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팔색길(칠색/효행길) / 수원 (17.04.29)
☞ 효행길[칠색] / 수원(水原)
▶ 지역날씨 : 연무[최고기온: 23.7℃, 최저기온: 9.6℃]
▶ 트레킹코스 :
수원역 - 이목동차고지 - 효행공원[출발지점] - 괴목정교표석 - 노송지대 - 북수원(파장)시장 - 만석공원(만석거/일왕저수지) - 수원미술전시관(만석거표석) - 영화정 - 수원종합운동장 - 장안문 - 화성행궁 - 팔달문 - 수원천(매교삼거리) - 매교역 - 상류천표석 - 세류사거리(세류고가차도/덕영대로) - 세류역[도착지점]
수원팔색길[칠색/효행길] 코스도 <참고사진>
수원팔색길[칠색/효행길] 코스도 <참고사진>
▶ 트레킹 거리: (약12.3km),
트레킹 시간: (4시간21분 / 출발지점~도착지점 기준: 점심 및 행궁답사 시간 약 1시간10분 포함)
수원역---(도보 및 버스:38분)---이목동차고지---(도보:8분)---효행공원[출발지점]---(9분)---괴목정교표석---(11분)---노송지대---(26분)---북수원(파장)시장---(18분)---만석공원---(10분)---수원미술전시관---(9분)---영화정---(11분)---수원종합운동장---(19분)---장안문---(56분: 점심42분포함)---화성행궁(답사 22분)---(10분)---팔달문---(14분)---수원천---(8분)---매교역---(5분)---상류천표석---(17분)---세류사거리---(16분)---세류역[도착지점]
▶ 트레킹 사진
● 수원역 ~ 효행공원 구간
수원역 7번 출입구 앞 '수원역*AK프라자' 버스정류장에서 42번 버스 탑승하여 '이목동차고지[종점]'에서 하차 <google참고사진>
북부권 버스공영차고지[이목동차고지]
'이목동차고지[버스종점]에서 '효행공원'까지는 도보로 약 500m 이동
수원팔색길[칠색/효행길] 출발점인 '지지대고개'에서 '프랑스군참전기념비'까지는 수원둘레길 2구간 트레킹시 걸었던 곳이기에 생략하고 효행길 트레킹은 '효행공원'에서부터 출발합니다.
● 효행공원 ~ 노송지대 구간
효행공원 ~ 노송지대 <google참고사진>
10:26 / 효행공원[효행시비(孝行詩碑)와 정조대왕상(正祖大王像)]: 정조대왕의 효심을 기리기 위해 지지대고개 주변에 조성한 공원.
정조대왕상(正祖大王像)
효행시비(孝行詩碑)
효는 모든 행실의 근본이라 했다.
가엾게 돌아간 아버지의 넋을 달래고 영원한 복을 빌기 위하여
수원 백여리 길을 수없이 오고갔던 정조임금의 효성 앞에 머리 숙이자
그리고 우리 모두 그 효성을 본받아 실천에 옮길 것을 다짐하자
10:30
10:31 / 효행공원 어린이생태미술체험관
10:32
10:35 / 괴목정교(槐木亭橋) 표석
필로(蹕路)
10:36 / 괴목정교(槐木亭橋)
괴목정교는 1번국도[경수대로] 지지대고개 부근의 효행공원과 수원북부권 버스공영차고지 사이의 개울을 건너는 다리입니다. 괴목정교라는 이름의 유래는 다리 근처에 괴목정이라는 정자가 있어서라고 하고, 또 괴목나무가 있어 붙여졌다는 이야기도 전해집니다.
10:37
10:38
10:38 / 괴목정교에서 약 50m거리에 있는 수령 300~400년의 느티나무 3그루[보호수]
보호수 '느티나무'
10:39 / 미륵당(彌勒堂), 법화당(法華堂)
미륵당(彌勒堂)은 조선(朝鮮) 중기에 건조(建造)된 건물로 옛날부터 있던 미륵 부처라고 불리는 석불 입상을 모신 사당으로 일명 미륵뎅이라고도 불려지며 지금은 법화당(法華堂)이란 현판이 붙어 있습니다. 주민들은 옛부터 이 곳에서 마을과 가정의 무사태평과 풍년, 득남 등을 기원하면 소원성취의 영험을 볼 수 있다고 믿어 왔으며 마을의 수호신으로 받들어 왔습니다.
