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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國(北京) - 태묘(太廟)/개요(槪要)

케인스 2013. 9. 17. 00:10

 

                        태묘(太廟)

   

                        중국 북경(北京) / 태묘(太廟)

 

태묘(太廟)의 개요(槪要)

 

 

북경(北京)의 태묘(太廟) <참고사진>

 

태묘(太廟)는 중국의 고대 황제(皇帝)들이 그들의 조상에게 제사를 지내던 곳으로, 우리나라의 종묘(宗廟)와 같은 곳입니다. 종묘(宗廟)의 종(宗)은 존(尊)이라 하고, 묘(廟)는 모(貌)라 하였는데 이는 선조의 모습이 존재하는 곳이라는 설이 있습니다.

                 

 

태묘(太廟)를 고대 하(夏)나라 때는 "세실(世室)", 은(殷)나라 때는 "중옥(重屋)", 주(周)나라 때는 "명당(明堂)", 진한(秦漢)시대에 와서 "태묘(太廟)"라 부르기 시작하였습니다.

 

태묘총도(太廟總圖) <참고자료>

 

태묘(太廟)는 처음에 황제(皇帝)들의 선조(先祖)를 위한 공간으로 그들의 신위(神位)만을 봉안한 곳이었습니다. 그러나 후에 황제(皇帝)의 신위와 더불어 황후(皇后) 그리고 종실(宗室), 공신(功臣)들의 신위(神位)도 이곳에 봉안하게 되었습니다.

 

북경(北京)의 태묘(太廟) 위치 <참고사진>

 

북경(北京)의 태묘(太廟)는 명(明)나라와 청(淸)나라의 태묘(太廟)로서 천안문(天安門)으로부터 자금성(紫禁城)에 이르는 통로의 오른쪽에 위치하고 있는데, 왼쪽에 있는 사직단(社稷壇)과 서로 대칭을 이루고 있습니다.

 

                     

                      <google자료사진>

 

태묘가 이곳에 자리를 잡은 것은 도성(都城)을 지을 때 주례(周禮)에 나와있는 좌조우사(左祖右社)/좌묘우사(左廟右社)의 원칙을 따랐기 때문인데, 이것은 황제의 자리에서 앞쪽을 바라보며 태묘(太廟)는 왼쪽에, 사직단(社稷壇)은 오른쪽에 자리잡는 원칙을 일컫습니다.

 

                 좌묘우사(左廟右社) <참고자료>

 

태묘(太廟) 조감도 <참고자료>

 

북경(北京)의 태묘(太廟)는 명(明)나라 3대 황제인 영락(永樂)18년(1420)에 자금성의 축조와 함께 건조되었고, 명대의 가정, 만력, 청대의 순치, 건륭연간에 여러차례 보수되었습니다. 건륭제는 퇴위하기에 앞서 3채의 대전과 곁채를 전부 확장 건설한 바 있습니다.

 

 <참고사진>

 

태묘(太廟)는 고대 중국의 "경천법조(敬天法祖: 하늘을 우러르고 황실의 법통을 받듬)"의 전통적인 예제(禮制) 건축물로서, 당시의 황실에서는 황제의 등극, 대혼, 출정, 개선 등 큰 행사와 청명 등에 황제가 이곳에 와서 조상제를 올리곤 하였습니다.

                 

                   

                      <참고자료>

 

청나라 황실이 신해혁명(辛亥革命)이후에도 태묘(太廟)를 관리하다가, 민국13년(1924) 화평공원(和平公園)이 되었으며, 1928년부터 고궁박물관의 분원으로 있었습니다. 1950년, 국제노동절인 5월1일을 기해 "노동인민문화궁(勞動人民文化宮)"이  되어 현재 일반에 공개되고 있습니다.

 

 <참고사진>

 

1988년 1월 태묘(太廟)는 "전국중점문물보호단위(全國重点文物保護單位)"로 지정되었는데, 전국중점문물보호단위(全國重点文物保護單位)란 중화인민공화국 국무원이 제정한 문화유산 보호제도 가운데 국가급의 문화유산에 대해서 제정되는 명칭으로 1961년부터 5차에 걸쳐서 공포되었습니다.

         

          북경(北京) 태묘(太廟) 및 주위의 위성사진 <google자료사진>

 

태묘(太廟)는 남북의 길이475m, 동서 294m, 총 면적 139,650만㎡의 장방형의 대지 위에 세 겹의 붉은색 담장으로 둘러 쌓여있으며, 바깥 담장 기준으로 폭 294m, 길이 475m의 42,300여 평 넓이이며, 두 번째 담장으로 둘려진 터는 폭 208m, 길이 272m의 17,100여 평, 바깥 담장과의 사이인 25,000여 평에는 수령 500년 이상의 높게 자란 고백(古柏: 오래된 측백나무)들이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고 있습니다.

