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사와 여행(국내)/경기도

영녕릉(英寧陵)/여주(驪州)-1

케인스 2019. 3. 23. 22:50



                  영녕릉(英寧陵) / 여주(驪州)-1

 


경기도(京畿道) 여주(驪州市) 영녕릉[英寧陵: 세종대왕릉(영릉/英陵)·효종대왕릉(영릉/寧陵)]


   

 영녕릉 위치 <google 참고사진>



여주 가는길


         


★ 경강선 [판교~여주: 48분 소요] 이용


     - 판교역 출발시간: 08:34 AM [공휴일 시간표]

     - 여주역 도착시간: 09:22 AM


 


관광순환버스 이용




★ 이용방법
    - 당일 왕복티켓 한 장으로 자유롭게 이용
    - 세종대왕릉, 5일장, 신륵사에서 환승 가능
    - 주요관광지에서 중간탑승 시 1,000원 할인된 요금으로 이용

       [ (예) 세종대왕릉역에서 시내버스 이용 후 세종대왕릉에서 관광순환버스 탑승 ]
승차권구입: 매표소 및 운전기사로부터 승차권 구입(만차 시 다음차량 이용)

★ 정기운행노선 및 요금


   


★ 평일 및 주말, 공휴일 시간표 [가, 나 노선]



                                                                                                                                                      <여주시 자료>

★ 탑승문의: 여주시 종합관광안내소(031-887-2140, 031-887-2868 / 여주시 문화관광과: 031-887-3573


 탐방 계획표






09:33 / 여주역 관광순환버스 승차장


★ 여주역 관광순환버스정류장에서 09시35분 발 '가'노선 관광순환버스를 이용하여 효종대왕릉버스정류장으로

    이동합니다. (9분 소요) 



 매표소에 인원이 상주하지 않아 버스기사에게 승차권 구입


                              여주관광순환버스 승차권.


   관광순환버스 노선도



▶ 여주역 → 영녕릉




                여주역에서 영녕릉으로 이동합니다. (약10분 소요)


09:44 / 효종대왕릉 버스정류장


2017년 11월 1일부터 2019년 05월 14일까지 세종대왕릉이 보수공사 중이어서  효종대왕릉 버스정류장에 도착하였습니다.


09:45 / 관광순환버스는 차를 돌려 다음 코스를 향해 출발합니다.


세종대왕릉 및 효종대왕릉 안내도 <참고사진>


09:45 / 영릉(寧陵: 효종대왕릉) 매표소


                         09:47 / 영릉(寧陵): 사적 제195호





영릉(寧陵) 재실(齋室): 보물 1532호


09:49 / 영릉(寧陵) 재실(齋室)



     

      영릉(寧陵) 재실(齋室) <google 위성사진>


                                           영릉(寧陵) 재실(齋室) <참고그림>


영릉(寧陵) 재실(齋室) 평면도


여주 효종 영릉재실 (驪州 孝宗 寧陵齋室): 보물 1532호 <참고사진>


영릉(寧陵)은 조선 제17대 효종대왕(1619~1659, 재위 1649~1659)과 인선왕후 장씨의 능이며, 재실(齋室)은 제관(祭官)의 휴식, 제수장만 및 제기 보관 등의 제사기능을 수행하기 위한 능의 부속건물이다. 효종대왕릉은 1659년 경기도 양주군 건원릉(현 경기도 구리시 동구릉)의 서쪽에 조성하고, 능호를 익릉(翼陵)이라 하였으며, 그 앞에 재실을 건립하였다. 이후 1673년 석물에 틈이 생겨 현 위치로 옮겨오면서 능호를 영릉으로 고치고 재실도 함께 옮겨왔다. 현재 남아있는 조선 왕릉의 재실은 일제강점기와 6·25전쟁을 거치면서 대부분 멸실되어 원형이 훼손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이곳 영릉 재실은 조선 왕릉 재실의 기본형태가 가장 잘 남아있고, 공간구성과 배치가 뛰어나 대표적인 조선시대 재실건축으로 학술적·역사적 가치가 높이 평가된다. <문화재청 자료>


               대문과 대문의 좌우로 길게 늘어선 행랑채 담벽


               

              대문 [재실 출입문]


                        협문(夾門)


협문을 들어서면 재실(齋室)



재실(齋室)


재실은 제관들이 목욕재계(沐浴齋戒)하는 곳으로 제사 전에 몸을 깨끗이 하고 마음을 가다듬어 제사에만 집중하는 곳을 말합니다. 평상시에는 능참봉의 집무공간으로 정면 6칸, 측면 2칸의 맞배지붕 건물입니다.

