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정부 (망월사)
도봉산(道峰山) / 망월사(望月寺)
망월사(望月寺)
요사채 (寮舍寨)
요사채란 사찰내에서 전각이나 산문 외에 승려의 생활과 관련된 건물을 이르는 말이며, 동시에 기도하러온 신도들이 잠깐 쉬고 음식을 먹을 수도 있는 공간이기도 합니다. 또한 요사채는 창고·우물·장독·세탁시설 등 생활에 필요한 모든 시설이 한데 모여 있기도 합니다. 요사채 위로는 지장전(地藏殿)인 무위당이 있습니다.
월조계총지탑(望月寺 月照桂叢之塔)
무위당 축대 아래에 있는 이 부도는 행적을 알 수 없는 월조계총(月照桂叢)스님의 사리를 봉안하고 있다. 지대석과 하대석으로 구성된 기단부 위에 타원형의 탑신과 사각형의 옥개석 및 상륜부를 갖추고 있다. 그러나 부도에는 아무런 표식이 없으나 뒤쪽 바위 면에 “월조계총지탑(月照桂叢之塔)”이라고 새겨놓아 이 부도가 월조계총(月照桂叢)스님의 사리를 봉안한 것임을 알려주고 있다. <자료: 전통사찰>
해탈문(解脫門) - 무위당(無爲堂)가는 길
문 한쪽에는 ‘아니 오신 듯 다녀가시옵소서’라고 적혀있습니다.
공양간 옆 커다란 바위와 바위 밑 우물('관세음보살공덕감로수')
무위당에서 내려다 본 우물과 장독대
무위당(無爲堂) 오르는 길. 왼쪽 잦나무는 수령160년의 보호수
무위당(無爲堂)
정면 5칸 측면 3칸 규모의 맞배지붕 건물로 지장전(地藏殿)이라고도 한다. 건물은 경사진 지형을 이용하여 지었는데 아래에는 콘크리트 구조의 요사이고, 윗층이 무위당이다. 무위당의 정면과 좌우측면 벽에는 수많은 여래의 모습, 열반상, 사자를 탄 문수동자, 사찰의 모습을 추상적으로 그렸다. 정면에는 “무위당” 편액, 주련이 걸려 있고 마루의 오른쪽 끝에는 1786년(정조 10) 조성한 범종이 있다. 안에는 금동지장보살좌상과 지장시왕탱이 봉안되어 있는데 모두 근래에 조성한 것이다. <자료: 전통사찰>
시방동취회(十方同聚會) 시방에서 한 자리에 모여와
개개학무위(箇箇學無爲) 각각이 무위법을 배우는데
심공급제귀(心空及第歸) 마음이 공한자 급제하여 돌아가리
불타초연기(不墮悄然機) 처량한 모습은 결코 아니라
유문하경계(有問何境界) 그것이 어떠한 경계냐고 묻는다면
소지백운비(笑指白雲飛) 말없이 흰 구름이 날아가는 것을 가리키니.
무위당에 모셔진 지장보살(地藏菩薩)
무위당의 범종
무위당(無爲堂) 뒤로 낙가보전(洛加寶殿) 오르는 길
무위당(無爲堂)의 풍경
무위당(無爲堂) 지붕 위로 보이는 불암산
낙가보전(洛加寶殿)
안내판에는 관음전(觀音殿)으로 소개되어 있으며, 관음전은 관세음보살이 주존으로 계신 법당입니다. 관세음보살을 원통대사라고도 하기에 원통전이라고도 하며, 관세음 보살이 계신곳이 보타낙가산이기에 낙가보전(洛加寶殿)이라 이름하였습니다.
<자료사진>
<자료사진>
정면 5칸 측면 4칸 규모의 다포계 중층 팔작지붕 건물로 옛 낙가암(洛迦庵) 자리에 1993년 새로 지은 것이다. 원래 이 자리에 있던 낙가암은 1846년 대희대사(大羲大師)가 보국(輔國) 이경순(李慶純)의 시주로 창건하였다. 이후 1920년 송월(松月) 스님이 중건하였다. 1972년에는 도관(道觀) 스님이 퇴락한 건물을 헐고 콘크리트 구조로 지었던 것을, 능엄(楞嚴) 스님이 대대적인 중창불사를 하면서 새로 지어 지금의 낙가보전으로 이름을 바꾼 것이다. <자료: 전통사찰>
적광전(寂光殿)과 낙가보전(洛加寶殿) 현판
건물의 정면에는「낙가보전(洛迦寶殿)」과 「적광전(寂光殿)」이라는 현판이 걸려있으며, 외벽에는 1994년 화공 이연욱(李連旭)이 그린 팔상도와 나한, 또는 신선들의 모습을 그려 장엄하였다.
