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사와 여행(국내)/경기도

수종사 (남양주시)

케인스 2010. 10. 3. 22:08

 

 

 

                                                   수종사 (水鐘寺)

   

                       [운길산(雲吉山) / 수종사(水鐘寺)]

 

 

  

                                      수종사(水鐘寺) 전경

 

수종사(水鍾寺)는 조안면 송촌리 운길산의 정상 부근에 위치한 봉선사의 말사이다. 창건연대는 확실하지 않으나 조선 후기 전국의 절에 대한 사정을 조사해 놓은 책 『범우고(梵宇攷)』에 의하면 세조가 이 절에 친히 행차하여 땅을 파서 샘을 찾고, 혹은 종을 발견했다고 해서 수종사라 하였다고 전하며 1939년 석조 부도를 중수하면서 1439년(세종 21)에 조성된 부도로 확인되어 조선 초기에 창건되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수종사(水鍾寺)에는 다음과 같은 전설이 전해온다. 세조가 금강산을 유람하고 돌아오는 길에 용선(龍船)을 타고 양수만(兩水灣 : 현재 양수리)에서 하룻밤 머물고 있을 때 밤에 홀연히 어디선가 은은한 종소리가 들려왔다. 다음날 그 출처를 찾게 했더니 그곳에는 바위굴이 있었고 내부에 18나한상이 있었다. 종소리는 굴속으로 물방울이 떨어지면서 울려나온 소리로 청아하고도 명징하게 들렸던 것이다. 세조는 그것을 기이하게 여겨 이곳에 축대를 쌓고 장인(匠人)들을 불러 절을 창건하였다. 그리고 전답을 하사하고 승려를 거처하게 하였으며 절이름을 수종사라 하였다 한다.

 

수종사는 오랜 세월동안 중창을 거듭하는데 고종27년(1890)에는 풍계혜일(楓溪慧一)화상이 고종에게서 내탕금 8000냥을 받아 3월27일에 중창을 시작해서 6월28일에 마쳤고, 이듬해 3월에는 4000냥을 더 받아 불상 4존(尊)과 탱화 3축(軸)을 새로 봉안하였으며, 대법당·나한전·어향각(御香閣), 그리고 산왕각(山王閣)을 단청하였다. 1939년에는 주지 일조태욱(日照泰旭)이 대웅전·선루(禪樓)를 1940년에는 영산전(靈山殿)·독성각(獨聖閣)·산신각·어영각(御影閣) 등을 중건하였으나 한국전쟁 때 모두 소실되었다. 1975년 혜광(慧光)스님이 대웅보전을 복원하였으며 1999년 주지 동산(東山)이 선불장과 삼정헌을 중창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1972년 팔각오층석탑(제22호)과 1995년 부도(제157호)가 경기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남양주시>

 

  

▶ 수종사 가는 길   

 

 

  

중앙선 전철을 이용 운길산역까지 간 후, 출구를 나와 오른쪽으로 진행하다 진중1리 마을회관앞에서 오른쪽 길을 따라 북쪽으로 약20분 가면 운길산(수종사) 들머리가 나온다. 이곳에서 약30분 포장길을 오르면 수종사 일주문이 나타난다.

   

                                                        

                                               운길산역(雲吉山驛)   

 

                                                 출구를 나와 오른쪽으로 진행한다.

                                               고목 밑의 마을 쉼터

 

                                             운길산이 가까워 온다.

 

                                                               운길산들머리

 

                                   수종사까지 약30분 이런 포장길로 올라간다.

 

 

수종사(水鐘寺)

 

 

 

                                                  일주문(一柱門)

 

운길산수종사(雲吉山水鐘寺)란 현판이 붙어 있는데 한자가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씌어있는 것으로 보아 최근의 현판일 것으로 생각된다. 바로 옆에 상점이 있어 입구가 어수선하다.

 

                                                                  부도(浮屠)

 

                                                           미륵대불(彌勒大佛)

 

                                    2000년 12월26일 높이 8m의 미륵불을  봉안 하였다. 