 

<참고사진>


                        

                         협문 좌우의 향나무와 회양목


회양목 (황양목(黃楊木), 화양목): 천연기념물 제495호


   


                        고목(古木), 회양목과 향나무


                        300년 수령의 회양목 못지않게 오래되어 보이는 키큰 향나무


고목(古木), 느티나무


또 하나의 협문 옆 담을 막아선 수령 500여년의 느티나무로 재실 건축연대보다 더 오래되었습니다.




제기고(祭器庫)


제사 때 사용하는 각종 그릇, 기구 등을 보관하는 장소로 정면4칸, 측면 1칸 맞배지붕 건물입니다.


안향청(安香廳)


제사 때 사용할 향(香)과 축문(祝文)을 보관하는 곳으로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 건물입니다.

                    

                              안향청 내부 <참고사진>


제관(祭官) 분방기(分榜記)





행랑채(行廊─)


행랑채는 보통 대문을 중심으로 마구간, 하인들이 기거하는 방, 창고 등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행랑채부속동


 우물


사주(四柱門)


  재실 전경


 09:59 / 세종대왕릉 가는 길 [왕의숲길] 갈림길



영릉(寧陵) : 효종대왕(孝宗大王)과 인선왕후(仁宣王后)의 릉(陵)



 영릉(寧陵) <참고사진>


영릉은 조선 제17대 임금 효종(孝宗, 1619~1659, 재위 1649~1659)과 비(妃) 인선왕후(仁宣王后, 1618~1674)의 쌍릉(雙陵)입니다. 효종이 1659(효종10) 54일 창덕궁 대조전에서 승하하자, 이 해 1029일 건원릉 서쪽 산줄기에 능을 조성하였습니다. 그런데 1673(현종 14) 병풍석에 틈이 생겨 광중에 빗물이 스며들었을 우려가 있다는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능을 옮겨야 한다는 천장론(遷葬論)이 불거졌습니다. 그래서 현재의 위치인 세종대왕릉 영릉(英陵) 동쪽에 자리를 정하고 능을 열어보았는데, 물이 스며든 흔적이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결국 영릉(寧陵)은 천장(遷葬)하였으나 이에 연루된 자들은 면직을 당해야 했습니다. 영릉 천장(遷葬) 다음 해에 인선왕후(仁宣王后)가 승하하여 효종 왕릉 아래에 인선왕후의 능을 조영하였습니다.

                                        영릉(寧陵) 위성사진 <google 참고사진>


왕릉과 왕비릉이 한 언덕에 같이 있는 경우 대개는 봉분을 나란히 두는 쌍릉(雙陵)의 형식을 택하는데, 영릉(寧陵)은 특이하게도 왕릉과 왕비릉이 상하(上下)로 조영되어 있습니다. 이는 풍수지리적 이유에서 비롯된 것으로 왕릉과 왕비릉을 좌우로 나란히 놓을 경우 생기(生氣)가 왕성한 정혈(精血)을 비켜가야 하기 때문에 좌우 쌍릉을 쓰지 않고 상하혈 자리에 왕릉과 왕비릉을 조성한 것입니다. 이러한 배치를 동원상하릉(同原上下陵)이라고 하는데 조선왕릉 중 최초의 동원상하릉 형식이 되었습니다. 왕릉의 봉분 주위로는 곡담(曲墻)이 설치되어 있으나 왕비의 능에는 곡담이 없어 두 능이 한 영역 안에 있음을 드러내주고 있습니다.


              

                             조선왕릉 상설도


<참고사진>



10:00 / 영릉(寧陵)


입구의 홍살문은 수리중인지 보이지 않습니다.


                            

                             수리 전의 홍살문



향어로(香御路)



홍살문에서 정자각까지 폭 3m 정도로 돌을 깔아 놓은 길을 향어로(香御路) 또는 참도(參道)라고 합니다. 왼쪽의 약간 높은 곳은 혼령이 출입하는 길이라고 하지만, 신을 위해 사용되는 신성한 길 신도(神道)라고 설명하는 것이 설득력이 있다고 보입니다. 제향 때 왕이 준비하여 올리는 향(香)과 축문(祝文)이 이 길을 지나 정자각으로 이동하게 됩니다. 오른쪽 약간 낮은 길은 임금이 다니는 길이라 하여 어도(御道)라고 합니다.