각 문살에는 투각으로 대나무와 새, 벌 꽃 등을 조각하였고, 기둥에는 6개의 주련이 걸려있다. <자료: 전통사찰>
증어관음여래회상(曾於觀音如來會上) 일찍이 관음여래회상에서
문훈문수금강삼매(聞勳聞修金剛三昧) 금강삼매를 닦으셨네
잉호관음적거보타(仍號觀音跡居寶陀) 그로인해 관음이라 불리면서 보타산에 계시며
시현차토구화무방(示現此土漚和無方) 이 땅에 나타나시니 그 방편이 끝이 없으라
욕식대성감응유실(欲識大聖感應有實) 그분의 감응이 헛되지 않음을 알고자하는가
도봉산정추월춘화(道峰山頂秋月春花) 도봉산정에 가을 달 봄꽃일세.
낙가보전 내부 <자료사진>
내부에는 중층 건물의 특징인 높다란 천장에 화려한 단청을 하였고, 벽면에는 부분적으로 주악비천과 천진난만한 동자들의 모습을 그려 장엄하였다. 특히 높다란 천장에 화려한 닫집을 설치하였는데 극락조가 하늘을 날고, 여의주를 입에 문 두 마리의 용이 조각되어 있어 마치 극락세계의 한 장면인 듯하다. <자료: 전통사찰>
낙가보전(洛加寶殿)의 관세음보살상 <자료사진>
닫집 아래에는 이 전각의 주존인 관음보살좌상과 용왕․선재동자입상을 협시로 봉안하였다. 그리고 뒤로는 42수관음목각탱을 봉안하였는데 좌우의 목탱에는 무수히 많은 관음보살의 화신이 표현되어 있어 중생의 고통에 부응하여 구제하는 것을 나타내었다. <자료: 전통사찰>
낙가보전(洛加寶殿)에 봉안되어 있는 신중탱과 금고(金鼓) <자료사진>
낙가보전 옆에 세워져 있는 주장자(柱杖子)
큰스님들이 들고 다니는 지팡이를 '주장자(柱杖子)'라고 합니다. '석장(錫杖)'이라고도 하며, 요즈음은 스님이 법상에 올라 법어를 하거나 안거, 결제 해제 때, 법어를 내릴 때, 주장자를 치는 등 법요(法要)에 사용됩니다.
여여문(如如門)과 낙가보전 <자료사진>
조망(眺望) 영산전(靈山殿)
도봉산의 암봉을 배경으로 세워진 영산전(靈山殿)
영산전(靈山殿)
영산전이란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묘법연화경을 설한 영산회상(靈山會上)의 장면을 묘사한 영산회도(靈山會圖)를 모시기 위하여 특별히 지은 전각입니다. 영산회(靈山會)란 석가모니 부처님이 영취산이라는 곳에서 많은 제자들을 모아놓고 가르침을 베풀던 모임입니다.
망월사 영산전은 사찰 서쪽 끝 절벽에 세워져 있는 정면3칸 측면2칸의 팔작지붕 건물로 1987년에 지은 것이다. 건물의 좌우 외벽에는 신선들의 모습을, 포벽에는 대나무, 난초 매화, 모란 등을 그려 장엄하였다. 그리고 정면과 오른쪽 측면에는 “영산전”이라는 편액이 걸려 있고, 각 기둥에도 4개의 주련을 걸었다. <자료:전통사찰>
유산유수승용호(有山有水乘龍虎) 산이 있고 물이 있는 곳에 용과 범을 타고
무시무비반송죽(無是無非伴松竹) 옮음도 그름도 없으니 소나무와 대나무를 벗삼아
증석영산몽수기(曾昔靈山蒙授記) 지난날 영산회상에서 수기를 받았는데
이금회재일당중(而今會坐一堂中) 지금 이 한 당에 모두모두 모였네.
