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남위례길(3코스/위례역사길)/하남(18.12.01)
☞ 제3코스(위례역사길) / 하남(河南)
▶ 지역날씨 : 맑음[최고기온: 12.4℃, 최저기온: 0.8℃]
▶ 트레킹코스 : 하남위례길(3코스/위례역사길)
하남시서부농협,광주향교버스정류장 - 선법사[출발지점] - 광주향교 - 춘궁저수지(고골낚시터) - 춘궁동동사지 - 광암동고분군 - 이성산정상 - 건물지 - 동문지- 제2저수지 - 이성산성입구[도착지점] - 성산동,이성산성버스정류장
하남위례길 제3코스(위례역사길) 코스도
하남위례길 제2코스 트레킹 진행도 <google참고사진>
▶ 트레킹 거리: 약 5.7km,
트레킹 시간: (2시간45분 / 출발지점~도착지점 기준, 답사시간 약41분 포함)
하남시서부농협,광주향교버스정류장---(21분)---선법사[출발지점]/답사10분--(17분)---광주향교/답사18분---(17분)---춘궁저수지(고골낚시터)---(9분)---춘궁동동사지/답사10분---(29분)---광암동고분군/답사3분---(18분)---이성산정상---(5분)---건물지---(4분)---동문지---(14분)---제2저수지 ---(11분)---이성산성입구[도착지점]---(4분)---성산동,이성산성버스정류장
▶ 트레킹 사진
30-5 일반버스 이용[잠실역8번 출구 버스정류장 승차~ 서부농협.광주향교 버스정류장 하차]: 약40분 소요
버스정류장(서부농협.광주향교) ~ 선법사 진행도 <google참고사진>
10:00 / 서부농협. 광주향교 버스정류장 <참고사진>
서부농협. 광주향교 버스정류장에서 하차한 후 하남위례길 3코스 출발지점인 선법사까지 도보로 진행합니다.
10:11 / '가운데말' 버스정류장 지나서 선법사 표지판따라 우회전
10:18 / 좌측으로 가면 위례둘레길 4코스 중 객산, 남한산성 방향입니다. 선법사는 직진.
객산(客山)은 해발 301m의 작은 산으로 남한산성 벌봉에서 뻗어내린 산줄기에서 솟아 오른 봉우리입니다.
● 선법사(善法寺)
선법사(善法寺) 위성사진 <google참고사진>
10:21 / 선법사(善法寺) 입구 [출발지점]
10:22 / 선법사 요사채
선법사(善法寺)
선법사(善法寺)는 경기도 하남시에 자리한 한국불교 태고종 소속의 사찰입니다. 객산의 초입에 자리한 선법사에 대해 크게 알려진 것은 없지만 선법사에는 태평2년(977)이라는 명문이 새겨진 마애약사여래좌상이 있어 최소한 그 이전부터 사찰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습니다.
선법사 극락보전(善法寺 極樂寶殿)
선법사(善法寺)는 1990년 증축하였으며 아미타불(阿彌陀佛)을 주불(主佛)로 모시고 있습니다.
극락보전(極樂寶殿) 삼존불(三尊佛) <참고사진>
선법사 삼성각(善法寺 三聖閣) <참고사진>
극락보전(極樂寶殿)을 보며 왼쪽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삼성각 탱화 <참고사진>
오른쪽부터 산신(山神), 칠성(七星), 독성(獨聖) 탱화를 모시고 있습니다.
하남 교산동 마애약사 여래좌상 그리고 온조왕 어용샘과 객산폭
태평2년명마애약사불좌상(太平2年銘磨崖藥師佛坐像)
질병에서 모든 중생을 구제해 준다는 약사불을 형상화한 것입니다. 선법사 스님의 말로는 약사불 왼쪽 바위에도 부처님상이 있었으나 일제강점기 때 강탈 당했다고 말했습니다.
이 불상은 1989.04.10 보물 제981호로 지정되었습니다.
