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동오소(乾東五所)
중국 북경(北京)/자금성, 내정(內廷)의 건동오소(乾東五所)지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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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동오소(乾東五所) 지역 <참고사진>
건동오소(乾東五所)는 내정(內廷) 동로(東路), 동육궁(東六宮) 북쪽에 위치하며 서쪽으로 어화원(御花園)과 접해있습니다. 동육궁(東六宮) 북쪽에 있다고 하여 예전에는 "북오소(北五所)"로 칭하였습니다.
건동오소(乾東五所) 지역 <참고사진>
건동오소(乾東五所)는 명초(明初)에 세웠으며 내정(內廷) 서로(西路) 건서오소(乾西五所)와 서로 대칭하였습니다. 통상 동서오소(東西五所)의 수(數)를 합한 십(十)"천간(天干)"과 동서육궁(東西六宮)의 수(數)를 합한 십이(十二)"지지(地支)"는 서로 응하고 있다고 인식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음양오행사상으로 나타내는 자금성의 총체적인 경향에서 온 것입니다.
건서오소(乾西五所) 지역 <참고사진>
청대(淸代) 건륭초기 건서오소(乾西五所)는 수방재(漱芳齋), 중화궁(重華宮), 건복궁 (建福宮)및 건복궁화원(建福宮花園)으로 다시 지어져 명대(明代)의 기본 건축 골격은 없어졌지만 건동오소(乾東五所)의 경우 비록 건륭39년(1774) 크게 수리한 바 있지만 명대(明代)의 건축적인 기본 골격은 유지하고 있습니다.
건동오소(乾東五所) <참고사진>
건동오소(乾東五所)는 5조(組)의 건축 구성을 이루고 있는데 서쪽에서 동쪽으로 두소(頭所), 이소(二所), 삼소(三所), 사소(四所) ,오소(五所)로 칭하였습니다. 청초(淸初) 건동오소(乾東五所)는 황자(皇子)의 주거지였습니다. 건륭년간 건동오소(乾東五所)에는 적지않은 황자(皇子), 황손(皇孫)들이 살았으며 일찌기 건륭황제는 동오소(東五所) 내에 소년 황자(皇子), 황손(皇孫)이 거주하도록하고 함께 내감(內監) 등이 거주하여 이들을 보살피도록 하였습니다.
가경제(嘉慶帝) <참고사진>
건륭39년(1774), 황제는 15째아들[가경제(嘉慶帝)]의 결혼 후에 살수 있도록 삼소(三所)와 사소(四所)의 내부를 고쳐 두소(頭所)와 이소(二所)와 함께 새롭게 건물을 고치도록 하였습니다. 가경제는 즉위전 육경궁(毓慶宮)에서 지냈으며 15살 성혼 후에는 건동오소(乾東五所) 중 이소(二所)에서 거주하였습니다. 거주 1년 후에 아가소(阿哥所) 가운데 건물인 힐방전(撷芳殿)으로 옮겼으며 다음 황제인 도광제를 낳았습니다.
청대(淸代) 황자(皇子)의 모습 <참고사진>
청대(淸代) 자금성(紫禁城) 안에는 황자(皇子)의 주거지가 여러곳 있었는데 육경궁(毓慶宮), 건동오소(乾東五所), 건서오소(乾西五所), 문화전(文華殿) 북쪽의 삼소(三所)인 속칭 아가소(阿哥所), 녕수구(寧壽宮)의 최북단의 건복궁(建福宮) 후면에 위치하는 조상소(兆祥所) 등 입니다.
건동오소(乾東五所) 지역 <google참고사진>
1. 여의관(如意館) 2. 수약방(壽葯房) 3. 경사방(敬事房) 4. 사집고(四执庫) 5. 고동방(古董房) 6. 정(井)
건륭30년(1765) 전후 두소(頭所)부터 오소(五所)까지를 여의관(如意館), 수약방(壽葯房), 경사방(敬事房), 사집고(四執庫), 고동방(古董房)으로 바꾸어 불렀습니다.
건동오소(乾東五所) 지역<참고사진>
건동오소(乾東五所)는 황자(皇子)의 주거지로부터 점차적으로 태감의 사무실 또는 궁정에서 사용하는 물품의 창고로 변하였으며 궁정화원(宮廷畵院)이 여의관(如意館)으로 옮겨오게 되었습니다.
