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사와 여행(국내)/전라북도

남원(광한루)

케인스 2007. 12. 24. 00:08

 

                              남원(광한루) 

 

 

남원(南原) / 광한루(廣寒樓)

  

          

               

                                       광한루원(廣寒樓苑) / 사적 제303호

  

이곳은 견우와 직녀가 칠월칠석날 은하수 오작교를 건너 만나는 사연을 담은 정원이다. 전라도 관찰사로 있던 정철이 요천(蓼川)의 물을 끌여들여 은하수를 뜻하는 못을 파고, 반월형 교각 네개를 이어 오작교를 놓았다. 연못 안에는 도교에서 신선이 사는 곳으로 일컫는 세개의 섬을 만들었다. 봉래(蓬萊). 방장(方丈) 두 섬에는 각각 백일홍과 대나무를 심고 영주(瀛洲) 섬에는 작은 정자를 세웠다. 춘향전이 이곳을 배경으로 삼은 이래로 정원 안에 춘향과 관련된 여러 유적이 들어섰다.  <안내판에서...> 

 

          

                                         광한루(廣寒樓) / 보물 제281호

 

전라북도 남원시(南原市) 천거동(川渠洞)에 있는 조선시대의 누정(樓亭). 《춘향전》에 의해 널리 알려졌다. 조선 초기의 명신 황희(黃喜)가 지은 광통루(廣通樓)를 1434년(세종 16)에 부사(府使) 민여공(閔汝恭)이 헐고 새로 단아하게 지었으며, 전라도관찰사로 부임한 정인지(鄭麟趾)가 그 수려한 경치에 감탄해 전설상의 달나라 궁궐 <광한청허부(廣寒淸虛府)>와 닮았다고 하여 광한루라 고쳐 불럿다. 정유재란(丁酉再亂) 때 왜병의 공격으로 남원성이 점령되면서 광한루도 불탔다. 그 후 1626년(인조 4)에 부사(府使) 신감(申鑑)의 주관하에 옛모습대로 재현되었다. <자료:야후 및 안내판에서..>

 

          

                                                           광한루 정면

 

광한루는 정면 5칸, 측면 4칸인 20칸 규모의 다락집으로, 난간을 4면에 두른 마루 밑으로 큼직큼직한 돌기둥을 다듬어 세웠다. 북쪽의 뒤편으로는 나무기둥을 세우고 주초석(柱礎石)을 받쳤으며 어간(御間;中央間)에 계단을 설치하였다. 이 계단은 지붕과 이어져 삼단(三段)의 층교(層橋)를 이루는 드문 구조이다. 공포(拱包)구성은 출목(出木) 돌을 설치한 것인데, 주심포(柱心包)라고 하기보다는 익공계(翼工系)의 법식을 과장한 구성이라고 할 수 있다. 처마는 겹처마이고 부채모양인 서까래를 구성하였으며, 가구(架構)는 7량집으로 하여 공간이 넓다. 천장은 서까래가 훤히 드러나 보이는 연등천장이다.   <자료:야후>

 

          

                                                          광한루 측면

 

광한루에는 활주(活柱)가 설치되어 있는데 처짐을 방지하기 위하여 추녀를 받치는 보조기둥입니다.

 

          

                                                   광한루 초석과 돌기둥

 

일제강점기인 1910년부터 18년 동안 누각 위는 재판소로, 누마루 밑은 기둥을 이용해 문을 달아서 여러 칸의 감옥으로 사용했다는데, 광한루 누마루 밑 기둥들에 못질 흔적들이 선명하게 남은 이유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동편 구들방

 

다락집 동편에는 정면 3칸, 측면 2칸으로 별당이 부설되었는데, 내부에는 구들을 설비하였습니다.

  

          

                                   삼단(三段)의 층교(層橋)를 조성한 월랑

 

건물 북쪽 중앙에 삼단의 층계가 붙어 있는데, 이것은 점점 기우는 건물을 지탱하기 위해 고종 때인 1877년 만든 것입니다. 수리한 것이 새로운 누각 양식을 창조하였을 뿐 아리나 건물이 크고 웅장해 보이는 효과까지 거두었습니다. 월랑은 처음 두 계단을 올라서면 땅속, 다시 세 계단을 올라 인간세상, 마지막 네 계단을 올라 신선들의 세계에 이르는 형태로 되어있습니다.

 

                          

 

광한루 월랑에는 코끼리를 조각해 두었는데 이는 누각을 무너지지 않게 잘 짊어지도록 하기 위한 의미를 가지고 있답니다.