태평2년명마애약사불좌상(太平2年銘磨崖藥師佛坐像) 보물 제981호(1989.04.10)
이 불상은 삼각형 바위에 조각된 마애약사불좌상으로 큰 편은 아니지만 광배와 대좌를 갖추고 있으며 조각 수법이 정교하고 불신(佛身)의 비례도 뛰어나다. 이 약사불의 머리에는 육계가 있다. 체구는 장대하고 오른쪽 어깨를 드러낸 우견편단(右肩偏袒)으로 걸친 옷(法衣)을 입고있다. 광배는 두광(頭光)과 신광(身光)이 각각 3중원(三重圓)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그 주위에 불꽃무늬(火焰紋)가 조각되어 있다. 대좌의 하대석에는 꽃부리가 아래로 향한 복련(覆蓮)이, 중대석은 짧은 4개의 기둥으로 되어 있고 하대석은 꽃부리가 위로 향한 앙련(仰蓮)이 불상의 무릎을 감싸듯이 조각되어 있다. 불상의 오른 쪽에 '태평 2년(고려 경종 2년,977년) 7월 29일 고석불을 중수하며 황제의 만세를 기원한다(太平二年銘丁丑七月二十九日古石佛在如賜之重修爲今上皇帝萬歲願)' 라는 명문이 있다. 그러나 이 불상에는 새로 조각을 가한 흔적이 없는 것으로 보아 불감이나 가구 등을 새로 고쳤을 것으로 여겨진다. 이 불상의 조성연대가 확실할 뿐만 아니라 조각 기법이 섬세하고 보존 상태가 양호하여 고려 전기의 불상 연구에 귀중한 자료로 평가된다. <안내문>
마애약사불(磨崖藥師佛)옆의 명문(銘文)
마애불 바위에 새긴 명문(銘文)은 “중국 송(宋) 태평(太平) 2년(고려 경종2년.977년) 정축(丁丑) 7월 29일에 옛 석불을 중수(重修)하여 황제의 만수를 기원한다(古石佛在如賜乙重修爲今上皇帝萬歲願. 이두吏讀로 표기)”고 새겨져 있습니다.
선법사 약수터
선법사 약수터는 온조왕 어용샘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온조왕 어용샘은 백제의 온조왕(溫祚王)이 마셨던 샘물이라서 붙여진 이름으로 전해집니다.
온조왕 어용샘
객산폭포(客山瀑布)
마애약사불과 어용샘 사이에 자리하고 있는 아주 작은 객산폭포는 폭포라고 불리기에는 어울리지 않게 그 규모가 초라하며 바짝 말라 있습니다.
수량이 많을 때의 객산폭포 <참고사진>
10:29
10:31
10:33
10:39 / 건물 벽면의 가로 길이가 3m도 안되어 보입니다.
10:40
10:41 / '가운데말' 버스정류장
'가운데말'이란 조선시대 한강 수로로 운반된 세물(稅物)들을 보관하던 창고가 있었던 '하사창(下司倉)'의 중앙에 위치했다고 하여 붙인 이름입니다. <하남문화원>
10:47 / 덕풍천(德豊川)
● 하남 광주향교(河南 廣州鄕校)
하남 광주향교(河南 廣州鄕校) <google참고사진>
향교는 조선시대 국가에서 설립한 지방 교육기관으로 중·고등학교 수준의 교육을 담당하였습니다. 향교에 입학할 수 있는 유생은 이미 한문을 익힌 양반 자제들로 되어 있으나 평민의 자제들도 입학할 수 있었고, 시나 문장을 짓는 사장학과 유교의 경전 및 역사를 공부하는 경학이 주요 교육내용이었습니다. 또한 향교에서는 교육뿐만 아니라 중국과 조선의 성현에게 제사하였습니다. 고을의 크기에 따라서 향교의 정원을 조정하였는데 대체로 군에는 50명, 면에는 30명의 학생을 수용하도록 하였습니다. 그리고 토지를 지급하고 그에 따른 세금 수입으로 학교 운영 비용을 충당하게 하였습니다. 조선 시대에는 나라에서 토지와 노비 · 책 등을 지원받아 학생을 가르쳤으나, 지금은 교육 기능은 없어지고 제사 기능만 남아 있습니다. <위키백과>
10:48 / 광주향교 경관 광장
10:50
10:51 / 향교의 수호목, 은행나무(수나무)
왜 향교 주위에서는 은행나무 노거수(老巨樹)를 만날 수 있나요?