 

                                                                  기원(祈願)

  

                                                 불이문(不二門)

 

‘불이(不二)’란 세상의 모든 삼라만상이 따로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는 진리의 다른 말이다. 즉 부처와 중생, 나와 남, 선과 악이 둘이 아니며, 나아가 생과 사도 둘이 아니라는 진리를 말한다. 불이문을 다른 이름으로 해탈문이라고도 하는데, 이 문을 통해야만 진리의 세계인 불국토가 열리는 것이다. 수종사에는 해탈문이 따로있다.

 

                                                         경내(境內)로 가는 길

 

   

                                            경내 입구의 화물 운반용 케이블 시스템

 

경내 입구의 샘 <자료사진>

 

물맛이 좋아 초의선사, 추사 김정희, 다산 정약용 선생이 즐겨 찾아 이 물로 차를 드셨다는 이야기

   

응진전(應眞殿)

 

응진전은 팔작지붕에 앞면 3칸, 옆면 2칸으로 근래에 지었다. 응진전은 나한전(羅漢殿)이라고도 하며 석가모니 부처님으로 부터 가르침을 받아 번뇌를 멸하고 세간에서 교법을 수호 하고자 서원한 아난·가섭을 비롯한 16나한을 모신 법당으로 아미타불과 협시보살인 관음과 대세지 보살을 모셨다. 또 불화로는 영산회상도와 1964년에 그려진 산신탱화가 봉안되어 있다.

 

                            

 

응진전 주련(柱聯)에..

 

사향사과조원성(四向四果早圓成)  사향과 사과를 일찌기 원만히 이루시고

삼명육통실구족(三明六通悉具足)  삼명과 육신통을 모두 갖추셨네

밀승아불정령촉(密承我佛叮嚀囑)  은밀하게 우리 부처님의 고구정령하신 부촉을 받으시어

주세항위진복전(住世恒爲眞福田)  세상에 머무르시며 항상 참된 복전이 되시네

 

叮嚀囑(정령촉)이란 신신당부한다는 뜻입니다. 정령은 苦口叮嚀에서 따온 말로, 입이 쓰도록 신신당부하다는 뜻입니다.

 

                                                                      ???

  

약사전(藥師殿)

 

맞배지붕에 앞면과 옆면 각 1칸의 건물로 근래에 지었다. 약사전(藥師殿)은 중생의 재난과 질병을 없애고 고난에서 구해주는 약사여래부처님을 모신 법당으로 안에는 약사불상과 관음보살상 및 약사 후불탱화가 봉안되어 있다.

 

산신각(山神閣)

 

팔작지붕에 앞면과 옆면 각 1칸씩의 건물로 1980년에 지었다. 안에는 1980년에 그린 산신탱이 봉안되어 있다. 산신각(山神閣)은 산을 영험하게 여기는 우리나라의 민속신앙에서 발전된 것으로 호랑이와 산신님을 신격화 해 봉안하고 있다. 주로 자식과 재물을 기원하는 산신기도가 많이 이루어지고 있고, 우리나라 사찰 대부분에 갖추어져 있다.

 

삼정헌(三鼎軒)

 

수종사는 양수리의 수려한 경치와 함께 초의선사와 다산 정약용, 추사 김정희가 교우했던 곳이어서 차(茶)로 이름나 있다. 수종사에서는 보다 많은 사람들이 차를 접할 수 있게 1999년 3월 다실 삼정헌(三鼎軒)을 열어 2000년 3월부터 절 방문객에게 무료로 차를 제공하고 있다.

 

삼정(三鼎)이란 다리가 세개 달린 솥이라는 의미이다. 세 개의 다리를 시와 선, 차로 의미화하여 시다선 일체를 이룬다는 삼정헌이라 이름 지었다.

 

                                                              선불장(選佛場)

 

                                                              선불장(選佛場)

 

                    종무소겸 승방으로 사용하고 있으며 아래와 같은 주련(柱聯)이 걸려있다.

 

사하청강강상연(寺下淸江江上煙)   절 아래 맑은 물 강에는 안개 자욱하고
봉만여화삽창천(峰巒如畵揷蒼天)   그림같은 산봉오리는 푸른하늘에 높이 솟았네.
유력뢰공장불득(有力雷公藏不得)   힘센 뇌공도 감출 수 없었으리

현명탑재전중간(玄冥榻在殿中間)   탑은 전각 사이에 깊숙히 감추어져 있네

백화향동자고제(百花香動鹧鴣啼)   온갖 꽃들은 향기를 풍기고 자고새는 우짖는구나

 

                                     선불장(選佛場) 앞 전망대에 사람들이 몰려있다.

