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3 (2007.09.13)
보라! 天王峰에 올랐노라.
새벽의 세석 앞 정경(情景)
세석대피소 출발(06시30분경)
촛대봉(1,703m)
촛대봉이란 이름이 붙게 되면 촛불을 꽂는 촛대를 연상케 하는 입석이 있기 마련인데, 이 곳은 정상을 둘러싸고 있는 바위들이 모나지 않고 두리뭉실하여 마치 '촛농이 흘러내린 듯하다' 하여 촛대봉 이름을 얻었다고 한다. 촛대봉에서는 일출뿐만 아니라 천왕봉의 위용을 가까운 거리에서 바라 볼 수 있고, 뒤 돌아 온 길의 노고단, 반야봉은 물론이고 그 이후의 산봉우리들도 빼놓지 않고 식별할 수 있는 전망 좋은 곳이다.
촛대봉
조망(眺望) - 노고단과 반야봉
촛대봉과 정상의 촛농바위(오른쪽)
지리산에서의 일출(日出)은 당연히 지리산 제1경인 천왕봉 일출이겠지만, 이 곳 촛대봉 일출도 꿩 대신 닭으로 호평을 받는다. 세석대피소에서 불과 15분이면 오를 수 있고, 구름을 오색으로 물 드리며 떠오르는 크고 붉은 태양은 볼만하고 운치가 있으며, 촛농처럼 제 멋대로 굳어버린 촛대봉 바위들과 어울려 한층 멋을 더한고 한다.
조망(眺望) - 천왕봉
촛대봉에서
삼신봉(三神峰)
삼신봉(三神峰)은 지도상에 산 높이가 표기되지 않았지만 등고선으로 보아 1600m가 넘는 것 같다. 삼신봉 자락에는 환인, 환웅, 단군을 삼신(三神)으로 모시고 하늘에 제사지내는 제단도 있으며, 그 남쪽 청학동에는 이 삼신을 모시는 삼성궁(三聖宮)도 있다고 한다. 그래서 산 이름을 '삼신산'이라 하였는지, 정상에 삼신을 상징하는 세 개의 큰 바위가 있어서 붙여진 이름인지는 알지 못한다.
조망(眺望) - 노고단과 반야봉
연하봉 가는길
연하봉 이정표
연하봉(煙霞峰/1667m)에서: 08시20분경
연하봉(煙霞峰)이란 이름은 진주 지리산산악회가 전신인 연하반(煙霞伴)의 이름을 따서 붙인 것이라 한다. |
연하선경(煙霞仙境) <참고사진>
바위에는 고색창연(古色蒼然)한 이끼가 덮여있고, 동쪽으로 완만한 경사의 평전이 펼쳐저 그 끝이 일출봉에 이른다. 큰 나무가 적고 주위에는 구절초, 산오이풀, 투구꽃, 그 외에도 이름 모를 가을꽃들이 활짝 피어 있었다. 그래서인지 이곳 '연하선경(煙霞仙境)'이 지리산 10경의 하나이다.
연하봉 → 장터목
장터목(1,653m)대피소와 제석봉 (08시50분경)
장터목이란 옛날 산청의 시천 사람들과 함양의 마천 사람들이 닷새에 한번씩 만나 물물교환 하는 장터였기 때문에 그 이름이 지어졌다고 한다.
장터목대피소는 종주길이 동서로 지나는가 하면 ,북쪽 백무동으로 내려가는 하동바위 길과 백무동계곡 길 두 길이 있고 남쪽으로 중산리로 내려가는 길이 있는 오거리이면서, 천왕봉 일출을 보기 위해서 반드시 숙박해야 하는 곳이다. 1971년에 지리산에서 처음으로 '지리산산장'이 이곳에 세워졌고, 1986년에 재건축하면서 '장터목산장'이라 개명하였으며, 지금의 산장은 '97년에 다시 건축하여 150명을 수용할 수 있다.
제석봉(帝釋峰/1808m)
제석봉(帝釋峰)은 옛 날 제석천(帝釋天)에 제사를 올리던 제석단이 있던 곳이다. 제석천(帝釋天)은 불법을 수호하는 신(神)으로 호법선신(護法善神)의 역할을 맡는다고 한다. 제석봉에는 위의 사진과 같이 고사목이 많았는데, 이는 고사목이 아니라 횡사목(橫死木)이라 하며 그 내력은 다음과 같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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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석봉 고사목에 대한 입간판
여기까지 온 길이 아득하다. 멀리 반야봉
제석봉전망대 설치를 위해 자재를 실어나르는 헤리콥터
해발 1,766m 이정표
통천문(通天門/1,814m)
천왕봉을 마지막 오르기 시작하는 곳에 양쪽은 벼랑이고 사람 하나 지나 갈 수 있는 바위틈에 위를 또 바위가 덮은 이 곳을 '통천문(通天門)'이라 부른다. 통천문은 '하늘을 오르는 문'이라는 뜻으로 노고단에서 천왕봉으로 오르는 마지막 관문이다. 통천문은 천연 암굴로 계단을 이용하는데, 예로부터 부정한 사람은 출입할 수 없고 선인(신선)들도 반드시 이 곳을 통과해야 정상에 오를 수 있었다고 전한다.