서울에 있는 문묘(文廟)나 지방에 있는 향교에는 오래된 은행나무를 볼 수 있는데 이것은 은행나무가 유교교육의 상징인 행단(杏壇)과 관련이 있기 때문입니다. 공자의 고향 중국 곡부에 가면 공자를 기념하는 건축물인 공묘(孔廟)가 있습니다. 이곳에는 공자가 제자를 가르쳤던 장소를 표시한 행단(杏壇)이라는 표석이 서있습니다. 바로 이곳에서 공자가 제자들을 가트쳤다고 합니다. 행단(杏壇)의 행(杏)은 살구나무를 나타내며, 단(壇)은 교실 강단을 의미 하기에 공자가 살구나무 아래에 강단을 만들고 그 곳에서 제자를 가르쳤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중국에서는 살구나무가 유교의 상징나무인 셈이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알 수 없는 이유로 은행나무가 대신하고 있습니다. 「이수광(李睟光)의 지봉유설(芝峯類說)」에서 행단의 나무는 은행나무가 아니라 살구나무라고 주장하기도 하였습니다. 지금도 행(杏)이 은행나무인가 아니면 살구나무인가 두고두고 논란이 되고 있습니다. 어쨌든 행단(杏壇)이라는 용어는 공자의 사상과 유학을 교육하고 학문을 수양하는 장소라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어 주위에 은행나무를 심어 공자의 사상을 추앙하고 학문을 연마하는 분위기를 조성하였던 것입니다.
10:53 / 향교 주변 경관광장
조경공사 준공기념 식수 (2005. 5. 30)
10:54 / 하남 광주향교(河南 廣州鄕校)
하남 광주향교(河南 廣州鄕校) 전경 <참고사진>
광주향교의 건물 배치는 가장 뒤쪽에 제사 공간인 대성전과 동무, 서무가 있으며 그 앞으로 교육 공간인 명륜당과 동재, 서재가 있어, 전학후묘(前學後廟)의 전형적인 배치 형태를 갖추고 있습니다. 문묘[성균관]에는 대성전이 앞에 있고 명륜당이 뒤에 있는데 비해, 광주향교는 이와 반대로 명륜당이 앞에 있고 대성전이 뒤에 있습니다.
광주향교(廣州鄕校) 외삼문(外三門)
문화재 자료 제 13호 광주향교(廣州鄕校)
광주향교(廣州鄕校)는 지금 경기도 하남시에 속해 있지만 본래 이곳은 경기도 광주에 속해 있었습니다. 광주(廣州)라는 이름 그대로 조선 시대의 광주는 지금의 경기도 광주시뿐만 아니라 한강 이남 동남쪽인 송파구와 강동구, 하남시, 성남시 일대까지 포함한 넓은 고장이었습니다. 그러다가 1989년에 광주군의 일부가 떨어져 나와 하남시가 되면서 오늘날 광주향교는 하남시에 속하게 된 것입니다.
하남 광주향교(河南 廣州鄕校) 전경 <참고사진>
문묘[성균관]와 향교의 건물 배치를 보면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는데, 바로 ‘강학 공간(학문을 닦고 연구하는 공간)인 명륜당’과 ‘제향 공간(제사를 지내는 공간)인 대성전’입니다. 대성전은 공자와 공자의 제자, 우리나라의 현인들의 위패를 모시고 제사를 지내는 제향 공간의 중심 건물이며, 명륜당은 학생들이 공부하는 강학 공간의 중심 건물입니다.
명륜당(明倫堂)과 동재(東齋), 서재(西齋)
명륜당(明倫堂)
명륜당은 정면 5칸, 측면 2칸 규모로, 팔작지붕 건물입니다. 명륜당은 유생들이 모여 공부하는 강당이고, 동재(東齋), 서재(西齋)는 공부하는 유생들이 머물던 곳으로 학생들의 기숙사라고 할 수 있습니다.
