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안문(天安門)광장 / 과거(過去)
중국 북경(北京) / 천안문(天安門) 앞, 내성(內城) 지역
☞ 천안문(天安門)광장 / 과거(過去)
천안문(天安門)광장 위치 참고도
황성모형 <북경황성예술관>
현재 부르고 있는 '천안문광장(天安門廣場)'은 원래 'T'자형의 넓은 공간이었으며 명(明) 영락18년(1420) 자금성(紫禁城)과 함께 조성되었습니다.
명대(明代)의 천안문광장 <참고사진>
이 'T'자형의 넓은 공간은 남쪽에 위치하는 정양문(正陽門) 안쪽의 대명문(大明門: 후에 대청문, 중화문으로 개칭된 후 지금은 철거됨)과 북쪽의 승천문(承天門: 현재의 천안문), 동쪽의 장안좌문(長安左門:철거됨), 서쪽의 장안우문(長安右門:철거됨) 그리고 천보랑(千步廊: 천안문과 정양문 사이에 있던 동,서회랑으로 중화인민공화국시기에 철거됨)에 둘러 쌓여있었습니다.
명대(明代)의 천안문광장 평면도 <참고사진>
청대(淸代)의 천안문광장 평면도 <참고사진>
청대(淸代)의 천안문 및 그 광장 평면도 <참고사진>
청대(淸代)의 천안문 주위 <참고사진>
천안문광장은 자금성 정문 밖에 있는 하나의 궁정광장(宮廷廣場)이었으며 동, 서, 남쪽이 담으로 막혀있어 보통 백성들은 접근할수 없는 금지구역이었습니다.
천안문 주변(1935년2월) <참고사진>
천안문광장 주변(1949년 이전) <참고사진>
천안문광장(1950년) <참고사진>
중국인민해방군 열병(1950년10월1일) <참고사진>
천안문 앞(1951년) <참고사진>
☞ 중화문(中華門) = 대청문(大淸門) = 대명문(大明門)
중화문(中華門) <참고사진>
중화문(中華門)은 북경(北京) 명(明), 청(淸) 황성(皇城)의 정 남쪽에 있었으며, 정양문(正陽門)의 북쪽 현재의 인민영웅기념비(人民英雄紀念碑) 남쪽 주위와 모주석기념당(毛主席紀念堂) 일대에 자리하고 있었으나 1952년 천안문광장이 넓혀지면서 1954년 철거되었습니다.
중화문(中華門)은 명(明) 영락년간 황성의 남쪽에 세워졌기에 남쪽을 존귀하게 여긴 옛 사람들로부터 "국문(國門)"이라고 불리기도 하였습니다. 하지만 왕조가 바뀌고 시대에 따라 그 명칭은 바뀌어 왔는데 명조(明朝)에는 대명문(大明門), 청조(淸朝) 순치원년(1644) 대청문(大淸門)으로 그 이름이 바뀌었고, 신해혁명 후 1912년 중화문(中華門)으로 다시 바뀌게 되었습니다.
☞ 장안좌문(長安左門)과 장안우문(長安右門)
장안좌문(長安左門) <참고사진>
장안우문(長安右門) <참고사진>
장안좌문(長安左門)과 장안우문(長安右門)은 명(明) 영락18년(1420)에 세워졌으며 1952년 철거되었습니다. 이 두문은 서로 동(東), 서(西)로 마주보고 있으며, 황성으로 통행하는 중앙관서의 아문(衙門)으로 문동(門洞)이 3개, 단층, 황유리기와지붕, 홍담으로 구성된 문으로, 한백옥석(漢白玉石: 순 백색의 대리석) 수미좌(須彌座: 보살상의 대좌) 기초 위에 세워졌습니다.
장안좌문(長安左門)은 용문(龍門), 청용문(靑龍門) 또는 "공성문(孔聖門)"이라고도 하였습니다. 장안우문(長安右門)은 호문(虎門) 또는 백호문(白虎門)이라 하였습니다. 1913년 1월부터 일반인들이 장안가(長安街)로 통행할 수 있게 되었고 장안좌,우문(長安左右門)은 1952년 철거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