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선전(奉先殿)
중국 북경(北京)/자금성, 내정(內廷)의 봉선전(奉先殿) 지역
☞ 봉선전(奉先殿) 지역
봉선전(奉先殿) 지역 <참고사진>
봉선전(奉先殿)지역 위치 <참고사진>
봉선전(奉先殿) 지역 위성 사진 <google참고사진>
봉선전(奉先殿) 지역 <참고사진>
봉선전(奉先殿) 지역 사진 <참고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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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선전(奉先殿) 구역
봉선전(奉先殿) 구역 <참고사진>
봉선전(奉先殿)은 후삼궁의 동쪽, 동육궁(東六宮)의 동남쪽에 위치하며 황실의 가묘(家廟)입니다.
봉선전(奉先殿) 구역 <google참고사진>
공자형(工字形) 건축 <google참고사진>
봉선문(奉先門) 안쪽의 봉선전(奉先殿)은 공자형(工字形)으로 지어졌으며 사방을 높은 담장으로 둘렀고 앞쪽에 전전(前殿)인 정전(正殿) 즉 봉선전(奉先殿), 뒤에는 후전(後殿)으로 조성하였습니다. 전전(前殿)과 후전(後殿)은 위 사진의 타원형 선 안과 같이 내부통로[천당(穿堂)]로 서로 통하게 연결하여 지었습니다.
▶ 성숙문(誠肅門)
성숙문(誠肅門) <참고사진>
봉선전(奉先殿)을 가기 위해 성숙문(誠肅門)을 지나 봉선문(奉先門)으로 들어서야 합니다.
성숙문(誠肅門) <참고사진>
종표관(鐘表館)이란 문패가 붙어있는데 이는 현재 자금성이 소장하고있는 시계들을 봉선전 안에서 전시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 봉선문(奉先門)
봉선문(奉先門) <참고사진>
성숙문(誠肅門)을 들어서면 넓은 뜰이 나타나고 왼쪽으로 봉선문(奉先門)이 있습니다. 봉선문(奉先門)에는 현판이 붙어 있지 않는 것으로 보아 대문의 정식 명칭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편의상 봉선문(奉先門)으로 부르는 듯 합니다.
봉선문(奉先門) <참고사진>
봉선문(奉先門) 장식 <참고사진>
봉선문(奉先門) 장식 <참고사진>
봉선문(奉先門)과 봉선전(奉先殿) <참고사진>
▶ 봉선전(奉先殿)
봉선전(奉先殿) <참고사진>
봉선전(奉先殿)은 명(明), 청(淸) 황실의 조상에 대한 제사를 지내던 가묘(家廟:황실의 사당)입니다.
가정제(嘉靖帝) <참고사진>
명(明) 11대 황제 가정제(嘉靖帝)가 그의 아버지[홍치제(弘治帝)의 이복동생인 흥헌왕]의 위패를 모시기 위해 지었습니다. 청(淸) 순치14년(1657)에 중건 하였으며 그 후에도 여러차례 수리한 바 있습니다.
<참고사진>
청(淸) 제도에 따르면 삭망(朔望:음력 초하루와 보름), 만수성절(萬壽聖節:황제 탄신일), 원단(元旦:정월 초하루) 그리고 국가에 큰 경사가 있을 때에는 전전(前殿)에서 큰 제사[大祀]를 지냈습니다.
봉선전(奉先殿) 후전(後殿) <참고사진>
한편 황후의 생일, 기신(忌辰:제사일), 상원절(上元節:정월보름), 청명(淸明:24절기의 하나로 4월5일경), 중원(中元:백중으로 7월15일), 상강(霜降:24절기의 하나로10월23일경) 등에는 후전(後殿)에서 향(香)을 올리는 제사의식을, 또한 휘호(徽號:황후가 죽은 후 올리는 존호), 책립(冊立:황태자나 황후를 봉하는 일), 책봉(冊封), 어경연(御經筵), 경작(耕藉), 알릉(謁陵:능에 가뵙는 일), 순수(巡狩:황제가 나라 안을 두루 보살피며 돌아다님) 등을 행할 때는 후전(後殿)에서 기고제(祈告祭)를 행하였습니다.
<참고사진>
전전(前殿)인 봉선전(奉先殿)은 정면 9칸, 측면 4칸의 황색유리 기와지붕의 2중처마로 지어졌으며, 금선을 그려넣은 색채로 단청하였습니다. 앞쪽 5칸의 문은 열릴 수 있도록 되어 있습니다.
단청 <참고사진>
전문(殿門) <참고사진>
잡상(雜像) <참고사진>
<참고사진>
봉선전의 앞 뜰에는 삼도(三道)가 조성되어 있으며, 답도(踏道) 또한 설치되어 있습니다. 답도 양쪽으로는 동항(銅缸) 한쌍이 비치되어 있습니다.
