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사와 여행(국내)/경기도

화령전/수원(2017)

케인스 2017. 8. 4. 22:50



화령전(華靈殿) / 수원(水原)

             

 

 

☞  경기도(京畿) 수원시(水原市) 화령전(華靈殿)

   


         화령전(華靈殿) 위치 <참고자료>


사적 제115호 화령전(華寧殿)은 화성 행궁(華城行宮) 서북쪽에 위치한 건물군으로 조선 제22대 왕 정조(正祖, 1777~1800년)의 뒤를 이어 등극한 순조(純祖)가 순조1년(1801)에 정조를 추모하기 위하여 화성 행궁 옆에 정조의 초상(肖像)을 모신 영전(影殿)입니다.  영전은 신위를 모신 사당과는 구별되는 건물로, 선왕(先王)의 초상화를 모셔놓고 살아있을 때와 같이 추모하던 곳입니다. <수원시 자료>


'화령전'과 '화성행궁' <google참고사진>


정조(正祖)는 정조24년(1800) 6월28일 46세의 일기로 승하하여 영정(影幀)을 사도세자의 무덤인 현륭원(顯隆園) 봉안각(奉安閣)에 모셨으나 화성행궁(華城行宮)이 완성된 후 행궁(行宮)으로 옮겨 모셨다가 순조1년(1801) 별도로 영정을 모실 화령전(華靈殿)을 화성행궁 옆에 나란히 건축하여 그 곳에 영정을 모시게 되었습니다.


 화령전(華寧殿) 전경 <참고사진>

 

처음 지어질 당시의 화령전은 정조의 초상화를 모셔놓은 정전인 운한각을 비롯하여, 이안청, 재실(풍화당), 전사청, 향대청, 제기고, 외삼문, 내삼문, 협문 등이 있었습니다. 이 중 남쪽에 있었던 향대청과 제기고 건물은 남아있지 않습니다.


화령전 전경 <google참고사진>


화령전(華寧殿)의 이름은 화성(華城)에서 ‘화(華)’자를 따고, 『시경』의 한 구절인 ‘돌아가 부모에게 문안하리라[歸寧父母] 에서 ‘령(寧)’자를 따서 붙인 것입니다. 곧 화령전은 국왕 순조가 화성에 묻힌 선왕 정조를 찾아가 문안을 여쭙는 묘전각(廟殿閣)이었습니다.

화령전의 건물 구성은 외삼문과 내삼문, 운한각을 일직선으로 배치하고, 운한각 오른쪽에 전사청을 두었으며, 우측 담장 밖의 풍화당까지를 아울러 조선 후기 건축의 기능적 구성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수원시 자료>


화령전 전경


화령전(華寧殿)의 제조(提調)는 화성 유수(留守)가 겸하고 매달 5일 간격으로 제조와 위장(衛將)이 봉심(奉審 : 잘 살핌)하고 3개월마다 초 1일에 화령전 곳곳을 두루 살펴 관리하게 하였습니다. 이 곳에서는 역대 국왕이 현륭원(顯隆園)과 건릉(健陵)을 다녀갈 때마다 제향을 올렸으며, 탄신일(誕辰日)일과 납향일(臘享日)날에도 제사를 지냈습니다. 정조의 어진(御眞)은 1910년경에 일제의 강압으로 서울로 옮겼다가 잃어버리고 1992년에 새로운 영정을 만들어 봉안하였습니다.  편액은 순조(純祖)가 직접 써서 달았습니다. <수원시 자료>





화령전(華寧殿) 둘러보기



하마비(下馬碑)



화령전 앞 하마비(下馬碑)


화령전 외삼문에서 약 50여m 떨어진 곳에 ‘大小人員皆下馬(대소인원개하마)’라고 새긴 하마비(下馬碑)가 서 있습니다. "누구든 이 앞을 지날 때에는 말에서 내리라"는 푯돌입니다.