<사진자료>
영산전 내부에는 뒤쪽 벽면에 닿게 좁은 탁자를 마련하고 그 위에 목조석가여래좌상과 목조미륵보살, 목조제화갈라보살, 그리고 소조가섭존자입상, 소조아난존자입상, 소조 16나한상 등을 봉안하였다. <자료:전통사찰>
천봉당선사 탑비(天峰堂禪師塔碑)
경기도 문화재자료 제 67호로 옆에 있는 태흘의 부도 탑비이다. 탑비는 어떤사적이나 글을 새겨 후세에 오랫동안 전하기 위해 세운 것으로 불교에서는 선종이 유행하면서 승려의 행적을 남기기 위해 부도와 함께 건립된다. 이 탑비는 지대석 위에 비몸[碑身]과 개석(蓋石)을 올린 간단한 형식이다. <자료: 안내판에서..>
탑비는 네모난 받침돌 위에 비신을 세우고 지붕돌을 얹은 간단한 모습이다. 1791년(정조 21)에 비를 세웠으며, 비문은 수관거사 이충익(李忠翊)이 짓고 썼는데 필치가 매우 맑다. 비 뒷면에는 그의 동문과 문제자(門弟子) 및 신도들의 명단이 새겨져 있다. 비문에 의하면 선사는 황해도 서흥 사람 김두필(金斗弼)의 아들로 16세 때 유덕사로 출가하여 명탁(明琢)의 제자가 되었다. 도원(道圓)에게 계(戒)를 받았으며, 20세 때 우점(雨霑)에게 배운 뒤 여러 곳에서 참선하다가 배천 호국사에 들어가 풍계선사(楓溪禪師)의 법을 이었다. 입적한 이듬해 호국사·월정사·망월사 등에 사리탑이 세워졌다. <자료: 전통사찰>
천봉당태흘탑(天峰堂泰屹塔)
경기도 문화재자료 제66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조선시대의 승려 천봉당 태흘(天峰堂泰屹, 1710∼1793)의 팔각원당형 부도이다. 팔각원당형 부도는 기단, 탑신, 지붕이 모두 팔각형이고 단층인 부도로 지붕과 기왓골 등 세부는 목조 건물의 양식을 모방하여 만들어진 것이다. <안내판에서..>
조선시대 승려인 천봉당 태흘(1710∼1793)은 16세에 출가하여, 명탁(明琢)의 제자가 되었고, 도원(道圓)으로부터 구족계를 받았다. 20세에 우점(雨霑)에게서 수학하였고, 이후 선지식을 찾아 두루 돌아다니다가 배천 호국사에서 깨달음에 이르러 풍계해숙(楓溪海淑)의 법을 이었다. 그러다가 1793년(정조 17) 속세의 나이 84세로 입적하였다. 이 후 배천 호국사, 문화 월정사와 함께 이곳 망월사에 사리탑을 세워 그 유골과 사리를 봉안하였다. 탑에 새긴 기록으로 보아 1794년(정조18)에 세웠음을 알 수 있다.
탑은 넓은 바닥 돌 위로 기단(基壇)을 두고, 탑신(塔身)을 올린 모습으로, 바닥 돌을 제외한 각 부분이 8각을 이루고 있다. 기단은 각 모서리마다 다섯 개의 구슬무늬를 세로로 두어 장식하였다. 길쭉한 탑신의 몸돌은 아래에 작은 잎의 연꽃을 두르고, 윗부분에는 큼직한 잎을 가진 연꽃을 둘러 새겼다. 가운데 부분에는 탑의 이름과 함께 조성연대를 세로로 기록해 두었다. 지붕돌은 윗면의 여덟 모서리가 꽤 두툼하게 표현되었고, 역시 두꺼워 보이는 처마는 부드러운 곡선을 그리고 있다. 꼭대기에는 연꽃을 새긴 둥근 돌 위로, 꽃봉오리 모양의 돌이 놓여 머리장식을 하고 있다. <자료: 전통사찰>
탑 뒤쪽에는 가파른 암벽이 드리워져 있는데, 그 벽면에 탑을 세울 당시 시주를 했던 사람들의 명단이 적혀 있어 이 자리가 원래의 자리임을 말해주고 있다. <자료: 전통사찰>
문수굴(文殊窟)
천봉당 태흘스님의 탑과 탑비가 있는 뒤쪽으로는 커다란 바위들이 겹쳐져 있다. 이 바위를 사이에는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동굴이 있는데, 여기에 목조전실을 짓고 문수굴이라 이름 지었다. 안에는 여의를 들고 반가부좌한 문수보살을 봉안하였다. <자료: 전통사찰>
문수굴 내부와 문수보살반가상 <사진자료>
천중선원(天中禪院)가는 길의 도천문(道天門)
도천문(道天門) 현판
스님들의 정진 도량 천중선원(天中禪院)
망월사는 근대의 큰스님인 만공스님, 한암스님, 성월스님, 춘성스님 등이 머물면서 후학들에게 선(禪)을 지도했던 유명한 곳이다. 그래서 그 명맥을 잇기 위해 1993년 능엄스님이 옛 대웅전 자리에 정면 7칸 측면 4칸 규모의 팔작지붕 건물을 짓고 천중선원이라 하였다. 이곳에서는 안거와 해제에 상관없이 깨달음을 찾는 납자들이 항상 머무르고 있다. <자료: 전통사찰>
천중선원(天中禪院) 뒤 고불원(古佛院)
천중선원 뒤에 있는 정면 3칸 측면 3칸 규모의 익공계 맞배지붕 건물이다. 안에는 삼세불인 석가․약사․아미타좌상을 봉안하였고, 그 뒤에 역시 삼세불후불탱을 봉안하였다. <자료: 전통사찰>
심검당(尋劍堂) <자료사진>
심검당은 정면 9칸 측면 4칸 규모의 맞배지붕 건물로 천중선원의 부속건물입니다. 심검당(尋劍堂)이란 칼 찾는 집이란 뜻이니 선방(禪房)을 일컫습니다.