명륜당 현판 <참고사진>
동재(東齋)
서재(西齋)
수복사(守僕舍)
부속 건물인 수복사(守僕舍)는 향교의 관리인이 거주하였던 곳입니다.
수복사(守僕舍)
수복사(守僕舍)
내삼문(內三門), 대성전(大成殿), 그리고 동무(東廡), 서무(西廡)
내삼문(內三門) <참고사진>
대성전(大成殿) <참고사진>
대성전은 정면 3칸, 측면 4칸 규모의 맞배지붕 건물입니다. 대성전 내부 중앙에는 문성지성 문선왕 공자 (文成至聖 文宣王 孔子)의 위패와 그 좌우에 사성(四聖)인 종성공 증자(宗聖公 曾子), 복성공 안자(復聖工 顔子), 술성공 자사(述聖公 子思)와 아성공 맹자(亞聖公 孟子)의 위패가 모셔져 있으며 . 대성전 좌우에 있는 동무와 서무에는 공자의 제자 및 중국 송나라와 조선의 20현(賢)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습니다.
동무(東廡) <참고사진>
서무(西廡) <참고사진>
전사청(典祀廳) 터 <참고사진>
공자 및 성현들의 제사를 맡아보는 관아 터
제기고(祭器庫) 터 <참고사진>
공자 및 성현들의 제사를 지낼 때 사용하는 제기 및 도구들을 보관하던 곳입니다.
광주향교(廣州鄕校) 사적비(史蹟碑): 향교의 창건과정과 역사를 적은 비
11:01 / 하마비(下馬碑): 누구든지 말(馬)에서 내려야 한다는 표시
하마비(下馬碑)
보호수① : 은행나무(암나무)
보호수② : 은행나무(암나무)
보호수③ : 은행나무(암나무)
보호수④ : 은행나무(암나무)
11:06 / 은행나무와 광주향교
11:08 / 위례역사길 코스[광주향교 이정표]
11:15 / 서울외곽순환고속도로 밑
이성산성입구 ~ 하남 동사지 진행도 <google참고사진>
11:17 / 성산동 이성산성 입구
11:22 / 고골낚시터 버스정류장
11:23 / 춘궁저수지와 고골낚시터
11:23 / 춘궁동 고골낚시터
하남시 춘궁동은 백제의 도읍지[하남위례성]로 추정되고 있는 곳으로 옛 고읍(古邑)이 있었다고 하여 "고골"이라고도 불립니다.
11:26 / 동사지 300m 지점
11;27 / 서울외곽고속도로 굴다리 <참고사진>
● 하남 동사지(河南 桐寺址): 사적 제352호
하남 동사지(河南 桐寺址) 위성사진 <google참고사진>
하남 동사지(河南 桐寺址)는 이성산 남쪽 고골 저수지 옆의 야산인 금암산(金岩山) 기슭에 있는 고려 초기의 대규모 절터입니다.