 

북경(北京) 태묘(太廟) 및 주위의 평면도 <참고자료>

 

태묘(太廟) 건축군(建築群)의 중심에는  전전(前殿)이 높게 자리잡고 있습니다. 전전(前殿)은 향전(香殿) 또는 대전(大殿)이라고도 불립니다. 전전(前殿) 앞 양쪽에는 각각 15칸의 배전(配殿)이 있으며, 뒤에는 중전(中殿)[침전(寢殿)]과 후전(後殿)[조묘(祧廟)]이 위치하고 있습니다. 이외에 신주(神廚), 신고(神庫), 정정(井亭), 희생소(牺牲所) 등의 건축물이 있습니다.

 

             북경(北京) 태묘(太廟)의 평면도 <참고자료>

 

1. 전문(前門), 2. 고방(庫房), 3. 정정(井亭), 4. 극문(戟門), 5. 분향로(焚香爐), 6. 전배전(前配殿),

7. 전전(前殿), 8. 중배전(中配殿), 9. 중전(中殿), 10, 후배전(後配殿), 11. 후전(後殿), 12. 후문(後門)

                       

                        북경(北京) 태묘(太廟)의 위성사진 <google자료사진>

 

북경(北京) 태묘(太廟) 안내도 <참고자료>

 

태묘의 전반적인 설계는 넓은 면적의 숲이 주요건축물을 둘러쌓고있으며, 중문(重門), 전(殿), 교(橋)가 배치되어있으며 물이 흘러와 태묘의 입구 부분에는 엄숙하고 심오한 분위기를 조성하고 있습니다.

 

 

태묘(太廟)의 구성(構成)

 

 

 

                북경(北京) 태묘(太廟) <참고사진>

 

문헌에 나타난 고대 종묘(宗廟)는 매(每) 묘(廟) 마다 한 명의 신위(神位)를 모셨습니다. 당(唐)나라와 하(夏)나라는 5묘(廟), 상(商)나라는 7묘(廟), 주(周)나라 역시 7묘(廟)의 제도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한대(漢代)에서는 도읍 뿐만 아니라 각 군국(郡國)에 동시에 묘(廟)를 세웠기에 그 수가 176개소에 이르기도 하였습니다.

 

매(每) 묘(廟)마다 한명의 신위(神位)를 모시는 제도가 대략 위대(魏代)와 진대(晉代)에 이르러 하나의 묘(廟)에 여러 실(室)을 조성하여, 매(每) 실(室)마다 한명의 신위(神位)를 모시는 것으로 변하였습니다.

 

위(魏)나라는 4실(室), 진(晉)나라는 7실(室), 동진(東晉)은 10~14실(室)로 증가하였습니다. 당대(唐代)에 이르러 1묘(廟) 9실(室)로 정해져 명청대(明淸代) 역시 1묘(廟) 9실(室)을 따랐으며 조묘(祧廟)의 제도로 이어지게 되었습니다.

 

친진(親盡: 제사 지내는 대(代)의 수가 다됨)이 되면 조천(祧遷: 조묘로 옮김)하게 됩니다. 원래 묘(廟) 내 양쪽 곁칸에 협실(夾室)을 두어 "저(儲)"라 하여 이미 조천(祧遷)된 신주를 보관하였으나 후세에 별도로 조묘(祧廟)를 전(殿) 뒤쪽에 세웠습니다.

 

태묘(太廟)는 명초(明初)에 황실의 선조들에게 제사를 지내는 곳으로 활용되었으나 가정제(嘉靖帝: 재위1521~1566) 때 태묘를 9등분하고 각각에 역대 선조들의 제사를 모실 수 있도록 바뀌었습니다. 그런데 1541년 갑자기 벼락이 쳐 8개의 사당이 훼손되는 천재(天災)가 발생하였습니다. 황제는 깜짝 놀라 조상님들이 각각 따로 모셔지는 것을 싫어하는 모양이라고 생각하고 다시 한데 합쳤다고 합니다.

 

만주족의 청(淸)나라가 들어선 뒤 태묘는 다시 만주족 선조들을 모시는 장소로 바뀌었습니다. 순치제(順治帝)가 북경에 와서 한 일은 누르하치, 홍타이지 등의 신위를 이곳에 두고 기존에 있던 명나라 황제의 신위는 역대제왕묘(歷大帝王廟)로 옮겨버렸습니다.

 

                    

                     북경(北京) 태묘(太廟)의 배전(配殿) <참고사진>

 

종묘(宗廟)에는 배향공신(配享功臣)의 신위(神位)도 모셔져 있었는데 이는 이미 한대(漢代)에도 있었으며 명청대(明淸代)에도 태묘(太廟)의 앞 서배전(西配殿)에 모셔져 있었습니다. 반면에 동배전(東配殿)에는 종실(宗室)을 모셨습니다.