 

                                             선불장 앞에서 바라본 두물머리

 

수종사에서 바라본 두물머리 풍광은 아름답고 한강으로 합류하기 직전 북한강의 물길은 장관이다. 사진 오른쪽 교각부터 양수대교, 양수교 그리고 북한강철교가 북한강을 가로지르고 있다.  

 

                                                         양수교와 북한강철교

 

                                                                   양수대교

 

                                          

                                           부도(浮屠)와 팔각오층석탑(八角五層石塔)

 

                                   

                                         남양주 수종사 부도(南楊州水鐘寺浮屠)

 

왕명에 의하여 세워진 수종사에 남아있는 팔각 원당형 부도이다. 지붕돌 낙수면에 ‘태종태후 정의옹주사리조탑 시주○○유씨금성대군정통기미년십월일입(太宗太后貞懿翁主舍利塔施主○○柳氏錦城大君正統四年己未十月日入)’이라는 명문이 새겨져 있어 세종21년(1439) 왕실의 명으로 제작되었으며, ○○유씨와 금성대군이 시주가 되어 세운 것임을 알 수 있다. 이 부도는 태종의 첫 번째 후궁인 권씨의 사리탑으로 추정되고 있는데 권씨는 태조1년(1392) 정의옹주(貞懿翁主)에서 태종3년(1403) 정의궁주가 되었고 세종15년(1433년) 의빈(懿嬪)으로 진봉되었다. 정의옹주는 평소 불교를 돈독히 믿었는데 다비 뒤에 사리가 나왔으므로 이렇게 사리탑을 만들게 되었다고 전한다. 그래서 이 부도를 정의옹주 부도라고도 불리며, 전체높이는 238㎝이다. 지금은 팔각오층석탑과 같은 자리에 있지만 본래는 경내에서 왼쪽으로 벗어나 있는 산비탈에 있었다고 한다. 이 부도는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157호로 지정되어 있다.

 

                              

 

이 부도는 조선시대 부도이지만 신라 말 고려 초 부도의 일반적 형태인 이른바 팔각원당형을 기본적 구조로 하였으며, 사각의 지대석과 팔각의 이중 기단부 위에 세워져 있다. 지대석 옆면에는 연꽃무늬가 장식되었고, 하층기단 옆면에도 각각 연꽃무늬가 조각되어 있으며 상층기단 팔각 모서리에는 개구리 또는 두꺼비처럼 생긴 동물이 배치되어 있어 흥미롭다. 원형의 탑신 표면에는 화려한 구름무늬가 장식되었고, 그 위에 팔각의 옥개석과 앙화·복발·보주 등의 상륜부가 남아있다.

 

                             수종사 부도 사리장엄구(水鐘寺浮屠舍利莊嚴具)  <자료사진>

 

한편 1939년 사찰 중수 때 석조 부도를 수리했는데, 이 때 청자유개호(靑磁有蓋壺) 1점, 은제도금육각감(銀製鍍金六角龕) 1점, 금제구층소탑(金製九層小塔) 1점이 나와 현재 보물 제259호로 지정되어 국립중앙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발견당시 이 유물들은 청자호 안에 은제도금육각감과 금동구층탑이 들어있는 상태였으며, 은제도금육각감은 내부에 사리병을 모셨다.

 

 청자유개호(靑磁有蓋壺) <자료사진>

 

청자 항아리는 높이 31.2㎝, 입지름 26㎝로 세로로 골이 파진 것처럼 몸 전체가 장식되었고, 뚜껑은 6부분으로 둥글게 접어서 맵시를 낸 다음 연화당초문을 새겨 장식하였다. 뚜껑의 가장 가운데에는 모란 꽃송이무늬를 도드라지게 새겨 놓았다. 청자호의 색깔은 몸체와 뚜껑의 색이 다른데, 몸은 녹청색이고 뚜껑은 녹황색을 띠고 있다. 어두운  녹청색의 두꺼운 광택유를 몸체에 바른 이 청자호는 장식수법이나 유태의 질로 보아 원말~명초경 중국 용천요에서 제작된 작품으로 추정한다.