법화당(法華堂) <참고사진>
미륵당 석불입상(彌勒堂 石佛立像) <참고사진>
미륵당안의 미륵입상은 총 높이 249cm, 가슴 폭 107cm, 머리 높이 114cm정도이며 화강암으로 조성되었습니다. 전체적으로 신체에 비해 큰 머리, 세밀한 옷주름, 생동감 없는 얼굴표현 등의 양식을 보이고 있습니다. 이것은 조선시대 민간신앙과 결합된 미륵불상에서 보이는 공통된 특징으로 조선 중기 이후의 불상으로 추정됩니다.
10:40
10:43 / 지지대교차로
10:46 / 노송지대(老松地帶)
10:47
10:47
10:48 / 노송공원 조성예정 지역(왼쪽)
10:49 / 노송 제49호 [지정번호 : 경기도 지정 지방기념물 제19호, 지정연도 : 1973. 7. 10]
10:50 / 노송 제50호 [지정번호 : 경기도 지정 지방기념물 제19호, 지정연도 : 1973. 7. 10]
10:52 / 노송공원 조성예정 지역
10:54 / 노송 제81호 [지정번호 : 경기도 지정 지방기념물 제19호, 지정연도 : 1973. 7. 10]
10:57 / 노송 제100호 [지정번호 : 경기도 지정 지방기념물 제19호, 지정연도 : 1973. 7. 10]
10:57
10:58 / 노송삼거리
● 노송지대 ~ 만석공원 구간
노송지대 ~ 만석공원 <google참고사진>
11:00 / 치산치수지비(治山治水之碑)
노송지대를 지나 파장사거리 부근에 ‘治山治水之碑’라 새겨진 일제강점기 때의 비석이 있습니다. 앞면에 "치산치수지비(治山治水之碑)", "경기도지사(京畿道知事) 칸죠 요시쿠니(甘蔗義邦)가 썼다"고 새겨져있습니다. 비석에는 6.25전쟁 때의 총탄흔이 남아있습니다.
이 비는 1939년에 장두병(張斗柄)이라는 한학자가 썼는데, 광교산 일대가 황폐해지면서 민둥산이 되어 토사가 유출되고 홍수가 나서 황무지로 변해가는 것을 1931년부터 1934년, 1936년에 공사를 하고 1939년에 최종 준공하였다는 것을 기록으로 남기며, 사방공사(砂防工事)의 완성을 축복하고 감사한다는 내용입니다. 1941년(昭和16년) 수원군 일왕면장(日旺面長) 히로요시 히테토시(廣吉秀俊)가 세웠으며, 이 비를 세우는데 협조한 기관과 인물은 수원군 일왕면장 이석래, 수원읍장 우메하라 시주오(梅原靜雄), 일왕사방림 시업조합장 이필상, 동산농사주식회사 조선지점, 동양척식주식회사 경성지점 등이 적혀있습니다.
11:03 / 정자동 주교좌성당(主敎座聖堂)
주교좌 성당은 교구의 관리자인 교구장주교의 주교좌가 있기 때문에 일컫는 말입니다.
11:07 / 노루마당사거리
전해오기로는 옛날에 이 곳에 노루가 많이 뛰어 놀았기 때문에 노루 마당이라고 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학자들은 ‘노루’라는 지명을 ‘넓다’라는 의미로 해석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합니다. 이렇듯 ‘노루’ 지명이 들어가는 곳은 여기 말고도 광교산의 노루목이 있습니다. ‘노루목’은 ‘넓은 목’이란 옛 말이 변해 붙여진 것이라고 합니다.
11:12 / 북수원시장(파장시장)
파장시장은 수원시 장안구 파장동에 있어 붙여진 이름으로 파장이라는 명칭이 장이 끝난다는 의미가 있어 2017년 1월31일 ‘북수원시장’으로 명칭을 바꾸었습니다. 장안구에서 소재하는 가장 큰 시장이며, 예전 5일장이 서는 날이면 한양으로 올라가기 전 봇짐장수들이 집결하던 장소로 역사가 깊은 곳입니다.
11:28 / 만석거삼거리가 보입니다.
11:29 / 만석거삼거리
● 만석공원 ~ 장안문 구간
만석공원 ~ 장안문 <google참고사진>
11:30 / 만석공원, 만석거(萬石渠), 일왕저수지
만석공원 안에 보이는 저수지가 만석거 또는 일왕저수지로 불립니다. 만석거란 이 저수지 때문에 쌀 만석이 더 생산된다고 붙여진 이름으로 전해집니다.
11:30
11:31
만석거(萬石渠)는 1795년 봄에 둘레 1천22보(약 1.2km), 얕은 곳이 7척(약 3.3m), 깊은 곳이 11척(약 5.1m), 둑길이가 725척(약 340m), 방죽 밑면 두께가 52척(약 24.3m), 윗면 너비가 17척(약 7.9m)으로 축조되었습니다.