 

          

                                                     광한루 내부 현판

 

광한루에 올라선 수많은 선비와 문인들이 저마다 광한루를 찬양하는 글을 써 붙인 탓에 단일 누각 중 가장 많은 편액(200여 편, 현재는 82편)이 걸려 있다고 합니다.

 

          

                            편액으로 걸려있는 조선전기의 문신 사숙재 강희맹의 시

 

          

                                편액으로 걸려있는 조선중기의 문신 송강 정철의 시

 

 

          

 

누각 앞으로 흐르는 요천수 물길을 옛사람들은 은하수로 바라보았답니다. 황희 정승이 유배중에 세운 광통루를 두고 월궁의 광한청허부와 같다고 하여 광한루라는 이름을 새로 지은 이는 정인지, 전라관찰사로 이곳을 지나갈 때 요강(지금의 요천수) 물가에 서 있는 누각의 빼어난 아름다움에서 지상의 달궁전을 본 듯 하였답니다. 달나라에 가서 살 수 없었으니 아예 땅위에 이상향인 월궁을 세워버린 것이지요. 은하수에는 세 개의 삼신섬이 떠 있다는데, 옛 선비들이 배를 타고 섬을 드나들었다는 기록들로 보아 지금의 가교는 나중에 연결한 것으로 보입니다.  <참고: 전라도닷컴>

 

 

                      

                                           광한루에 걸린 현판 계관(桂觀)

 

계관은 달나라의 계수나무 신궁(월궁)을 상징한다고 합니다.

 

          

                                                       계자난간(鷄子欄干)

 

          

                                                   걸쇠와 익공의 닭 문양

 

          

                                                   분합문(分閤門) 밖 호수

 

          

                                            토끼와 거북이 형태의 화반(花盤)

 

거북이등에 탄 토끼가 광한루를 용궁 길로 인도하고 있는 듯 합니다.

 

          

                                                        홍살(紅箭) 문양

 

          

                                                      호수에 비치는 광한루

 

          

                                      광한루(廣寒樓)와 오작교(烏鵲橋)

 

선조15년(1582)에 남원부사 장의국은 광한루를 수리하면서 다리를 새로놓고 오작교라 부르게 됐다. 그 이후 광한루는 정유재란때 불타 1626년 복원됐지만 오작교는 처음모습 그대로 남아있다. 오작교는 길이 57m, 폭 2.4m, 4개의 홍예경간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현존하는 연지교중 국내에서는 규모가 가장 크다. 또한, 오작교를 밟으면 부부 금실이 좋아진다는 전설이 있고 춘향과 이도령의 사랑이 어린 곳이기에 많은 사람들이 찾는 곳이다. 처녀가 아닌 사람이 다리를 건너면 다리가 무너진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이처럼 광한루와 오작교는 전설과 사랑이 어우러져 있어, 춘향이가 단오날 그네를 뛰는 것을 광한루에 올라앉아 이도령이 보고 첫눈에 반해 사랑이 싹트기 시작 한것처럼 사랑하는 연인들의 다리로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자료:광한루원..>

 

          

                                                         오작교(烏鵲橋)

 

이 호수는 지리산 천 갈래의 계곡물이 모여 강이 된 요천(蓼川)를 유입 시켜 만든 연못으로 천상의 은하수를 상징하며 견우와 직녀의 전설이 담긴 오작교를 놓아 성춘향(成春香)과 이몽룡(李夢龍)의 사랑이 얽혀 내려오고 있다. 이 오작교를 1년에 한번 이상 밟으면 부부간에 금실이 좋아지고 자녀가 복을 받는다는 말이 내려오고 있다.  <안내판에서...> 

 

          

                                                   잉어 먹이를 주는 관광객

 

          

                                          자라돌(鰲石,오석) 

 

호수가에 자라돌 있는 뜻은 은하수(요천수)에 떠 있는 삼신섬은 영주섬(한라산), 봉래섬(금강산), 방장섬(지리산)인데, 인공으로 만들어 뿌리 없는 삼신섬이 홍수에 둥실 떠내려가지 않도록 옛사람이 마련한 비방은 못가의 자라돌, 용왕의 사자인 자라에게 '삼신섬이 떠내려가지 않도록 등에 꽉 업고 있어 달라'는 간곡한 부탁을 한 셈이라고 합니다. 한편 지리산 동남풍만 불면 남원에 불이 나곤 하였으니, 그 화기를 막는 거이 자라의 역할이었다는 것 등으로 달리 보는 견해도 있습니다. <자료: 전라도닷컴>

 

                      

 