향어로(香御路)와 배위(拜位)


            배위(拜位)


홍살문 옆에 한 평 정도 돌을 깔아 놓은 곳으로 판위(板位), 어배석(御拜席), 망릉위(望陵位)라고도 하는데 제향의식 때 망릉례(望陵禮) 등을 행하는 곳입니다.


금천교(禁川橋)


금천교는 궁월에도 있으며 궁궐 정문 안에 흐르는 명당수 위에 놓여진 다리를 금천교(禁川橋)라 합니다. 나쁜 기운이 개울을 건너지 못하게 하여 궁궐을 보호하려는 뜻으로, 궁궐 들어온 사람들 내부 들어가고자 , 경계 의미 만든 다리입니다. 

왕릉에 있는 금천교도 이와 같은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조선왕릉의 금천교가 홍살문 앞에 위치하는 것과 달리 효종대왕 영릉(寧陵)의 금천교는 홍살문을 지나 향어로(香御路) 중간에 조성되어 있는 것이 특징입니다.


금천교(禁川橋)를 지나면 좌우로 수라간(水剌間)과 수복방(守僕房) 있습니다.


                수라간(水剌間)


                산릉제례 때 제사음식을 데우고 준비하던 곳입니다. 터만 남아있던 것을 2005년 발굴조사하여 2006년 복원하였습니다.


                수라간(水剌間) 내부


수복방(守僕房)


제기(祭器)를 보관하거나 수릉관(守陵官: 능을 지키는 관리) 또는 수복(守僕: 청소하는 일을 맡아보던 일종의 관노비)이 거처하던 곳으로 정자각 동쪽에 있습니다. 터만 남아있던 것을 발굴하여 1977년 원형대로 복원하였습니다.



정자각(丁字閣)


정자각은 제례(祭禮) 때 제물을 진설(陳設: 차림)하고 제사를 올리던 곳입니다. 위에서 보면 황제는 일(日)자 모양으로 침전을 조성하지만, 왕은 정(丁)자 모양의 정자각을 조성합니다. 정자각에는 동쪽과 서쪽에 층계가 있는데 오를 때는 동쪽으로 오르고 내려올 때는 서쪽으로 내려오며 이는 동입서출(東入西出)로 의식이 진행됨을 의미합니다. 이 건물은 1673년 영릉 천장(遷葬: 무덤을 옮김)시에 함께 건립되었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계단면석(階段面石)과 법수석(法首石)의 문양


동쪽 층계의 계단면석(階段面石: 계단 양측 측면을 막는 판석)에는 구름문양이 조각되어 있으며, 법수석(法首石: 소맷돌 앞부분)에는 태극문양이 조각되어 있습니다.



오른쪽 계단은 제향의식 때 어도(御道)를 따라 온 왕이 이용하는 계단이며, 가운데 계단면석이 있는 계단은 오직 신(神)을 위한 의식을 행할 때 이용하며, 왼쪽 계단은 나머지 제관(祭官)들이 이용하는 계단입니다.


정자각에서 본 왕릉 입구


정자각에서 본 향어로(香御路)


정자각 내부의 제상(祭床), 축상(祝), 향상(香)


 정자각 내부에서 바라본 효종대왕릉


제수진설도






비각(碑閣)


                   영릉비(寧陵碑): 朝鮮國 孝宗大王寧陵(조선국 효종대왕영릉)


본래 경기도 양주(지금의 구리시 동구릉)에 있던 효종대왕릉(寧陵)을 1673년(현종14년)에 이곳으로 천장한 사실과 그 후(1674년) 인선왕후(仁宣王后)의 능을 앞쪽에 따로 모셨음을 기록한 석비(石碑)인데 비각(碑閣)과 함께 그 당시에 세워진 것으로 추청됩니다.




                예감(瘞坎)


정자각 뒤의 서쪽에 있는 사각형의 석함(石函)으로 산릉제례 때 제례가 끝난 뒤 철상(撤床: 제사 음식을 치움)하면서 축문(祝文)을 여기에서 태웠습니다.



               신교(神橋)/신도(神道) 


               정자각에서 능침으로 연결된 돌다리로서 왕과 왕비의 혼령이 능침과 정자각을 오고갈 때 지나는 길입니다.