 

                                              

                                          은제도금육각감(銀製鍍金六角龕) <자료사진>
 
청자 항아리 안에 구층소탑과 함께 들어 있었던 은제 도금육각감은 높이 17.3㎝로, 2중의 연꽃무늬가 있는 기단에 연꽃무늬와 칠보무늬를, 면마다 번갈아 뚫어 조각한 6각의 몸체 위에 6각의 지붕을 얹은 형태이다. 지붕 꼭대기에는 연꽃 모양 위에 보주(寶珠)가 장식되어 있다. 이 육각감 안에는 수정(水晶)으로 만들어진 공모양의 사리병이 들어 있는데, 여기에 구멍을 뚫고 사리(舍利)를 모셨다.

 

                                               

금제구층소탑(金製九層小塔) <자료사진>

 

금제구층소탑은 높이가 12.9㎝인 작은 탑으로, 정사각형으로 된 평상 모양의 기단 위에 있다. 1층 탑 몸체에는 한 면에 꽃잎 모양의 출입구가 3개 있고, 나머지 면에는 격자무늬 창문이 표현되어 있으며, 2층 이상의 각 층은 격자무늬 창과 난간을 음각으로 새겼으며 정면에만 출입구가 하나씩 있다. 각층 지붕의 네 모서리에는 풍탁을 사슬로 꼬아 달고, 탑 꼭대기의 노반(露盤) 위에는 4면에 인동형(忍冬形) 덩굴무늬의 청화입화식(靑華立華飾)이 하나씩 세워져 있다.

 

                                                        오층석탑(五層石塔)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22호로 지정되어있는 수종사오층석탑은 높이 330㎝의 석탑으로 탑내에서 출토된 불상 등 관련자료를 볼 때 조선 성종23년(1493)을 건립 하한으로 볼수 있으며, 그 후 조선 인조6년(1628)에 중수하였다.  '팔각오층석탑’ 또는 ‘수종사 다보탑’으로 유명한 이 탑은 원래 절 동쪽 경사진 곳에 있었던 것을 1970년 대웅전과 선불장 사이로 옮겨 놓았다. 석탑은 전체적으로 팔각형의 평면 구조를 지니고 있는데 팔각의 기단부와 오층의 팔각탑신 및 상륜부로 구성되었다.

 

 

팔각 지대석(地坮石)의 각 면에는 안상(眼象:코끼리 눈모양)이 조식(彫飾:만들어 새김)되었고 기단부의 각 면에는 단판(單辦), 복앙련(覆仰蓮:연잎모양)과 안상이 조각되어 있다. 또 이 탑 앞에는 가로 110㎝, 세로 65㎝ 가량의 석재가 마치 배례석(拜禮石)처럼 놓여져 있으나, 이 탑과는 본래 관계가 없는 것으로 보인다.

 

                                                       오층석탑(八角五層石塔)

 

오층탑의 옥신(屋身)은 위층으로 올라가면서 점차 좁아지고 있으며 탑신을 보호하는 옥개석의 낙수면(落水面)이 심하게 숙여져 전각(轉角:옥개석의 밑면)과 대칭하고 있다. 옥개석 바닥면은 수평으로 되어 옥신(탑신중의 한층)이 받치고 있다. 

 

  

옥석받침은 삼단이며 옥개석의 모서리 끝마다 요령(搖鈴)을 매달았던 철사구멍과 철사가 아직도 남아있다. 그리고 5층 옥개석 위에는 노반, 보륜 등의 상륜부가 일부 남아 있는데 조선 초기 경기 일대에 유행하던 형식의 석탑으로 매우 귀중한 연구 자료라 하겠다.  

 

 

그런데 무엇보다도 이 탑을 유명하게 만든 것은 탑 안에서 나온 소형 불상들이다. 이 불상들은 두 차례나 탑을 옮겨 세우는 과정에서 발견되었는데 현재 모두 18점이 출토된 것으로 알려졌다.

