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사와 여행(국내)/서울특별시

서울(유강원유적)

케인스 2008. 3. 16. 22:11

 

                    서울(유강원유적지)

 

 

서울 광진구 / 유강원(裕康園) 문화유적(文化遺蹟)  

 

 

                                       유강원(裕康園) 문화유적(文化遺蹟)

 

- 지정: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134호
- 시대: 대한제국 광무9년(1905)
- 위치: 서울특별시 광진구 능동 18 (어린이대공원 내)

 

유강원 문화유적은 대한제국 제2대 황제 순종의 황후 순명효황후(純明孝皇后) 민씨의 능이었던 옛 유강원터에 남아있던 석조물들이다.

 

순명효황후는 민태호의 딸로 고종19년(1882) 왕세자빈으로 책봉되고, 광무 원년(1897) 황태자비로 책봉되었으나 순종이 황제가 되기 전 광무8년(1904) 경운궁[현 덕수궁]에서 춘추 33세로 승하하여, 이듬해 1월 용마산 기슭의 이곳에 예장(禮葬)하고 원호(園號)를 유강원(裕康園)이라 하였다.

 

융희원년(1907) 순종이 즉위하면서 순명효황후로 추증(追贈)하고, 유강원(裕康園)을 유릉(裕陵)으로 승격시켰다. 1926년 순종이 승하하고 경기도 남양주시 금곡동에 위치한 홍릉(洪陵) 왼쪽 언덕에 유릉(裕陵)을 조성하면서 순명효황후도 그곳으로 옮겨 순종과 함께 모셔짐으로써 이곳에는 석조물들만이 남게되었다. 이러한 역사적 사실로 인하여 이 일대의 동명(洞名)도 능동(陵洞)으로 불리게 된 것이다.

 

* 조선시대의 무덤은 피장자의 신분에 따라 능(陵), 원(園), 묘(墓)로 구분한다. 능은 왕과 왕비의 무덤, 원은 왕세자, 왕세자비 및 왕의 종친의 무덤, 묘는 사대부 및 일반 서인(庶人)의 무덤을 일컫는 말이다.  <안내판에서..>


  

                                   ~~~~~~~~~~~~~~~~~~~~~~~~~~~

 

 

 

          

                                          유강원(裕康園) 문화유적(文化遺蹟)

 

현재 남아있는 석조물들은 유강원을 조성할 때 설치된 것으로 문,무인석을 비롯하여 말, 양, 호랑이의 석물, 장명등의 하대석, 망주석 받침, 난간석 등이 있습니다.

 

 

                                  유강원지(裕康園誌) 묘표석(墓表石)  <자료사진>

 

순종이 황제가 되기 전 광무8년(1904)이라 새겨진 유강원지(裕康園誌) 묘표석(墓表石)입니다. 융희원년(1907) 순종이 즉위하면서 순명효황후로 추증(追贈)하고, 유강원(裕康園)을 유릉(裕陵)으로 승격시켰기에 이곳의 이름은 구(舊) 유릉(裕陵)이라고 해야 옳을 것 같습니다.

 

 

                                        유강원지 곡장(曲墻)과 석물(石物)

 

곡장(曲墻)이란 릉(陵)을 보호하기 위해 삼면으로 둘러놓은 담장을 말합니다. 곡장의 안으로는 난간석(欄干石), 석호(石虎), 석양(石羊) 그리고 석상(石床)과 장명등(長明燈)의 하대석(下臺石)이 보입니다.

 

                                               난간석(欄干石)

 

난간석(欄干石)의 복원은 현 위치에서 위쪽을 관념적 북(北)으로 설정하여 남아있는 석재를 10천간(天干)과 12지지(地支)의 방향에 맞게 배치한 것이라 합니다. 난간석(欄干石)이란 봉분 주위를 보호하기 위하여 봉분 둘레에 설치한 돌난간을 말하며, 가장 높은 기둥을 석주(石柱), 석주를 가로지르는 돌기둥을 죽석(竹石), 죽석 중간을 받쳐둔 작은기둥을 동자석(童子石柱)이라 합니다. 난간석(欄干石) 앞으로는 석상(石床)과 장명등(長明燈)의 하대석(下臺石)이 보입니다.

 

          

                   

          

                    석마(石馬)를 대동하고 서있는 문인석(文人石)과 무인석(武人石)

 

          

                                                 석호(石虎)와 석양(石羊)

 

주위의 나쁜 기운을 물리쳐 봉분을 보호한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오른쪽 끝부분에 망주석(望柱石)의 받침대가 보입니다.

 

          

 

왼쪽 문인석과 석양(石羊) 사이에 역시 망주석(望柱石)의 받침대가 보입니다. 망주석(望柱石)은 무덤 양쪽 옆에 세우는 돌 기둥으로 그 기능에 대해서는 육신에서 분리된 혼이 육신을 찾아들 때 멀리서 봉분을 찾을 수 있도록 하는 표지의 기능을 한다는 등 여러 설이 있습니다.

 

 

          

                              석상(石床)과 장명등(長明燈)의 하대석(下臺石)

 

석상(石床)은 상석(床石)으로도 부르며 일반 묘에서는 제물을 차려 놓는 곳이지만, 왕릉은 정자각에서 제를 올리므로 혼령이 앉아 노는 곳이라 하여 혼유석(魂遊石)이라 합니다. 장명등(長明燈)은 장생 발복을 기원하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석상(石床)의 고석(鼓石)

 

고석(鼓石)이란 석상(石床)의 받침돌로서 모양이 북을 닮았다 하여 붙여진 이름입니다.

 

                                        문인석(文人石)과 무인석(武人石)

 

문인석(文人石)은 양 손에 홀(笏)을 쥐고 서 있으며,  무인석(武人石)은 장검(長劍)을 집고 서 있습니다.

 

  

 

  

 

  

 

문인석(文人石)과 무인석(武人石)의 복식 표현은 사실적으로 세밀하게 표현되어 있으나, 인체 비례가 맞지 않아 이전 시기의 석물(石物)보다는 전체적으로 어색한 특징을 갖고 있습니다.

 

 

참고자료

 

 순명효황후 민씨[純明孝皇后] [1874~1904]

 

                                  

                                           순명효황후 <자료사진>

 

순명효황후는 순종의 첫 번째 황후이다. 순종은 1874년에 태어나 다음 해 2월에 세자로 책봉되었고, 아홉 살 때인 1882년 여흥민가에서 민태호의 딸을 신부로 맞이하였다. 그녀가 바로 곧 순명효황후이다. 고종19년(1872) 세자빈에 책봉되었으나 순종이 즉위하기 전 1904년에 33세로 사망하여 처음에는 경기도 양주 용마산 내동에 안장되어 능호를 유강원(裕康園)이라 했다. 1907년 순종의 즉위에 따라 황후로 추봉되었고, 능호도 유릉(裕陵)으로 바꾸었다. 이후, 순종이 붕어한 1926년남양주시 금곡동으로 이장되어 합장으로 모셔졌다.

 

                                         

2008.03.16

 

 

 

'답사와 여행(국내) > 서울특별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도선사(道詵寺)/서울  (0) 2013.11.20
서울(남산한옥마을)  (0) 2008.05.16
서울(안산)  (0) 2008.03.12
서울(서대문형무소)  (0) 2008.03.12
서울(독립공원)  (0) 2008.03.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