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대간 1 (성삼재~여원재) / 2007.11.12
산행코스 : 성삼재(1,098m/04:50출발) → 묘봉치(05:40) → 만복대(1,433m/07:40) → 정령치/휴게소(1,172m/09:00~09:45) → 고리봉(1,305m/10:15) → 고기삼거리(560m/12:15~12:30) → 노치샘(555m/13:20) → 수정봉 바로 옆(14:30) → 산성터(14:45) → 여원재 방향으로의 진행 코스를 잃고 반대쪽인 구룡사(구룡폭포) 방향으로 하산(17:10)
구례구역에서 승차하여 구례터미날에서 잠시 머무른 후 화엄사 경유 성삼재까지 운행하는 버스(구례구역~구례터미날:1,000원 / 구례터미날~성삼재: 3,200원)
구례군 농어촌 버스 시간표
다시찾은 성삼재(姓三峙/1090m), 만복대 오르는 입구
이곳 성삼재에서 만복대 오르는 입구는 성삼재 주차장에서 심원마을 쪽으로 약20~30m 내려가다 왼쪽에 있는데, 자칫 지나치기 쉬워 주의해야 한다. 특히 어두울 때는 놓치기 쉽다. 성삼재(姓三峙)는 삼한시대 진한군에 밀리던 마한왕이 지리산 달궁계곡에 왕궁을 세우고 피난할 때, 주위에서 가장 중요한 남쪽능선을 성(姓)이 다른 3명의 장군을 배치하여 방어케 하였다고 성삼재라 부르게 되었다 한다.
날이 밝을 무렵의 묘봉치(卯峰峙)
묘봉치(卯峰峙/약1,108m)
묘봉치의 이름 유래는 알 수 없으나, 아마도 이곳에 토끼가 많아 붙여진 이름이 아닐까 하고 생각해 본다.
국립지리원 해석
1.'고개'나 '재'는 우리말로 같은 뜻입니다.(고개=재)
2. 고개는 대부분 산을 관통하는 경우가 많아서 고개를 한자로 령(嶺 :재 령)이나 치(峙 :산 우뚝할 치)라고 쓰고 있습니다. 한자를 보면 모두 산(메)이란 글자가 붙어 있음을 볼때, 고개(령 또는 치)는 산등성이를 의미한다고 보면 되겠습니다.
3. 임걸령, 정령치 등은 산을 넘는 고개 정상에 위치하고 있기에, 산등성이를 가리키는 뜻일 것입니다. 따라서 령과 치가 의미하는 뜻은 같다고 보면 될 것입니다. (단, 령은 긴 등산로와 같고, 치는 가파른 고개를 뜻합니다)
4. 즉, 고개이름 뒤에 령, 치, 재, 고개라고 붙인 것을 보면 부르기 편하게 씌여진 것 같습니다. (예, 정령령을 정령치로, 싸리치를 싸리재로, 돼지치를 돼지령으로). 그러나 혼용해서 쓰는 경우도 많이 있는 것을 볼수 있습니다. (싸리치=싸리재)
만복대로 가는 능선
멀리 노고단과 성삼재 휴게소가 보인다
반야봉 일출
만복대 가는 길에서 되돌아 본 지리산 능선
반야봉의 일출 2
구례군 산동면
만복대 가는 능선 길
묘봉치를 지나게 되면 큰 나무는 사라지고 넓은 초원지대가 만복대 정상까지 이어져 있다.
서리꽃이 아침 햇살에 붉게 물들다
아침햇살에 물든 억새숲
반야봉의 일출 3
만복대의 억새 능선
만복대 산행의 진면목은 묘봉치에서부터의 억새 능선에 있다고 한다. 햇빛을 받아 반짝거리는 억새가 있어 산행의 즐거움을 배가 시킨다.
서리꽃밭
서리꽃으로 뒤덮인 만복대 능선
성삼재, 작은 고리봉. 묘봉치 줄기
만복대 억새 능선
빛을 받아 반짝거리는 억새가 화려하게 보인다.
