였다. 전면 벽체 중 퇴칸을 제외한 어칸과 좌우협칸에는 판문 대신 2짝씩의 교살창을 달았다. 양 측면 어칸에는 채광과 환기를 위한 긴 정자살창을 두었다.              

 

        

                                                                                                                  <참고사진>

 

홑처마 지붕이나 용마루에는 양성을 사용하여 격을 높이고 있다. 박쥐문, 연화문, 봉황문, 범자문 등 7종의 숫막새와, 인동당초문, 용문의 암막새를 사용하였으며 봉황문의 망와를 사용하였습니다.

 

              

              대성전 평면도 <참고자료>

 

대성전(大成殿) 내부 <참고사진>

 

대성전(大成殿) 내부 정위(正位)에는 공자(孔子)의 신주(神主)를 모시고 뒤에는 공자의 영정(影幀)을 두었습니다.

 

                      

                  공자(孔子)의 신주(神主)와 영정(影幀) <참고사진>

 

석전대제(釋奠大祭) <참고사진>

 

강릉향교에서는 일년에 두 번[봄, 가을] 대성전 뜰에서 향교에 모셔져있는 공자(孔子) 및 성현들에게 제사를 모시는 석전대제(釋奠大祭)를 개최하고 있습니다.

 

 

동무(東廡)와 서무(西廡)

 

 

동무(東廡)

 

동무(東廡)에는 중국의 선현과 우리나라의 9현을 합하여 58위의 신주를 모시고 있으며, 서무에는 중국의 선현과 우리나라 9현을 합하여 57현을 각각 모시고 있습니다.

 

        동무(東廡)에는 모셔진 선현들의 위패함 <참고사진>

 

서무(西廡)

 

현재 다른 지역의 향교는 동·서무(東西廡))에 있는 중국과 우리나라 유학자의 위패를 대성전에 함께 모시거나 철거하였는데, 강릉향교에서는 아직도 조선시대의 양식 그대로 모시고 있습니다.

 

    서무(西廡)에는 모셔진 선현들의 위패함 <참고사진>

 

 

월랑(月廊)

 

 

 

월랑(月廊) 안쪽

 

월랑(月廊)은 명륜당과 동.서재, 대성전, 동.서무를 하나로 묶어 주므로써 성현들과의 일체감을 느끼게 하고 있습니다.

 

월랑(月廊) 바깥쪽

 

 

동재(東齋)와 서재(西齋)

 

 

(東齋) <참고사진>

 

향교에서 강학을 받는 학생들은 동·서재(東·西齋)에서 기숙하면서 공부를 하게됩니다.

동서재는 각각 전면 5칸과 측면 2칸의 규모를 갖추고 있습니다.

 

                      (東齋)

 

(西齋)

 

동서재는 각각 전면 5칸과 측면 2칸의 규모를 갖추고 있습니다.

 

 

재방(齋房)과 신고(神庫)

 

 

    

        재방(齋房)과 신고(神庫) 위치 <참고자료>

 

                                                                                                                           <참고사진>

 

재방(齋房) <참고사진>

 

재방(齋房)은 춘, 추 석전대제(釋奠大祭) 때 헌관들이 재계(齋戒)를 행하던 곳입니다.

 

 신고(神庫)와 입구 문

 

입구의 문을 중심으로 왼족의 칸은 주고(酒庫: 술 보관 창고)이며 오른쪽 칸은 육고(肉庫: 고기를 보관하는 창고)인데 일년에 봄, 가을 두번 제향을 지낼 때 술과 고기를 보관하는 곳입니다.

 

 

향관청(享官廳): 천운정사(天雲精舍)

 

 

     천운정사(天雲精舍) 위치 <참고자료>

 

천운정사(天雲精舍) 입구

 

                

                 천운정사(天雲精舍) <참고사진>

 

향교의 동쪽에 위치하는 천운정사(天雲精舍)는 정면 7칸, 측면 3칸 규모의 팔작지붕 건물입니다. 향교를 관리하는 인원이나 제향 때 제관(祭官)들이 머무는 곳입니다.

 

    

    천운정사(天雲精舍) 현판 <참고사진>

 

천운지(天雲池)

 

천운정사(天雲精舍)의 남쪽에는 "천운지(天雲池)"가 조성되어 있습니다.

 

 

 

                                         강릉(江陵) / 향교(鄕校)

                                                      2013. 06.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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