 

                                                                 금동불상 <자료사진>

 

불상 가운데는 1493년(성종 24)과 1628년(인조 6)의 명문이 각각 새겨진 것이 있어 이 탑의 창건과 보수 시점을 말해주고 있다. 불상들은 대체로 서로 비슷한 양식을 하고 있는데, 신체에 비해 얼굴이 크게 표현되었고 다소 웅크린 듯한 형태 등에서 조선시대 금동불의 특징을 보이고 있다.

 

 

                                             수종사 금동불감 (水鐘寺 金銅佛龕) <자료사진>

 

수종사 오층석탑의 1층 탑신에서 발견된 높이 20.15cm, 폭 18cm의 이 불감은 성종의 후궁인 영빈 김씨가 발원한 작품으로 알려져 있으며, 옥개석 내부에 홍치6년으로 기록된 묵서에 의해 1459년과 1493년 사이에 제작되었던 작품으로 추정된다. 동판을 조립하여 만든 전각형의 불감으로 정면에는 여닫이문을 달았고 상면에 팔작지붕을 얹어 전각의 형상을 나타내었으며, 앞면에는 꽃살문과 보상화문으로 장식하였고 좌,우면과 뒷면에 그림을 그려 넣었다. 여닫이문을 열면 표면을 두드려 나타낸 돋을새김으로 표현된 감실 내부의 삼존불과 문 내부의 인왕상을 볼 수 있다. 삼존불과 인왕상은 투박한 형상으로 표현되었지만 당당한 어깨와 세장한 신체를 통해 조선 전기 불상의 특징을 드러내고 있다. 관음·지장과 아미타설법장면을 나타낸 것으로 보이는 좌·우면과 뒷면의 그림들도 역시 간략화·경직화된 필선들에서 고려시대 불화양식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다. 

 

                                                            삼층석탑(三層石塔) 

 

    대웅보전과 선불장 사이에 있는 부도(浮屠)와 삼층석탑(三層石塔), 팔각오층석탑(八角五層石塔)

 

                                                            대웅보전 앞 풍경

  

                                                                 쉿! 조용히.. 

 

 

                                                          대웅보전(大雄寶殿)

 

대웅보전(大雄寶殿)

 

대웅보전은 1975년에 지은 건물로 정면 3칸, 측면 2칸, 겹처마 팔작지붕 건물입니다. 내부에는 비로자나불, 노사나불, 석가모니불을 모신 삼세불상 및 칠성탱 앞에 나한상 존상 1위가 있습니다. 불화로는 영산회상도를 비롯해서 지장탱, 칠성탱, 신중탱 등이 있으며 그밖에 근래에 조성한 범종 1구가 있습니다. 대웅보전은 사찰의 중심인 대웅전(大雄殿)을 격을 높여서 부를 때 쓰며, '대웅'이란 부처의 덕호(德號)입니다.

 

 

대웅보전 주련(柱聯)에..

 

佛身充滿於法界(불신충만어법계)   부처님 몸이 온 세계에 가득하니

普現一切衆生前(보현일체중생전)   일체 중생 앞에 모두 나타나셨네

隨緣赴感靡不同(수연부감미부동)   인연따라 가지 않는 데 없지만

而恒處此菩提座(이항처차보리좌)   언제나 보리좌에 계시네

 

화엄경 제2 "여래현상품"의 핵심 게송으로, 지혜의 자리에서 조금도 벗어날 수 없음을 의미한다.

 


대웅보전의 삼존불은 주불(主佛)로 비로자나불(법신불/法身佛)을, 오른쪽에는 노사나불(보신불/報身佛)을, 왼쪽에는 석가모니불(응신불/應身佛)을 모셨습니다.

 

                                                         대웅보전 오르는 계단

 

 

대웅보전 좌우의 해태상(獬豸像) 

  

                                                                   대웅보전

 

대웅보전 앞 꽃밭에서.. 

 

                                                                  종각(鐘閣)

 

 

 

 종각(鐘閣)

 

범종각, 범종루, 종루 라고도 하며 범종, 법고, 목어, 운판 등 불교의 사물을 걸어놓는 누각으로 그집이 2층의 누각 형태를 취할때 범종루라 한다.

 

                                                                                                       <자료사진>

                    수종사 범종 표면, 당좌위에, "운길산 수종사/羅漢神鐘"이라고 부조하였다.