외삼문(外三門)



 화령전(華寧殿) 외삼문(外三門)


 화령전(華寧殿) 외삼문(外三門)





      화령전(華寧殿) 현판 [서예가 동강(東江) 조수호(趙守鎬.1924.12.15∼2016.11.10)씨의 글씨]  <참고자료>



화령전(華寧殿) 외삼문(外三門) 안쪽


                                 외삼문(外三門) 위치 []



 내삼문(內三門)



화령전(華寧殿) 내삼문(內三門)



화령전(華寧殿) 내삼문(內三門) 안쪽


                                 내삼문(內三門) 위치 []



운한각(雲漢閣)




운한각(雲漢閣)


운한각(雲漢閣)은 화령전(華寧殿)의 정전(正殿)으로 정조(正祖)의 초상(肖像)을 봉안한 건물입니다. 운한(雲漢)은 은하수를 말하는데, 『시경』대아 탕지십(蕩之什)「운한」첫 구절에 “환한 저 은하수가 하늘에 밝게 둘러 있네[倬彼雲漢 昭回于天].” 라고 한 데에서 따왔습니다. 이 시는 임금이 가뭄을 걱정하는 시로서 비오기를 빌면서 하늘에 기우제를 올릴 때 불려졌다고 합니다. <수원시 자료>


                                  운한각(雲漢閣) 현판 <참고사진>


정조의 영전(影殿)에 운한각(雲漢閣) 편액을 순조(純祖)가 직접 써서 붙인 것은 하늘로 올라간 정조(正祖)의 혼백이 나라의 어려움을 돌보아 주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였을 것입니다. 순조가 쓴 원래 현판은 사라지고 1966년 박정희 전 대통령이 쓴 것을 2005년 서예가 소헌(紹軒) 정도준(鄭道準, 1948~ )씨의 글씨로 교체하였습니다. <수원시 자료>



운한각(雲漢閣) 건물은 동향으로 격식이나 부재의 사용이 궁궐의 전각에 못지 않습니다. 건물 앞에는 제사 때 사람들이 모여 서고 악공(樂工)들이 제례악을 연주할 수 있도록 월대(月臺)가 마련되었으며, 월대 앞에는 세 군데에 계단이 마련되었습니다. <수원시 자료>






운한각(雲漢閣) 중앙칸에 봉안된 정조(正祖) 어진(御眞)


 정조(正祖) 어진(御眞: 초상화)


 의장구(儀仗具)


앞쪽에는 좌부(坐趺:받침대)에 우산 형태의 의장인 개(蓋), 부채 모양의 선(扇)이 꼽혀있으며, 뒤쪽에는 신연(神輦)이 있습니다.



운한각(雲漢閣) 중앙칸 위 렴(簾:발)


 평소에는 렴(簾:발)을 내려뜨려 놓습니다.



 고패 [렴(簾:발)을 달아 올리거나 내리는 줄을 걸치는 도르래]



운한각(雲漢閣) 뒷면은 전벽돌로 마감하였습니다.


신로(神路)


내삼문(內三門)에서 운한각(雲漢閣) 월대(月臺)에 이르기까지의 길을 신로(神路)라고 합니다.


 어로(御路)


제례 때 헌관(獻官)인 왕이 재실(齋室)인 풍화당(風化堂)을 출발하여 어로(御路)를 따라 동쪽 계단으로 월대(月臺)를 올라 운한각(雲漢閣)으로 들어섭니다.


 판위(版位)


제례 때 헌관(獻官)인 왕이 재실(齋室)인 풍화당(風化堂)을 출발하여 어로(御路)를 따라 운한각 뜰에 이르러 이 곳 판위(版位)에 잠시 머물러 제례를 올릴 예를 갖추는 곳으로 방형(方形)의 단(檀)이 설치되어 있습니다.



                                 운한각(雲漢閣) 위치 []



복도각(複道閣)



 복도각(複道閣)


복도각(複道閣)은 운한각(雲漢閣)과 이안청(移安廳)을 연결하고 있으며, 운한각에 모셔진 영정을 화재 등으로 옮겨야할 사정이 생겼을 때 비를 맞지않도록 이 곳 복도각을 통하여 이안청으로 옮기기위해 설치된 건물입니다.


복도각(複道閣) <참고사진>


                                                복도각(複道閣) 위치 [] <참고사진>



이안청(移安廳)



 이안청(移安廳)


이안청(移安廳)은 복도각(複道閣)을 통해 운한각(雲漢閣)과 연결되어 있으며, 운한각에 모셔진 영정을 화재 등으로 옮겨야할 사정이 생겼을 때 이 곳 이안청으로 옮겨 임시로 보관하게 됩니다.