하남 동사지(河南 桐寺址) 전경 <참고사진>
동북으로 남한산성과 이성산성이 보이는 분지에 있는 절터이며, 발굴조사시 금당터와 4곳의 건물터의 흔적이 발견되었습니다. 부처를 모시는 건물인 금당은 당시 매우 큰 건물이었고, 금당안에는 지름 5.1m의 8각 대좌 위에 부처를 모셨습니다. 유물로는 금동불상·기와·도자기·동으로 만든 불기류 등이 나왔고 ‘동사(桐寺)’라는 글씨를 새긴 기와가 나와 이 절의 이름이 동사였음을 알게 해줍니다. 절터에는 현재 두개의 석탑(보물 제12호, 제13호)이 있습니다. 후삼국시대에서 고려 전기에 이르는 시기에 지어졌으며, 웅장하고 거대한 규모의 절로서 조선 전기까지 남아 있었으나 그 후에 폐사된 것으로 보입니다. <문화재청 자료>
11:32 / 동사지(桐寺址)와 두기의 석탑 (동사지 5층석탑:보물 제12호, 동사지 3층석탑: 보물 제13호)
동사지(桐寺址)와 두기의 석탑
동사지(桐寺址)
★ 하남 동사지(河南 桐寺址)의 역사적 의의
동국대학교 박물관 조사단이 1988년 4~7월에 발굴 조사한 결과 ‘桐寺’라는 이름의 명문(銘文)기와가 출토되어 통일신라 말부터 고려 초기로 이어져 내려온 절터임이 확인되었다. 다른 문헌에 동사라는 절에 대한 기록이 나타나지 않아 이 절에 대한 내력은 알 수 없다. 발굴조사에서 가람배치는 3탑 3금당인지 2탑 2금당인지 확인되지 않았으나, 노출된 금당(金堂)터와 불대좌(佛臺座:지름 5.1m의 팔각대좌석), 건물터 등 유구(遺構)의 상태로 보아 건축양식 또한 독특하여 한국 불교미술사 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이 절터 중앙부에는 보물 제11호·제12호로 지정된 신라양식을 계승한 3층석탑과 5층석탑이 있고, 또 북쪽에는 신라 때 축조된 것으로 알려진 이성산성(二聖山城)이 있는데, 절터 동쪽에 고곡(古谷) 또는 궁마을로 알려진 옛 마을이 펼쳐져 있어, 이 일대가 백제의 하남 위례성(慰禮城)이라는 설도 있다. <대한민국 구석구석 자료>
금당지 팔각대좌(金堂址 八角臺座)
동사지(桐寺址)에 세워진 다보사(多寶寺) 앞에는 옛날 동사(桐寺) 금당의 중앙에 있던 본존불 대좌의 하대석으로 생각되는 팔각형 석재가 남아 있는데 지름이 5.1m에 달하여 당대 최대규모인 것으로 판단하고 있습니다
발굴 당시 금당지 팔각대좌(金堂址 八角臺座) <문화재청자료>
동사지 건물터 <문화재청자료> 동사지 출토 기와 탁본
1988년 판교∼구리 간 고속도로가 건설될 당시, 동국대학교박물관에 의해 발굴조사 되었습니다. 이 발굴조사를 통해 금당 등 4곳의 건물터가 드러나고 금동불상, 기와, 도자기, 동으로 만든 불기류 등이 출토되었습니다. 기와 중에서 “광주동사(廣州桐寺)”라는 글씨를 새긴 명문기와[銘文蓋瓦]가 발견되어 이곳이 동사의 옛터라는 사실과 10세기경 새롭게 지어졌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습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동사지(桐寺址)에 있는 두기의 석탑 (동사지 5층석탑:보물 제12호, 동사지 3층석탑: 보물 제13호)
하남 동사지 삼층석탑 (河南 桐寺址 三層石塔) : 보물 제13호
경기도 하남시 춘궁동에 있는 3층 석탑으로 2단의 기단(基檀) 위에 3층의 탑신(塔身)을 올린 모습입니다.
3층석탑 기단부(상, 하층 기단)
기단부의 바닥돌과 아래층 기단의 가운데돌은 한돌로 짜여졌는데 대부분이 땅속에 파묻혀 있고, 아래층 기단 맨윗돌 일부가 깨지고 없어졌으며, 윗층 기단과 탑신부의 각 층 몸돌에는 기둥 모양이 새겨져 있습니다.
하층 기단의 각 면에는 3개씩의 안상(眼象)이 새겨져 있습니다. <참고사진>
<참고사진>
지붕돌[옥개석(屋蓋石)]은 아래면이 반듯하고 윗면도 완만한 경사를 보이지만, 지붕돌 네 귀퉁이에서의 치켜올림이 뚜렷해 경쾌한 느낌입니다. 이 탑은 1층 탑신과 2·3층 탑신의 크기가 줄어드는 비율이 따라 지붕돌도 작아지고 있어 전체적으로 매우 안정된 느낌을 주고 있습니다. 탑의 세부적인 양식도 신라 후기 석탑의 전형적인 면모를 잘 간직하고 있어, 만들어진 연대는 고려 중기 아래로 내려가지 않을 것으로 짐작됩니다. 1966년 보수공사를 실시할 때 탑 안에서 곱돌로 만든 소탑(小塔)들이 발견되었습니다. <문화재청자료>
석탑의 각 부분별 명칭 <참고자료>
하남 동사지 오층석탑 (河南 桐寺址 五層石塔) : 보물 제12호
경기도 하남시 춘궁동에 있는 5층 석탑으로 2단의 기단(基檀) 위에 5층의 탑신(塔身)을 올린 모습입니다.
