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계사(雙磎寺) / 삼신산(三神山)
☞ 경상남도(慶尙南道) 하동군(河東郡) 쌍계사(雙磎寺)
쌍계사(雙磎寺) 위치 <참고사진>
쌍계사(雙磎寺)는 대한불교조계종 제13교구의 본사로 43개의 말사(末寺)를 관장하며 4개의 부속 암자가 있습니다. 723년(성덕왕22)에 의상의 제자인 삼법(三法)이 중국 당나라에서 귀국하여 육조혜능(六祖慧能)의 정상(頂相)을 모신 뒤 옥천사(玉泉寺)라는 이름으로 창건했습니다. 840년(문성왕2) 진감선사(眞鑑禪師)가 당(唐)에서 차(茶) 씨를 가져와 절 주위에 심고 중창하면서 대가람이 되었습니다. 886년(정강왕1) 쌍계사로 절 이름을 바꾸고, 임진왜란 때 소실된 것을 1632년(인조 10)에 벽암(碧巖)이 중건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백과사전>
쌍계사(雙磎寺) 전경 <참고사진>
이 절은 전형적인 산지가람배치로 남북축선상에 금강문, 천왕문, 팔영루(八泳樓), 대웅전(大雄殿) 등이 일직선으로 있고, 대웅전의 좌우에 설선당(說禪堂)과 요사(寮舍)가 있습니다. 이밖에 명부전, 나한전, 팔상전(八湘殿), 육조정상탑전(六祖頂相塔殿), 금강문 등이 남아 있습니다. 주요문화재로는 진감선사대공탑비(眞鑑禪師大空塔碑:국보 제47호)·부도(보물 제380호) 및 여러 점의 탱화(幀畵)가 남아 있습니다. <백과사전>
▶ 전각(殿閣)
쌍계사(雙溪寺): 경상남도 기념물 21호 <google참고사진>
쌍계사(雙溪寺) 가람배치 <참고자료사진>
● 석문(石門)
석문(石門) <참고사진>
화개천(花開川)을 가로지르는 쌍계교(雙磎橋)를 지나 늘어선 상가들을 지나면, 큰 바위 두 개가 석문(石門)처럼 우뚝 서 있습니다.
「雙磎」와 「石門」 <참고사진>
왼쪽 바위에는 쌍계(雙磎), 오른쪽 바위에는 석문(石門)이라는 글자가 각각 쓰여 있는데, 고운(孤雲) 최치원( 崔致遠) 선생이 이곳에 들렀다가 지팡이 끝으로 쓴 것이라 전합니다.
● 일주문(一柱門)
일주문(一柱門): [경남 유형문화재 제86호] <참고사진>
쌍계사를 방문했을 때[2014.04.05]는 일주문(一柱門)에 금란방(禁亂榜)이라는 현수막이 걸려있었습니다. 금란방(禁亂榜)이란 절에 불사(佛事)가 있을 때 잡인(雜人)의 출입을 막기 위하여 써붙이는 방문(榜文)입니다. 당시의 불사는 아마도 아래의 행사인 듯합니다.
<참고사진>
옛부터 우리나라에서는 금강산, 지리산, 한라산을 삼신산(三神山)으로 불렀습니다. 게다가 쌍계사의 대웅전 영역이 지리산의 삼신봉(三神峰)을 주산(主山)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삼신산쌍계사(三神山雙磎寺)」라고 했을 것으로 짐작합니다.
<참고사진>
일주문 정면에「삼신산쌍계사(三神山雙磎寺)」, 뒷면에는「선종대가람(禪宗大伽藍)」이라는 두 개의 현판이 걸려 있는데, 이는 근대 서화가로 이름을 떨친 해강 김규진(1868~1933)선생의 글씨입니다.
● 금강문(金剛門)
금강문(金剛門):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127호]
밀적금강(密迹金剛) 나라연금강(那羅延金剛)
이곳에는 금강역사(金剛力士)를 모시고 있는데 금강역사는 불교를 수호하고 악을 벌하는 천신(天神)으로 문의 왼쪽에는 사자를 탄 문수동자(文殊童子)와 밀적금강(密迹金剛)이 있고, 오른쪽에는 코끼리를 탄 보현동자(普賢童子)와 나라연금강(那羅延金剛)이 있습니다.
벽암(碧岩)스님의 글씨로 알려진 금강문(金剛門) 현판
● 천왕문(天王門)
천왕문(天王門):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126호]
현판
사천왕상(四天王像)
● 9층석탑(九層石塔)
● 팔영루(八詠樓)
팔영루(八詠樓):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74호] <참고사진>
현판 <참고사진>
팔영루(八詠樓) 기둥의 한국33 관음성지 제15호 쌍계사(雙磎寺) <참고사진>
일본에서는 33관음성지를 순례하면 무병장수와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믿음이 전해 내려와 연간 80만 명의 불자가 이 행렬에 참여한다고 합니다. 한국의 33관음성지는 대한불교 조계종이 한국관광공사와 함께 일본의 ‘33관음성지’에 착안해 관음 신앙을 중시하는 전통사찰 33곳을 2009년 5월 정하였습니다. 관음신앙은 관세음보살[관음보살]을 신봉하는 불교 신앙으로 불교의 핵심 사상인 ‘자비’의 상징입니다. 관세음보살은 부처지만 중생을 구제하기 위해 부처의 자리를 버리고 보살이 되어 중생을 구제합니다. 33은 관음보살의 33가지 형상을 뜻합니다.