"한서(漢書)에 발해(渤海)에 유대오(有大鰲)하야 배부삼산(背負三山)"  이 같은 구절이 있다. 이를 연상해서 호중(湖中)에 삼신산(三神山: 영주산·봉래산·방장산)을 선조15년(1582)에 송강(松江) 정철(鄭澈)이 만든 뒤 이 고장에 재변(災變)이 자주 일어나게 되자 여기에 자라돌을 만들어 삼신산(三神山)을 지켜보게 한 뒤부터 재변이 없어졌다는 전설이 있다.  높이 4尺, 폭4尺, 長8尺 

 

          

 

          

                                                          호수의 잉어

 

잉어의 수명은 인간과 비슷하여서 평균 50년은 산다고 하며 심지어 80세 까지 장수하기도 한답니다.

 

          

                                                       춘향관(春香館)

 

춘향관은 열녀 춘향의 얼과 정절을 민족혼으로 오래 기리고 선현들의 유업을 높이 받들어 후손에 길이 물려주기 위하여 1989년에 착공하여 1992년 제 62회 춘향제를 기하여 완공되었습니다. 한식 정자형으로 건축되었는데 춘향의 일대기 (유화9폭, 박남재화백 작)와 당시의 생활상을 알 수 있는 서화류, 장신구류 등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완월정(玩月亭)


옛날 옥황상제가 계신 옥경(玉京)에는 광한전이 있으며 그 아래 오작교와 은하수가 굽이치고 아름다운 선녀들이 계관[달나라궁전]의 절경 속에서 즐겼다는 전설이 있다. 이 전설에 따라 광한루(廣寒樓)는 천상의 광한전을 재현 한 것이며, 이 완월정은 지상인이 달나라를 즐기기 위하여 겹처머 팔작지붕에 오방집으로 전통적 조선식 누각을 세우니 광한루원의 절경을 한층 돋보이게 하고 있으며 해마다 이 누각에서 이 고장 민속 행사인 춘향제가 열리고 있다. <안내판에서...>

 

           

                                              완월정(玩月亭)과 방장형 호수

 

          

                                                  완월정 정면의 무지개다리

 

          

             완월정 후면 돌출기둥 3본은 수중에 잠겨 누정으로서의 운치를 더해 줍니다.

 

          

                                                         완월정의 가을

 

          

                                             비석군(碑石群)

 

이곳 비석은 과거에 남원과 인연을 맺은 부사(府使), 관찰사(觀察使), 어사(御使)들의 사적비(事蹟碑), 선정비(善政碑) 등이다. 예전에는 남원 시내 여러곳에 흩어져 있었으나, 도시화 과정에서 비석의 소실과 훼손을 방지하고자 이곳으로 옮겨 놓았다. 비석들의 제작연대가 조선 중기에서 부터 후기까지 다양하여 남원고을의 역사와 비석제작의 변천과정을 엿볼 수 있는 좋은 자료이다.  <안내판에서...>

 

          

                                           춘향사당(春香祠堂)

 

열녀 춘향의 굳은 절개를 영원히 흠모하기 위해서 건립된 사당이며 입구 대문은 '임향한 일편단심'을 줄여 단심문이라 칭한다. 사당의 중앙에는 '열녀춘향사'라는 현판이 있고 사당 안에는 춘향의 영정이 봉안되어 있으며, 이 사다에서 축원을 빌면 백년가약이 이루어 진다고 하여 참배객이 늘고 있다. <안내판에서...>

 

                      

                               사당의 중앙의 '열녀춘향사(烈女春香祠)'라는 현판

 

열녀춘향사를 세운 것은 일제강점기, 나라 잃은 설움속에서, 두 낭군을 섬기지 아니한 춘향이처럼 두 임금을 섬기지 않는 충성을 다짐하고자 했던 것입니다. 사당 문설주 위에 올린 별주부는 충성심과 지혜로 이상향을 향해 가고자 하는 갈망의 표현이었을 것입니다. <자료: 전라도닷컴>
 

 

          

                                                이당 김은호가 그린 춘향 영정

 

           

                                                            귀부(龜趺)

 

                      

                           부사(府使) 성안의(成安義) 선정비(善政碑)

 

