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사와 여행(국내)/전라남도

진도(운림산방)

케인스 2007. 5. 17. 01:01

 

                                                   진도(운림산방)

 

 

운림산방(雲林山房) / 지방기념물 제51호

 

서화 예술이 발달한 진도에서도 대표적인 서화예술가로 꼽히는 분은 조선 후기 남화의 대가로 불리는 소치(小痴) 허련(許鍊)선생(1808~1893)입니다. 소치는 스승인 추사 김정희가 붙여준 호이며, 커서는 당나라 남송화와 수묵산수화의 효시인 왕유(王維)의 이름을 따 허유(許維)로 불려졌고, 자는 마힐(痲詰)입니다.

 

전라남도 진도군 의신면 사천리에 자리한 운림산방은 소치 허련이 말년에 거처하던 화실의 당호이며 운림각(雲林閣)이라고도 합니다. 1981년 10월 20일 전라남도 기념물 제51호로 지정된 바 있습니다. 허련의「몽연록(夢緣錄)」에 따르면 이 곳에 다양한 화훼와 임목이 있었다고 전해지고 있으나 오랫동안 폐허로 있다가 1978년에 재건되었습니다. 안채와 사랑채 등 그 주변은 1962년 손자인 남농 허건이 복원하였고, 1992년과 1993년에 각각 보수되었습니다. 연못 뒤로 기와집인 운림산방과 그 뒤편의 초가로 된 살림채 그리고 오른편으로 새로 지어진 소치기념관이 있으며, 이곳 바로 옆에는 쌍계사(雙溪寺)라는 고찰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운림산방이라는 이름은 해발 485m의 첨찰산 주위의 수많은 봉우리가 어우러진 깊은 산골에 아침저녁으로 피어오르는 안개가 구름숲을 이룬 모습을 보고 지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허련이 즐겨 따르던 중국 원대 문인화가 예찬(倪瓚)의 호가 운림(雲林)이어서 그의 호에 맞추어 당호를 운림으로 부른 것으로 보기도 합니다.

 

 

입구에 들어서면 우선 시원한 느낌이 듭니다.  진도에서도 가장 높은 첨찰산 아래  평화스럽게 느껴지는 터에 자리를 잡았기에 더욱 그런 것 같습니다.

 

 

답사 중 뒤쪽에서 어느 분이 '이런 곳에 살면 저절로 그림을 잘 그릴것 만 같다'고 소곤거리던 이야기가 떠오릅니다. 운림산방의 주위는 바로 한폭의 그림이었습니다.

 

 

                                                       

뒤쪽의 첨찰산은 봄을 맞아 살이 찐듯 소담스럽게 보입니다. 첨찰산 서쪽 기슭에 오르면 동백나무, 후박나무, 감탕나무, 참식나무들이 무성한 상록림이 이어지는데 대낮에도 빛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빽빽한 자연림으로 천연기념물 제107호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운림지(雲林池)

 

운림산방 앞에 있는 480평의 연못은 한면이 35m 가량되며, 그 중심에는 자연석으로 쌓아 만든 직경 6m 크기의 둥근 섬이 있고 여기에는 소치가 심었다는 배롱나무(목백일홍) 한 그루가 있습니다. 소치가 직접 심은 것이라고 하니 대략 150년은 되었을 것으로 보입니다.

 

일반 꽃이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인 데 비해 백일홍은 100일이나 핀다는 지조가 있기 때문에 남도에서는 백일홍을 많이 심어놓은 것으로 여기고 있습니다. 

                      

                                                         

운림산방과 그 주변은 소쇄원과 더불어 조선시대 조경의 아름다움을 가장 잘 보여주는 곳으로 유명합니다 

 

 

                                            운림산방과 운림지(雲林池)

 

화실과 연못의 주변은 잔디와 나무를 심어 정돈하고 비와 탑을 세우는 등 조경을 하였습니다. 소치의 손자인 남농이 퇴락되어가는 유적을 5년간이나 손질하고 다듬어 도지정문화재로 지정받기에 이르렀다고 합니다.