<참고사진>
건동오소(乾東五所)는 매소(每所) 마다 남북으로 3구역으로 나누어져 있습니다. 앞 구역의 남쪽 담 정 중앙에는 황유리기와 지붕의 문(門)이 1좌(座)가 있으며 문 안에는 목영벽(木影壁) 병풍문이 1좌(座) 있습니다. 앞쪽과 중앙 구역은 모두 '일정양상(一正兩廂: 정전과 좌우로 행랑)'의 건축 형태를 이루고 있으며 중앙 구역 동남쪽 모서리에는 정정(井亭)이 1좌(座) 있습니다. 뒤쪽 구역에는 단지 황유리기와 지붕의 정전 건물 한 채만이 있습니다.
매소(每所) 마다 정전(正殿) 3좌(座), 배전(配殿) 4좌(座)가 있으며 각소(各所)의 사이에는 작은 담이 있어 매소(每所) 마다 독립되게 경계를 지우고 있으며 그 담에는 작은 문(門)이 있어 서로 통할 수 있게 되어 있습니다.
삼소(三所)인 경사방(敬事房)의 평면도 <참고사진>
삼소(三所)의 후궁(後宮) 뒷담 서북쪽으로는 작은문 1좌(座)가 있는데 이 문은 북쪽의 동서로 가로지르는 길다란 길로 통하는 유일한 통로입니다. 이 문은 평소에는 닫혀있으나 매월초4일, 14일, 24일 청소할 때나 특별한 일이 있을 때 열게됩니다.
▶ 여의관(如意館): 두소(頭所)
여의관(如意館)의 장인(匠人) 굴조린(屈兆麟)의 작품 '수도(壽桃)' <참고사진>
청궁(淸宮)에는 유일하게 독특한 기관이 하나있는데 바로 "여의관(如意館)"으로 황가(皇家)를 위한 화실(畵室)입니다. 여의관(如意館)은 처음 청나라 황제의 이궁(離宮)이었던 원명원(圓明園) 안에 설치되어 나라에서 가장 훌륭한 화가들이 속해있었습니다.
여의관(如意館)의 장인 굴조린(屈兆麟)의 작품 '화조단선(花鳥團扇)' <참고사진>
청대 여의관의 궁정화가들은 황제의 명을 받들어 그림을 그렸습니다. 청대(淸代) 번성기 때의 여의관에는 서화(書畵)의 대가들과 옥기(玉器)를 조각하는 장인들, 책을 제본하는 장인들 등 많은 장인들이 모여있었습니다. 건륭황제는 이곳에 와 화가들이 그림 그리는 모습을 보기도 하였습니다.
▶ 수약방(壽葯房): 二所
수약방(壽葯房) 정전(正殿)과 우물 <참고사진>
청(淸) 동치(洞治)시기에 궁중에 수약방(壽葯房)을 설치하였고 내무부( 內務府) 소속 기구로서 의사 20~30명이 있었으며 약을 달이고 고(膏:바르는약), 산(散:가루약), 환(丸:알약), 단(丹:벌꿀에 갠 특수약)의 약을 만들고 배급하는 일을 하였습니다.
진비(珍妃)가 구금되었던 곳 <참고사진>
동치황제의 유비(瑜妃), 순비(珣妃), 진비(瑨妃) 거처에서 소용되는 약품을 공급하기도 하였습니다. 현재 자금성내에 '壽葯房'의 현판과 '壽葯房' 글자가 새겨진 은제 약구(藥具)가 보관되어 있습니다. 수약방의 배전(配殿)은 서태후에 의해 진비(珍妃)가 구금된 곳이기도 합니다.
▶ 경사방(敬事房): 三所
경사방(敬事房) <참고사진>
청말(淸末) 경사방(敬事房) 수령태감(首领太監) <참고사진>
경사방(敬事房)은 청대(淸代) 궁중 태감총관(太監總管), 부총관(副總管)의 사무실로 쓰였습니다.
▶ 사집고(四执庫): 四所
사집고(四执庫) <참고사진>
사집고(四執庫)는 관(冠:모자), 포(袍:의복), 대(带:혁대), 이(履:신발) 등의 황제가 착용하는 각종 복식 등을 보관하는 곳입니다. '사집사고(四執事庫)'라고도 합니다.
사집고(四執庫)의 현판 “命德有意” <참고사진>
사집고(四執庫)의 동배전(東配殿) <참고사진>
▶ 고동방(古董房): 五所
<참고사진>
고동방(古董房)은 청대(淸代) 황제의 생일 때 왕공과 내외대신 등으로부터 받은 진귀한 예물 등 궁중의 골동품[장식품, 완구, 그릇 등]을 보관하던 곳입니다.
▶ 정정(井亭)
<참고사진>
매소(每所)의 중앙 구역 동남쪽 모서리에는 정정(井亭)이 1좌(座)씩 있습니다.
건동오소(乾東五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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