부도탑의 잔해
산신각(山神閣) <자료사진>
정면 1칸 측면 1칸 규모의 맞배지붕 건물로 고불원 뒤쪽에 자리하고 있다. 내부는 아무런 존상을 봉안하지 않았으며, 대신 뒤쪽 자연암벽에 『나무도봉산신지위(南無道峰山神之位)』라 음각한 글씨를 향해 예경을 하고 있다. <자료:전통사찰>
칠성각(七星閣) <자료사진>
칠성각은 천중선원 뒤에 자리한 정면3칸 측면1칸 규모의 맞배지붕 건물이다. 칠성각 오른쪽 큰 바위면에는 “가경무인건차성각(嘉慶戊寅建此星閣)”이라는 음각 명문이 있는데, 이로보아 1818년(순조18) 칠성각을 처음 지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내용은 「봉은본말사지 망월사」조에도‘순조18년(1818년) 무인 절의 승(僧)이 칠성각을 지었다.’라고 적혀 있어 확인할 수 있다.
건물은 정면을 제외한 3면은 흙과 돌을 이용하여 벽체로 쌓았으며, 그 위 벽면에 주악비천, 용, 호랑이, 달마 등을 그렸다. 안에는 1973년 조성한 칠성탱, 독성탱, 산신탱과 석고독성상이 봉안되어 있고 각 기둥에는 석문의범(釋門儀範) 칠성단 예경에 나오는 구절로 주련을 달았다. <자료: 전통사찰>
자미대제통성군(紫薇大帝統聖君) 뭇 별을 이끄시는 자미대제와
십이궁중태을신(十二宮中太乙神) 십이궁 가운데의 태을신,
칠정제림위성주(七政齊臨爲聖主) 칠정이 모두가 성왕되시고
삼태공조작현신(三台共照作賢臣) 삼태는 함께 비추어 어진 신하되시네.
도봉산을 거쳐 수락산 아래를 관통하는 외곽순환도로
혜거국사부도(望月寺 慧炬國師浮屠)
망월사 경내에서 서쪽으로 약 100m 정도 떨어져 있는 이 부도는 혜거국사의 사리를 모시고 있다. 부도는 높이가 1.8m로 기단(基壇) 위에 탑신(塔身)을 올리고, 꼭대기에 머리장식을 갖춘 모습으로, 탑신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이 8각을 이루고 있다. 3단의 바닥돌 위에 마련된 기단은 그 윗면에 홈을 파서 탑신의 몸돌을 받도록 하여 안정감을 준다. 탑신의 둥근 몸돌은 아랫부분에 연꽃무늬를 두었다. 지붕돌은 밑면에 3단의 받침을 두었고, 처마는 각 귀퉁이마다 꽃장식을 달았다. 꼭대기에는 지붕돌과 한 돌로 이루어진 복발(覆鉢)이 놓여 있는데, 아래위로 구슬을 꿴 모양을 장식하고, 가운데에는 연꽃무늬를 두었다.
부도의 앞에는 직사각형의 판석에‘혜거탑(慧炬塔)’이라 새겨 부도의 주인공을 알려주고 있다. 부도를 구성하고 있는 각 부분의 수법과, 조형방식으로 보아 조선시대 전기에 세운 것으로 보인다. 현재 경기도유형문화재 제122호로 지정되어 있다. <자료:전통사찰>
범종각(梵鐘閣)
무위당 오른쪽 바위위에 세워져 있는 정면 1칸 측면 1칸 규모의 사모지붕 건물이다. 원래 망월사 범종각은 1973년 정영(瀞影)스님이 천중선원 앞에 세웠었다. 그러던 것을 대대적인 중창불사를 하면서 능엄스님이 지금의 자리로 옮겼다. 범종각 안에는 1975년에 조성한 높이 130cm의 범종이 하나 봉안되어 있다. <자료:전통사찰>
범종(梵鐘)
해우소(解優所)
절에서는 화장실을 "근심을 푸는 곳" 이라 하여 "해우소(解優所)" 라고 한다. 등산객은 사용할 수 없군요.
금강문(金剛門)과 안쪽의 낙가보전
2008.0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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