 

 

                                                        운림산방 화실

 

'ㄷ'자 형태의 기와집으로 정면 우측 3칸은 화실이고 나머지는 손님을 맞는 방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화실 안에는 허씨 집안 3대의 그림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운림산방화맥도(雲林山房畵脈圖)

 

5대를 계속해서 화가를 배출한 집안은 매우 드문 일일것입니다. 그 주인공이 바로 진도의 양천 허씨(陽川 許氏) 집안이지요.

 

1대는 소치 허련(小痴 許鍊:1808∼1893), 2대는 미산 허형(米山 許瀅:1861∼1938), 3대는 남농 허건(南農 許楗:1908∼1987)과 그 동생인 임인 허림(林人 許林:1917∼1942), 4대는 임인의 아들인 임전 허문(林田 許文:1941∼현재), 5대는 남농의 손자인 허진(許塡:1962∼현재)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허진 이외에도 같은 5대 항렬로는 허재, 허청규, 허은이 화가의 길을 가고 있고, 무등산 춘설헌(春雪軒)의 의재 허백련(毅齋 許百鍊:1891∼1977)도 진도에서 태어난 양천 허씨로 같은 집안입니다.

 

허씨들은 원래 경기도에서 살다가 진도로 내려왔다고 합니다. 진도에 처음 들어와서 살기 시작한 입도조(入島祖) 허대(許垈)는 임해군의 처조카였는데, 광해군 즉위 후 임해군이 역모로 몰리면서 임해군을 수행하기 위해 먼저 진도로 들어왔다가 그대로 눌러앉은 것이라 합니다.

 

허대의 장남 득생은 용,순,방 세 아들을 두었는데 순의 후손이 소치, 미산, 남농이고 막내 방의 후손이 의재 허백련입니다. 의재는 소치의 종고손(從高孫)이 되고 소치의 아들인 미산으로부터 직접 그림수업을 받은 제자이기도 합니다.

 

의재 집안에서도 화가가 상당수 배출되었는데 의재의 넷째 동생인 목재 허행면(木齋 許行冕:1906∼1966)은 근대 회화사에 비중이 큰 화가였고, 목재의 아들인 허대득(작고), 목재의 조카인 허의득(작고), 의재의 장손자인 직헌 허달재(直軒 許達哉:1952∼현재), 목재의 손자인 허달용(36세), 허의득의 아들인 허달종(35세)이 모두 화가로 활동 중이라합니다.

 

현재 진도 출신 화가는 160여 명이라고 합니다. 이는 국전이나 도전에 입상한 경력을 가진 사람을 기준으로 한 것이고, 입상하지 않고 활동하는 화가까지 포함하면 그 수는 더 늘어난다고 하니, 인구 4만 명 정도의 섬에서 이 정도의 화가가 배출되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라 하겠습니다.

 

그래서 진도에는 ‘진도에서는 개도 붓을 물고 다닌다’  ‘진도에 가서 글씨, 그림, 노래 자랑하지 말라’ ‘ 허씨들은 빗자락 몽뎅이만 들어도 명필이 나온다’ 등의 말이 있답니다.

 

                         

                                                          소치 기념비

 

소치는 1808년 진도읍 쌍정리에서 허임의 5남매중 장남으로 태어나 1893년 86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소치는 어려서 부터 그림에 재주가 있어 28세 때부터 두륜산방(현, 해남 대흥사)의 초의대사(艸衣禪師 : 張意恂:1786~1866) 밑에서 공제 윤두서(恭齋 尹斗緖:1688~1715)의 화첩을 보면서 그림을 익히기 시작하여 33세때 초의선사의 소개로 추사 김정희 밑에서 본격적인 서화수업을 하게됩니다.


비록 낙도에서 태어났으나 천부적인 재질과 강한 의지로 시(詩), 서(書), 화(畵)에 능하여 40세 되던 1847년 7월 낙선재에서 헌종을 뵐 수가 있었고, 헌종이 쓰는 벼루에 먹을 찍어 그림을 그렸는가 하면 흥선대원군 이하응, 해남의 우수사 신관호, 권돈인, 민영익, 정약용의 아들 정학연 등을 비롯하여 권문세가들과 어울리면서 시를 짓고 글을 쓰며 그림을 그렸다고 합니다.