11:31
조선왕조실록 정조 20년(1796) 병진 1월 20일자 기록에 ‘장차 현륭원(顯隆園)에 배알하려고 어가가 화성(華城) 교귀정(交龜亭, 영화정을 말함)에 이르러 우의정 윤시동에게 이르기를, “관개(灌漑)하는 이익이 크다고 하지 않겠는가. 이 못을 파면서부터 1년이 지나지 않아 앞 들판에서 수확한 것이 이미 1천 곡(斛)이 되었다.” 하고는, 인하여 정자[亭]를 ‘영화(榮華)’로, 야(野)를 ‘관길(觀吉)’로, 평(坪)을 ‘대유(大有)’로, 도랑[渠]을 ‘만석(萬石)’으로 각각 명명하고 비석을 세워 기록하도록 명하였다. 행궁(行宮)에 이르러 밤을 지냈다.‘
11:32
11:37 / 만석공원 출입구
11:37 / 영화천(迎華川)
11:40 / 수원미술전시관
11:40 / 수원시미술전시관 옆 만석거(萬石渠) 표석
원본이 분실되어 최근에 다시 세운 만석거(萬石渠) 표석
11:40
11:43 / 구 영화정지(舊 迎華亭址)
11:45
11:47 / 정조로(正祖路)
11:49 / 영화정(迎華亭)
영화정(迎華亭) <참고사진>
11:53 / 그림벽화로 장식한 송도빌라아파트
11:55 / 월계사거리
11:56 / 아너스빌위즈주상복합(45층)
12:00
12:00 / 수원종합운동장
12:06 / 운동장사거리
12:07 / 은행나무 가로수길
12:14 / 장안문이 보입니다.
● 장안문 ~ 팔달문 구간
장안문 ~ 팔달문 <google참고사진>
12:18 / 장안문이 보수 공사중입니다.
12:19 / 장안문(長安門)
장안문(長安門)은 정면 5칸, 측면 2칸의 중층누문(重層樓門). 수원성(水原城)의 북문(北門)입니다. 하나의 홍예문(虹蜺門) 위에 2층 누각을 올리고, 바깥쪽에 둥근 옹성(甕城)을 갖추었습니다.
12:23 / 한옥기술전시관
12:24
12:26 / 화서문 옛길 [점심을 위해 잠시 경로를 벗어나 화서문 옛길로 접어듭니다.]
12:28 ~13:03 / 점심
추어탕
13:08 / 점심 후 벗어난 경로에서 제자리로 돌아왔습니다.
13:12 / 팔달산과 화성행궁광장
13:15 / 화성행궁 (홍살문)
화성전도
화성행궁(華城行宮)의 글씨는 정조대왕의 어필입니다.
신풍루(新豊樓)
신풍루는 화성 행궁의 정문으로 1790(정조 14)에 누문 6칸을 세우고 진남루(鎭南樓)라고 하였습니다. 1795년 정조는 신풍루로 고치라고 명하여 조윤형(1725 ~ 1799)으로 하여금 편액을 쓰게 하였습니다. '신풍'이란 이름은 일찍이 한나라 고조가 '신풍 땅은 새로운 또 하나의 고향' 이라고 한 고사에서 유래한 것으로 정조에게 화성은 고향과 같은 고장이라는 의미로 편액을 걸게 한 것입니다.
좌익문(左翊門)
좌익문은 중양문 앞에 있는데, '좌익은 곧 곁에서 돕는다'는 뜻으로 내삼문(內三門)인 중양문(中陽門) 바로 앞에서 행궁을 지키는 중삼문(中三門)입니다. 1790년 완성되었고 편액은 정동준(鄭東浚: ?∼1795)이 정조의 명을 받들어 썼습니다.
중양문(中陽門)
중양문은 궁궐 건축의 삼문 설치 형식에 따라 행궁의 정전인 봉수당을 바로 앞에서 굳게 지키는 역할을 하는 내삼문(內三門)입니다.
1790년(정조 14)에 완성되었으며, 중앙의 정문과 좌우의 협문으로 이루어져 있고 문 좌우로 긴 행각을 두었습니다.