 이안청(移安廳) <참고사진>



                                 이안청(移安廳) 위치 [] <참고사진>



북측협문(北側夾門)



  북측협문(北側夾門)


 북측협문(北側夾門)은 운한각(雲漢閣)과  풍화당(風化堂)을 이어주는 문으로 제례 때 이 문을 이용하여 제관(祭官)들이 드나듭니다.


                        풍화당(風化堂)과 북측협문(北側夾門)


                          북측협문(北側夾門) 위치 [] <참고사진>



풍화당(風化堂)



북측협문(北側夾門)을 지나 풍화당(風化堂)


풍화당(風化堂)


운한각의 우측 담장에 세워진 북측협문(北側夾門)을 들어서면 팔작집으로 조성한 정면 5칸, 측면 2칸의 재실(齋室)인 풍화당(風化堂)이 있습니다. 화령전에 제사(祭祀)가 있을 때에는 헌관이 머무르는 장소입니다.


              


   풍화당(風化堂) <참고사진>


풍화당(風化堂)은 단아하게 지어진 - 자형 전각인데 장대석으로 기단을 놓고, 중앙에 세 칸은 마루방으로 꾸미고, 양편에 한 칸씩은 온돌방입니다. 온돌방 앞에는 높임마루를 놓고, 그 밑에 아궁이를 내어 불을 땔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복도의 양편은 판벽으로 막았습니다. 마루방 세 칸의 뒤편으로는 판문을 내었고, 앞으로 낸 문은 열어 올려 위로 걸 수 있도록 하였다.


                           풍화당(風化堂) 현판 <참고사진>


풍화(風化)는 풍교(風敎)의 의미로서 사회의 풍속과 기강을 교화한다는 뜻입니다. 헌종11년(1845) 8월에 쓴 ‘풍화당’ 현판이 걸려 있었지만, 현재의 편액은 서예가 소헌(紹軒) 정도준(鄭道準, 1948~ )씨의 글씨입니다.


                                 풍화당(風化堂) 위치 [] <참고사진>



동측협문(東側夾門)



동측협문(東側夾門)


외삼문(外三門)을 들어서면 우측에 동측협문(東側夾門)이 있어 이 문을 이용하여 재실(齋室)인 풍화당(風化堂)으로 갈 수 있습니다.


                         동측협문(東側夾門)


협문을 지나면 'T'자형 길이 보이는데 풍화당(風化堂)과 운한각(雲漢閣) 뜰로 이어지는 길로서 제례시에 왕이 이용하는 길입니다.

 

동측협문(東側夾門)


외삼문(外三門)을 통해 화령전(華寧殿)으로 들어서서 이 문을 이용하여 재실(齋室)인 풍화당(風化堂)으로 들어오게 됩니다.


                      동측협문(東側夾門) 위치 [] <참고사진>



남측협문(南側夾門)



 남측협문(南側夾門)


 남측협문(南側夾門)은 운한각(雲漢閣)과 전사청(典祀廳)을 이어주는 문입니다.

 

 남측협문(南側夾門)



                          남측협문(南側夾門) 위치 [] <참고사진>



전사청(典祀廳)



전사청(典祀廳)


전사청(典祀廳)은  제사를 관리하는 관청을 말하며 이곳에서는 제례에 사용되는 제수(祭需: 젯상에 올릴 음식)를 준비하였습니다. 이 건물은 2005년도에 복원되었습니다.


전사청(典祀廳)


전사청 옆으로 보이는 협문(夾門)을 통해 현재는 화성행궁으로 갈 수 있습니다.


협문(夾門)



 협문을 나서면 화성행궁(華城行宮)의 낙남헌(洛南軒)이 보입니다. 


                                 전사청(典祀廳) 위치 [] <참고사진>



제정(祭井)



 제정(祭井)


제정(祭井)은  제례를 올릴 경우 제수(祭需)를 장만하기 위해 필요한 물을 얻는 곳입니다. 이 우물은 일반적인 제정이 둥근 형태로 조성된데 비해, 장대석을 치밀하게 쌓아올려 방형의 우물을 조성하였는데 아마도 화령전을 축조할 당시인 1801년에 조성을 한 것으로 보입니다. 제정은 전사청과 같이 2005년에 복원되었습니다.



                                  제정(祭井) 위치 [] <참고사진>




수원 화령전(水原 華靈殿) / (2017.0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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