성안의(成安義)는 명종16년(1561)~인조7년(1629) 때 사람으로 자(字)는 정보(精甫)요, 호(號)는 부용당(芙容堂)으로 조선시대의 문신(文臣)이다. 선조24년(1591)에 식년문과(式年文科)에 을과(乙科)로 급제하여 예조좌랑(禮曹佐郞, 정6품), 지평(持平), 영해(寧海), 남원부사(南原府使)를 거쳐 광주목사(光州牧使) 등을 지냈다. 사후 인조26년(1648)에 이조판서(吏曹判書), 양관대제학(兩館大提學, 홍문관, 예문관의 정2품)으로 증직(贈職)되었다. 이 비석은 성안의가 선조40년(1607)에 남원부사로 부임 후 광해군3년(1611) 2월까지 4년여 동안 베푼 선정(善政)을 기리기 위해 광해군3년(1611) 8월에 세웠다.  <안내판에서...>

 

          

                                             삼신산(三神山)

 

삼신산은 신선이 살고 있다는 전설에 의해서 만들어진 섬으로 왼쪽섬을 영주산(瀛洲山), 가운데섬을 봉래산(蓬萊山), 오른쪽섬(오작교옆)을 방장산(方丈山)이라 일컫고 섬과 섬 사이에는 아담한 구름다리로 연결되어 있으며, 영주산에는 영주각이, 방장산에는 6각의 방장정이 날아갈듯 서있다. 또한 우리나라 삼신산은 한라산, 금강산, 지리산을 일컫는다.  <안내판에서...>

 

          

                                             영주산(瀛洲山)의 영주각(瀛洲閣)          

 

           

                                                   섬과 섬 사이의 구름다리

 

          

                                                  섬과 섬 사이의 구름다리

 

                      

                                                            호수와 배

 

          

                                     방장산(方丈山)에 있는 6각의 방장정((方丈亭)

 

           

                                              월매(月梅)집

 

조선시대 우리나라 고전 '춘향전'의 무대가 된 집이다. 남원부사의 아들 이몽룡이 광한루 구경길에 올랐을 때 그네를 타고 있던 성춘향에게 반하여 두 사람이 백년가약을 맺은 집으로 춘향 어머니의 이름을 따서 월매집 이라고 하였다.  <안내판에서...>

 

 

 

                                       

  

                        

                                              

치맛자락을 휘날리며 창공을 차고 나는 춘향의 자태에 반한 이몽룡의 사랑도 여기서 시작되었겠지요..

                                                                         

          

                                                          광한루의 가을

 

          

                                                         광한루의 단풍

 

          

                                                           북문(北門)

 

북문은 1971년도 광한루원 확장공사 이전까지 광한루원의 정문으로 사용된 건물로 광한루와 더불어 당시의 역사성과 상징적인 가치가 매우 큰 건물입니다.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 형태로 조성년대는 미상입니다.


기단부는 화강석으로 설치되어 있으나 현재는 도로와 맞닿아 있습니다. 주초석은 화강석 원형초석으로 중간은 낮게, 양측은 약간 높게 설치하였고 그 위에 원형기둥을 올렸습니다. 솟을 삼문 형태로 중앙은 높게 양측 칸은 낮게 설치하여 당시 정문으로서의 위용을 잘 나타내고 있습니다. 

 

           

                                                        청허부(淸虛府)

 

청허부는 광한루원의 정문이다. 이 건물은 1971년 경역을 확장하면서 신축한 건물로 맞배지붕 솟을 삼문형식으로 지어졌는데 광한루원이 천체우주를 지상에 건설한 작은 우주로서 하늘의 옥황상제가 사는 달나라 옥경인 광한청허부를 상징하므로 옥경을 들어가는 문이라는 의미로 청허부라 했다.


현 정문은 1970년도 당시 시장과 전국 규모의 큰 우시장이 있어고 주변에 민가가 들어차 있었는데 화재가 일어나 시장과 민가를 철거하여 역사적 가치와 춘향의 얼이 깃든 광한루원 주변을 정화하고자 정문을 세워 북문 대신 정문으로 대체하였다. 정면의 중앙에는 일중 김충현이 쓴 [청허부]란 현판이 걸려 있다.

<안내문에서..>

 

           

                                       요천(蓼川) 위를 곡선으로 가르는 승월교

 

광한루원 앞 요천에 구름다리를 가설 광한루원이 지닌 달나라의 전설을 지상에 승화시켜 지상과 천상을 연결하는 상징을 갖는 구름다리가 가설되어 있습니다. 

 

           

                                                 덕음봉(德陰峰)의 팔각정

 

남원 시내 덕음봉에 위치한 팔각정 전망대에서 밤에는 휘황찬란한 빛을 발해 남원 어디에서든지 보는 사람들의 시선을 끌고 있습니다. 광한루 앞에서 당겨본 팔각정의 모습 입니다.

 

          

 

2007.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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