 

소치가 서화에 뛰어나 민씨세도정권의 중추적 인물인 민영익(閔泳翊)은 '묵신(墨神)'이라 했으며 조선 후기의 문신인 정건조(鄭健朝)는 여기에 시를 더하여 삼절(三絶)이라 하였고, 김정희(金正喜)는 중국 원나라 4대화가의 한 사람인 황공망을 '대치(大痴)'라 했는데 그와 견줄만 하다고 소치(小痴)라 했다고 합니다.


1856년 추사가 세상을 떠나자 소치는 1857년 50세의 나이로 고향으로 돌아와 자연경관이 아름다운 첨찰산 아래 쌍계사 남쪽에 자리를 잡아 운림산방을 짓고 화실을 만들어 여생을 보내게 됩니다.

                         

                                                          소치선생 살림채

 

소치선생 살림채는 초가집으로 안채와 사랑채가 'ㄱ'자 형을 이루며 배치되어 있다.

 

                                                                 사랑채

 

사랑채 안에는 옛 물건들이 정갈하게 놓여 있었습니다.

 

 

살림채 마당에 있는것으로 보아 물을 담아 세수할 때나 정원에 물을 줄때 등으로 사용하였음직 합니다.

 

   

                                                        운림사(雲林祠)

 

운림사는 소치선생의 영정을 모시고 있는 영정당입니다.

 

                                                          소치선생영정

 

                                                     소치기념관 앞의 일지매

 

 

<일지매 / 一枝梅의 유래>

 

운림산방에는 소치선생이 손수 심어서 가꾼 나무가 세 그루 있었는데 일지매와 백일홍, 그리고 자목련이다. 일지매는 해남 대흥사 일지암의 초의선사께서 소치가 운림산방을 열자 선물한 나무로 알려져 있다. 그 후 일지매의 2대 나무는 진도읍 동외리 임삼현이 소치 문하에 입문하여 수학한 뒤 소치선생이 타계한 후에도 26년간 운림산방을 관리하던 중 산방이 팔리고 당시 의신주재소 엔또 소장이 나무를 일본으로 옮기려고 하였으나 임삼현의 자(子) 임순재가 진도읍 동외리에 옮겨 심어 가꾸다가 1995년 (수령187년) 수명을 다하였다. 2대나무가 살아 있을 때 뿌리 나누기로 기른 자목(子木) 한 그루를 임순재의 자(子) 임태영이 원래 있었던 이곳에 옮겨, 봄이면 고아한 꽃을 피우고 맑은 향기를 퍼뜨리고 있다. 병술년 섣달에 표지석 세움.  <이상 표지석에서 옮겨 적음>

 

 

 

                                                          소치 기념관

남종화의 숨결이 살아 숨쉬는 유서 깊은 운림산방 내에 새로 세워진 소치기념관은 서화류와 수석전시실, 영상실 등이 배치 되었으며, 남종화의 대가인 소치 허련, 미산 허영, 남농 허건 등 3대의 작품을 한꺼번에 볼 수 있습니다.

 

 

                                                           연못 풍경

 

이 연못은 이미숙, 전도연, 배용준 등이 출연, 1주일도 안돼 관객 1백만명을 동원하고 있는 영화 <스캔들>에서 조각배가 한가롭게 노닐던 장면 일부를 촬영한 곳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연못 풍경

 

                    

                                                         운림산방전경             (사진자료:진도군청)

 

후손들이 진도를 떠나면서 운림산방은 오랫동안 원형을 잃고 방치되어 있었는데 1982년에 손자 남농 허건에 의해 지금과 같이 복원되었습니다

 

운림산방 위쪽으로는 쌍계사라는 작은 사찰이 보이는데 신라말 도선국사가 창건했다고 전해지는 고찰입니다. 바로 옆에 있는 오래된 사찰을 들리지 못해 너무 아쉽습니다.

 

 

 

2007.0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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