                 

            산신석(山神石) <참고사진>


               왕릉이 위치한 산의 신령에게 제사 지내는 곳으로 정자각 뒤 동쪽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효종대왕릉(孝宗大王陵)


 효종대왕릉(孝宗大王陵)


왕릉과 왕비릉 모두 병풍석(屛風石)을 세우지 않았으며, 12칸의 난간석(欄干石)을 설치하고, 횡석주(橫石柱)를 받치고있는 동자석주(童子石柱)에 십이지(十二支)를 한자로 새겨 놓았습니다. 과거 세조의 유언에 따라 병풍석을 세우지 않던 전통이 선릉(宣陵: 성종과 계비 정현왕후) 때 십이지신상(十二支神像)을 새긴 병풍석 설치 후 다시 시작되었다가, 이곳 효종의 영릉(寧陵)에서부터 또다시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고석(鼓石)


고석은 장방형의 혼유석(魂遊石)을 받치고 있는 돌인데 북의 모양을 닮았다고 하여 고석으로 부릅니다. 고석마다 잡귀를 막는 의미의 나어두문(羅魚頭文 혹은 鬼面文)을 새겼습니다.


 효종대왕릉(孝宗大王陵)에서 보는 인선왕후릉(仁宣王后陵)



인선왕후릉(仁宣王后陵) <참고사진>



인선왕후릉(仁宣王后陵) <참고사진>


 왕의숲길로 진행





 왕의숲길



영릉(英陵) : 세종대왕(世宗大王)과 소헌왕후(昭憲王后)의 릉(陵)



 10:36 / 세종대왕릉(世宗大王陵) 올라가는 길


관람제한구역


            


2017년 11월1일부터 2019년 5월14일까지 세종대왕릉과 효종대왕릉의 옛 모습 되찾기 위한 정비사업을 진행하기 위하여 세종대왕릉의 관람을 일부 제한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세종대왕릉의 능침주위만 둘러보겠습니다.


영릉(英陵)


1446년(세종 28)에 세종의 비 소헌왕후(昭憲王后)가 승하하자 당시 광주(廣州, 현재의 서울시 서초구 내곡동) 헌릉의 서쪽에 쌍실의 능을 조영하였습니다. 이 때 오른쪽 석실은 세종을 위해 미리 만들어 놓았다가 세종이 승하하자 합장하였습니다. 세조대에 영릉의 자리가 불길하다는 이유로 능을 옮기자는 주장이 있었으나 실현되지 못하다가 1469년(예종 1)에 이곳 여주로 옮겨 왔습니다. 여주로 천장(遷葬)하면서 원래의 영릉 터에 있었던 상석, 망주석, 장명등, 문석인, 무석인, 석수, 신도비 등은 그 자리에 묻혔습니다. 1973년 석상, 장명등, 망주석, 문·무인석, 세종대왕 신도비 등이 발굴되어 세종대왕기념관 앞뜰로 옮겨졌습니다. <다음백과 참고>


영릉(英陵)


영릉은 세종대왕(世宗大王)과 소헌왕후(昭憲王后)의 합장릉(合葬陵)입니다. 하나의 봉분에 두 개의 혼유석(魂遊石)이 놓여져 합장릉임을 알 수 있습니다. 영릉은 조선전기 왕릉 배치의 기본이 되는 능으로, 봉분 둘레에는 난간석을 두르고 횡석주(橫石柱)를 받치고 있는 동자석주 (童子石柱)에 한자로 십이지(十二支)를 새겨 방위를 표시하였습니다.


영릉(英陵)


"영릉을 여주로 옮긴 이후, 그 능지가 천하의 명당이라 조선의 국운이 100년이나 더 연장되었다며 '영릉가백년(英陵加百年)'이라는 말이 생겨났으며, 이중환(李重煥) 의 택리지(擇里志)에는 '영릉은 장헌대왕(莊憲大王: 세종)이 묻힌 곳인데, 용이 몸을 돌려 자릉으로 입수하고, 신방(申方)에서 물을 얻어 진방(辰方)으로 빠지니 모든 능(陵) 중에서 으뜸이다'라고 적혀있다."  <팜플랫 참고>



                                                                 석호(石虎) <참고사진>


                               영릉을 수호하는 석호(石虎)는 함박웃음을 짓고 있는 것이 특징입니다. <안내팜플랫 참고>


                       

                         영릉(英陵)


정비 공사 중


10:53

 

11:03 / 재실(齋室) 앞



● 세종대왕 역사문화관 팜플렛






효종대왕릉 버스정류장



효종대왕릉 버스정류장에서 11시43분 발 '나'노선 관광순환버스로 환승하여 파사성[막국수촌 정류장 하차]으로

    이동합니다. (26분 소요) 




                                       영녕릉(英寧陵) / 여주(驪州)-1 

                          (2019.0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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