통천문 암굴 입구
옛 선인들도 이문을 통과해야 신선의 경지에 들 수 있었다 하며, 아무에게나 쉽게 열어주지 않던 문으로 알려져 있다.
화석(化石)
천왕봉 정상으로 가는 길 곳곳에 나무 화석을 쉽게 발견할 수 있었다.
천왕봉(天王峰/1,915m) : 10시30분경
천왕봉(天王峰)은 백두산 장군봉을 출발하여 장장 1,572Km(약 4천리)를 달려 온 백두대간의 종착점이다. 동시에 지리산 종주 산행의 목표이기도 하다. 천왕봉의 주소는 산청군 시천면 중산리 산 208번지이고, 동시에 함양군 마천면 추성리 산 300번지이기도 하다.
남쪽에서 한라산 다음으로 높은 제2봉이지만, 한라산이 육지에서 멀리 떨어진 바다에서 화산 분출로 생겨난 산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맥으로 연결된 산으로는 남한 제1봉이다. 천왕봉의 경치는 사방으로 모두 멋지다. 종주길의 각종 봉우리들이 줄지어 서있는 광경을 지켜보노라면 가슴이 벅차오름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정상에는 밥주걱을 세워 놓은 듯한 모양의 어깨 높이의 자연석 표석이 있는데, 동쪽의 전면에는 세로로 '智異山天王峰'이라 한자로 표기되고 그 밑에 1915m라고 기록되어 있으며, 서쪽 후면에는 '韓國人의 기상 여기서 발원되다'라고 적혀 있다. 이 표석을 자세히 보면 '韓國' 두자가 다시 새긴 것이 표가 난다. 처음에는 그 자리에 '慶尙'이라 썼던 것인데 그 후에 고쳤다고 한다.
천왕봉 일출(日出) <참고사진>
이 곳 ‘천왕봉 일출(日出)’은 지리산 10경의 제1경이다. 그러나 이곳의 기상은 시시각각으로 변하여 ‘천왕봉 일출을 보려면 삼대가 덕을 쌓아야 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보기가 힘들다고 한다.
- 천왕봉 찬가(이은상,1938년작) -
보라 나는 지금 天王峰에 올랐노라.
구름 안개를 모조리 헤치고
세상에서 가장 높은 자 되어
하늘 위에 올랐노라.
하늘과 땅과 바다와
여기 가득 찬 온갖 것들
작은 모래 알과 나무 껍질까지라도
모두 다 나를 위하여
있는 것임을 알았노라.
잘 나고 높다는 자여
富貴를 자랑하는 자여
한 줌 티끌 보다
오히려 可笑롭기만 하다.
거기서 滿足을 느끼려느냐
저 돼지 같은 人生이여.
천하고 가난한 자여
불행을 탄식하는 자여
하늘이 따로 네게
슬픔을 준 일 없었거늘
人生을 근심 속에서 보내느냐
저 버러지 같은 人生이여.
지금 저 하늘 가에
빛을 놓는 저녁 해가
五色 영롱한 속에
거룩한 잔치를 열고
장엄한 영광의 찬송가를
우렁차게 울리되
너희 祖上들로부터
代代로 물려 받은
질투와 속임과 싸움의 테를
벗어나서
무궁한 大自然 속에
平和의 노래를 부를지어다.
人生은 잠깐이라
人生은 눈물이라
누가 너희들에게 그릇된 道를 전하더냐
人生은 天地로 더불어
영원히 여기 福된 자니라.
노고단에서 천왕봉까지 역사의 현장에서 !
"지리산국립공원에 동서로 길게 펼쳐져 있는 종주능선(25.5km)은 천왕봉(1,915m), 반야봉(1,732m), 노고단(1,507m)으 삼대 주봉을 연결하는 지리산의 대표적인 탐방로입니다. 지리산의 종주 능선에서는 삼대에 걸쳐 덕을 쌓아야 볼 수 있다는 천왕일출, 반야낙조, 노고운해 등 아름다운 자연 경관 자원을 비롯해 희귀한 야생 동, 식물을 만날 수 있습니다." <안내판에서..>
천왕봉에서 바라본 노고단과 반야봉
천왕봉에서
연하봉 (하산하며.. 11시경)
하산길의 고사목
천왕봉→통천문
하산하며 통천문에서
스핑크스를 보는 듯
제석봉
제석봉에서
장터목(1,653m)과 일출봉(왼쪽 위): 12시50분경
'일출봉'이라 부르게 된 것은 촛대봉 일출과 같은 사연에서다. 천왕봉 일출을 보겠다는 등산객은 모두 장터목산장에서 숙박하게 마련이다. 높은 산 깜깜한 밤길을 렌튼에 의지하여 천왕봉까지 간다고 해서 천왕봉 일출을 본다는 보장이 없다. 그래서 새벽에 하늘을 쳐다보고 날씨가 좀 시원치 않다 싶으면 천왕봉으로 향하지 않고, 반대쪽인 이 곳 일출봉으로 오른다. 운이 좋으면 이곳에서 일출을 보고, 천천히 천왕봉을 오른다.
