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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國(北京) - 태화문(太和門)광장/자금성 외조(外朝)

케인스 2012. 2. 10. 12:30

 

 

                                      태화문(太和門)광장

 

 

     중국 북경(北京) / 자금성, 외조(外朝)의 전삼전(前三殿) 지

 

      

☞  태화문(太和門)광장  

   

 

태화문(太和門)광장 위치 <참고사진>

 

                                    

                                         태화문(太和門)광장 주위도  <google자료사진> 

 

태화문 광장은 동서 약 200m, 남북 120m의 크기로 약 26,000m² (약7,900평) 넓이의 광장을 가로질러 흐르는 금수하(金水河)가 있고, 그 위에 백옥석(白玉石: 흰대리석)으로 만든 5개의 금수교(金水橋)가 있습니다. 광장 양쪽으로는 회랑(回廊)이 정연하게 배열되어 있는데, 동, 서 조방(朝房)이라 부릅니다. 또한 협화문(協和門)과 희화문(熙和門)이 동쪽과 서쪽에 서로 대치하듯 자리잡고 있습니다. 

 

태화문(太和門)광장 개요도 <자료사진> 

 

태화문(太和門)광장 <자료사진> 

 

 

금수하(金水河) / 금수하(內金水河)

 

 

                           

                                                      금수하(金水河) 흐름도 <자료사진> 

 

태화문(太和門) 광장을 가로지르는 너비 5m, 깊이 10m의 금수하(金水河)는  태액지(太液池)의 상류에서 수로를 따라 자금성 해자에 연결되고 지하수로를 통해 자금성 서북쪽 수로로 나와 서쪽 성벽을 따라 남하하다가 오문과 태화문 사이를 지나 지하수로를 통해 자금성 밖으로 나가게 됩니다. 천안문 앞의 금수하와 구별하기 위해 '내금수하(內金水河)'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금수하(金水河)

 

금수하(金水河)는 천자문(千字文)의 금생여수(金生麗水)라는 글귀에서 취한 구절로 여수(麗水)는 중국 운남성(雲南省) 영창부(永昌府)라는 곳에 있는데 , 이 지방 사람들의 '물 속에서 모래를 건져내어 백번을 일고 씻으면 금이 나온다'라는 믿음에서 유래한 말이라고 합니다.

 

    

 

금수하(金水河)는 자금성을 세울 때 물을 배수하고 화재 진압에 필요한 물을 공급받기 위하여 필요하였으며, 또한 그 필요성이 '용(황제)은 물이 있어야 힘을 쓴다'는 전설에서 기인했다고도 합니다. 

 

 

금수교(金水橋) - 금수교(內金水橋)

 

 

       

                                                             금수교(金水橋)  <참고사진>

 

태화문(太和門) 광장 앞의 금수하(金水河)를 가로지르는 5개의 백옥석(白玉石/흰대리석) 다리로서, 유교의 5가지 덕목(온화, 양순, 공손, 검소, 겸양) 또는 오행(仁/인, 義/의, 禮/예, 智/지, 信/신)을 상징합니다. 멀리서 금수교를 보면 마치 옥으로 만든 허리띠 같다 하여 '옥대교(玉帶橋)'라고도 하며, 천안문 앞에 있는 다리 '외금수교(外金水橋)'와 구별하기 위하여 '내금수교(內金水橋)'라고 부릅니다. 

   

             

 

역시 중앙의 다리는 '어로교(御路橋)'이며 황제만이 건널 수 있습니다. 폭6m, 길이 23.5m인 어로교의 난간 장식은 용무늬이고, 다른 금수교의 난간 장식은 연꽃으로 구분되어 있습니다.

 

    

                                                      용무늬와 연꽃무늬의 난간

 

 

협화문(協和門)과 희화문(熙和門)

 

 

            

                                     협화문(協和門)과 희화문(熙和門) 위치 <참고사진>

    

 

협화문(協和門)

 

 

                                              태화문광장 동쪽의 협화문(協和門)

 

협화문은 명(明) 영락(永樂)18년(1420)에 처음 세워졌으며 처음의 이름은 좌순문(左順門)이었으며, 가정(嘉靖)36년(1557) 4월에 3대전(大殿)이 낙뢰로 인해 화재가 발샐할 때 같이 소실되어 다음해 중건되었습니다.  가정41년(1562) 9월 회극문(會極門)으로 개칭하고 만력(萬曆)25년(1597) 6월 3전이 또 재앙을 입을 때 또 소실되었습니다. 천계(天啓)년간(1620-1627)에 중건 하였고 청(淸) 순치(順治) 초년에 중수하면서 현재의 이름으로 개칭하였습니다.

 

            

                                                   협화문(協和門)  <참고사진>

 

정면5칸, 측면2칸, 황유리기와, 팔작지붕의 건물로 2.62m의 기단위에 동향으로 자리잡고 있습니다. 협화문 남북으로는 각 11칸의 조방(朝房)이 있어 관서(官署)로 사용되었습니다. 한편 명(明) 정통(正統) 원년(1436) 2월, 문화전(文華殿)을 개설할 때 경연을 열고 이곳에서 술과 음식을 베풀었다고 합니다. 

 

희화문(熙和門)

 

 

                   

                                          태화문광장 서쪽의 희화문(熙和門)  <참고사진>

 

희화문은 명(明) 영락(永樂)18년(1420)에 처음 세워졌으며 처음의 이름은 우순문(右順門)이었으며, 가정(嘉靖)36년(1557) 4월에 3대전(大殿)이 낙뢰로 인한 화재 때 같이 소실되어 다음해 중건되었습니다. 가정41년(1562) 9월 귀극문(歸極門)으로 개칭하였고, 만력(萬曆)25년(1597) 6월 또 소실되었습니다. 천계(天啓)년간(1620-1627)에 중건 하였으며 청(淸) 순치(順治)2년(1645) 5월 옹화문(雍和門)으로 개명하였으나 건륭(乾隆)원년(1736) 희화문으로 바꾸었고, 건륭23년(1758) 3차 화재를 당하여 같은 해 12월 중건 되었습니다.

 

        

                                                              희화문(熙和門)  <참고사진>

 

정면5칸, 측면2칸, 황유리기와, 팔작지붕의 건물로 2.62m의 기단위에 서향으로 자리잡고 있습니다. 희화문(熙和門) 남북으로는 각 11칸의 조방(朝房)이 있어 관서(官署)로 사용되었습니다.

 

                      

                                                      희화문(熙和門)의 뒤쪽

 

 

 

 

                                 태화문(太和門)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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