 

 

태묘(太廟)의 제사의식

 

 

                                                    황제의 면복(冕服) <참고자료>

 

나라의 제사는 대사(大祀), 중사(中祀), 소사(小祀)로 구분이 됩니다. 매년 대사(大祀)를 지내는 곳은 일단(日壇)과 월단(月壇)의 교사(郊祀), 태묘(太廟)와 사직단(社稷坛) 등 여러곳이 있습니다. 태묘(太廟)의 제사는 대사(大祀)중에서도 제일 중요하고 성대하게 치러지며, 제사를 지내는 횟수도 제일 많았습니다. 명대(明代)에는 매 계절의 첫째 달에 지내는 시향(時享), 후에 와서 봄에는 청명(清明), 여름에 단오(端午), 가을에 중원(中遠:음력7월15일), 겨울에 동지(冬至)에 지내고, 연말 선조(先祖)에게 지내는 협제(祫祭), 그리고 황제(皇帝)로 등극하거나, 대혼(大婚) 등을 고(告)할 때도 대사(大祀)를 모시게 됩니다.

 

              

                   <참고자료>

 

태묘(太廟)의 대사(大祀) 3일 전에 황제는 자금성 내에서 재계(齋戒: 몸과마음을 경건히 가지는 의식)를 합니다. 제사 하루 전 천단(天壇)의 희생소(牺牲所)에서 희생(牺牲)을 검사하며 아울러 교태전(交泰殿)에서 축판(祝版:축문)을 검사합니다.

 

                          

                             <참고자료>

 

1. 제사 당일 건청궁(乾清宮)을 나와 건청문(乾清門), 삼대전(三大殿)과 태화문(太和門)을 거쳐 오문(午門)을 지나 단문(端門)을 거쳐 태묘가문(太庙街門)으로 태묘(太廟)를 진입하여 오채유리문(五彩琉璃門), 극문(戟門)을 거쳐 태묘[향전(享殿)]에 도착합니다. 신악서(神樂署)소속의 창시반(唱詩班)에서 노래와 춤을 동반하는 태화지곡(太和之曲)을 연주합니다. 황제는 예복을 갖추어 입고 신위(神位)가 자리하고 있는 곳인 북쪽을 향해 섭니다.

 

2. 두 번째 순서인 "봉책보(奉冊寶)"는 책보(冊寶)를 받드는 의식으로, 책보(冊寶)를 신주(神主) 앞에 놓게되며 이때는 희화지곡(熙和之曲)이 연주됩니다. 책보(冊寶)란 돌아가신 황제의 공덕을 칭송하여 옥(玉) 표면에 새기고 구멍을 뚫어 금실로 역어 만든 책입니다.

 

3. 세 번째 순서는 "진조(進俎)"인데 진조(進俎)란 희생(牺牲)을 올리는 의식으로, 희생을 올림과 함께 삼궤구배(三跪九拜: 한 번 무릎을 꿇고 머리가 땅에 닿도록 세 번 조아리기를 하는 동작을 세 번 반복하는 예법)의 예를 올리며 이때 응화지곡(凝和之曲)을 연주합니다.

 

4. 네 번째 순서인 "초헌례(初獻禮)"는 첫 번째 술잔을 올리는 의식으로, 수화지곡(壽和之曲)의 연주와 함께 64명의 무무(武舞)를 추는 무용수들이 간척(干戚: 방패와 도끼)을 들고 간척지무(干戚之舞)를 춥니다. 선조(先祖)들이 나라를 세우고 영토를 넓힌 공덕을 칭송하여 노래하며, 제사 관원이 찬미사(贊美詞)를 읽습니다.

 

5. 다섯 번째 순서인 "아헌례(亞獻禮)"는 두 번째 술잔을 올리는 의식으로 어화지곡(御和之曲)의 연주와 함께 64명의 문무(文舞)를 추는 무용수들은 깃장식과 피리를 들고 우약지무(羽龠之舞)를 춥니다. 선황(先皇)들이 다스려온 문화국에서 편히 살고있는 공적을 노래한 것입니다.

 

6. 여섯 번째 순서인 "종헌례(終獻禮)"는 세 번째 술잔인 마지막 잔을 올리는 의식으로 희화지곡(熙和之曲)을 연주하며, 무용수들은 문무(文舞)인 우약지무(羽龠之舞)를 춥니다.

 

7. 종헌례(終獻禮)를 마치면 특정관원(特定官員)이 "복조(福祚)"의식을 행하는데 제사상에 올려진 희생(牺牲)의 고기를 덜어내는 의식인데, 이 고기를 복육(福肉)이라 합니다.

 

8. 복육(福肉)을 하사(下賜)한 후, 신위(神位) 앞에 올려진 음식을 철수하는데 이를 "철두(徹豆)"라 합니다. 이때 노래와 춤은 중지하고 삼배(三拜)의 예를 행한 후, 축백(祝帛: 축문과 폐백)을 요로(燎爐)로 보내 불사릅니다.

 

9. 제일 마지막 순서로 "송신(送神)"의식을 행하는데 안화지곡(安和之曲)이 울리며 신주(神主)를 원래의 자리로 돌려 보내고 황제는 자금성(紫禁城)으로 돌아갑니다.

 

 

 

        

                                 중국 북경(北京) / 태묘(太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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