만복대(萬福臺/1,438.4m)
만복대(萬福臺)는 이름과 같이 많은 사람이 복을 누리며 살수 있다고 하여 불리어지게 되었다고 한다.
붉은햇살과 서리꽃밭
만복대에서는 지리산 전체를 조망 할 수 있고, 위치에 따라서 변하는 지리산의 다양한 모습을 감상할 수 있다.
서리꽃밭
만복대에서 북쪽 방향을 바라보는 이 곳의 조망은 햇살에 비친 그림자가 명암을 짙게하여 장엄하고 신비로운 모습으로 다가온다.
서리 앉은 만복대 표목
만복대에서 정령치(鄭嶺峙)를 향하여..
뒤돌아본 만복대
줌으로 당겨 본 만복대
예쁜 억새
지리산의 능선 (멀리 천왕봉도 보인다)
정령치 가는 길
737도로 너머 인월 방향
정령치(鄭嶺峙/1,172m)
서산대사(西山大師)의 황령암기(黃嶺岩記)에 의하면 정령치(해발 1,172m)는 기원전 84년에 마한(馬韓)의 왕이 진한(辰韓)과 변한(弁韓)의 침략을 막기 위해 정(鄭)씨 성을 가진 장군으로 하여금 성(城)을 쌓고 지키게 하였다는데서 지명(地名)이 유래되었다고 한다.
또한 이곳은 신라시대 화랑이 무술을 연마한 곳이라고도 하며 산정(山頂)에는 옛날의 역사를 실증(實證)이라도 하듯 지금도 군데군데 유적이 남아있어 당시를 상기케 한다. 산 밑을 내려다 보면 발 아래 보일듯 말듯 굽어 보이는 절경(節景)은 장엄하기 그지없고 안개가 낀 날에는 선경이 연상되며 자신이 신선(神仙)이 된 기분을 느낀다. <안내판에서..>
정령치 휴게소
정령치의 산불감시 초소
정령치 휴게소에서 본 지리산 능선
아~ 천왕봉(정령치 휴게소에서)
산죽 길
737도로
고리봉(1,305m) 표목
고리봉은 전북 남원시 대강면 사석리에 위치하며, 일제강점기 때 금광을 캐기 위해 길을 만든곳이기도 하다. 고리봉은 아주 먼 옛날에 대강면 지역이 대룩붕으로 솟아 오르기전 배를 맨곳이라 하여 고리봉이라 한다고 전해지고 있다. 날씨가 좋은 날에는 진안군 마이산까지 보일정도로 전망이 좋은 곳이다.
산죽나무 군락
쉬어간 고기리 마을 (인절미로 점심을..)
고기리를 지나는 737번 지방도
고기 삼거리
노치(가재)마을 입구
737도로 따라 운봉 방향으로 걸어가다 왼쪽 덕치보건진료소 안내판을 보고 좌측길로 진입하여야 대간길이다.
덕치보건진료소를 지나 멀리 주촌 노치(가재)마을이 보인다. 마을 뒤쪽에 노치샘을 지나면 수정봉 가는 길의 입구가 있다.
수정봉 줄기
가운데 멀리 높은 곳이 수정봉이다. 옛날에 부녀자들이 치마에다 돌을 날라서 그곳에 성을 쌓았다고 성재라고 부른다고 한다.
노치(蘆峙)마을과 수정봉
해발 500m 고지에 넓은 논들이 펼쳐지고 그 너머로 마을이 보인다. 남원시 주천면 덕치리 노치마을. 백두대간을 타는 대간꾼들 사이에 대간에서 가장 물맛 좋은 샘이 있다고 이름이 난 마을이다. 옛날에는 이곳이 전부 갈대밭이였다고 하는데, 노치가 갈대 노(蘆)자를 써서 '노치(蘆峙)'라 한다. 그래서 '갈재마을'이라고도 하고 '가재마을'이라고도 한다. 아주 오래전 옛날에는 이곳까지 물이 찼다는 의미일까?