답도(踏道) <참고사진>
답도(踏道)와 동항(銅缸) <참고사진>
<참고사진>
전전(前殿)의 월대는 40mX12m, 월대 사방 주위에는 난간이 설치되어 있고 계단과 기단을 빙둘러 용봉문양이 조각된 망주(望柱)가 있습니다.
망주(望柱) <참고사진>
봉선전(奉先殿)의 명칸(明間) <참고사진>
봉선전(奉先殿) 현판 <참고사진>
● 현재의
봉선전(奉先殿) 내부
봉선전(奉先殿)의 내부 <참고사진>
원래의 봉선전 내부 모습은 없고 지금은 자금성에 소장되어있는 시계를 전시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대문에는 종표관(鐘表館)이라는 문패가 달려 있습니다.
봉선전(奉先殿)의 내부 <참고사진>
<참고사진>
원래 천장에는 연꽃과 수초문으로 그려진 천화(天花)로 장식되어 있었습니다.
단청 공사 후의 천장 <참고사진>
전내(殿內)에 깔아놓은 벽돌 바닥재인 금전(金磚) <참고사진>
기둥받침돌[주초석(柱礎石)] <참고사진>
● 과거의 봉선전(奉先殿) 내부
과거에 사용한 것으로 추정되는 보좌(寶座)들 <참고사진>
원래 봉선전(奉先殿)의 전전(前殿)은 제사를 지내기 위한 공간이었습니다. 내부에는 금칠된 용봉문이 조각된 신(神)을 위한 보좌(寶座)가 있었고, 변두안(邊豆案: 제사음식을 담는 그릇을 올려놓는 상), 향백안(香帛案: 향과 폐백을 올려놓는 상), 축안(祝案: 축문을 올려 놓는 상), 준안(尊案: 술그릇과 술잔을 올려놓는 상) 등이 배치되어 있었습니다.
장춘(長春)에 있는 만주국(滿洲國) 황궁(皇宮)의 봉선전(奉先殿)내부 모습 <참고사진>
제사를 지낼 때에는 후전(後殿)에 보관되어 있는 신위패(神位牌)를 전전(前殿)으로 옮겨 보좌 위에 안치하게됩니다. 또한 제기, 향, 축문 및 각종 제수를 진열하게 됩니다.
▶ 봉선전(奉先殿) 후전(後殿)
봉선전(奉先殿) 후전(後殿) <참고사진>
후전(後殿)은 정면 9칸, 측면 2칸 황유리 기와지붕의 건물로서 처마에 색채 단청을 칠하였습니다.
봉선전(奉先殿) 후전(後殿) 모습 <참고사진>
후전(後殿)은 태조(太祖) 이후의 제후(帝后)의 신위(神位)를 보관하던 곳입니다.
제후신위위차도(帝后神位位次圖) <참고사진>
가경(嘉靖) 시기 봉선전(奉先殿) 후전(後殿)의 제후신위위차도(帝后神位位次圖)입니다. 봉안(奉安)된 신위의 배열은 아래와 같습니다.
太祖高皇帝:中室
太宗文皇帝:左室
世祖章皇帝:右室
圣祖仁皇帝:左第二室
世宗宪皇帝:右第二室
高宗纯皇帝:左第三室
전내(殿內)에는 『동전이실(同殿異室)』이라 하여 매 칸이 나누어져 있으며 각 실에는 위패를 모시는 신감(神龕), 보좌(寶座), 보상(寶床), 보의(寶倚), 옷걸이 등이 있었습니다. 청(淸)이 멸망할 때에는 모두 33개의 황제와 황후의 위패가 있었다고 전합니다.
현재의 후전(後殿) 내부 모습 <참고사진>
장춘(長春)에 있는 만주국(滿洲國) 황궁(皇宮)의 봉선전(奉先殿) 감실(龕室) 모습 <참고사진>
후전(後殿)에는 감실(龕室)이 있어 돌아가신 조상들의 혼(魂)이 지내는 침실, 상(床), 의자, 신감(神龕) 등이 있었습니다. 신감(神龕)은 신위패를 보관하는 작은 함(函)으로 제사를 올릴 때는 봉선전으로 옮겨서 의식을 진행합니다.
▶ 기타
<참고사진>
봉선문(奉先門) 밖 남쪽에는 방 13칸의 긴 건물인 남군방(南群房)이 있는데, 신고(神庫: 신을 위해 제사 때 이용되는 기물들을 보관하는 창고), 신주(神廚: 신을 위해 음식을 만드는 주방) 등의 용도로 이용되었으며, 그 동쪽에는 작은 정원이 있습니다. 정원 북쪽에는 3칸의 소전(小殿)이 있습니다.
봉선전(奉先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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