● 진감선사대공탑비(眞鑑禪師大空塔碑)
진감선사대공탑비(眞鑑禪師大空塔碑): 국보 제47호
진감선사대공탑비(眞鑑禪師大空塔碑) 뒷면
비(碑)는 흑대리석 재질의 몸돌에 손상을 입긴 하였으나, 아래로는 거북받침돌을, 위로는 머릿돌을 고루 갖추고 있는 모습입니다. 당시의 대표적인 문인(文人)이었던 최치원(崔致遠) 선생이 비문(碑文)을 짓고 글씨를 쓴 것으로 유명합니다.
<참고사진>
붓의 자연스런 흐름을 살려 생동감 있게 해서체(楷書體)로 쓴 글씨는 최치원(崔致遠) 선생의 명성대로 뛰어납니다. 비문의 자경(字徑)은 2.3cm, 자수(字數)는 2,423자입니다.
귀부(龜趺)
통일신라 후기의 탑비양식에 따라 화강암 재질의 귀부(龜趺: 거북받침돌)는 머리가 짧고 추상적인 동물의 머리로 표현되어 신라 후기의 특징을 보이고 있습니다. 등에는 6각의 무늬가 가득 채워져 있으며, 등 중앙에는 비(碑) 몸돌을 끼우도록 만든 비좌(碑座)가 큼지막하게 자리하고 있는데, 옆의 4면마다 구름무늬가 새겨져 있습니다.
이수(螭首)
화강암 재질의 이수(螭首: 비의 머릿돌)에는 구슬을 두고 다투는 용의 모습이 힘차게 표현되어 있으며, 양측을 비스듬히 자른 오각형 모양입니다. 앞면 중앙에는「해동고진감선사비(海東故眞鑑禪師碑)」라는 비(碑)의 명칭이 새겨져 있으며, 꼭대기에는 솟은 연꽃무늬 위로 구슬모양의 머리장식이 놓여 있습니다.
● 대웅전(大雄殿)
대웅전(大雄殿): 보물 제500호 <참고사진>
대웅전(大雄殿)은 가람의 중심이 되는 전당으로 큰 힘이 있어서 도력(道力)과 법력(法力)으로 세상을 밝히는 영웅을 모신 전각이라는 뜻으로 이 사찰의 주된 건물입니다.
현판
대웅전 뒷면과 비사리구시
대웅전 뒤에는 비사리구시를 엎어놓았는데 사찰에서 많은 손님을 공양할 때 많은 양의 밥을 저장하던 아주 큰 나무를 파서 만든 것입니다. 당시의 사찰의 규모를 이것을 통해 가늠해 볼 수 있습니다.
불단(佛壇)
내부 중앙의 뒷면에 불단(佛壇)을 마련하였고 그 상부에는 정자각형의 닫집을 달아 조각으로 장식하였습니다.
▣ 목조삼세불좌상 및 사보살입상(木造三世佛坐像및四菩薩立像): 보물 1378호
목조삼세불좌상 및 사보살입상(木造三世佛坐像및四菩薩立像) <참고사진>
보물 제1378호로 지정된 쌍계사 대웅전에 봉안되어 있는 목조삼세불좌상 및 사보살입상(雙磎寺木造三世佛坐像및四菩薩立像)은 목조 칠존불 중 여섯 구의 보살상, 즉 목조 삼세불좌상 중 아미타불을 제외한 석가모니불상과 약사불상, 일광(日光)·월광(月光)·관음(觀音)·세지(勢至) 보살로 추정되는 네 협시보살 등 모두 6구의 보살상입니다. 본존 왼쪽의 아미타불상은 조성시기와 재료, 양식이 달라 문화재 지정에서 제외되었습니다. 이들은 모두 1639년(인조 17)에 청헌(淸憲) 등 11명의 승려화가가 조성하였는데, 불상의 재료는 적송(赤松)이며, 손과 발은 따로 만들어 끼웠습니다. 어깨 위로 길게 드리워진 머리칼은 황토로 만들어 붙였고 등 뒤에 복장구(腹藏口)가 마련되어 있습니다. 불상의 높이는 삼세불좌상 172∼203㎝, 사보살상 177∼186㎝ 정도이며 조선시대 17세기 전반의 칠존불 봉안형식 연구에 중요한 자료로 평가됩니다.
▣ 대웅전 삼세불탱(大雄殿三世佛幀): 보물 제1364호
대웅전 삼세불탱(大雄殿三世佛幀)/약사불도 석가모니불도 아미타불도: 보물 제1364호 <참고사진>
쌍계사 대웅전에 보존되어 있는 그림으로, 중앙의 석가모니불도를 중심으로 왼쪽에는 약사불도, 오른쪽에는 아미타불도를 배치한 삼세불탱화이다. 탱화란 천이나 종이에 그림을 그려 액자나 족자 형태로 만들어지는 불화를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