5층석탑 기단부
기단의 네 모서리와 면의 가운데에 기둥 모양을 새겨두었는데, 남쪽 면의 부서진 부분을 들여다보면 안쪽으로 커다란 기둥돌이 보입니다.
5층석탑 1층 몸돌
이 탑의 특징은 탑신부에서 드러나는데 1층 몸돌이 2단인데, 아랫단을 4개의 네모난 돌로 두고, 그 위에 1장의 돌을 얹어놓았다. 이러한 예는 (전)광주 성거사지 오층석탑(보물 제109호)에서도 볼 수 있는데, 고려시대에 나타난 새로운 양식이다.
5층석탑 지붕돌
지붕돌을 구성하는 돌 역시 1∼3층은 4장, 4층은 2장, 5층은 1장이다. 지붕돌은 밑면에 1층은 5단, 2∼4층은 4단, 5층은 3단의 받침을 두었는데, 이러한 구성은 탑신부가 위로 갈수록 강하게 체감하는 느낌을 갖게 한다. 지붕돌 아래는 수평을 이루어 반듯하며, 경사는 완만하면서도 네 귀퉁이 선이 뚜렷하게 치켜올려져 있어 경쾌하다. 탑의 꼭대기에는 머리장식으로 노반(露盤:머리장식받침)만이 남아 있다. 구조상 불규칙적인 면이 많지만, 각 부분의 끝맺음마다 규칙성이 느껴지고, 탑신의 비례도 조화로운 우수한 작품이다. 지붕돌 모서리의 치켜올려진 정도나 기단을 2단으로 구성한 점 등 통일신라 후기 석탑양식의 전형을 따른다고 볼 수 있다. 다만, 지붕돌 받침수가 3∼4단으로 줄어든 점이나, 기단의 가운데에 새긴 기둥의 수가 줄어든 것 등으로 미루어 고려 전기인 10세기 후반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 <문화재청자료>
동사지 5층석탑(보물 제12호)과 동사지 3층석탑(보물 제13호)
동사지 5층석탑(보물 제12호)과 동사지 3층석탑(보물 제13호)
11:42 / 동사지(桐寺址)에 세워진 다보사(多寶寺)
하남 동사지(河南 桐寺址)에 세워진 다보사는 동사(桐寺)와는 전혀 관련이 없는 대한 불교 조계종 소속의 예산 수덕사 포교원으로 알려진 소규모 사찰입니다. 이곳에는 대원사라는 개인 사찰이 있었는데 조계종 종단에서 사지(寺址)를 체계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약 1200여평을 매입하였으며, 현재 석탑이 자리하고 있는 땅은 하남시에서 매입하여 사적지(史跡地)로 지정되었습니다.