장(場)이 섰다는 장터목
일출봉에서 장터목은 매우 가깝다. 해발 1600m가 넘는 이곳에 장이 섰다니 이곳까지 올라온 상인들은 얼마나 힘들었을까.
"장터목이란 명칭은 '산청군 시천면 사람들과 함양군 마천 사람들이 물물교환과 물건을 사고 팔던 곳'에서 유래되었습니다. 장터목대피소는 1971년 40명을 수용할 수 있는 규모의 '지리산 산장'이라는 이름으로 시작하여, 1966년 80명, 1997년 150명을 수용할 수 있는 규모로 확대되었으며, 현재 자연자원의 보호와 탐방객의 편의 및 안전을 제공하기 위하여 운영되고 있습니다." <안내판에서.>
장터목에서
백무동으로 하산을 시작하며 되돌아 본 장터목과 일출봉
망바위(1,460m)
망바위란 주변이 훤히 보이는 전망 좋은 곳이기에 이름지었을 것이다. 이곳에 오르면 지리산 주능선 북사면 일대가 조망된다고 한다.
소지봉(燒紙峰/1,312m)
소지봉(燒紙峰/1,312m)이라는 이름은 옛날 이 곳에 소 시장이 열렸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는데, 이 높은 곳에서 어떻게 소 시장이 열렸는지 의아스럽다. 그래서 '우장봉(牛場峰)' 이라고도 한다는데, 소 시장은 산적 들 극성에 오래가지 못하고 문을 닫았다고 전해진다.
참샘(1,125m)이정표에서(14시45분경)
참샘(1,125m)의 샘물 맛은 물 맛 좋기로 유명하다.
하동바위(900m)
하동바위는 조선시대 하동군수가 지리산 구경을 왔다가 떨어져 죽은 바위라는데서 유래된 10m 높이의 바위다. 한편 바위가 하동 방면을 보고있기에 하동바위라 부르기도 한다.
하동바위 이정표
백무동 한신계곡
백무동(白武洞)야영장 입구 / 해발540m : 16시 20분경
백무동(白武洞)은 함양군 마천면에 위치하여 지리산의 북쪽에서 천왕봉에 오르는 주요 요충지이다. 현재 백무동 한자이름은 흰 백(白)에 군인 무(武)로 무슨 뜻인지 알기 쉽지 않다. 백무동에 명칭에 대한 설은 몇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무당이 많아서 백무동(白巫洞)이라고 하였다는 이야기와, 또는 구름과 안개가 많다는 뜻의 백무(白霧)라는 등의 의견이 있다. 백무동에 관한 이야기 하나를 소개해 본다.
아주 옛날에 백무동에 천왕할머니가 살았는데 할머니는 마을 사람들을 잘 돌보아 주었고, 사람들 또한 모두 할머니를 우러러 모셨다. 그때 한 스님이 수도를 하기 위해 지리산의 깊은 동굴을 찾아와 몇 년간 수도를 계속 하였다. 그런데 어느 날 스님이 동굴을 나와 산길을 거닐다가 그만 길일 잃고 말았다. 스님은 바위에 걸터앉아 어떻게 하면 좋을까 궁리를 하다가 모든 사람의 소원을 들어주는 천왕할머니에게 길을 알려달라고 빌었다. 그러자 스님 앞에 복사꽃 같은 얼굴에 검은 머리카락, 물 먹은 입술을 한 처녀가 나타나 말했다. “어떻게 하다 길을 잃으셨어요? 나를 따라 오시오” 스님이 놀라 물었다. “누구 십니까?” 그러자 처녀가 부드러운 목소리로 대답했습니다. “천왕이입니다.” 입을 다물지 못하고 있는 스님을 인도하여 동굴까지 온 처녀는 스님에게 말했다. “여기가 스님이 거처하고 있는 곳이지요. 저는 여기서 가까운 백무동에 살고 있어요.” 그리고는 돌아가 버렸다. 그 날 이후 스님은 오직 천왕할머니만 보고 싶었고, 천왕 할머니와 결혼 하고 싶어했다. 이러한 스님을 측은하게 여긴 천왕할머니는 스님의 청을 들어 결혼하고 백무동에 살면서 딸 여덟을 낳았다. 딸들은 모두 무당이 되어 조선 팔도로 보내져 무당이 되었다는 전설이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백무동 출발(18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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