 

                                                              경학원(經學院)

 

   경학원은 사찰에 따라 다르나 도서관으로 이용되거나 스님들의 공부방으로 사용되는 건물입니다.

 

                                                          해탈문(解脫門) 뒷면

 

                                                 해탈문(解脫門)

 

수종사의 해탈문은 일주문과 나란히 있는 것이 아니라 본당을 사이에 두고 일주문과 대응되게 서 있다. 수종사를 드나드는 문은 일주문을 따라 드나드는 것과 해탈문을 따라 일주문 반대방향으로 드나드는 방법, 이렇게 두 길이 있다.

 

                                                           해탈문 앞 은행나무  

 

경기도 보호수 수령 550년 은행나무 (1)

 

지정번호: 경기남양주 17
수종: 은행나무 2본
지정일자: 1982.10.15
수령: 550년
높이: 35m, 25m
둘레: 2m, 1.2m

 

                                                      경기도 보호수 은행나무 (1)

 

                            

                                                     경기도 보호수 은행나무 (2)

 

수종사 은행나무 제사 <자료사진> 

 

수종사는 2009년 9월 사찰 경내에서 550년된 은행나무에 무병장수를 기원하는 첫 제사를 지냈다. 이 은행나무는 보호수로 지정됐으나 관광객이 늘어 나무가 훼손될 것을 우려해 아직 제사를 한번도 지내지 않았었다.

 

                                         수종사 사적기(2007년 조성)

 

북한강과 남한강이 만나는 이곳 운길산 수종사는 멀리 신라시대부터 내려오는 옛 가람이다. 고려 태조 왕건이 상서로운 기운을 좇아 이곳에 이르러 구리종을 얻음으로써 부처님의 혜광을 통해 고구려를 건국했다는 전설이 전해지는 곳이기도 하다.

 

1439(세종21년)에 이르러 세종의 여섯째아들 금성대군이 정의옹주의 부도를 세우고 금제 9층탑 수정사리함(사리 14과)을 청자 항아리에 담아 부도안에 모셨다. 1458(세조 4년) 세조가 두물머리에서 머물다 새벽에 들려오는 종소리를 따라 올라와보니 그 종소리는 다름아닌 바위굴속에서 물이 떨어지는 소리였다. 세조는 굴속에서 18 나한을 발견하고 5층 돌계단을 쌓았으며 팔도 방백에 충창을 명하였다. 도량은 이러한 연유에 의해 수종사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다. 이때 은행나무 두 그루를 심고 다음해인 1459년에 수종사탑을 건립하였다.

 

1493(성종 24년) 후궁 명빈 김씨가 옥제 불감과 설법도가 그려진 금동불감에 금동불보살상등 14좌를 봉안하고 후궁들의 발원문도 함께 넣어 탑안에 모셨다. 1628(인조 6년) 정의대왕대비가 금동비로자나불좌상을 시주 하였으며 1890년 주지 풍계 혜일은 고종황제로 부터 두 차례 시주를 받아 수종사를 중창하였다. 이때 불상에 빛이 발하였다. 1939년 일조 태욱 화상이 중수하였으나 6.25 전쟁때 불에 탔다. 1974년 혜광화상이 대웅보전을 1981년 규원당 대웅화상이 약사전과 종각을 지었다. 1999년 부터 금해당 동산은 응진전선불장 삼정현 경학원 미륵불 일주문등을 세워 사적을 완성하며 서거정이 천하 제일의 명당이라 찬탄했던 절의 풍광을 다시 복원하였다.

 

수종사는 조선후기 초의 다산, 추사를 비롯한 다선 묵객들이 당색과 신분을 따지지 않고 함께모여 담론을 했던 사회변혁의 꿈이 깃든곳이다. 후인을 위해 수종사와 함께했던 선인의 발자취를 따라 사적기를 적는다.

                                             - 불기 2551년 동산짓고 선주석 쓰다 -

 

 

                                              수종사 사적기 뒷면 중창불사 공덕비

 

운길산 수종사와 한음 이덕형선생 

 

 

 

                             한음 이덕형선생 발자취를 만날 수 있는 송촌리 하산길 이정표 

 

 

 

 

 

2010.0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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