다보사 전경
11:42 / 동사지 출발 [다보사 법당 입구]
하남 동사지 ~ 하남 광암동 석실고분군 진행도 <google참고사진>
11:58 / 고골낚시터
12:01 / 고골낚시터 버스정류장
12:08 / 하남 광암동 석실고분군 입구
12:08
12:09
● 하남 광암동 석살고분군
하남 광암동 석살고분군 위치 <google참고사진>
12:11
12:12 / 1호 석실분
1호 석실분
2호 석실분
2호 석실분
9호 석곽묘 <참고사진>
9호 석곽묘
12:15 / (위례역사길) 동사지 1.0km, 이성산성 0.3km 지점
● 하남 이성산성 (河南 二聖山城)
하남 이성산성 위치 <google참고사진>
이성산성 안내도
12:17
12:18 / 위례역사길 표지기
12:21 / (위례역사길) 동사지 1.2km, 이성산성 0.1km 지점
12:27 / 남문지 갈림목[동사지 1.3km, 동문지 0.6km, 남문지 0.5km 지점]
12:32 / 이성산(二聖山: 209m) 정상
이성산 정상의 산불감시탑
하남 이성산성 (河南 二聖山城) <참고사진>
이성산성은 남한산성이 있는 청량산에서 북쪽방향으로 내려오는 줄기와 만나 길게 맥을 형성하는 금암산의 줄기에 접해 있으며, 남쪽은 평야를 둘러싸고 있는 높은 산들이 있으나 북쪽은 작은 구릉만 있어 한강 주변지역을 한 눈에 조망할 수 있다. 따라서 이성산성은 배후의 평야지역을 방어하고 강북의 적으로부터 한강유역을 방어하기에 매우 유리한 입지조건을 갖춘 지점에 위치하고 있다. 총길이 1,925m인 이성산성과 성내부에 대한 본격적인 발굴조사는 한양대학교박물관의 주관으로 지난 '86년부터 '99년간 7차에 걸쳐 실시되었으며, 삼국시대 건물지(8각, 9각, 장방형 등)와 부대시설(문지, 배수구 등), 목간, 철제마 등 총 3,352점의 유물이 출토되었고, 특히 3차 발굴조사 결과 출토된 목간 전면의 명문기록「무진년정월십이일 붕남한성도사< 戊辰年正月十二日 朋南漢城道使...>」 중 "무진년"은 603년으로 추정되고 있다. 출토된 토기들은 황룡사, 안압지 출토 토기들과 유사하여 통일신라토기로 판명되며, 신라가 5세기 중엽 한강유역을 점령한 후 축조된 것으로 역사상·학술상으로 매우 귀중한 유적으로 평가된다. <문화재청 자료>
12:37 / 장방형건물지와 9각건물지
이성산성 건물지 <google참고사진>
12:37 / 장방형건물지와 9각건물지
이성산성 건물지[동문지 0.1km, 이성산 0.2km 지점]
장방형 건물지
장방형 건물지는 이성산성 정상부에 위치하며 내부에 온돌이나 난방과 관련된 유구가 전혀 없는 것으로 보아 일상생활용 건물이 아니라 창고의 역할을 하는 누각형 건물인것으로 판단됩니다. <안내판>
9각 건물지
9각 건물지는 출입구나 난방시설 등은 확인할 수 없으며 1층에 벽이 있었던 건물로 추정된다. 9라는 숫자가 완전무결함을 의미하는 하늘의 숫자이므로 하늘에 제사를 지내기 위한 천단(天壇)으로 볼 수 있습니다. <안내판>
8각 건물지
8각 건물지는 건물의 구조와 관계가 없는 의례적 의미의 구조물로 생각됩니다. 8이 땅을 상징하는 숫자이므로 지신(地神)에게 제사지내는 사직단(社稷壇)으로 추정됩니다. <안내판>
12:40
12:41
12:41 / 이성산성 동문지(東門址) [남문지 0.4km, 이성산 0.3km 지점]
12:42 / 이성산성 동문지(東門址)
이성산성 동문지(東門址) 유구(遺構)
12:42
12:45 / 이성산성 동문지(東門址)
12:45 / 이성산성 동문지(東門址)
12:52
12:52
12:53 / 하남 이성산성 (河南 二聖山城) 안내판
12:55 / 제2 저수지
12:56 / 저수지
12:56 / 이성산성 약수[이용할 수 없습니다.]
이성산성 약수[이용할 수 없습니다.]
12:57 / 저수지
12:57 / 배수구
12:58
12:58
12:59
12:59
12:59 / 이성산성남문지[동문지 0.4km 지점]
13:01
13:06 / 이성산성 오르는 길 입구 [도착지점]
13:09 / 성산동 이성산성입구
13:09 / 이성산성 입구 교차로
13:10 / 성산동, 이성산성 버스정류장
하남위례길(3코스/위례역사길)/하남
(18.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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