봉수당(奉壽堂)
봉수당은 화성 행궁의 정전(正殿)건물이자 화성 유수부의 동헌 건물로 장남헌(壯南軒)이라고도 합니다. 1795년(정조 19) 정조는 헌경왕후(獻敬王后, 혜경궁홍씨)의 회갑연 진찬례를 이 건물에서 거행 하였습니다. 이 때 정조는 헌경왕후의 장수를 기원하며 '만년(萬年)의 수(壽)를 받들어 빈다'는 뜻의 봉수당이라는 당호를 지어 돈령부지사를 지낸 조윤형(曺允亨: 1725~1799)으로 하여금 현판을 쓰게 하였습니다. 이 건물은 1789년(정조 13) 9월 완공 되었으나, 일제강점기 때 파괴되어 1997년 복원 되었습니다.
봉수당 내부에는 어좌(御座)가 있고 그 뒤로 일월오봉병(日月五峰屛)이 놓여 있습니다.
봉수당 내부
<참고사진>
봉수당 내부에는 1795년(정조 19) 이곳에서 거행된 헌경왕후(獻敬王后, 혜경궁홍씨)의 회갑연 진찬례의 모형을 전시하고 있습니다.
혜경궁 홍씨 진찬상 모형이 따로 설치, 전시되고 있습니다.
장락당(長樂堂) <참고사진>
장락당은 1794년(정조 18) 봉수당 남쪽에 동향으로 세워졌으며 1795년 을묘원행중 헌경왕후(獻敬王后, 혜경궁홍씨)의 침전으로 사용되었습니다. 장락당(長樂堂)이라는 이름은 전한(前漢)의 도읍인 장안성의 궁전이었던 장락궁(長樂宮)에서 따왔습니다.
장락당의 현판은 정조의 친필입니다. <참고사진>
복내당(福內堂)
복내당은 행궁의 내당(內堂)으로 정조가 행차시에 머물렀던 곳이며 장락당 남쪽에 위치합니다. 복내당(福內堂)의 이름은 '복(福)은 안에서 생겨나는 것이다'라는 뜻입니다.
유여택(維與宅)
유여택은 평상시에 화성유수가 거처하다가 정조가 행차시에 잠시 머무르며 신하를 접견하는 건물이었습니다. 유여택이라는 이름은 『시경』 중에서 주나라 천명을 받아 나라를 크게 하고 집을 주었다는 데서 따온 것으로 정조의 입장에서는 화성 유수를 임명하여 내려보내는 곳이라는 의미가 됩니다. 건물은 동향으로 왼쪽에 공신루(供宸樓) 1칸을 덧붙여 휴식 공간을 마련하였습니다.
앙부일구 복제품
대장금 촬영지에 세워진 모형
좌익문(左翊門)을 지나와 본 신풍루(新豊樓)
13:37 / 약 20여분의 화성행궁 답사를 마치고 화성행궁 홍살문 앞으로 돌아왔습니다.
13:38 / 화성행궁광장 길 건너 종각(鐘閣), 여민각(與民閣)
여민각(與民閣)
13:44 / 팔달문(八達門)이 보입니다.
● 팔달문 ~ 매교역 구간
팔달문 ~ 매교역 <google참고사진>
13:47 / 팔달문(八達門)
팔달문(八達門)
13:49 / 팔달문(八達門)
13:51 / 정조로 거리
13:52 / 중동사거리
13:56 / 교동사거리
13:59 / 매교삼거리
14:01 / 수원천
● 매교역 ~ 세류역 구간
매교역 ~ 세류역 <google참고사진>
14:09 / 매교역
14:14 / 상류천(上柳川) 표석
수원천 하류를 통과하는 냇가에 버드나무가 많이 있어서 상류천(上柳川)이라 불렀다. 그리고 냇가에 있는 마을을 버드내 마을이라고 불렀다. 상류천에 버드나무 잎이 무성하면 그 광경이 매우 아름다웠다고 한다. 정조의 현륭원 거둥길에 세운 상류천의 표석이 지금의 정조로변인 세류3동 130번지 부근에 세워져있다. 처음에는 삼거리라고 부르다가 1795년에 상류천으로 바꿔 불렀다고 한다.
14:17 / 정조사거리
14:24 / 세류3동 주민센터
14:31 / 세류사거리[세류고가차도/덕영대로]
14:33 / 세류사거리[세류고가차도/덕영대로]를 지나 세류역까지는 수원둘레길1구간과 겹치는 구간입니다.
14:45 / 제10전투비행단 앞
14:47 / 세류역 [도착지점]
세류역 승강장
세류역에서 효행길 마지막 도착지점인 수원.화성 시계, 대황교까지는 수원둘레길 3구간 트레킹시 걸었던 곳이기에 생략하고 효행길 트레킹은 이곳 세류역에서 마칩니다.
수원팔색길(칠색/효행길) / 수원 (17.0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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