백두대간이 통과하는 국내 유일 마을 주천면 덕치리 노치(蘆峙)마을은 조선조 초에 경주 정씨(慶州鄭氏)가 터 잡고, 이어 경주 이씨(慶州李氏)가 들어와 형성되었다. 해발 550m의 고랭지로서 본래 이름은 갈재이다. 마을 앞 지리산의 관문인 고리봉과 만복대에 억새가 많이 있어 갈재라고 불렀는데, 지금은 노치(蘆峙)로 쓴다.
한국전쟁 때는 지리산 공비 토벌 작전으로 완전히 불타버린 아픔이 있는 이 마을은 전국에서 백두대간 능선이 유일하게 통과한다. 대간이 통과하는 동쪽은 운봉읍에, 서쪽은 주천면에 속해 한 마을에 두 개의 행정구역이 존재한다.
마을 뒷산에는 삼국시대 때 축성된 노치산성이 있다. 이 마을은 당시 신라와 백제의 국경지대로서 중요한 방어 지역이었으며, 아영면 아막성에서 정령치 고리봉의 산성까지를 연결하는 중요한 거점이었다. 지금은 백두대간을 찾는 사람들의 지친 발걸음을 거두어 주는 따뜻함이 있다. <안내비석에서..>
노치(가재)마을 입구 돌무덤
노치(가재)마을 통신탑
1년이면 3천~4천명 정도의 대간꾼들이 밤낮으로 지나가기에 동네 개들이 짖어 이 마을 사람들은 통 잠을 잘 수가없다고 불평이 대단하다는데, 우리도 길을 묻고 지나가 폐를 끼친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산꾼들의 겨울종주 때 많은 도움을 주는 고마운 분들이 살고 있는 마을로 이름나 있다.
정겨운 겨울 준비 풍경
무심(無心)
농촌 풍경
노치샘(해발 550m)
노치샘물은 여름에는 얼음물 같이 차고, 겨울에는 물이 따뜻해서 김이 날 정도라고 한다. 가뭄에도 마르지 않고 홍수에도 넘치는 일이 없는 이 샘물을 옛날에는 온 마을 사람들이 이용하였기에 마을에서 없어서는 안될 제일 중요한 곳이었다.
내려오는 이야기에 의하면 고려시대 당시 이곳에는 절이 있었다고 한다. 그러니 스님들이 판 샘인 셈이다. 이 샘물은 돌에서 나오는 석수인데 한국전쟁 후 장티푸스가 심하게 돌던 때도 이 샘물을 마신 사람들은 병을 앓지 않았다고 전한다. <자료: 전라도닷컴>
겨울채비
가재마을에서 수정봉으로 오르는 입구의 리본들
노치마을 뒷산 언덕에 자리한 수려한 소나무 네 그루 <사진자료:전라도닷컴>
백중날이면 돼지 잡아서 바치고 제를 지내는데, 뜻있는 사람들이 비용을 마련해서 두 해 전 제단을 마련했다 한다. 제단 앞 비석에 씌어진 글자가 '천룡덕사지신위(天龍德士之神位)' 다. 마을을 보듬고 지키는 신을 '천룡덕사'라 이른 것이라 한다.
수정봉 밑 양지산성터
이곳을 지나 방심하여 그만 여원재 방향의 길을 잃고 반대편인 구룡폭포 방향으로 하산하였다. 백두대간 산행 후기들을 보면 길을 잃을 만큼 복잡한 구간은 아닌것 같은데... 왜 어디서 길을 잘못 들었는지 내일 찾아보기로 하였다. 이런것을 ‘알바’(아르바이트의 준말이지만 산에 다니는 사람들의 은어로 길을 잘못 들은 것을 말한다)라 하는건가??!!
구룡폭포 입구 표지판
백두대간 1 (07.11.12)
'산행일지 > 한국명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백두대간 3 (07.11.26) (0) | 2008.05.28 |
---|---|
백두대간 2 (07.11.13) (0) | 2008.05.28 |
황매산 (08.05.03) (0) | 2008.05.28 |
두타산 (07.10.25) (0) | 2008.05.28 |
설악산 3 (07.07.14) (0) | 2008.05.2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